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4화 (14/189)

14. 첫 프로듀싱(1)

그녀들의 장기인 퍼포먼스를 강조하는 안무를 구성했지만, 노래의 개성과 불협화음이 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과거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녀들이 제대로 자신들의 퍼포먼스를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곡을 준비하게 되었다.

“방금 제 앞에서 발표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빌러 아일라쉬가 음악 시장의 세계적 기준이 되었다고요. 그녀가 세계 음악 시장의 최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은 저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세계 음악의 기준이 되었다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세계 음악 시장의 이단아와 같은 특이한 존재이니깐요.”

난 발표 도중에 자연스럽게 제임스 권을 쳐다봤다.

그는 내가 자신이 조금 전에 한 말을 깐다고 생각했는지 뭐 씹은 얼굴과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빌러 아일라쉬라는 10대 천재 아티스트가 세상이 모습을 나타내기 전까지 팝의 종말을 예견하는 전문가들도 꽤 많았습니다. 팝은 이제 한물간 장르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올 것이 없다 등 팝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예언을 던지는 전문가들이 무척 많았죠. 그러했던 음악 시장의 과거를 생각하면 빌러 아일라쉬의 성공은 전혀 예측 밖의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느새 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이 무언가에 집중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고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더 잘할 수 있다는 이상한 감정까지 들기 시작했다.

나도 정확히는 몰랐었는데, 내 안에 숨겨진 관종끼가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빌러 아일라쉬는 자신의 침실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팝 음악을 가지고 놀면서 지금의 주옥과 같은 명곡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팝을 즐기는 마음, 그것이 바로 빌러 아일라쉬 음악의 정체성이었던 거죠. 그리고 그런 그녀의 정체성은 새로운 팝 음악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습니다. 결국, 트렌드는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만들거나 주도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내 말에 따라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프레젠테이션이 나쁘지 않은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저는 워너비 걸즈도 그런 가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쁜 외모와 귀엽기까지 한 얼굴을 가지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입이 쩍하고 벌어질 정도의 춤을 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상상만으로 신이 나시지 않습니까?”

말하는 도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그녀들이 내가 만든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현재 음악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기존의 걸그룹들은 어떻습니까?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의 그룹들만 득실거리지 않습니까? 그런 획일화된 음악 시장에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아티스트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되는 그런 그룹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앞으로 워너비 걸즈가 가야 할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말을 끝으로 내 프레젠테이션은 끝이 났다.

어느새 흥분해서 격하게 말을 했는지, 약간 숨이 가빠진 것이 느껴졌다.

끝내고 난 다음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나름 괜찮았던 프레젠테이션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었다.

약간의 정적이 회의실에 흘렀다.

그리고 묘한 미소를 짓고 있던 김진영이 마이크를 잡았다.

“자신이 구상한 걸 열정적인 모습으로 설명해 줘서 고마웠어요. 우리 고생한 두 분 작곡가에게 박수 한번 보낼까요?”

짝짝짝.

김진영의 말에 사람들은 나와 제임스 권에게 박수를 보냈다.

“자, 그럼 아까 말한 대로 바로 투표에 들어갑시다.”

이윽고 투표가 시작되었다.

나와 제임스 권은 투표가 시작되려 하자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이제부터는 당사자인 우리가 없는 것이 더욱 편한 분위기에서 투표가 가능할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 * *

투표가 모두 끝났다.

결과를 확인한 김진영은 미소를 지은 채로 마이크를 잡았다.

“후후, 이곳에는 저랑 생각이 비슷했던 분들이 더 많았나 보군요. 압도적인 결과로 워너비 걸즈의 컴백 곡이 정해졌네요.”

사람들 모두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유독 기획실장만이 지금의 결과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얼굴로 고민하던 그는 결국 마이크를 잡으며 물었다.

“전 지금의 결과가 솔직히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지금도 전 제가 투표한 곡이 훨씬 세련되고 좋은 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약간의 불만까지 내비치는 그의 얼굴을 김진영은 재밌게 쳐다보며 그의 생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꺼내기 시작했다.

“뭐, 세련된 느낌의 곡이라는 기획실장의 의견에는 저 역시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곡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어요.”

“약점이요?”

“네.”

“어떤 약점인가요?”

기획실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 김진영의 말에 다시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김진영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획실장을 위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수를 보고 쓴 곡은 아니에요. 그저 요즘 좋은 평가를 받는 곡들의 장점을 모은 듯한 노래죠. 덕분에 식상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 많았어요.”

김진영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아마 이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 때문에 다른 후보곡을 선택했을 것이다.

“음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니크함을 잃어서는 안 되죠. 아쉽게 탈락한 곡은 그런 부분에서 다른 곡과 비교해서 많이 부족했어요.”

“…그렇군요.”

100% 이해가 된다는 얼굴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납득한 얼굴이었다.

설명을 듣다 보니 자신 역시 공감이 되는 부분도 많았던 탓이다.

기획실장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김진영은, 다시 고개를 돌려 회의실 안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 모두 고생하셨어요. 여러분이 고생한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거 같습니다. 오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번에 열린 청음회는 좋은 타이틀곡을 얻고 막을 내리게 되었다.

* * *

요즘은 내 전용 작업실이 되어 버린 구석 작업실.

나는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곧바로 작업실로 돌아와 곡 작업을 시작했다.

결과를 기대하며 마냥 기다리는 있는 것이 더 괴로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것을 잊고자 다른 작업을 몰두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아무리 건반을 두드리고 있어도 어느새 내 머릿속에는 좋은 결과가 생기길 기대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으악!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생각이 나는 이유는 도대체 뭐야? 미치고 환장하겠네, 젠장!”

나는 괴로워 소리를 지르기에 이르렀다.

그때 괴로워 몸부림치던 내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우리 작곡가님을 이렇게 힘들게 할까?”

나뿐인 공간에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작업실 안을 살폈다.

이윽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웃는 얼굴로 서 있는 김진영 대표님의 모습이었다.

“어? 대, 대표님이 여긴 어쩐 일로…….”

의외의 인물 등장에 놀란 나는 당황하며 김진영 대표님께 물었다.

김진영은 작업실 안을 살짝 훑어보며 내 물음에 답했다.

“작업실에는 오랜만에 오네. 우리 이서준 작곡가님이 이런 작은 공간에서 그런 좋은 곡을 만들어 내셨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신기하다. 그지?”

약간 뜬금없는 소리여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인 것은 김진영 대표는 내 대답을 듣지 못해도 상관없는지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하기에 바빴다.

“그래도 그렇지… 앉으라고 권하지도 않냐? 이거 너무하네. 내가 그래도 명색이 회사 대표잖아.”

김진영의 불만 어린 소리에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녹음실 소파를 손으로 닦았다.

그리고는 황급히 소파를 가리키며 앉기를 권했다.

“여, 여기라도 앉으시겠습니까?”

김진영은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날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결과 궁금하지 않아? 아까 미치겠다고 한 것도 결과가 궁금해서 그런 거지?”

그의 물음에 나는 솔직한 답을 말했다.

“…솔직히 궁금합니다. 자꾸 결과를 상상하는 게 너무 괴로워서 다른 일에 몰두하며 잠시라도 잊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내 말을 들은 김진영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후후, 그럼 내가 우리 이서준 작곡가님을 편하게 만들어 드릴 수 있겠네. 사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도 결과를 직접 전달하려고 찾아온 거야.”

꿀꺽.

나도 모르게 긴장한 모양이다.

목울대가 격하게 움직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빙긋 웃는 얼굴로 잠시 나를 바라보던 대표님은, 곧 나에게 기다리던 소식을 전했다.

“축하해. 네가 만든 곡이 워너비 걸즈의 컴백 곡으로 결정되었어.”

찌릿.

순간적으로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뒤쪽 머리카락까지 쭈뼛 서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다.

생전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이상하고 묘한 느낌이었다.

아, 아니다.

그전에 이런 느낌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한 번 있었다.

그것은 바로 JYK에서 나에게 작곡 공모전 입상을 알리던 전화를 받았을 때의 느낌이었다.

순간 사고 회로가 정지된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나를 김진영 대표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어? 어디 안 좋아? 표정이 왜 그래?”

“조, 좋습니다. 근데 솔직히 실감이 안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듭니다.”

대표님은 그런 나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진짜 좋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야. 정말 좋으면 TV나 영화에서의 주인공처럼 기분 좋아 방방 뛰며 좋아하지 않지. 지금 서준이 너처럼 그런 반응이 나와야 진짜야.”

그리고는 자신의 경험도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나도 그런 적이 있어. 내가 만든 노래가 가요 순위 프로에서 처음으로 1위 했을 때 그때 내 반응이 너랑 똑같았어. 네 덕분에 문득 짜릿했던 그때의 감정이 다시 떠오르네.”

나는 잠시 기쁨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대표님도 고맙게도 그런 나를 그저 바라보고 계셨다.

이윽고 내가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르는 듯 보이자, 건네야 할 이야기 하나를 꺼내었다.

“내가 직접 여기까지 온 이유가 하나 더 있어.”

그의 말에 나는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이번 워너비 걸즈 프로듀싱을 네가 맡아 보지 않을래? 아까 프레젠테이션하는 거 보니까 네가 맡아 보는 게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네게 맡기면 안 되겠지. 네가 프로듀싱에 관한 경험이 없잖아. 그러나 이쪽 일이라는 게 다른 분야 일과 달라서 이성보다는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때가 많거든. 이번이 딱 그런 경우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제안이었다.

그러나 잠깐 고민한 나는, 이윽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제가 맡아 보고 싶습니다. 잘할 자신도 있고요.”

자신감 넘치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드셨나 보다.

대표님은 환히 웃는 얼굴로 내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그렇지. 바로 이런 자신감이 있어야지. 그럼 우리 워너비 걸즈 잘 부탁할게. 아까 네가 말한 것처럼 제대로 이끌어 줘.”

“네.”

그렇게 나는 첫 프로듀싱까지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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