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5화 (15/189)

15. 첫 프로듀싱(2)

청음회가 끝나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기획실장 강호석은 지금 많이 난감한 기분이었다.

머리가 복잡했던 그는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손목시계 상자가 하나 들어 있었다.

포장부터 남달라 보이는 것이 고가의 시계가 분명했다.

그는 상자를 열고 안에 든 황금색의 시계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에휴~ 이걸 왜 덥석 받아서 이렇게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 거야? 받은 내가 멍청한 놈이지… 누구를 탓하리?”

제임스 권의 아버지인 권성동 사장과의 술자리에서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그가 주는 걸 냉큼 받은 건 분명 자신의 잘못이었다.

이 시계 때문에 청음회에서 일부러 제임스 권의 편도 들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냥 돌려주는 게 마음이 편하겠지?”

자신이 알기론 몇천만 원짜리 고급 브랜드 시계였기에 조금은 아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JYK에서 오래 근무하려면 이런 뒤탈이 염려되는 물건은 미리 돌려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자신에게 시계를 건넨 MBT 엔터테인먼트 사장 권선동을 다시 만나야 하는 귀찮은 일이 생겼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때, 사무실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이봐요. 그렇게 함부로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꽝.

문이 세게 열리며 상기된 얼굴의 제임스 권이 자신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만류하던 기획실 직원이 사무실 안으로 나타난 정황을 짐작해 보니 제임스 권은 직원의 만류를 뿌리치며 막무가내로 사무실 문을 연 모양이다.

기획실장 강호석은 제임스 권을 말리기 위해 따라온 직원을 향해 말했다.

“괜찮으니까 최 대리는 나가 봐. 알았지?”

“…네.”

자신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안하무인처럼 행동한 제임스 권이 못마땅했지만, 상사의 지시라 어쩔 수 없이 그를 놔둔 채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기획실장은 멀뚱히 서 있는 제임스 권을 향해 앉기를 권했다.

“자,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이리로 와서 소파에 앉지.”

제임스 권은 흥분한 모습 그대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맞은편 소파에 앉은 기획실장을 향해 따지기 시작했다.

“일을 어떻게 하시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도록 만드십니까?”

그의 흥분된 어조의 항의를 듣자마자 강호석의 표정도 달라졌다.

순간적으로 차갑게 변한 것이다.

그는 제임스 권의 무례에 크게 화가 났다.

그러니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도 결코 전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말은 똑바로 하자. 내가 네 부하 직원이냐? 지금 누구보고 그따위로 싸가지 없게 말하는 거야?”

그러나 제임스 권도 만만치 않았다.

“제가 화가 안 나게 생겼습니까? 약속한 사실과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선물까지 받으시고… 약속한 일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선물만 꿀꺽하시겠다는 그런 얄팍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

화가 난 채 말없이 제임스 권을 노려보던 강호석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계 상자 하나를 가지고 와 제임스 권 앞에 꽝하고 내려놓았다.

“내가 술에 취해 실수했다. 이걸 왜 받아서 네게 이런 모욕을 받아야 하는지… 물론 내가 저지른 실수이니 내가 감내하는 것이 맞겠지.”

강호석은 제임스 권을 향해 강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짚어야 할 부분이 있어 제대로 알려 줄 테니 잘 들어라. 네 아버지가 내게 부탁한 것은 네가 구상하고 있던 기획안을 청음회에서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달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건 내가 분명히 들어주었지. 원래대로라면 네가 청음회에서 프레젠테이션할 기회는 애초에 없었어.”

그는 철없는 도련님 같은 제임스 권에게 세상의 무서운 진실을 제대로 알려 고 싶었다.

“네가 지금 화가 난 것은 네가 만든 곡이 타이틀곡 선정에서 탈락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알아라. 화를 내야 할 번지수가 틀렸어. 내가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곡이 탈락한 이유는 그건 네 곡이 이서준 작곡가 곡보다 좋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뼈를 아주 세게 때리는 듯한 그의 말에 제임스 권이 발끈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건 무슨 음모가 있기에 그런 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 미국에서 제대로 공부한 내가 그런 음악의 음 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중이떠중이에게 졌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강호석은 제임스 권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 철없는 도련님은 JYK가 어떤 회사인지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굳이 피곤하게 더 떠들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곳까지 방문해 준 성의를 봐서라도 그를 위해 몇 마디 더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넌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정말 모르는구나. 대표님이 만든 곡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칼같이 쳐 내는 게 우리 회사다. 처음부터 내가 아무리 네 곡을 밀어주기 위해 노력해도 네가 만든 곡이 별로면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지. 내가 무슨 수를 쓴다 해도 네 곡이 이서준 곡보다 부족한 걸 메꾸지는 못한다고, 내 말 알아듣겠어? 그러니 정신 차려라. 내게 와서 이렇게 화를 내며 따질 시간에 차라리 곡이라도 더 열심히 다듬는 것이 앞으로 네가 발전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될 거다.”

연이어 때린 뼈를 재차 때리는 듯한 모진 충고가 그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의 말을 들고 있던 제임스 권은 화를 내며 당신 말이 틀렸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이번 타이틀곡 선정은 분명 잘못된 일이었고, 그걸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는 기획실장이라는 직책의 남자가 아니었다.

어차피 자신의 아버지 회사에도 많이 있는 머슴과 같은 존재가 기획실장 아니던가?

제대로 따지고 고치려면 머슴이 아니라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린 제임스 권은 그 즉시 소파에서 일어섰다.

“이 사태를 제대로 수습해 줄 수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차라리 낫겠네요. 일개 직원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힘이 없잖아요.”

“…그러시던지.”

기획실장은 그의 고집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미쳐 날뛰는 망아지는 그냥 제풀에 지칠 때까지 가만 놔두는 게 상책이었다.

쾅.

다시 문이 부서질 듯 세게 닫으며 제임스 권은 사라졌다.

혼자 남은 기획실장은 소파 테이블 위에 놓인 시계 상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자식. 들고 가라고 했더니 그냥 무시하고 가 버리는군. 이렇게 되면 내가 결국… 에잇, 짜증 나…….”

권선동 사장을 안 만나도 될 줄 알았는데 결국 그에게 만나자는 전화를 하게 만드는 나쁜 놈이었다.

* * *

제임스 권은 기획실을 나선 후 그대로 김진영 사장의 개인 작업실로 향했다.

그를 만나 제대로 따질 생각이었다.

쾅 쾅 쾅.

역시 이번에도 거칠게 작업실 문을 두드리는데, 의외로 뒤에서 자신이 찾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제임스가 내 작업실에는 웬일이야?”

고개를 돌리니 김진영 대표가 차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뒤 김진영의 개인 작업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제임스 권이었다.

“솔직히 이해가 안 갑니다.”

그의 말에 김진영이 궁금한 듯 물었다.

“뭐가 이해가 안 간다는 거지?”

“제 곡이 떨어지고 이서준이 만든 곡이 타이틀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의 불만에 김진영은 의외로 기분 좋게 웃었다.

그의 의욕과 경쟁심을 높이 산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생각은 사실 나쁘지 않아. 인간은 동기가 필요하니까. 이번에 진 것을 분하게 여길 줄 알아야 더욱 노력하는 작곡가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제임스 권이 바라는 것은 그런 칭찬 따위가 아니었다.

“제가 보기엔 이건 옳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시 청음회를 열어 주십시오.”

제임스 권의 지금 말에는 웃고 있던 김진영도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약간 선을 넘고 있었다.

사실 제임스 권은 지금 제대로 흥분했다.

별거 아니라 여겼던 이서준에게 졌다는 사실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내기까지 걸린 상황에서 그에게 진 것이니 지금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정신 상태였다.

만약 그에게 약간의 이성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이런 무모한 헛소리는 김진영에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금은 못 들은 말로 할게. 그런 말은 앞으로 조심하자. 알겠지? ”

김진영이 그래도 한 번 더 참아 주었다.

그러나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은 제임스 권은 아직 멈출 마음이 없었다.

“전 지금 진지하게 청하는 겁니다. 만약 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시면 그냥 회사를 나가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준비했던 최강의 한 수를 던졌다.

앞이 창창한 자신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아무리 김진영이라도 그 순간 당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솔직히 그만둘 마음은 없었다.

김진영이 자신을 잡을 거라는 자신이 있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다.

요즘 작곡 팀에서 자신보다 잘 나가는 사람은 없다는 나름의 계산을 해 보았었다.

그의 말을 들은 김진영은 다시 표정이 달라졌다.

그리곤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제임스 권은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왜? 내가 나간다는 말까지 할 줄은 몰랐나 보지? 나 그 정도로 심각하니까, 잘 생각해야 할 거야.’

제임스 권은 속으로 미소 짓은 채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사내 전화를 들었다.

“박경호 부사장 지금 회사에 있어?”

[네, 계십니다.]

“그럼 지금 빨리 내 작업실로 와 달라고 해 줘.”

[네, 대표님.]

김진영은 갑자기 부사장 박경호를 불렀다.

잠시 후 부사장 박경호가 그의 작업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진영은 서두른다고 뛰어온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 급하게 처리해 줘야 할 일이 생겨서 그래.”

“괜찮습니다. 근데 제가 처리해야 할 일이 뭡니까?”

그의 물음에 김진영은 손으로 제임스 권을 가리켰다.

“제임스 권과 계약을 파기해. 물론 아주 원만하게 말이야. 그만두고 싶다고 하시니 원하는 대로 해 드려야지. 계약 기간이 남았다고 위약금 같은 건 청구하지 마. 아주 깔끔하게 정리하도록 해.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박경호 부사장은 김진영과 일한 시간이 꽤 오래되었다.

그런 그이기에 지금 김진영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빠르게 캐치하였다.

그랬기에 갑자기 전도유망한 회사 내 작곡가와 계약을 해지하라는 그의 이상한 지시에도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다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멍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는 철없는 작곡가를 불쌍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 * *

“으악, 죽겠다.”

컴퓨터 화면을 쳐다본다고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있었더니 몸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 기지개를 켰다.

나름 스트레칭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나는 지금 모니터링에 정신이 없었다.

이제부터 워너비 걸즈 컴백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할 시기였기 때문에 그녀들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너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는 안무가들의 안무 영상이었다.

JYK라면 유명 안무가들과 연결이 쉽겠지만, 내가 원하는 느낌은 기존 안무가들의 느낌이 아니었다.

요즘 유행하는 춤이 아니라 새로운 느낌의 걸스 힙합을 잘 추는 안무가를 찾고 있었다.

“커피라도 마실까?”

몸에 피곤이 느껴졌는지 카페인이 당겼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로 향했다.

원래 입맛은 토종 한국인이라 믹스 커피를 좋아했지만, 최근 커피를 많이 먹게 되면서 몸을 생각해 원두커피를 마시려 했다.

그때,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바로 JYK의 A&R 팀장 김소영이었다.

A&R이라는 생소한 표현 때문에 그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헷갈릴 수도 있는데, 쉽게 풀이하면 회사 내 아티스트를 육성하고 신인을 발굴하는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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