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6화 (16/189)

16. 첫 프로듀싱(3)

김소영 팀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이서준 작곡가님 정말 오랜만에 보네.”

아무래도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일을 담당하는 그녀답게 잠깐 봤던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좋은 작곡가를 키우고 육성하는 일 자체도 그녀의 팀이 맡은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호호, 덕분에 안녕하게 잘 지냅니다. 우리 작곡가님 커피 마시러 왔나 보네?”

“네. 머리가 멍해서 카페인 처방 좀 받으려고요.”

“하하, 원래 예술 하는 사람들한테서 담배와 술, 그리고 커피는 아무리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끈끈한 인연이긴 하지. 혹시 우리 작곡가님 술과 담배도 하시나?”

“술은 마실 줄만 압니다. 담배는 아직 피워 본 적이 없어요.”

“아이고 너무 잘하셨네. 담배란 놈하고 한 번이라도 친해지면 헤어지기가 너무 힘들거든. 나 봐. 지금 헤어지려고 모질게 결별을 선언한 지가 벌써 10년째인데도 아직도 헤어지지 못하고 친구하고 있잖아. 아주 지독한 녀석이야. 근데 말하다 보니까 담배가 급 당기네. 이거 완전 병이야, 병.”

김소영 팀장은 회사 내에서도 알아주는 골초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에게서 은은한 담배 향이 풍기긴 했다.

물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주로 하는 그녀답게 신경을 쓴 모양인지 심하게 나진 않았다.

내가 냄새를 잘 맡는 편이라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 역시 이곳에 커피를 마시러 온 모양이었다.

원두커피를 들고 온 머그잔에 따라 마시며 날 유심히 쳐다보던 그녀는, 나에게 갑자기 엉뚱한 걸 청했다.

“작곡가님 나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갑자기 무슨 부탁요?”

“절대 서준 씨에게 부담되는 일이 아니니 겁먹을 필요 없어. 그냥 나를 바라보며 ‘소영 씨,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한마디만 다정하게 해죠.”

“네?”

정말 엉뚱한 요구에 나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나 집요한 그녀는 내게 계속 부탁했고, 결국 난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요구한 대로 하기로 하였다.

“소, 소영 씨, 식사는…….”

김소영 팀장님은 어색해서 말까지 더듬는 나를 즉시 지적했다.

“에이, 이건 아니지. 제대로 해 봐. 자기 눈앞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저기 누구더라? 아, 맞다. 우리 회사에 있다가 나간 수연이라고 생각해 봐. 자기랑 수연이랑 같은 직장 동료인 거야. 근데 어쩌다 보니 서로 통해서 본격적으로 썸을 타는 중인 거지. 어때, 설정 입력되었어? 그럼 다시 한번 제대로 해 봐.”

그녀는 영화감독처럼 내 머릿속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설정까지 주입했다.

근데 가만 들어 보니 김소영 팀장님은 지금 내게 연기를 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연기자도 아닌 나에게 이걸 왜 갑자기 시키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자꾸 한 번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그녀의 말에 난 억지로 그녀의 요구대로 연기해야 했다.

‘지금 이 장면이 썸을 타는 여자에게 안부를 묻는 장면인 거지?’

제대로 안 하면 자꾸 시킬 거 같아 그냥 한 번에 끝내자는 마음을 먹었다.

이게 뭐라고 긴장되어 심호흡까지 한번 한 후에 팀장님이 주문한 대로 준비한 대사를 말했다.

“소영 씨.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 안 한 건 아니죠? 우리 소영 씨, 배고프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애드리브까지 넣어서 해 버렸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배를 잡고 웃을지도 모르지만, 마치 연기자처럼 몰입이라는 걸 조금 한 모양이다.

그러나 더 웃긴 건 김소영 팀장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만 있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꺄아악! 방금 뭐야? 결혼한 유부녀 마음을 이렇게 설레게 만들면 어쩌자는 거야?”

그녀의 말에 당황한 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변명했다.

“아, 아니 팀장님이 해, 해 보라고 하셔서 그냥 한 겁니다.”

팀장님은 내 걱정과 달리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당황한 나를 보고 웃으며 속사포처럼 말했다.

“어머 미안해. 호호, 내가 지금 크게 말한 건 서준 씨에게 화를 내서 그런 게 아니야. 서준 씨가 방금 내가 해 보라는 연기를 너무 잘해서 나도 모르게 놀라서 튀어나온 말이야.”

그녀는 어쩐 이유인지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근데 말이야…….”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서준 씨 혹시 연기해 볼 생각은 없어?”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갑자기 연기라니…….

이분이 갑자기 왜 이런 말을 내게 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분명 지금 내 얼굴에는 어이가 없다는 내 생각이 표정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을 거다.

그러나 김소영 팀장님은 그것이 보이지 않은 건지, 아니면 신경을 안 쓰는 건지 모를 정도로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나에게 다시 쏟아 내고 있었다.

“솔직히 아까 휴게실에 서준 씨가 들어오는데, 내가 서준 씨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알아? 회사 내 연기자 파트 다 없앤 거로 아는데, 왜 배우가 우리 회사에 있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까?”

그녀는 더욱 흥분하는 듯 보였다.

“근데 가까이서 보니까 배우가 아니라 서준 씨잖아. 그래서 내가 속으로 더 놀랐지. 서준 씨 처음 볼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얼굴이 너무 좋아. 확 잘생긴 건 아닌데, 가까이서 보니까 너무 잘생겼어. 이런 얼굴이 배우상이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목소리와 눈빛은 왜 이렇게 좋아? 자기는 어쩌면 배우 하려고 태어난 사람일지도 몰라. 지금 작곡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고.”

내가 배우상?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근데 표정은 왜 저렇게 진지한 거야?

무섭기까지 하잖아.

“서준 씨, 우리 말 나온 김에 우리 카메라 테스트나 한번 할까?”

지금 내 머릿속에는 지금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갈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 분이 날 순순히 놓아주려고 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살기 위해선 반드시 탈출해야 하니 난 머리를 엄청난 속도로 굴려야만 했다.

난 결국, 그녀 덕분에 커피 마시러 와서 진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도망쳐야 했다.

* * *

“휴~”

겨우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전에는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김소영 팀장이란 사람은 조금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좋게 말하면 4차원이라고 할 수 있고, 필터 없이 말하면 돌+I같이 보였다.

아니 내가 어딜 봐서 연기자처럼 생겼다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것을 보니 살짝 정신 건강이 걱정될 정도였다.

“…….”

그래도 ‘혹시’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작업실 벽에 걸려 있는 거울로 향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내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사실 난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답게 거울을 잘 보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까먹을 때가 있을 정도로 얼굴에 대해서는 무심한 편이다.

나는 내 얼굴을 최근 처음으로 자세히 쳐다봤다.

다른 남자들처럼 나 역시 약간의 자뻑 증세를 가지고 있어 내 얼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연기자를 할 정도로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은 솔직히 단 한 번도 없었다.

“!”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얼굴이기에 나만 알 수 있는 부분일지도 모르지만, 분명 내 얼굴이 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아주 미세하다면 미세할 수 있는 변화인데, 분명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였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보고 솔직히 너무 잘생겼다고 느낀 적은 정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혹시 이것도 도깨비가…….”

순간 내 머릿속에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느껴지던 도깨비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그때, 도깨비는 분명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열정에 조금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원하시는 것보다 조금 더 쓰겠습니다.”

순간적으로 이렇게 말하던 도깨비의 모습이 기억났다.

“조금 더 쓴다는 말뜻이 내게 음악 말고 다른 것을 주겠다는 뜻이었나? 그래서 덕분에 얼굴도 더 잘생기게 해 준 것일까?”

그런 이유로 이런 놀라운 변화가 내게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혼자만의 상념에서 빠져나오게 만드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나는 황급히 작업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약간 통통한 체구의 여자가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워너비 걸즈의 매니저인 박지영 실장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이서준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워너비 걸즈의 프로듀싱을 맡았으니 이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것이다.

“괜찮으시다면 안으로 들어오시죠.”

소파에라도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안으로 들어오길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걸 원했다.

“저기 작곡가님. 괜찮으시다면 애들과 먼저 만나시는 건 안 될까요? 애들이 작곡가님 너무 보고 싶다고 애태우며 기다리고 있어서요.”

날 기다린다고?

나쁘지 않은 말이었다.

안 그래도 내가 먼저 연락을 하려고 생각하던 중이었기에 사양하지 않았다.

“저야 좋죠. 저도 워너비 걸즈 너무 보고 싶거든요. 그러면 어디서 보죠? 혹시 괜찮다면 제 작업실로 그 친구들이 올 수는 없을까요?”

* * *

잠시 후 내 작업실에는 전과 다르게 많은 인원이 들어와 있었다.

이곳에 어색한 얼굴로 앉아 있는 소녀들은 날 보고 싶다고 했던 워너비 걸즈였다.

분명 방금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건만 금세 어색한 분위기가 작업실 안을 가득 메웠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기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뭐라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어색함이었다.

“혹시 노래는 들어 봤어요?”

나의 물음에 리더 예빈이 대표로 대답했다.

“아니요. 아직 못 들어 봤어요.”

그 말을 듣고 내가 놀라 다시 물었다.

“아직요? 그럼 지금 노래가 너무 궁금하겠네요? 맞아요?”

내 말에 이번에는 함께 자리한 매니저 박지영 실장이 워너비 걸즈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후후, 그래서 애들이 작곡가님을 빨리 보고 싶다고 절 엄청나게 괴롭혔어요. 청음회에서 선정된 노래를 너무 듣고 싶은데… 회사에서는 작곡가님이 준비되시면 알아서 들려주실 거라는 막연한 말만 했거든요.”

“아, 제가 편곡을 할 거라고 했더니… 다행히 편곡은 끝났어요. 그럼 괜찮으시다면 노래부터 들어 볼까요?”

귀여운 소녀 같은 워너비 걸즈는 내 말에 고개가 부서질까 겁날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모습만 봐도 이 친구들이 얼마나 순수한 마음을 가진 친구들인지 잘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편곡이 끝난 노래를 재생시켰다.

♪♬ ♬♪

노래가 흘러나오자 소녀들은 모두 집중한 얼굴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들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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