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8화 (18/189)

18. 첫 프로듀싱(5)

[내가 너에게 정말 진심으로 하는 부탁이야. 어떻게 시간 좀 내 주면 안 되겠냐?]

형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부탁에 응하지 못해 마음이 무척 아팠지만, 그렇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미안한데… 형 진짜 안 돼. 나 요즘 진짜 몸이 2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일이 많아. 그러니 다음에 여유가 좀 생기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야, 그러지 말고 제발…….]

나는 지금 도훈 형이랑 통화 중이다.

통화에 열중하던 그때, 갑자기 나를 부르는 박지영 실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로듀서님 잠깐 오셔서 직접 확인해 보실 것이 있어요.”

“아, 네. 바로 갈게요.”

박 실장님의 급한 부름에 나는 계속 통화를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형 내가 일이 급해서… 미안한데 전화 끊어야 할 거 같아. 내가 여유가 생기면 꼭 전화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줘. 알았지? 그럼 끊는다.”

[야, 이서준! 그럼 시간이라도 구체적으로 약속해 줘. 네가 여유가 생길 때가 도대체 언제…….]

뚝.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어야 했다.

당장 형이 하는 부탁을 들어줄 상황이 아닌데 통화를 계속해 봐야 미안한 마음만 커질 뿐이었다.

형이 내게 전화를 건 용건은 형 너튜브 채널에 한 번 더 출연해 달라는 부탁 때문이다.

내가 ‘바람의 기억’을 부른 영상을 형이 올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나 역시 궁금했던 터라 형 채널에 직접 들어가 올라온 영상을 보기도 했다.

그때 내가 확인한 영상 조회 수가 10만이 조금 못 되었는데, 지금은 놀랍게도 조회 수가 50만이 넘었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대박 영상이 된 것이다.

그 영상 덕분에 도훈 형 채널 구독자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회 수가 오르고 구독자 수가 늘어난 것과 같은 좋은 현상이 일어난 것처럼 귀찮은 일도 몇 가지 생겼는데, 그건 바로 나를 찾는 연락이 너무 많이 온다는 점이다.

노래를 부른 내가 누군지, 나와 연락할 방법은 없는지 등 하루에도 수십 통의 연락과 수백 건의 댓글이 도훈 형을 괴롭혔다.

연락해 온 사람 대부분은 연예계 종사자들이라고 한다.

나는 일절 나에 대해 정보를 남에게 넘기지 말라고 형에게 부탁했다.

내가 엄연히 소속이 있는 사람이고 혹시 나도 모르게 회사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단 생각에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중을 위해서였다.

지금의 나라면 내가 만든 노래로 나만의 앨범을 제작할 수도 있는 일이니, 그때까지 다른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형은 애가 탔다.

내 도움이 있다면 이 기회를 통해 형 채널이 더 유명해질 수도 있는데, 내가 협조를 안 하니 형 입장에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게 뭘 강요할 입장도 아니라는 사실을 형 스스로 잘 알았다.

그래서 그나마 내게 할 만한 부탁이 추가 동영상 제작이었던 것이다.

형은 내가 형 채널에서 다른 노래를 한 곡 더 불러 주기를 원했다.

물론 못 들어줄 부탁은 아니라 해 줄 의향도 있지만, 방금 도훈 형과의 통화에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지금은 내가 정말 시간이 없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내가 이렇게 바쁜 것은 워너비 걸즈 컴백 준비 때문이다.

다행히 녹음은 훌륭히 마쳤다.

그렇다고 내가 할 일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워너비 걸즈의 컴백을 위해 하는 일은 녹음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프로듀서님 제가 의상 좀 가지고 왔는데, 한번 봐 주실래요?”

워너비 걸즈의 의상을 담당하는 최보영 씨는 의상에 관해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나에게 자신이 구해 온 샘플이 괜찮은지 확인을 부탁했다.

“뮤비 감독님이 뮤비 구성 회의 빨리하자고 일정 조르시네요.”

“그럼 내일 오전으로 일정 잡아요.”

“네, 그렇게 시간 잡을게요.”

워너비 걸즈의 뮤직비디오 콘티도 내가 낸 아이디어가 가장 좋다고 결론이 났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제일 중요한 일이 남았네.”

나는 안무가와 만나 그녀가 짜 온 안무를 확인하는 일도 오늘 해야 했다.

워너비 걸즈는 보여 주는 음악을 하는 팀이기 때문에 노래만큼 중요한 것이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퍼포먼스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노래의 안무이기 때문에 총괄 프로듀서인 내가 직접 안무를 확인해야 했다.

나는 옆에 서 있던 박지영 실장에게 미리 잡혔던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실장님, 안무가 선생님은 언제 오신다고 하셨죠?”

나의 물음에 박지영 실장님이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후 대답해 주셨다.

“2시요. 이제 오실 시간이 다 되었네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씬한 체형의 여성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가 바로 내가 기다리던 안무가 노아 킴이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안무가님.”

그녀는 우리 회사 직원들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 역시 반갑게 그녀를 맞았다.

그러나 일정이 빠듯한 관계로 숨 돌릴 시간도 없이 바로 일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저희가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바로 안무 연습실로 가서 안무를 확인해도 될까요?”

“아, 괜찮습니다.”

그녀의 동의를 얻은 우리는 서둘러 안무 연습실로 향했다.

안무 연습실에는 어느새 워너비 걸즈 멤버들도 와 있었다.

안무 영상이기 때문에 그녀들의 의견도 매우 중요했다.

노아 킴은 안무 연습실에 도착한 후 곧바로 자신이 찍어 온 영상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 줬다.

그리고 나는 제일 앞에서 그녀가 짜 온 안무를 매의 눈으로 살펴봤다.

“우와, 우리가 이걸 소화할 수 있을까?”

춤에 자신이 없는 레아는 난도 높은 안무를 보자마자 걱정부터 내놓았다.

“할 수 있어. 노력하면 돼. 그리고 만약 이걸 우리가 제대로 해낸다면 진짜 멋지게 나올 거야. 춤 진짜 멋진 거 같아.”

리더 예빈은 리더답게 레아에게 할 수 있다는 말부터 했다.

그리고 눈치를 보니 안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다른 멤버들도 흡족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다 비슷한 생각인 모양이다.

영상이 끝난 후 노아 킴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어떠세요?”

그녀의 물음에 난 솔직한 내 감상을 이야기했다.

“좋아요. 근데 수정을 부탁드리고 싶은 부분도 있는데 편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원래 수정을 한 번도 안 하고 정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그녀는 어려운 말을 꺼내는 나를 위해 배려의 말을 먼저 건넸다.

나는 그런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를 표한 후 수정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너무 강한 느낌이 많아요. 힘을 30%만 뺐으면 좋겠어요. 너무 강하기만 하니까 노래가 주는 흥겨움이 오히려 반감되는 거 같아요.”

난 자세한 설명을 위해 안무 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그리고 수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을 그때그때 직접 알려 주며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리고 그걸 들은 노아 킴은 내 말이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상한 것은 그녀가 조금 의아해하는 느낌으로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프로듀서님, 혹시… 춤을 전문적으로 추셨나요?”

“춤이요? 전혀요. 춤은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기분 내키는 대로 흔들어 본 게 전부예요.”

“그래요? 그런 분이 말씀하시는 것 치고는 너무 예리하신데요. 제가 안무를 짜면서 자신 없었던 부분을 신기하게 콕 집어서 말씀하시네요.”

그녀의 의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옆에 있던 박 실장님 대신 나서서 해 주셨다.

“우리 이서준 프로듀서님이 좀 예리해요. 저희도 이번에 처음으로 같이 일해 보는 거라서 프로듀서님이 작곡만 하실 줄 아는 분으로만 알았는데 감이 장난 아니세요. 이번 노래 의상하고 뮤비 컨셉 등 모두 우리 프로듀서님 의견대로 결정되었어요.”

그녀의 설명에 노아 킴이 놀라서 다시 물었다.

“그걸 프로듀서님이 다 하셨다고요?”

“네. 사실 저희도 무조건 따른 건 아니거든요. 들어 보고 저희 생각에 별로라고 여겨지면 그냥 별로라고 말씀드리고 다른 더 좋은 의견대로 일을 진행하려고 했어요. 프로듀서님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고요. 근데 들어 보면 다 맞는 말이거나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노아 킴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박지영 실장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이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감이 좋다고 하시는 거구나.”

“호호, 맞아요. 제가 하려던 얘기가 바로 그거였어요.”

박 실장의 얘기는 나로서도 뜻밖의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의상이며 뮤직비디오 컨셉 등을 다 결정했네. 근데 내가 원래부터 이런 걸 할 줄 알았던 사람은 아닌데…….’

이것 역시 도깨비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재밌는 생각이 연달아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중에 댄스곡도 만들어 봐야겠어. 혹시 알아? 내가 마이클 존슨처럼 멋진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게 될지… 흐흐,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거 같아.’

“그럼, 춤 수정해서 다시 올게요. 다음에 보시면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노아 킴은 자신만만한 대사를 우리에게 던지며 안무 연습실을 떠났다.

이제 오늘 해야 할 큼지막한 일들은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박지영 실장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나를 보며 휴식을 권했다.

“프로듀서님도 좀 쉬세요. 누가 보면 프로듀서님이 이번에 데뷔하는 줄 알겠어요. 스텝이 가수보다 바빠서야 되겠어요?”

그녀의 고마운 말에도 난 안타깝게 고개를 흔들어야 했다.

“노래 최종 편집 점검이 남았어요. 작업실로 가서 그것만 하고 쉴게요.”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는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어제도 거의 새벽까지 일하시고… 그리고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일하셨잖아요. 이러다가 몸 상하시면 안 되는데…….”

걱정하는 그녀에게 나는 내 얼마 없는 이두박근을 억지로 끌어 올리며 안심시켰다.

“자, 보세요. 저도 한 근육 하죠? 전 아직 젊어서 끄떡없습니다.”

그녀는 내 말과 행동이 웃긴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근육을 보여 주시니까 제 마음이 더 아프네요. 팔이 아주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야위었어요.”

“무슨 소리예요? 제가 살이 없어서 그렇지 이 정도면 아주 준수한 편이라고요.”

나는 웃으며 나를 염려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제가 실장님이 더 이상 염려하지 않으시게 편곡 확인만 하고 바로 쉴게요.”

“그럼 저랑 약속한 대로 확인만 하시고 얼른 쉬셔야 해요. 알겠죠?”

“네, 실장님.”

난 안무 연습실에 모인 사람들과 헤어져서 작업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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