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9화 (19/189)

19. 노래 안 할래?

♪♪♬ ♪♪♬

녹음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눈을 감은 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아주 정성스럽게 듣고 있었다.

잠시 후 노래가 끝났고 그제야 나의 감겼던 두 눈도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1분 25초쯤 구간에서 베이스 소리가 너무 약하네. 그 부분에서는 두두뚱 둥둥 이런 소리가 강하게 들려줘야 리듬이 사는데 말이야. 그럼 거기선 베이스 소리를 조금 더 키우고 일렉 소리를 조금 낮춰야겠어. 아, 드럼도 같이 조금 낮추고…….”

마지막 점검이라 전보다 더 꼼꼼하게 사운드를 체크하며 수정하고 있었다.

진짜 마지막 점검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일하고 있었다.

그때, 내 작업실 문이 갑자기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일하고 있어?”

“어? 대표님?”

내 작업실을 방문한 손님은 놀랍게도 김진영 대표님이었다.

김진영은 갑자기 내 작업실에 들어와서는 대뜸 이 말부터 내게 했다.

“서준아, 섭섭하다.”

“네?”

갑작스러운 등장 이후 곧바로 섭섭하다니?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장면의 연속이라 맥락을 읽기가 힘들어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내 표정이 조금 웃겼는지 김진영은 곧 미소지은 얼굴로 다음과 같은 호칭을 부탁했다.

“대표님은 너무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이잖아. 앞으로 너랑 나랑 친하게 지낼 거니까 이제부터 그렇게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부르나요?”

“앞으로는 형이라고 불러. 그래야 친한 사이 같지. 안 그래?”

“네, 알, 알겠습니다.”

갑자기 작업실로 쳐들어와서는 난데없이 형이라고 부르라니…….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데 제법 뛰어난 재주가 있는 대표님, 아니 김진영 형님이었다.

그러나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니 들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워너비 걸즈 노래 작업은 다 끝났어?”

아, 혹시 완성된 워너비 걸즈 노래가 궁금해서 오신 건가?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린 나는 곧바로 형님에게 물었다.

“…들어 보시겠어요?”

“그래도 돼? 나야 물론 좋지.”

김진영 형님이 내 말을 듣고 저렇게 환하게 웃는 것을 보니 한번 물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맡긴 후 최대한 참견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하더니 들어 보라는 내 제안이 고마운 모양이다.

나는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김진영 형님도 조금 전의 나처럼 눈을 감고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노래를 듣는 도중에 흥이 났는지 점점 몸으로 그루브까지 타기 시작했다.

댄스로 우리나라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분답게 그루브 타는 모습도 일반인들과 많이 달랐다.

저렇게 멋지게 웨이브를 타다니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다 듣고 난 후 김진영은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박수까지 보냈다.

“와우, 노래 정말 좋다. 왜 이런 좋은 곡이 내 머릿속에서 나오지 않고 네 머릿속에서 나왔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울 정도야.”

엄청난 극찬이었다.

칭찬부터 건네는 것을 보니 꽤 마음에 드셨나 보다.

내게 칭찬의 말을 건넨 후 곧이어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여셨다.

“회사 직원들에게 이번 곡 홍보도 역대급으로 준비하라고 해야겠어. 이 정도 곡이면 이번 활동은 무조건 대박 예약이다. 정말 수고했어.”

나야 무조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야 할 고마운 말씀만 하시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곡을 만든 작곡자이면서 동시에 미니 앨범을 워너비 걸즈와 함께 작업했던 프로듀서로서 회사 차원에서 제대로 신경 써 주신다는 대표님의 말보다 달콤한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나중에 톡으로 이 비하인드 썰을 애들에게 풀어야겠다.

얼마나 좋아할지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아, 내 정신 좀 봐. 내가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정작 해야 할 말은 안 하고 다른 소리만 늘어놓고 있었네.”

스스로 자책하는 말을 한 김진영 형님은, 조금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네가 노래 부른 영상 봤어.”

“제가 노래 부른 영상요?”

“너튜브 채널에서 노래 부른 거 있잖아. 이나얼의 바람의 기억 부른 거 너 아냐?”

“아, 그거 보셨구나. …저 맞습니다.”

약간 부끄러워하며 영상 속의 인물이 나임을 스스로 시인했다.

김진영은 그런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너 노래 잘하더라. 혹시 노래할 생각은 없어?”

김진영 형님의 진짜 방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는 질문이었다.

“김소영 팀장이 내 작업실로 와서는 난리를 피우다 갔다. 넌 지금 작곡가로 활동할 때가 아니라 가수 시켜야 한다고 말이야. 그리고 뜬금없이 연기도 해야 한다고 하던데, 그건 일단 못들은 걸로 치고… 너도 우리 회사 A&R 팀의 김소영 팀장 알지?”

“네, 압니다.”

“걔가 가끔 그렇게 삘이 오면 완전 불도저야. 그때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확신하며 주장할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신기한 건 그럴 때마다 김 팀장 말이 맞아. 정말 신기하지 않냐? 무슨 자신만의 감이 있나 봐.”

난 형님의 말을 듣다가 오늘 김진영 형님을 이곳까지 보낸 사람이 김소영 팀장님이란 사실까지 추가로 알게 되었다.

“너 아직 내 질문에 답을 안 했어. 그럼 다시 제대로 물을게. 혹시 노래할 생각 있어?”

쑥스러운 마음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솔직한 내 생각을 제대로 전달해야 할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 고 싶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그 정도 노래하면 원래 넌 노래하려고 태어난 사람이야. 하늘에서 준 재능이란 뜻이지.”

노래를 부르는 이유를 찾는데 무슨 하늘까지 등장해야 하는지 그 까닭은 모르겠지만, 김진영 형님도 내 노래를 좋게 평가해 주시는 것이기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럼 우리 회사랑 계약해야지? 이번 기회에 작곡가 계약을 아티스트 계약으로 바꾸자. 어때? 괜찮지?”

“…….”

즉시 답을 하지 않는 내 모습에 형님이 당황하며 물었다.

“어? 왜 말이 없어. 혹시 다른 회사랑 계약할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근데 왜 답이 없어?”

“…혹시 한 가지 약속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못 할 거는 없지. 근데 그렇게 무게 잡으면서 약속이라는 단어를 꺼내니까 무슨 말을 할지 무섭다. 네가 회사에 약속받고 싶은 게 뭐야?”

난 전부터 하고 싶던 말을 천천히 꺼냈다.

“만약 아티스트 계약을 해서 JYK에서 노래를 부른다면 미니 앨범이 아니라 정규 앨범을 내고 싶습니다.”

내가 그동안 회사에 요구하고 싶던 약속이 담긴 말을 김진영에게 건넸다.

나는 예전부터 만약 내가 가수가 된다면 정규 앨범을 내는 가수가 되고 싶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내가 노래를 부를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수렴했기 때문에 그냥 가볍게 생각하며 한 말이었다.

그러나 실제 가수가 될 가능성이 생긴 지금도 심사숙고의 결과 그러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 요즘 흔히 하는 생각은 아닌데… 혹시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김진영 형님의 물음에 나는 좀 더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만약 제가 노래를 한다면 제 노래를 듣는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히트할 만한 노래 한 곡을 발표하는 형태로는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전 신곡 발표를 앨범 형태로 하고 싶습니다. 물론 회사 측의 부담도 알기 때문에 제가 직접 작사, 작곡, 그리고 편곡까지 한 노래들로 앨범을 만들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진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듣고 있던 김진영 형님의 표정도 저절로 진지해졌다.

아무리 대단한 그라 해도 쉽게 ‘yes’라고 답할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잠깐의 고민 끝에 그는 곧바로 내게 답을 해 줬다.

“좋아. 회사 대표로 약속하지. 네가 만약 노래를 발표한다면 앨범 형식으로 내는 것으로 하자. 단 조건은 있어. 회사 내 평가 시스템에 따라 검증은 받아야 해. 만약 검증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앨범은 자동으로 밀려지는 거야. 어때? 이런 조건이라도 받을 거야?”

“네. 그 정도는 저도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쉽게 합의점을 찾는 우리였다.

“좋아, 그럼 당장 계약하자.”

“계약은 나중에 하는 것으로 하죠.”

“엉?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지금껏 나랑 계약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 놓고 갑자기 딴소리하는 거야?”

진심으로 삐치려고 하는 김진영 형님의 얼굴을 보고 난 다급히 설명했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만들어 놓은 것이 없으니 결과물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때 계약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가수로 계약한다면 그땐 반드시 JYK와 계약을 할 테니 제 말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나의 필사의 노력이 통했는지 다행히 김진영 형님의 얼굴에서 삐침의 표정이 사라졌다.

“그럼, 너 나랑 구두로 약속한 거다. 그건 인정?”

“하하, 네, 인정합니다.”

“좋아. 구두 계약도 계약이니 나중에 딴소리하면 안 돼. 알겠지?”

“네.”

김진영은 뭐가 그리 걱정이 되는지 약속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꺼내며 나의 약속을 확인했다.

* * *

서울의 한 여고 교실.

자율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강제적 자율 학습 시간이 시작되기 전 석식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이 식사 시간을 최대한 아껴 친구들과 많이 놀기 위해 밥을 씹는지 삼키는지 헷갈리는 모습으로 저녁 식사를 급히 끝냈다.

그리고 나서는 제각기 교실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1학년 3반의 귀퉁이 구석 자리에는 여학생 3명이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스마트폰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최효주는 그런 친구들의 진지한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오려고 했다.

“야, 이것들아 누가 보면 지금 바로 대입 결과 발표 나는 줄 알겠다. 너희 얼굴에 있는 그 비장한 표정들은 도대체 뭐냐?”

그녀의 타박에 워너비 걸즈 팬 김지현 외 2명은 결연한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친구의 타박에 대꾸했다.

“우리에게는 지금이 대입 결과 발표보다 중요한 상황이니까 우리에게 향한 네 과분한 시선은 다른 데로 돌리고 그냥 네 갈 길이나 가라.”

그러나 최효주는 친구들을 향한 관심의 눈을 거둘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구슬렸다.

“여자인 우리가 여자 아이돌을 응원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아주 옳지 못한 행동이야. 워너비 걸즈 언니들을 향한 너희의 사랑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아직 바다를 보지 못했어. 그러니 이번 기회에 바다와 같은 우리 BTC 오빠들에게로 귀화하는 것이 어때?”

최효주의 구슬림에 김지현은 발끈했다.

“자연의 섭리 같은 섭섭하고 황당한 소리 지껄이고 있네. 우리는 성별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워너비 걸즈 언니들을 좋아하는 게 아니야. 우린 언니들의 멋진 음악과 춤에 반한 거라고. 그리고 넌 도대체 언제 정착할래? 너 저번 달에는 세븐틴즈 오빠들이 최고라더니, 이번 달은 BTC 오빠들이냐? 네 잡덕 기질은 정말 답이 없구나?”

“저년에게는 지조라는 것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아주 품성이 나쁜 년이야.”

“나쁜 년.”

워너비 걸즈 팬 세 명의 찰떡 호흡 공격에 최효주는 자신도 모르게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그때, 김지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 시작한다. 모두 사일런스. 그리고 집중!”

그녀의 목소리에 따라 워너비 걸즈 응원단 세 명은 책상 위에 놓인 스마트폰에 일제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지현의 박력이 통했을까?

갑자기 워너비 걸즈의 컴백 노래가 궁금했던 최효주까지 그녀들 뒤에 서서 스마트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