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최고 걸그룹 프로듀싱을 맡다(1)
내 시선이 옮겨질 때마다 쓰리타임즈 멤버들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하, 내 말이 뭐라고 저렇게 긴장해?’
대한민국 최고의 걸그룹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순진한 모습이 많이 보이는 쓰리타임즈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그러나 더 질질 끌다가는 지금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여자분들이 폭동을 일으킬 위험도 있으니 이제 뜸을 들이는 행동은 그만하고 그녀들이 궁금해하던 답을 들려줄 차례였다.
“내가 댄스팀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머지 2명은 다영과 쯔엥이야.”
내가 지목한 두 사람은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왜 내가 자신들을 댄스팀에 지목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기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쯔엥은 팀에서 가장 장신이지? 내가 느끼기엔 춤 선이 가장 예쁜 사람이 쯔엥이야.”
내 말을 듣던 멤버들이 다시 장난을 쳐왔다.
“뭐예요? 그럼 우리는 춤 선이 별로라는 말이에요?”
“우우, 방금 발언 사과하세요.”
장난에는 장난으로 맞서는 것이 맞겠지?
“이거 영 분위기가 별로네. 이야기 그만하고 작업실에 가서 하던 곡 작업이나 마저 해야겠다.”
장난으로 일어나려는 나를 보며 지호와 나영은 얼른 일어나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내게 야유를 보낸 멤버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혼냈다.
“아니 우리 위대한 작곡가님한테 그 무슨 무례한 짓이야? 당장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말씀드려!”
두 사람의 꾸지람에 장난을 건 멤버들은 울상을 지어야 했고 나는 그제야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의외로 나랑 유치한 장난이 통하는 친구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제 의견에 딴지 걸지 마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제가 그렇다고 해도 그게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냥 재미 삼아 들으시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럼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갈게요.”
나는 웃음 띤 얼굴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쯔엥은 춤 선이 좋으니 모구리와 합이 잘 맞을 거 같아. 그럼 더 멋진 그림이 나오겠지. 그리고 여기에 다영을 추가 멤버로 선정한 이유는, 다영이가 팀에서 가장 춤과 노래 등 다방면에 끼가 많은 멤버이기 때문이야. 더군다나 다영은 그동안 무대에서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줬으니까 그동안 마음껏 발산하지 못한 에너지를 모구리와 쯔엥과 더불어 무대에서 폭발시키라는 뜻이지.”
나의 이야기가 제법 설득력 있었는지 쓰리타임즈 멤버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어서 보컬팀은 지호, 사나다, 정현이 한 팀이 되었으면 좋겠어. 내가 생각하기에 팀에서 보컬이 가장 유니크한 멤버를 고르라면 이 세 사람을 꼽을 수 있을 거 같아. 여기에 나영도 들어갈 수 있겠지만, 나영은 내가 생각한 힙합팀에 유니크한 보컬을 더해 줄 멤버이기 때문에 뺐어.”
내 말을 듣던 나영이 자신이 힙합팀에 분류된 사실에 약간 흥분한 듯 빠른 어조로 물었다.
“그럼 힙합팀은 나랑 채연, 그리고 미나미에요?”
“그렇지. 그 세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힙합팀 멤버야.”
웅성웅성.
내가 생각하던 유닛 조합에 대해 알게 된 멤버들은 어느덧 자기들끼리 그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유닛 조합에 대해 서로 간의 생각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저 흐뭇한 얼굴로 조용히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니까 쓰리타임즈 애들하고 많이 친해진 느낌이 드네.’
쓰리타임즈가 내 생각을 알았다면 절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내 기분은 그러했다.
그리고 웃기게도 예전에 쓰리타임즈를 만나고 내가 JYK 소속 작곡가란 사실을 느꼈던 것처럼 오늘 다시 한번 내가 어디 소속 작곡가인지 실감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던 쓰리타임즈 멤버들이 갑자기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우리는 뭐 없어요?”
뜬금없는 질문에 나 역시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가 없어?”
“아니, 아까 모구리에게는 생각나는 곡이 있다면서 직접 연주까지 해 주셨잖아요. 우리는 그런 노래가 없어요?”
정현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노래? 물론 있어.”
“헉! 정말요? 그럼 우리도 들려주세요. 궁금하단 말이에요.”
멤버들 대표로 채연이 나서서 나를 향해 자신들을 보고 떠오른 노래를 연주해 달라고 했다.
귀여운 막내답게 말도 어찌나 귀엽게 하는지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아 건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아까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들을 잠깐 정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어느 정도 정리되자 다시 연주를 시작하려 했다.
“일단 보컬팀은 이런 스타일의 노래가 어떨까 싶어.”
♪♬♬ ♪♬♬ ♪♪♬♬
나는 곧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지금 연주하는 곡은 코드 진행 자체가 매우 신선했다.
보통의 작곡가들이 잘 안 쓰는 코드 진행이었고, 마이너 코드가 많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운드 자체가 이전에 들어 보지 못한 색다른 느낌의 곡이었다.
“어! 잠깐만… 멜로디도 떠오른다.”
사실 그냥 느낌만 머릿속에 떠올라 느낌을 살릴 코드만 짚으며 연주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연주를 하다 보니 코드에 어울리는 멜로디까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나는 눈을 감고 심취했다.
지금 내 앞에 쓰리타임즈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소 베이비~ 돈 세이 굿바이♪
그냥 아무 뜻도 없는 영어 단어를 이용해서 머릿속 멜로디대로 불러보았다.
이건 보통 작곡가들이 가사가 없을 때 하는 흔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내 입과 손은 드디어 멈추었다.
그리고 숨죽이며 지켜보던 9명의 여자들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며 환호했다.
“우와! 대박 좋아요!”
“오빠, 저희 이거 할 거예요. 그러니 당장 새끼손가락 겁시다.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고 꼭 우리에게 주겠다고 빨리 약속해요.”
“각서를 받자!”
어느덧 음악에서 빠져나왔던 나는, 9명의 여자들이 부리는 난리 통에 다시 정신을 못 차리게 되었다.
* * *
음악이 흘러나오고 쓰리타임즈 멤버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딘가 나사가 빠진 사람들처럼 음악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리더 지호가 나서서 음악을 중지시켰다.
“안 되겠어. 음악 잠시 끄자. 지금 이대로는 연습이 안 돼.”
흘러나오던 음악이 뚝 하고 끊어졌다.
그리고 쓰리타임즈 멤버들은 안무 연습실 바닥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지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모두 집중이 안 되지? 사실 나도 그래. 오늘 연습 어떻게 하지?”
지호의 말에 나영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 아까 들은 서준 오빠의 피아노 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미치겠어.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나영의 말에 멤버 대부분이 자신도 나영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시인했다.
“나도 그래.”
“나도염.”
모두가 연습이 안 돼 괴로워하는 이유는 같았다.
1시간 전쯤 안무 연습실에서 벌어진 작곡가 이서준의 즉흥 음악회의 여파로 춤 연습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나 사실 안무 연습 당장 때려치우고 아까 들은 음악에 맞춰 가사 쓰고 싶어. 그 생각이 도저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막내 채연은 이서준이 들려준 힙합팀 노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괴로웠다.
그 노래는 그녀의 창작욕을 계속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때, 정현이 홀연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다른 멤버들을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우리 한 번 제대로 고민해 보자고. 내 생각에는 다음 앨범을 서준 오빠랑 작업하는 것이 맞는 거 같아. 방금 들었던 노래가 너무 좋았잖아. 너희 생각은 어때?”
정현의 말에 쓰리타임즈 멤버들은 서로의 눈치를 잠깐 살폈다.
그리고는 하나둘 동의를 표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은 거 같아. 방금처럼 잠깐 스케치만 된 곡을 듣고 그렇게 마음이 설렜던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아.”
“나는 서준 오빠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 유닛으로 활동하는 것도 우리 이미지 변신에 큰 도움이 될 거 같아.”
정현은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같은 생각인 걸 확인한 것이다.
“듣고 보니 모두 생각이 같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정현의 물음에 나영이 굳은 의지가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회사에 정식으로 건의해야지. 서준 오빠가 우리 다음 앨범 프로듀서를 맡도록 말이야.”
“찬성.”
“나도.”
“나도 아까부터 하고 싶던 말이야. 그렇게 하자.”
아주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의견이 모아졌다.
그걸 본 지호는 나영과 정현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세 사람이 대표로 팀장님께 건의하자.”
지호의 말에 나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 근데 언제 말해?”
“지금 바로 팀장님께 말하지 뭐. 아마 사무실에 계실 거야.”
“좋아, 가자.”
그렇게 대표 세 사람은 자신들을 담당하는 매니저들의 총 책임자인 오선정 팀장을 찾으러 출발했다.
* * *
나는 지금 너무 괴로웠다.
어젯밤을 꼴딱 새우며 작업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내가 밤새 작업한 대상은 어제 쓰리타임즈와 만났을 때 생각났던 세 곡의 미완성 곡들이었다.
간단한 연주를 통해 쓰리타임즈와 교감을 나누었던 나는, 얼른 곡을 완성하고 싶은 욕심에 그녀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바로 작업실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작업실에 처박혀 작업한 것이다.
“그래도 겨우 완성했네.”
추가 편곡 작업을 해야 하겠지만, 거의 90% 곡은 완성했다.
밤새 미친 듯이 연주하고 녹음한 결과였다.
덕분에 엔지니어 직원 역시 나처럼 초주검이 된 몰골로 퇴근하게 되었다.
“이제 좀 잘까?”
나 역시 수면 부족으로 인해 괴로웠다.
그래서 수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작업실 내 소파를 향해 움직였다.
작업실 소파는 어느새 내 침대가 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러나 난 잠에 들 수 없었다.
난데없이 내 수면행을 방해하는 노크가 울렸기 때문이다.
똑똑.
난 괴로운 표정으로 작업실 문을 열어야 했다.
그리고 문 앞에는 김진영 형님이 서 있었다.
“어, 형님. 어쩐 일이세요?”
내가 놀라자 김진영은 웃으며 나를 보고 말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지? 혹시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작업실에 들어가도 될까?”
“네, 들어오세요.”
아무리 잠이 온다고 해도 내 작업실까지 손수 찾아와 준 회사 대표를 문전박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김진영과 함께 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쓰리타임즈 팀을 책임지고 이끄는 오선정 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