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최고 걸그룹 프로듀싱을 맡다(2)
두 사람은 작업실로 들어와 내가 침대로 사용하려고 했던 소파 위에 앉았다.
소파에 앉은 김진영은 나를 보며 웃으며 권했다.
“우리 서준이도 이리 와 앉아 봐. 내가 서준이에게 긴히 할 말이 있거든. 잠시 이야기 좀 나누자.”
“…네.”
김진영이 내게 할 이야기가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했기에 일단 나도 의자에 앉았다.
김진영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내가… 지금 조금 조심스러워. 나 역시 회사 대표이기 이전에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라… 우리가 할 이야기를 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말이야… 혹시 네 기분이 상할 수도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렇게 말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실까?
조금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머뭇거리는 김진영이 답답하다고 느꼈는지 함께 온 오선정 팀장이 불쑥 나섰다.
“제가 누군지 알죠? 전에 본 적이 있는데…….”
“네, 압니다. 오선정 팀장님이시잖아요. 예전에 은진 누나 작업 도와주면서 뵌 적 있습니다.”
그녀는 쓰리타임즈의 전담 매니저였다.
쓰리타임즈가 데뷔할 때부터 로드 매니저로 동고동락하며 지금의 팀장 직책까지 오르게 된 회사 내에서는 입지전적인 로드 매니저 출신 팀장이었다.
오선정 팀장은 내가 자신을 기억하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 아시는구나. 그땐 작곡 일 이제 막 시작하는 초보 작곡가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네요. 이번에 작업한 워너비 걸즈 노래 정말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먼저 칭찬의 말을 건넨 후 본론을 꺼낼 생각인 듯 보였다.
“어제 우리 애들하고 같이 곡 작업 하셨죠?”
“아, 네. 근데… 곡 작업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그냥 우연히 만나서 피자 얻어먹고, 옆에 있던 키보드로 연주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은 있습니다.”
갑자기 그녀 입에서 어제 쓰리타임즈와의 만남이 거론되었다.
혹시 그 일 때문에 두 사람이 날 찾아온 건가?
“그 일 때문에 애들이 절 찾아왔어요. 이서준 작곡가님하고 다음 앨범을 작업하고 싶다고 하면서요.”
“네?”
생각지도 못한 말이 그녀에게서 나왔다.
쓰리타임즈 애들이 나하고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고?
잘 나가는 쓰리타임즈가? 그것도 나랑?
도대체 왜?
충격적인 소식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듣고 놀라셨죠? 저도 많이 놀랐어요. 걔들이 제게 그런 이야기를 꺼낸 건 어제가 처음이었거든요. 아티스트가 자신의 앨범에 열정을 보인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죠. 아마 우리 이서준 작곡가님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그런 말을 꺼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회사 일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한 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생각지도 않았던 큰 문제가 생기네요.”
쓰리타임즈는 어제 내가 즉석에서 들려준 노래가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냥 간단하게 스케치 형식으로 만들어진 노래를 들려준 것뿐인데, 그 정도만 듣고도 나랑 작업하겠다는 큰 결심까지 밝혔다니 나로서도 의아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곡이 마음에 들었으면 곡만 받으면 되지, 왜 프로듀서까지 내게 맡기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혹시 유닛 활동을 제안한 내 말이 그녀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조금 전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던 김진영이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는지 오선정 팀장의 말을 이어받아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회사에서 쓰리타임즈가 차지하는 위상을 너도 잘 알 거야. 그래서 다음 앨범 준비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련한 상태였어. 예를 들어 프로듀서와 메인 작곡가들도 그냥 국내 뮤지션들이 아니라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준비해 둔 상태지. 예를 들어 이번에 함께 일하기로 한 뮤지션이 대런 블랙하고 펄 스미스야. 혹시 이름은 들어 봤어?”
참고로 난 국내 음악 시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잘 모른다.
“…잘 모르겠네요.”
“하하 모를 수도 있지. 왜 그런 표정을 지어? 그냥 내가 간단히 걔들을 소개하면 미국 음반 시장에서는 최근 가장 ‘핫’한 뮤지션이 바로 그 두 사람이라고 보면 돼. 그런 뮤지션과 같이 일하기 위해 회사에서도 엄청 노력했어. 그리고 다행히 그런 노력이 열매를 맺어 그들과 일하기로 결정이 된 거지. 근데 갑자기 쓰리타임즈 아이들이 너랑 작업하겠다고 나온 거야. 그 녀석들 말대로 네가 그 녀석들을 맡게 되면 이미 사전에 준비되었던 그 대단한 뮤지션들이 공중에 그냥 붕 뜨게 되는 거지. 한마디로 우리 회사가 그런 세계적인 뮤지션들을 바람맞히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 이야기가 그렇게 전개되는구나.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의 이야기였다.
하긴 내 미천한 경력으로는 이런 세계적 비즈니스 관계를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하지.
근데 잠깐…….
사실 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 아닌가?
왜냐고?
그건 내가 쓰리타임즈 프로듀서를 안 맡으면 해결되는 문제니까.
난 굳이 회사에 큰 문제를 안기면서까지 그녀들의 앨범 작업을 맡을 생각이 없었다.
“전 한 번도 쓰리타임즈의 앨범에 참여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하게 되면 기쁘겠지만, 그런 문제를 일으키면서까지 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굳이 고민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네요.”
좋은 해결책을 제시한 거 같아 뿌듯한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근데 이상한 것은 두 사람의 표정이 전과 비교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해결책을 들었으니 기뻐하는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것이다.
혹시 내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 근데 정작 문제는 네가 아니야. 그 녀석들이 문제지.”
“그 녀석들이면… 누구?”
“누구긴 누구야, 쓰리타임즈지.”
“아!”
오선정 팀장이 굳은 표정으로 내가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안 그래도 제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안 된다고 했어요. 이미 준비된 뮤지션들과 작업을 해야 한다고요. 근데 애들이 도통 말을 듣지 않네요. 도대체 애들한테 뭘 들려주신 거예요?”
내게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질문을 던진 팀장님의 눈빛에는 두 가지의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나는 없던 분란을 일으킨 나를 향한 원망의 감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도대체 쓰리타임즈에게 들려준 곡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감정이었다.
“그냥 걔들과 있으면서 떠오른 곡을 연주한 거뿐인데요…….”
곡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연주한 거뿐인데,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충 지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결심을 했다.
“제가 쓰리타임즈 멤버들을 만나서 달래 볼까요?”
원한다면 직접 나설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김진영 형님의 생각은 나랑 다른 모양이었다.
“그 전에 네가 어제 애들에게 들려줬다는 곡을 내가 한번 들어 볼 수 있을까?”
“그거야 당연히 가능하죠. 마침 밤새 작업을 해 두었거든요.”
“그래? 그럼 좀 들어 보자. 나도 걔들이 뭘 듣고 그렇게 하는 건지 무척 궁금해.”
궁금하다며 보채는 김진영 형님 때문에 난 작업했던 곡을 서둘러 재생시켜야만 했다.
내가 두 사람에게 가장 먼저 들려준 곡은 댄스팀을 위해 만든 노래였다.
어제는 키보드 하나로 간단하게 연주한 곡이었지만, 지금 작업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곡은 밤을 새워 가며 노력해서 만든 거의 80% 이상 완성된 제대로 된 곡이었다.
노래의 시작은 특이하게 일렉트로닉 기타의 화려한 애드리브 라인으로 시작되었다.
그런 다음 드럼이 들어와 신나게 박자를 쪼개기 시작했고, 다음으로 치고 들어온 베이스가 리듬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여기에 평소 잘 안 쓰는 기계 소리도 가미했더니 듣는 사람의 몸을 저절로 흔들게 만드는 마성의 팝댄스곡이 완성되었다.
평소 흥이 많은 김진영 형님을 알기에 살짝 형님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오, 역시…….
흥을 아는 형님답게 어느새 앉아서 몸으로 그루브를 타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형님의 옆에 앉은 오선정 팀장님도 제법 흥이 나는지 손가락을 가만히 두질 못했다.
노래는 그렇게 끝이 났다.
김진영 형님은 내게 한 번 더 틀기를 요청했다.
“이거 한 번 더 듣자.”
“넵.”
난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곡을 다시 재생시켰다.
형님은 이번에는 방금처럼 듣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게 질문까지 던지셨다.
“서준아, 이거 808 베이스 리듬 아니야? 그런 거 같은데… 이상하게 다른 거 같기도 하네.”
“그거 808 베이스 리듬 맞습니다. 다만 제가 많이 변형해서 연주했습니다. 그게 더 좋은 거 같아서요.”
“너… 미쳤구나…….”
김진영의 얼굴에는 감탄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내 베이스 연주가 제법 마음에 드시나 보다.
다시 틀었던 음악도 끝이 났다.
난 조심스럽게 김진영 형님에게 물었다.
“다음 곡도 바로 들려드릴까요?”
형님은 약간 흥분한 듯 말까지 더듬으시며 대답했다.
“다, 당연하지. 지금 곡을 또 듣고 싶지만… 일단 시간이 없으니 다른 곡을 먼저 들어 보자.”
“네.”
내가 다음으로 들려준 곡은 힙합팀을 위해 만든 노래였다.
그 곡을 듣던 김진영 형님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와우… 캬하… 이야…….”
이런 모습은 방송에서도 여러 번 보인 모습인데, 모두 알다시피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이 무척 마음에 들 때 나오는 행동이었다.
TV 시청자들을 많이 웃겼던 김진영 표 깨방정 리액션을 실제 작업실에서 실시간으로 보여 주신 셈이다.
그 모습을 재밌게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흘러나오던 음악이 끝나 버렸다.
이번에도 김진영 형님은 경악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너 …너 진짜…….”
“어때요? 괜찮나요?”
“야, 이건 좋다 나쁘다 말할 수준의 곡이 아니야. 이건 그냥 미쳤다. 하우스 킥 리듬은 도대체 뭐냐? 이건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리듬이야. 그리고 훅은… 그냥 이건 미쳤다. 그냥 제대로 미쳤어.”
이 정도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기에 극찬을 듣고 있던 내가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야, 다음 것도 빨리 들어 보자. 나 지금 죽을 거 같아. 어서.”
“넵.”
형님의 재촉에 나는 마지막 노래까지 곧바로 틀어야 했다.
이번 노래는 잔잔한 리듬의 곡이었다.
이 곡은 보컬팀이 부를 노래였는데, 댄스곡에 유독 민감한 형답게 이전의 두 곡의 반응과 비교해서는 약간 얌전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곡이 주는 영감이 형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형님의 목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댄스 가수답게 목만 흔드는데도 안무처럼 느껴지네.’
가볍게 움직여도 마치 안무를 보여 주는 것 같던 형님의 리액션에 놀라면서 곡은 끝이 났다.
김진영 형님은 이번에는 함께 온 오선정 팀장님을 향해 물었다.
“오 팀장이 듣기엔 어때?”
오선정 팀장님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
“솔직히 말할게요.”
“그럼 당연히 솔직히 말해야지. 어땠어?”
“애들 생각이 맞는 거 같아요. 곡이 너무 좋은데요. 그것도 세 곡 다요.”
“그지? 곡이 미쳤어.”
오선정 팀장님을 쳐다보던 김진영 형님은, 다시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쟤 완전 크레이지 모드야. 이 세 곡 다 내가 부르고 싶을 정도야. 특히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곡이 제일 충격이다. 오 팀장도 알지? 내가 잔잔한 노래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근데 마지막 곡 구성은 거의 충격이야. 어떻게 이런 배치를 생각한 거야? 그 흔하디흔한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갑자기 흥분하는 김진영 형님을 팀장님이 서둘러 진정시켰다.
“대표님, 정신 차리세요.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잖아요.”
“아, 맞다. 내가 잠시 흥분해서 정신이 나갔나 보다. 그래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지.”
“네, 그럴 때가 아닙니다.”
“오케이 알았어. 후~ 후~”
흥분한 형님은 심호흡을 통해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