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최고 걸그룹 프로듀싱을 맡다(3)
심호흡도 시키고 물도 먹여 가며 우리 두 사람은 흥분한 형님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와 오 팀장님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인지, 다행히 과하게 흥분했던 형님은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다시 침착함을 되찾은 김진영 형님은 진지한 얼굴로 나를 향해 말했다.
“곡은 두말할 필요 없이 최고야. 근데 곡이 최고라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형님의 말에 오선정 팀장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건 대표님 말씀이 맞아요. 곡이 좋아도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죠. 쓰리타임즈 정도 되는 가수의 다음 앨범 제작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것은 그냥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에요. 그건 대표님도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렇지. 내가 영향력이 큰 사람이란 사실은 맞는 말이지만, 전적으로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 엄연히 우리 회사는 주식회사고, 회사 내 중요한 결정은 회사 임원들과의 회의를 통해 결정하게 되어 있으니까.”
지금의 JYK를 만든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민주적인 의사 결정 시스템이었다.
나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을 때 현실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타협안을 제시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쓰리타임즈에게 곡만 줘도 아무런 상관없어요. 프로듀서를 맡는 것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제 뜻을 두 분께 다시 한번 밝힙니다.”
“그래? 그럼…….”
내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형님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형님의 고개가 향하는 곳에는 오 팀장님이 앉아 있었다.
형님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안 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굳게 다짐하듯 말했다.
“알겠어요, 대표님. 애들은 제가 다시 한번 설득해 볼게요.”
“그래. 오 팀장이 수고 좀 해 줘. 걔들이 생각을 바꾸면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게 해결되는 거야.”
“네.”
그렇게 이야기를 정리한 두 사람은 황급히 내 작업실을 떠났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혼자가 된 나는 원래 누워서 자려고 했던 소파에 그제야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아이고 좋다. 아이고 좋아.”
이제 나의 수면을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졌으니 누워서 잠을 청하려 했다.
“…….”
근데 문제가 생겨 버렸다.
갑자기 생겨난 문제는 바로 김진영 형님과 오 팀장님의 방문 덕분에 쏟아지던 잠이 모두 거짓말 같이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도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기에 나는 어쩔 수 없는 작업실 천장을 보며 상상 속의 양을 세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야, 차례 지켜. 줄 똑바로 서서 순서대로 등장하란 말이야. 세 마리, 네 마리…….”
* * *
조용했던 JYK는 쓰리타임즈 덕분에 때아닌 소동이 일어났다.
안무 연습실에서 우연히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이서준과 쓰리타임즈의 만남의 장은 마치 나비 효과처럼 여러 가지 문제들을 연달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생긴 문제는 쓰리타임즈의 프로듀서 교체 요구였다.
준비된 외국 뮤지션들 대신에 이서준에게 다음 앨범 프로듀서를 맡기고 싶다는 것이 그녀들의 하나 된 요구였다.
이 문제는 지금의 쓰리타임즈를 만든 일등 공신인 오선정 팀장의 전천후 활약으로 인해 일단 쓰리타임즈 멤버들이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로 일단락되었다.
두 번째 문제는 이서준이 만든 노래를 쓰리타임즈 다음 앨범에 싣고자 하는 게 문제였다.
쓰리타임즈는 어느 정도 완성된 노래를 다시 듣고는 더욱 이서준의 곡을 부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곡을 들어 본 김진영과 오선정도 그녀들의 편이었다.
그때부터 JYK의 대표 김진영은 회사 임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는 임원들을 설득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외국 뮤지션의 곡 대신 아직까지 신예 작곡가라고 할 수 있는 이서준의 곡을 밀어 넣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쉽지 않을 거 같았다.
그러나 설득 과정은 의외로 쉬웠다.
열 말 필요 없이 이서준이 만든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그들도 바로 마음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JYK의 임원들 중 대다수는 음악을 배웠거나 한때 음악을 업으로 삼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보다 듣는 귀가 열려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서준의 곡이 얼마나 좋은지 바로 캐치하였다.
그리고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임원들도 음악을 주업으로 하던 JYK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 범상치 않은 귀를 가진 이들이었다.
그러니 그들도 이서준이 만든 노래의 가치를 못 알아보는 사람은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가장 어려울 것 같던 문제가 쉽게 해결되자 김진영은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큰 그림이 완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수는 세계적인 가수인 쓰리타임즈.
그리고 곡은 이서준이 만든 환상적인 곡들.
마지막으로 여기에 세계적인 뮤지션 대런 블랙과 펄 스미스가 세계적인 음악 트렌드에 맞게 녹음과 편곡을 맡아 준다면 그야말로 음악계의 어벤져스가 완성이 되는 거였다.
그러나 김진영이 그린 그림은 마지막에 와서 산산조각 나 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걔들이 왜 그러는 건데?”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인 김진영은 오랜만에 잔뜩 성이 난 모습이었다.
덕분에 JYK의 해외 사업을 담당하는 해외 사업부 팀장 김광수는, 마치 자신이 잘못한 사람처럼 김진영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 아까 분명히 들었는데, 그래도 도저히 믿기질 않으니까 김 팀장이 걔들한테 들었던 말 다시 한번 해 줘 봐.”
김광수 팀장은 김진영이 시키는 대로 조금 전 자신이 들었던 펄 스미스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당신들의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곡을 만들었다. 그 곡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면 우리는 우리의 아까운 시간을 쓰리타임즈에게 쏟을 까닭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계약 위반이다. 우리는 그것을 결코 좌시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뭐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젠장!”
결국 자신이 원해서 한 번 더 들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욕설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결국 돈이 문제구만. 이것들 돈독만 올라서…….”
저들이 저렇게 나오는 것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음악 사업도 비즈니스 영역이다.
결국, 돈을 보고 하는 일이란 뜻이다.
야구로 치면 메이저 리그에서 뛰는 대런 블랙과 펄 스미스가 JYK의 오퍼를 받아들인 이유도 아시아 시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쓰리타임즈와 함께 작업해 그들의 곡을 아시아 시장에서 팔아먹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물론 저작권료 등의 음원 수익 외에도 JYK에서 별도의 비싼 보수를 약속하긴 했지만, 전 세계에서 들어올 음원 수익과 비교해서는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걔들의 말을 정리하면 자신들이 만든 곡이 아니면 쓰리타임즈의 다음 앨범 프로듀싱은 맡지 않겠다는 뜻인 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들의 곡을 싣지 않는다면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이고.”
“네, 그렇습니다.”
“젠장!”
김진영은 다시 한번 욕설을 내뱉고는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걔들 노래는 우리 모두가 들어 봤어. 그리고 이서준 곡하고 비교했을 때 승자는 누구였지?”
“이서준의 곡이었죠.”
“그렇지. 걔들 곡도 괜찮긴 했지만, 저번에 발표한 노래와 너무 비슷하다는 게 우리 회사 프로듀서들의 평이었지?”
“네, 맞습니다.”
가수에게는 곡이 가장 중요했다.
상황이 어쨌든 간에 가수가 음반을 발표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곡이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순수하게 곡만 놓고 비교했을 때, 회사의 대다수는 이서준이 만든 곡의 손을 들어 줬다.
잠깐 어지럽던 머릿속을 정리하던 김진영은 이윽고 다시 물었다.
“우리 회사 법무팀에서는 뭐라 그래?”
“저들이 계약 위반을 이유로 법적 조치를 취했을 때 법무팀에서는 어떤 결과를 예측하고 있나라는 질문이십니까?”
“응, 맞아.”
“법무팀의 예측은 일단 50:50이었습니다.”
“50:50이라…….”
김진영은 김광수 팀장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 생각에 빠졌다.
회사를 이끄는 대표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김진영은 김광석 팀장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김 팀장, 회사 법무팀에 내 지시 사항 전달해.”
“어떤 지시 사항 말씀이십니까?”
“걔들하고 법적 싸움 대비하라고 말이야.”
김광수 팀장은 김진영의 지시 사항에 담긴 의미를 알아채고 조금 놀라는 듯 보였다.
“그럼 저들과 일을 안 하시겠다는 생각이십니까?”
그의 물음에 김진영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방법이 없잖아. 곡은 이쪽이 좋으니 당연히 곡을 따라가야지. 최악의 경우 법적으로 계약 파기에 따른 배상을 하게 되더라도 가수는 좋은 곡을 따라가는 것이 맞는 거야. 솔직히 나도 걔들이 보낸 데모곡 들으니 살짝 화나더라. 무슨 노래가 새끼를 쳐? 완전 부모를 쏙 빼닮은 자식 같은 노래를 우리 쓰리타임즈에게 부르라고 하는 거잖아. 괘씸한 놈들. 노래라도 좀 괜찮은 놈으로 보냈으면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잖아. 안 그래?”
김진영은 대런 블랙과 펄 스미스가 보낸 성의 없는 곡에 대해 화를 내고 있었다.
옆에서 그의 불만을 듣고 있는 김광수 팀장도 김진영의 의견에 십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들이 보낸 데모곡을 처음 들었을 때, 얼마 전 그들과 작업한 벤자민 러셀의 곡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을 바로 했었다.
“그럼 김 팀장도 내가 지시한 사항 챙겨. 난 지금 가 볼 곳이 있어.”
불만을 늘어놓던 김진영은 다시 어디론가 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 그의 다음 목적지가 궁금해진 김광수 팀장이 김진영에게 물었다.
“대표님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긴, 이서준 만나러 가야지. 쓰리타임즈 다음 앨범 프로듀싱을 맡길 중요한 분이신데, 내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맞지 않겠어?”
이로써 쓰리타임즈 다음 앨범의 프로듀싱은 본인 뜻과 상관없이 이서준이 맡게 되었다.
* * *
“거기선 좀 더 강한 느낌으로 불러야지. 다시 한번 가자.”
“네.”
난 지금 녹음을 진행 중이다.
원하지도 않던 쓰리타임즈 프로듀서를 맡게 되었고 이왕 맡기로 했으면 최선을 다해야 하기에 난 지금 최선을 다해 디렉팅을 하고 있었다.
‘노래가 아쉬워…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본래 쓰리타임즈는 가창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룹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그룹도 노래만으로 멤버를 뽑진 않는다.
춤에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랩, 혹은 예쁘고 잘생긴 얼굴로 그룹의 얼굴을 담당하는 멤버도 있었다.
그래도 노래를 하는 가수이기 때문에 노래 잘하는 멤버는 최소 한 명 이상은 그룹에 포함시키는데 쓰리타임즈 경우에는 메인 보컬을 할 만한 멤버가 없이 그룹이 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