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최고 걸그룹 프로듀싱을 맡다(4)
쓰리타임즈도 그룹에 포함될 최종 후보를 고를 때 메인 보컬을 맡을 후보들이 여럿 있었다.
그래서 최소 한 명 이상 메인 보컬을 맡을 노래 잘하는 연습생을 멤버에 포함시키려고 하였는데,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김진영은 그들이 지금의 쓰리타임즈 멤버들과 합이 그리 좋지 못하다 여겨 모두를 탈락시켜 버렸다.
모든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멤버 간 호흡이 좋고 발표하는 노래마다 승승장구하는 그들을 보니 김진영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젠 모두 알게 되었다.
그러나 녹음을 주도하는 프로듀서의 입장에는 그러한 김진영의 결정이 두고두고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인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노래는 결국 부르는 거잖아. 그러니 노래 쪽이 많이 아쉬운 건 쓰리타임즈의 어쩔 수 없는 약점이야. 그러나 그것을 메꾸는 것이 바로 프로듀서인 내가 해야 할 일이겠지.’
높은 음을 뽑아내는 것이나 복잡한 애드리브 라인을 멋지게 소화하는 모습을 쓰리타임즈에게 바랄 수는 없다.
보통의 청중은 노래에서 그런 부분들을 들을 때마다 가수의 능력에 감탄하며 노래에 더욱 깊게 빠져들게 된다.
그것이 바로 가창력 있는 가수의 힘이었다.
그러나 쓰리타임즈에겐 그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것으로 그런 모자란 부분들을 메울 생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것들이란 이른바 음색, 음정, 박자, 그리고 노래에 담긴 감성을 제대로 표현하는 가수의 노래 소화력이다.
어쩌면 가수의 목소리 역시 하나의 악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악기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좋은 연주자는 악기를 통해 정확한 박자와 음정으로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
가수는 본인의 성대가 자신의 악기이고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성대를 가지고 연주하는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록 높은 음은 못 내더라도 좋은 톤과 박자, 그리고 정확한 음정을 통해 노래를 제대로 표현할 수는 있다.
거기다 노래의 감성을 제대로 이해한 가수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노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표현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듣는 사람은 가수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받아들여 노래의 참맛을 알게 되고, 그 순간 노래가 주는 감동에 푹 빠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가수가 곡을 소화하는 능력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녹음할 때 독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너희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뽑아내 줄게. 함께 파이팅하자.’
나는 그렇게 결심했고, 그 결심은 녹음 장면에서 확실하게 표현되었다.
“잠깐. 방금 반 박자 빨리 들어갔어.”
“잠깐. 음정이 안 맞아. 다시 해.”
“잠깐. 너 지금 무슨 생각하고 노래 부르니? 그 노래 속의 주인공은 어떤 마음일까 하고 생각은 해 본 거야?”
녹음 중 나는 악마가 되었다.
* * *
JYK 사옥에서는 지금 한창 녹음이 진행 중이다.
녹음에 들어간 주인공은 바로 쓰리타임즈였다.
곡은 완성이 된 후라 오늘 드디어 첫 녹음에 들어가는 날이었다.
녹음실 옆 연습실에는 지금 녹음 중인 사람 다음으로 녹음실에 들어갈 쓰리타임즈 멤버들이 열심히 자신이 부를 파트를 연습하고 있었다.
나름 베테랑 아이돌인 그녀들은 여유 있는 모습으로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녹음에 들어가는 그녀들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언니!”
같이 데뷔할 뻔한 경험 덕분에 쓰리타임즈 멤버들과 가장 친한 채원이, 높은 톤의 목소리로 ‘언니’를 외치며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워너비 걸즈 멤버 전원이 연습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 너희 여긴 어쩐 일이야?”
그녀들을 보고 놀란 정현이 워너비 걸즈에게 물었다.
워너비 걸즈는 환한 웃음과 함께 자신들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를 알려 주었다.
“저희야 언니들을 응원하러 왔죠. 오늘 정말 파이팅하셔야 해요.”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환한 웃음과 더불어 파이팅까지 외치며 응원하는 후배 가수들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정현은 괜스레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 녹음 원데이 투데이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파이팅까지 외치니? 오늘 녹음 얼른 끝내고 같이 맛있는 저녁이나 먹자. 어때? 시간 돼?”
그녀의 말에 워너비 걸즈 멤버들의 얼굴에는 갑자기 의아함이 생겨났다.
그중 레아 대표로 정현에게 물었다.
“오늘 녹음 아니세요?”
“맞아. 오늘 첫 녹음이야.”
“근데… 저녁 약속 잡아도 될까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그녀를 보며 정현 역시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오늘 우리 스케줄 녹음 말고는 없어. 그러니 저녁 못 먹을 이유가 있나? 혹시 너희가 바쁘니? 약속 있어?”
정현의 말에 워너비 걸즈 전원이 동시에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니요. 저흰 약속 없어요. 공식 스케줄도 없고요. 다만 언니들이 녹음 끝나고 피곤하실 수도 있으니까…….”
더욱 이해가 가질 않는 말이었다.
녹음했다고 저녁을 못 먹을 정도로 피곤할 리가 있나?
“너희 갑자기 이상한 소리 한다. 녹음하는 게 뭐가 힘들어? 혹시 진짜 무슨 일이 있으면…….”
벌컥.
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녹음실에 들어갔던 맏언니 나영이 연습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덕분에 정현은 하던 말을 중단해야 했다.
그리고 정현은 연습실에 들어온 나영의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언니, 울었어?”
“…….”
나영은 아무 말 없이 연습실 소파로 향했다.
그리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는 잠시 후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흑흑.”
그 모습에 놀란 연습실 안 사람들은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나영에게 갑자기 우는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언니, 갑자기 왜 울어? 무슨 일이야?”
“그래 언니, 무슨 일 있어?”
동생들의 물음에도 대답 없이 한참을 울던 나영은, 펑펑 울고 나니 조금 편안해졌는지 그제야 입을 열기 시작했다.
“녹음을 하는데… 나도 열심히 연습을 해 왔는데… 녹음실 안에서 계속 못한다고… 계속 틀렸다고만 하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거 같은 걸 계속 꾹 참았어. 근데 결국 다시 연습하고 제대로 녹음하자는 소리만 듣고 나왔지 뭐야. 그리고 너희를 보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 으앙…….”
설명하면서 다시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나영은 다시 통곡하듯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바탕 울음비가 다시 내린 후에 연습실 안에는 나영의 울음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결국 언니가 운 이유가 서준 오빠 때문이네.”
“응.”
정현의 물음에 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정현은 약간 화가 나는 얼굴로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그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안 되겠네. 우리 언니가 녹음하다 실수했다고 그렇게 몰아붙이면 되나? 우리 언니가 생판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도 아닌데 말이야. 안 되겠다. 내가 들어가서 한마디 해야 되겠어.”
화가 난 정현이 녹음실로 뛰어갈 듯 보이자 울던 나영이 얼른 그녀를 잡았다.
그건 그녀가 바라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 돼, 정현아. 가만히 있어.”
“놔, 언니. 내가 이건 참을 수 없어. 따져야 해.”
“아니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네가 그러면 내 꼴이 더 우스워진단 말이야. 나도 오빠 말이 틀렸으면 가만히 듣고만 있었겠어? 근데 왜 내가 따지지 못했냐면 오빠 말이 다 맞으니까 정말 단 한마디도 반박을 못 하겠더라. 오빠는 정말 내게서 최고의 노래를 끄집어내려는 생각에 정말 세심하게 디렉팅을 보고 있는데… 네가 따지고 들면 내 꼴이 뭐가 되냐?”
“뭐?”
녹음실 안으로 뛰어들어 가려던 정현은, 나영은 말을 듣고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녹음실에서 오빠랑 녹음해 보면 너도 방금 내가 한 말 바로 이해할 거야. 오빠도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나영의 말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용히 지켜보던 워너비 걸즈 멤버들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언니들, 전에 저희가 먼저 서준 오빠랑 녹음을 했었잖아요. 그때 저희도 엄청 울었어요. 녹음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녀들의 말에 정현이 놀란 얼굴로 다시 물었다.
“너희도?”
“네.”
“그렇다면 저 오빠 완전 상습범 아니야? 일부러 더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정현의 의심에 워너비 걸즈 리더 예빈이 고개를 저었다.
“오빠는 괜히 그러시는 것이 아니에요. 지적할 때마다 그 이유를 정확히 밝혀 주시거든요. 들어 보면 다 맞는 말이더라고요. 아마 나영 언니도 그래서 묵묵히 지시에 따랐을 거예요. 저희도 그랬어요.”
이번에는 채원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까 언니가 같이 저녁 먹자고 했을 때, 저희는 그래서 머뭇거렸어요. 저희가 서준 오빠랑 첫 녹음 했을 때는 저녁 먹을 생각도 못 했거든요. 녹음 때문에 심신이 너무 지치니까 입맛도 사라지더라고요. 그만큼 힘든 게 오빠랑 녹음하는 건데… 근데 신기한 거는 녹음을 완성한 후 결과물을 들어보니까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들이 한방에 사라졌어요.”
“맞아요. 너무 녹음이 너무 잘 돼서 기분이 좋았어요.”
워너비 걸즈에게 충분한 설명을 들었지만 그냥 얘기만 들은 정현의 얼굴에 담겨 있던 물음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직접 녹음실에 들어가 보니 나영과 워너비 걸즈가 했던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잠깐. 정현아 이 노래 속의 여자라면 그런 느낌으로 부르는 게 맞을까?”
“…….”
너무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이서준의 모습에 정현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소리도 못 하고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가사를 너희가 썼잖아. 그런데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 내 생각은 이래. 참고로 내 생각을 먼저 들어 봐.”
“…….”
“너희 가사 속 여성은 자기 생각이 분명한 편이야. 그래서 사랑에 있어서도 주도적이지. 여자라고 그냥 남자의 관심을 받기를 바라거나 그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만을 기도하는 그런 수동적인 여자가 아니지. 그러면 그런 성격의 여자인 노래 속 주인공이 방금 가사 부분에서는 어떤 마음일까? 내가 생각할 때는 당당함이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근데 방금 네 노래에서는 그 어떤 당당함도 찾아볼 수 없었어. 그럼 노랫말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어떻게 불러야 할까? 내 생각에는…….”
“…….”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을 한 보따리 늘어놓는 이서준의 모습에 정현은 여전히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 * *
녹음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쓰리타임즈는 고맙게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여 주었다.
그녀들이 어떻게 움직여 주었는지 워너비 걸즈와 녹음할 때와 비교해서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거 같다.
워너비 걸즈와 녹음할 때는 너무 디테일하게 접근하는 나로 인해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중에는 조금 타협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조금 애매한 부분은 그냥 넘어가 준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쓰리타임즈는 이번 앨범에 대한 열정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잠재력을 모두 이끌어 내려고 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독하게 굴었다.
절대 단 한 가지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첫 녹음 때는 멤버 전원이 울었다.
아마 녹음실을 나간 후 내 욕을 엄청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인데, 고맙게도 쓰리타임즈 멤버들은 나와 싸우려 했다.
“아니 오빠, 이 부분은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나중에는 이렇게 반론을 제기하는 멤버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바였다.
노래에 정답은 없다.
어떻게 해석하든 그건 나름대로 정답이란 말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가수가 본인의 노래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했냐는 것이다.
고맙게도 쓰리타임즈는 최선을 다해 고민해 주었다.
그리고 난 덕분에 훌륭히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