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33화 (33/189)

33. 소문 듣고 왔어

김진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강호석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는 건 맞아요. 그리고 우리가 돈을 버는 수단으로 하는 주류 음악도 대중음악이라 부르는 소비형 음악도 맞아요.”

김진영 역시 음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전제를 일단 인정했다.

“하지만 대중음악 역시 넓게 보면 예술의 한 장르라는 사실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대중적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라도 그가 무언가를 창작하는 데는 항상 나름의 이유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러니 이서준 작곡가가 정규 앨범을 고집하는 이유도 나름대로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곡을 만드는 창작 과정도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때 잘 만들어지는 법이다.

“만약 우리가 그걸 존중해 주지 않으면 그가 앞으로 더 좋은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창작 활동을 해야 하는 아티스트가 회사의 주축인 우리 같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그들의 그러한 생각을 존중해 주지 못한다면 우리 회사에 밝은 미래가 있겠습니까?”

창작자의 생각을 존중해 줘야만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김진영의 평소 지론에 바탕을 둔 설명이었다.

그러나 강호석은 김진영의 설명을 듣고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회사가 무조건 아티스트의 의견을 따라가 주는 것도 좋은 판단은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회사라면 경우에 따라서 아티스트가 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영이 생각하기에도 방금 강호석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적용의 예가 잘못되었을 뿐이다.

“실장님 말씀은 지금 이서준 작곡가가 정규 앨범을 내려고 하는 생각이 무조건 잘못된 판단이란 가정하에 말씀하시네요. 그게 왜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하시죠?”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작곡가가, 얼마나 많은 노래를 만들어 내는지 대표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근데 그 많은 노래 중에 히트곡이라고 부를 정도의 곡은 대체 몇 곡이나 됩니까? 확률로 따져 보면 아마 0.1%도 안 될 겁니다.”

강호석의 말은 우리나라의 음악 현실을 적나라하게 설명한 말이었다.

지금 현재 수많은 작곡가가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해 피땀 흘려 가며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음원까지 발매되고, 더 나아가 히트를 하게 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 현실을 고려하면 지금 우리가 들은 이 노래들은 정말 희소가치가 높은 노래라는 말이 됩니다. 이 좋은 노래들이 모두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현명하게 차례를 정한 후 순차적으로 발표하자는 제 의견이 왜 잘못된 겁니까?”

강호석의 말을 들은 김진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반박했다.

“실장님. 노래를 만드는 일을 수학적으로 접근하시면 안 되죠. 노래의 창작 과정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예술적 영역의 일입니다.”

김진영은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며 강호석 실장의 의견의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제가 지금까지 만든 노래 중에 음원 순위에서 1위를 했던 노래가 약 100곡이 조금 못 됩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약간 쑥스럽지만, 제법 많은 곡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죠. 제가 이렇게 좋은 창작물을 다수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생각한 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항상 저와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회사에서 저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을 많이 했다면 과연 제가 그런 곡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김진영의 말을 들은 강호석은 김진영도 예를 잘못 든다고 생각했다.

“그건 대표님의 경우잖습니까? 이서준 작곡가는 대표님이 아닙니다.”

강호석의 말을 들은 김진영은 답답함에 한숨이 쉬어졌다.

이서준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잘 모르는 그로 인해 답답함을 느낀 탓이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기획실장과 벌이는 언쟁이 무의미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휴~ 제가 두 가지만 확실하게 말씀을 드릴게요. 사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갑작스러운 김진영의 말에 회의실 안 사람 모두가 궁금증이 담긴 눈으로 김진영을 쳐다봤다.

“왜냐하면, 이서준 작곡가는 우리와 아티스트 계약을 맺지 않는 상황이니까요. 그와 우리 회사는 현재 작곡가 계약만 맺은 상황이기 때문에, 만약 그가 우리 회사에서 앨범을 발매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다른 회사에 가서 앨범을 발표할 수 있습니다. 즉 회사가 그에게 정규 앨범 대신 미니 앨범으로 발표하자고 권해도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를 강제할 힘이 없다는 뜻이죠.”

김진영의 설명을 들은 강호석도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아니 분명 전에 대표님께서 직접 아티스트 계약을 권유하셨다고 들었는데… 제가 잘못 들었던 건가요?”

“아니요. 권유한 건 맞아요. 근데 이서준 작곡가가 거절하더군요. 곡이 나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면서요. 그러니 지금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정확한 팩트는 우리는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강호석은 그런 상황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 했다.

그는 이서준과 회사가 이미 가수 활동을 위한 아티스트 계약을 맺었다고 지레짐작했었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 것이 있네요.”

김진영이 말하고자 했던 두 가지 중 아직 한 가지는 말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이서준 작곡가는 ‘사랑이 끝나다’라는 히트곡을 만들었죠. 그리고 다음으로 워너비 걸즈의 ‘놀자’를 작곡한 후 직접 프로듀싱까지 맡아 그 노래를 성공시켰고요. 그리고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쓰리타임즈의 컴백곡 3곡을 만들고 이번에도 직접 프로듀싱해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여러분 모두가 아시다시피 대히트 중이고요.”

김진영은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회의실 안의 청음회 평가 위원들을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 기획실장님께서 저랑 이서준 작곡가를 비교하시는 말씀을 하셔서 일부러 드리는 말입니다. 만약 제가 이서준 작곡가와 똑같은 일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면, 감히 단언컨대 전 절대로 저런 성공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겁니다. 이런 사실만 놓고 보면, 어쩌면 그는 저보다 훨씬 대단한 작곡가가 될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대단한 아티스트를 회사의 고집으로 떠나보내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모두는 김진영의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자신들이 아는 김진영은 누군가를 자신보다 낫다고 쉽게 이야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김진영의 평소 생각을 잘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방금의 말은 충분히 놀랄 만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김진영이 저 정도로 누군가를 높게 평가했다는 것은, 그의 극찬을 받은 이서준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리고 방금 들은 노래는 또 어땠나요? 전 그의 노래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얼마나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실지 쉽게 상상이 안 갑니다. 너무나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실 거 같아서요. 그런 대단한 가수가 될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또 이서준이라는 사람이죠. 그런 인물을 우리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일까요?”

“…….”

김진영의 긴 설명을 들은 강호석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 * *

청음회를 마치고 나온 김진영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본인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반가워했다.

“이야, 진짜 왔네? 난 아까 네가 농담하는 줄 알았어.”

“넌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농담하는 사람인 줄 아니? 나 지금 매우 진지해. 그러니까 오늘은 아마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많이 놀라게 될 거다. 미리 각오해 둬.”

“뭐래 얘가… 너 나 보자마자 웃기려고 하는 거야?”

“이게 사람 말을 어디로 듣는 거야? 나 오늘 진짜 진지하다고.”

김진영은 진지한 얼굴로 정색하며 말하는 친구의 모습이 낯설고 동시에 너무 웃겼다.

“하하하, 그만해. 네가 그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니까 너무 웃기잖아.”

오늘은 가요계 선배로서 근엄한 모습을 보이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입에서는 거친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런 젠장… 그만 웃어, 이 자식아.”

김진영의 웃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사람은, 대중에게는 안단테 뮤직의 수장으로 잘 알려진 유명 작곡가이자 인기 방송인인 유희상이었다.

그는 오늘 김진영에게 오래간만에 전화를 걸었다.

뜬금없는 통화를 통해 그는 친구인 김진영에게 오늘 너희 회사를 방문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었다.

김진영이 왜 갑자기 회사로 오려고 하냐고 물으니, 그는 너희 회사에 있는 괴물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자신의 의사를 친구에게 전달하였다.

김진영은 유희상이 말하는 괴물이 누군지 듣자마자 바로 알아들었다.

그는 이서준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는 거였다.

평소에도 자신의 친구는 좋은 음악을 하는 후배가 있으면 직접 찾아가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 돌발 행동을 자주 보였었다.

친구이지만 그 역시 음악적으로는 존경하는 사람이었기에, 김진영은 유희상에게 회사로 오라고 허락했다.

자신이 아끼는 이서준이 유희상을 만나게 되면 그가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러나 평소 장난이 많은 그였기에 살짝 농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조금 했었다.

근데, 실제로 회사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야, 너 진심이었구나.”

“난 항상 진심이야. 너처럼 위선적인 사람이 아니지.”

“이게 누구보고 위선적이래?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하자. 넌 차라리 위선적인 눈빛으로 사람을 대해. 그게 더 나을 거야. 괜히 이상한 눈빛을 남에게 보내다 변태라는 네 정체성을 들키지 말라고.”

유희상은 자신의 부끄러운 별명을 언급하는 친구의 모습에 발끈했다.

“야, 그건 내가 눈이 안 좋아서 그런 거야. 집중하면서 보면 눈이 안 좋아 저절로 그런 게슴츠레한 눈이 된다고 몇 번이나 설명해야 해? 그런 이유를 아는 너는 적어도 나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너 자꾸 이러면 나 정말 섭섭해.”

과하게 발끈하는 친구의 모습에 김진영은 장난을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하하, 알았어. 근데 서준이 소문은 어떻게 듣게 된 거야?”

김진영의 물음에 유희상은 자신이 이서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홍대 앞에서 볼일을 보다가, 문득 커피 생각이 나 마침 근처에 있던 카페로 들어갔어. 그때 카페에서 어떤 노래가 들려오는데 노래의 전주 부분이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외국곡인가 보가? 요즘 인기 있는 팝스타 노랜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국말이 귀에 들리더라. 그래서 깜짝 놀랐어.”

“그게 무슨 곡이었는데?”

김진영은 친구를 놀라게 만든 노래가 궁금해 물었다.

질문을 받은 유희상은 곧바로 자신을 놀라게 한 곡명을 밝혔다.

“그게 워너비 걸즈의 ‘놀자.’였어.”

“아, 그 노래 들었구나.”

“응, 그래서 내가 찾아보니 너희 회사 노래더라고.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너희 회사에서 이번에 제대로 곡 하나 만들었구나 하는 정도만 생각했거든. 근데 이번에 나온 쓰리타임즈 노래도 우연히 들었는데 또 너희 회사 노래더라고. 그러고 나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더라. 그래서 따로 찾아봤더니 놀랍게도 그 노래들을 만든 사람이 같은 사람이더라고.”

그제야 회사까지 찾아온 그동안의 과정을 소상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한테 전화한 거야?”

“그렇지. 너랑 내가 친구니까 친구 잘 둔 덕분에 그 노래를 쓴 작곡가를 직접 만날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래서 냉큼 전화했지.”

“크크, 나랑 친구 해서 처음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겠네.”

“흐흐, 어떻게 알았어? 너 의외로 예리하다. 둔하게 생겨 가지고.”

반가운 유희상과 적당한 농담 섞인 인사를 나눈 김진영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차례였다.

“가자, 네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 봐야지. 아마 작업실에 있을 거야.”

유희상은 김진영의 말만 듣고도 어떤 사람인지 머릿속의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주 작업실에 사는 친군가 보네.”

“응, 거의 작업실에 있어. 그렇게 노력하니 좋은 곡을 쓰지.”

“그렇겠네. 열심히 하지도 않는 애가 그런 좋은 곡을 쓸 리가 없지.”

“그렇지. 노래는 정성으로 만드는 작업이니까.”

김진영은 친구 유희상을 데리고 이서준의 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아마 작업실에 있을 거라 확신했다.

‘희상이 보면 그 녀석 어떤 표정 지을까?’

음악 하는 사람치고 유희상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대단한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놀라는 이서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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