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 친구 괜찮은 친구일세
“앨범까지 내? 그럼 노래도 잘해?”
“응, 잘해. 그것도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걔가 데뷔하면 노래 좀 한다는 기존 가수들도 크게 긴장해야 할 정도로 잘해.”
“진짜?”
유희상은 지금 만나러 가는 이서준이 음반까지 준비 중이라는 김진영의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자신이 만나고 싶어 하는 이서준이 전도유망한 작곡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이 되는 셈이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런 아티스트를 데리고 있는 친구가 부러워졌는지 샘이 나는 얼굴로 김진영에게 말했다.
“넌 전생에 무슨 일을 했길래 이렇게 인복이 좋아? 혹시 나라라도 구한 거야?”
유희상의 말에 김진영은 손뼉까지 치며 동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런 뛰어난 인재들이 알아서 내 주위에 모여들 리가 없잖아.”
“그래, 그 정도는 해야지 이런 복이 생기는 게 설명이 돼. 그리고 하나님도 너에게 과한 복을 주고 나니 자신이 너무 과했구나 하셨던 거야. 그래서 얼굴은 지금처럼 엉망으로 세상에 보내신 거지.”
갑자기 들어오는 얼굴 공격에 김진영도 잠자코 있지 않았다.
“제발 너는 내 얼굴 보고 욕할 자격이 없다고 내가 전부터 몇 번 말했었지? 나보다 못생긴 네가 내 얼굴을 지적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역으로 들어오는 얼굴 공격.
유희상도 참고 있을 수 없었다.
“얘가 또 이상한 소리를 하네. 난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이야. 좀 말라서 그렇지. 너랑 결이 다른 얼굴이라고.”
“그래, 삐쩍 마른 게… 저기 어디냐?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는 곳에 가면 너같이 생긴 사람 관 속에 누워 있더라. 그쪽 사람들은 너같이 생긴 사람을 미라라고 부른다며?”
마르고 왜소한 체형인 자신의 몸을 구실로 외모 공격을 시도하는 친구의 말에 유희상도 그 즉시 반격을 날렸다.
“넌 어디 동물원에서 탈출했니? 너 전에 내가 동물원에서 과자 던져 준 그 고릴라, 걔 맞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잠시의 짬에도 그냥 있지 못하고 유치한 외모 배틀에 열중하는 두 사람이었다.
친구랑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누던 유희상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근데 이서준이란 친구는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된 거야?”
“걔? 이제 1년하고 몇 달 정도 됐을걸?”
이서준이 JYK에 들어온 기간이 의외로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안 유희상은 조금 놀라며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전에는 어디에서 음악을 했대? 혹시 대학은 어디야? 전공은 작곡과?”
뭐가 그리 궁금한 것이 많은지 잠시도 입을 쉬지 못하는 친구였다.
그런 귀여운 친구 모습에 실소가 터진 김진영은, 웃는 얼굴로 친구의 여러 질문에 친절하게 답을 해 줬다.
“한국대 나왔어. 그리고 음악 전공은 아니야. 생명공학과라고 했던 거 같던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 들어온 계기는 그냥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입사하게 된 케이스야.”
예상과 전혀 다른 의외의 대답에 유희상은 계속 놀랐다.
“진짜? 의외네… 최근 만든 곡들 보니까 그냥 느낌이 전공자 삘이 나던데… 그럼 재야의 고수였나 보네. 그럼 공모전에서는 대상?”
계속 잘못 짚는 그의 모습에 김진영은 계속 실소가 터졌다.
“하하, 어떻게 제대로 한 번을 못 맞추냐? 공모전에서 대상이 아니라 겨우 턱걸이로 들어왔어. 그것도 모두 다 반대하는데 내가 합격시키자고 우겨서 당선된 경우지. 한마디로 회사 대표의 낙하산이야.”
계속되는 헛다리에 유희상의 얼굴에도 당혹함이 생겨났다.
“아니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 전개네.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공모전에도 대표발로 겨우 붙은 애가 그런 곡들을 썼다고? 지금 나보고 그 얘길 믿으라는 거야?”
“믿고 말고가 어딨어? 그게 팩튼데… 근데 난 그 친구 정말 뽑고 싶었어. 다른 사람은 모두 반대했지만 말이야.”
이유가 궁금했다.
“왜?”
“음… 공모전에 출품한 노래를 들으니 그냥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김진영은 친구와의 대화를 위해 이서준의 공모전 출품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을 되살려 보았다.
“작곡하는 사람끼리는 알잖아. 곡에는 만든 사람의 자취가 묻어나니까 말이야. 곡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듣는데, 뭔가 조금 달랐어. 참고로 객관적인 평가로는 곡 자체는 매력이 없었어. 근데 다른 게 보이더라.”
“어떤 게?”
유희상은 김진영의 옛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곡을 만들 때 배경이 된 레퍼런스가 엄청 다양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 그냥 엄청나게 많은 곡을 듣고 분석했던 사람의 느낌이 있잖아. 그 느낌이 얼핏 나더라고. 그리고 곡을 만들 때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조금 알겠더라.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라는 게 느껴졌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유니크한 느낌도 있었어. 물론 설명은 힘들지만. 그래서 나중에 대박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회사에 들어와서도 정말 열심히 한다는 말을 듣고 잘 뽑았다는 생각을 했었지.”
“그럼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두각을 나타낸 거야?”
이번에도 반대였다.
“아니. 계속 헤매더라. 그래서 내가 다른 직원들 눈치를 좀 보기도 했어. 왜냐하면, 내가 우겨서 뽑은 친구니까. 근데 희한한 게 1년은 계속 별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다가 1년이 딱 지나니까 이렇게 대박을 내놓네. 근데 애가 정말 열심히 하기는 했어.”
유희상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곡을 만들어 온 사람이기에 김진영이 어떤 마음으로 이서준이란 신예 작곡가를 자신의 회사에 데려왔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고 노력해 온 흔적이 느껴졌고, 더불어 뭔가 특별한 부분이 느껴져서 뽑았다는 말이었다.
‘역시…….’
유희상이 생각하기에 지금 이런 예만 봐도 자신과 함께 걷고 있는 김진영이란 사람이 역시 범상치 않은 구석이 많은 사람이란 걸 잘 알 수 있었다.
하긴 그런 그였기에 대한민국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김진영이 들려준 이서준에 관한 TMI 덕분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찰나에 김진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다 왔다. 여기가 그 친구 작업실이야.”
그제야 정신이 든 유희상은 자신이 어느새 지하 1층 구석 작업실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뭐라고 하고 있고 싶었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뭐를 하려고 해도 어느새 내 정신은 한창 청음회가 열리고 있을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일이 손에 잡힐 리가 만무했다.
아마 지금쯤 청음회 결과가 나왔을 텐데 나는 아직 그 결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어 답답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그래도 연락이 없으면 슬쩍 나가 볼까?’
연락이 오길 조금 더 기다려 보다가, 그래도 연락이 없으면 회사 내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슬쩍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혹시 내가 돌아다니는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나란 사람이 가벼워 보일지도 모르니 티를 안 내고 무슨 일이 있어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연기할 각오도 다졌다.
곧 하게 될지도 모르는 발연기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 가득 차기 시작할 때쯤 조용하던 내 작업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깜짝 놀란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쳐다보니 내 작업실을 방문한 사람은 내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우리 회사 대표인 김진영 형님이었다.
“형님 오셨어요?”
“그래, 나 왔어. 연락도 안 하고 찾아왔는데 용케 작업실에 있었네. 근데 뭐 하고 있었어?”
“그냥 곡 만들고 있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고 하긴 좀 그래서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그때 형님과 함께 온 일행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하고 자세히 살펴보던 나는 곧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TV를 통해 본 사람이지 실제로 만나게 된 건 처음이었다.
“헉, 유희상 선배님?”
날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던 그는, 내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반가워하는 얼굴로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나 알아? 오늘 처음 봤는데 아주 근본이 좋은 친구인 걸 바로 알겠어. 나도 알고 말이야. 맞아 나 그 유명한 작곡가 유희상이야.”
“바, 반갑습니다. 팬입니다.”
“내 팬이라고? 그럼 영광이겠네.”
“네? 네, 그렇습니다. 예전에 음악 공부할 때 선배님 곡을 교재로 삼아 분석하곤 했습니다. 그러니 제게 음악을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선배님이죠.”
이어지는 내 말에 유희상은 얼굴은 기쁨으로 만개했다.
“그래? 이거 얼굴도 잘생긴 친구가 하는 짓도 예쁘네. 그리고 음악을 보는 눈도 있고.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내가 만든 곡들이 수준이 꽤 높거든. 그러니 음악 공부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을 거야.”
“네, 실제로 많이 배웠습니다.”
친구의 잘난 척이 보기 싫었는지 김진영 형님이 갑자기 끼어드셨다.
“벌써 자기 입으로 다 말해 놓고는 뭐가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다는 말이야? 너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뻔뻔해진다.”
“지금 질투해? 하긴 네가 만든 곡으로는 후배들이 공부하지 않으니 네가 나에게 열등감을 느낄 만도 하겠다.”
“또 뭐라고 하는 거야? 너 음원 차트에서 1위 한 곡이라도 있어? 없지?”
“내가 만든 곡은 수준이 높아서 바로바로 차트에 오르고 하는 그런 쉬운 노래가 아니야.”
“너 지금 다른 작곡가까지 디스하는 거야? 그런 거야?”
두 분이 이렇게 서로 격이 없게 농담을 던지는 모습을 보니 실제 두 사람이 매우 친한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희상 선배의 눈은 어느새 게슴츠레하게 변한 뒤 나를 다시 쳐다보고 물으셨다.
“얼굴도 잘생긴 게 나 어릴 때 보는 것 같네. 그래, 내 노래 중 어떤 노래로 연습했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은 했지만, 실제 유희상 선배의 곡으로 공부했던 것이 맞았기에 쉽게 답변을 할 수 있었다.
“제가 선배님 곡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곡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인지’입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참 많이 연습했죠. 코드 진행에 대해서도 이 곡을 통해 참 많은 걸 느꼈어요.”
“그래? 그럼 지금 피아노로 직접 쳐 볼 수 있어?”
“네? 그거야 물론… 지금 쳐 보라고요?”
“그래, 한번 해 봐.”
다시 갑작스럽게 연주까지 하게 되었다.
뭐 선배님 곡이야 워낙 좋아했으니 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근데 선배님 눈빛은 왜 그러신가요?
“그럼 해 보겠습니다.”
김진영 형님이 가만히 계시는 걸 봐서는 그냥 유희상 선배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키보드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