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얼떨결에 방송 출연(1)
키보드에 앉아 난 유희상 선배님이 시키는 대로 연주를 시작했다.
♪♩♩ ♪♪♬
연주를 시작되니 내 옆에서 연주를 듣고 있던 유희상 선배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오… 좋은데…….”
내 연주가 마음에 드시나 보다.
난 생각보다 좋은 반응에 기분 좋게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고 나니 유희상 선배님은 약간 감동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다시 물으셨다.
“듣기로는 음악 전공자가 아니라고 하던데… 혹시 피아노는 따로 배운 적이 있어?”
“아뇨, 그냥 어릴 때 피아노 학원 다닌 게 전부입니다. 중학생 때부터는 그냥 혼자 집에서 연습했어요.”
“그런 거치고는 너무 잘 치는데… 근데 혹시 내 곡 편곡도 가능해?”
편곡?
편곡이라…….
가능하긴 한데 유희상 선배님의 곡은 원곡이 워낙 센 편이라 편곡이 너무 힘든 곡이 많았다.
그러나 다행히 머릿속에서 곧바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어 시도해 보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뭐… 그냥 해 볼까요?”
“그래, 해 봐. 못해도 되니까 부담 갖지는 말고.”
“네.”
선배님이 날 쳐다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웠지 나머지는 부담스러운 게 별로 없었다.
그런 상황이기에 흔쾌히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난 선배님의 요구대로 즉흥 편곡 버전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내가 선곡한 것은 앞서 연주했던 그 노래였다.
내 연주를 듣고 있던 선배님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였다.
이번에는 많이 놀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야… 이걸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너 정말 음악 잘한다.”
“가, 감사합니다.”
난 선배님의 폭풍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런 나에게 유희상 선배는 더 가까이 다가와 물으셨다.
“혹시 계약 기간이 언제 끝나? 네가 모를 수도 있는데, 나도 회사를 가지고 있거든. 너도 들어 본 적은 있지? 안단테 뮤직이라고.”
“네, 알고 있습니다.”
“너는 딱 보니 우리 회사 스타일이다. 우리 회사가 얼굴만 보고 아티스트랑 계약을 하거든. 넌 딱 얼굴이 안단테 뮤직 얼굴이야. 그 사실을 너도 인정하지?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뭔가 우리 회사와 너 사이에 인연의 끈이 매여 있는 거 같지 않니?”
갑자기 스카웃 제의라니…….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말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분이었다.
이 선배님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현재 나의 대표님께서 앞으로 나서 주셨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더군다나 회사 대표가 옆에서 눈 시퍼렇게 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감히 우리 회사 보물에게 수작을 걸어? 너 계속 이러면 다시는 우리 회사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정도 공격은 유희상 선배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내가 웬만하면 안 그러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우리 회사 스타일이잖아. 얼굴부터 봐 봐. 내 20대 얼굴이랑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 내 말 틀려?”
“응, 완전히 틀려. 잘생긴 서준이 얼굴이랑 네 얼굴을 비교하면 비슷한 구석이 요만큼도 없어. 아, 비슷한 점은 있네. 코가 한 개고, 눈은 두 개라는 점이 말이야. 그 정도 비슷한 점을 근거로 닮았다고 주장하는 건 사기 아니냐?”
“넌 나같이 잘생긴 얼굴로 살아 본 적이 없어 잘 모르는 거야. 너랑 나랑 인종이 다르거든. 지금 인류는 미남종이랑 추남종으로 나눌 수가 있지. 네가 어디에 속하는 지는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전혀 모르겠다. 근데 네가 어디에 속하는지는 나도 알지. 두 번째 맞지?”
다시 싸우기 시작하는 두 분 덕분에 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문득 드는 의문 한 가지.
근데 이분들 내 작업실에는 왜 오신 거야?
나는 그날 두 사람이 내 작업실을 나갈 때까지 그들의 방문 목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연이란 것은 원체 신비로운 것이다.
그런 인연은 때론 전혀 예상 못 한 결과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나에게 유희상 선배 역시 그런 인연의 존재였다.
* * *
나의 정규 앨범 발매가 결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정말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 주변 일상 중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을 한 가지만 들어 보라면 나는 내게 동료가 생겼다는 점을 들고 싶다.
바로 나를 전담하는 매니저가 생겼다는 말이다.
회사에서 나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써 주신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제법 경력이 많은 베테랑 매니저가 나를 담당하는 매니저로 배정되었다.
나와 함께하게 될 실장님의 정체는 조상구라는 이름을 가진 거구의 남자였다.
“조상구 실장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최지훈이란 솔로 가수를 담당했었죠. 몸이 조금 안 좋아 조금 쉬다가 이번에 다시 복귀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많이 알려 주세요.”
매니저라는 존재가 옆에 생기니 내가 곧 데뷔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났다.
음원 발매가 정해지자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아졌다.
만들었던 노래도 최종적으로 점검해야 했고, 뮤직비디오 촬영, 의상 컨셉 등도 다 정해야 했다.
내 앨범이다 보니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관여하려고 하였다.
회사에서도 웬만하면 내가 하려는 대로 따라 주려는 듯이 보여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sight’란 노래로 활동을 할 생각이라 그 곡에 모든 포커스를 맞춰 일을 진행했다.
데뷔 준비로 분주하던 어느 날.
회사로 출근한 나는 조금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에 놀라 물었다.
“오늘 회사에 무슨 일이 있어요?”
회사 입구 직원에게 물으니 직원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려주었다.
“오늘 회사에서 TV 프로그램 촬영이 있어요. 혹시 ‘캐릭터 세상’이라는 프로그램 아세요?”
“네, 알아요. 그거 유재성 씨가 하시는 유명한 프로그램이잖아요.”
“네, 맞아요. 오늘 그거 우리 회사에서 촬영해요. 대표님이 출연하시는가 봐요.”
“그래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국민 MC 유재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터라 한번 실물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난 곧장 내 작업실로 향했다.
내 앨범에 실을 곡들을 최종 점검하는 중이라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 작업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JYK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작곡가이면서 동시에 가수인 김진영의 방에는 평소와 다르게 많은 카메라와 촬영 스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세 사람이 작업실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인 유재성과 오늘의 게스트인 유희상, 그리고 김진영이었다.
오늘 유재성은 어떤 일인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오, 짜증 나. 어떻게 나의 마음 깊숙이 잠들어 있는 댄스 본능을 끄집어낼 노래가 단 한 곡도 없는 거야. 이게 말이 돼?”
그의 한탄을 듣던 유희상은, 유재성을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더니 못 참겠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이게 요즘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완전 눈만 높아져 가지고… 너 진짜 그러다 크게 혼나는 수가 있어. 네가 최근 며칠 동안 깐 곡이 도대체 몇 곡인지 아니? 그리고 그 노래들을 만든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작곡가인 줄 네가 알아?”
유재성은 유재성 나름대로 항변할 말이 많았다.
“아니 형, 그건 내가 까고 싶어서 깐 게 아니잖아. 프로그램 설정상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노래를 고르기로 했는데, 들어도 도무지 내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는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대는 유재성의 모습에 유희상은 결국 폭발해 버렸다.
그리고 그의 불타오르는 분노는 ‘캐릭터 세상’을 만드는 제작진에게 향했다.
“당신들이 더 문제야. 이런 음악도 모르는 모지리 친구한테 직접 노래를 고르라고 하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잖아. 네놈들이 더 나빠.”
유희상의 호통에 담당 PD가 당혹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그래서 오늘 이곳까지 왔잖습니까? 우리 댄스장인 김진영 씨가 좀 나서 주시면 잘 해결될 겁니다.”
PD의 도움 요청에 김진영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나섰다.
“내가 재성이랑 댄스곡을 해 봐서 아는데 나랑 취향이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내가 나선다고 확실히 해결된다고는 장담할 수 없어요.”
김진영의 말에 유재성도 동감 의견을 더했다.
“맞아. 이 형하고 나는 완전히 취향이 달라. 이 형이 생각하는 신나는 댄스 음악하고 내가 생각하는 신나는 댄스 음악이 완전히 다르더라고.”
유재성의 말에 김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재성의 말이 맞다는 나름의 의사 표현이었다.
이로써 프로그램 진행 상황은 완전히 난감한 상황으로 빠져 버린 것이다.
오늘 이들이 여기 모여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러했다.
유재성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 ‘캐릭터 세계’는 평소 가지지 못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서 유재성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며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느끼도록 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MBS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하였는데, 그동안 유재성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머 캐릭터도 가져 보고 때론 트로트 가수로 데뷔도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었다.
이번에 그가 새롭게 선보일 캐릭터는 평소 그의 바람대로 댄스 가수였다.
여러 노래 장르 중에 댄스곡을 특히나 좋아하는 유재성이기에 그의 개인적 취향을 적극 고려한 캐릭터 선정이었다.
그래서 그의 새로운 부캐 ‘댄서 유’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댄스곡을 가지고 댄스 가수로 데뷔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가장 중요한 선곡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제작진은 좋은 곡을 준비하기 위해 음악 시장에서 제일 잘 나가는 작곡가들에게 곡을 부탁했지만, 과거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유재성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곡들이었다.
그래서 발생한 거듭된 선곡 실패로 인해 비상 대책을 마련하고자 댄스곡을 많이 발표하고 특히 유재성과 친한 김진영의 작업실을 방문한 것이다.
그들은 김진영에게 좋은 방법에 대한 조언을 듣고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했지만, 김진영은 시작부터 손을 들고 항복을 외치고 있었다.
유재성은 난감해하는 김진영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형 회사에서 최근에 나온 노래들 다 너무나 좋았어. 특히 워너비 걸즈의 ‘놀자’라는 노래는 내가 거의 매일 3번 이상 들었던 노래야. 그리고 우리 쓰리타임즈, 거의 개인적으로 내 조카같이 친한 아이들인데 이번에 걔들이 낸 노래도 너무 좋더라. ‘love me’ 맞지? 너무 신나고 좋아. 듣고 있으면 저절로 이렇게 몸이 움직일 정도야.”
유재성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희상의 귀가 쫑긋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