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얼떨결에 방송 출연(3)
김진영 형님은 유재성 형님의 표정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벼, 별로야?”
“아니, 좋아. 근데 내 심장이 크게 뛰지는 않네. 형 미안해.”
“그, 그래?”
갑자기 쭈굴 모드로 변한 친구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유희상 선배는 유재성 형님을 향해 혀를 찬 후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저런 막귀 같으니라고… 서준아 네가 듣기에는 어땠어? 나는 너무 좋게 들었거든.”
유재성 형님은, 자신의 감상평이 잘못 전달되는 거 같아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니 나도 좋게는 들었다니까.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렇지.”
“시끄러우니까 넌 빠져. 서준이가 말하려 하다가 너 때문에 못 했잖아.”
유희상 선배님의 도움으로 나는 모두가 나에게 집중해 주는 좋은 환경에서 내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노래 너무 좋은데요. 여름 느낌도 물씬 나고… 특히 노래에 깔린 비트가 너무 신났습니다. 기타 프레이즈도 좋았고요.”
내 의견을 들은 김진영 형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했다.
“노래 괜찮았지? 내가 정말 신경 쓰면서 만든 곡이거든. 내가 평소에 안 하던 스타일까지 일부러 가미하면서 만든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라도 내 곡의 가치를 알아봐 줘서 진짜 고맙다.”
옆에 있던 유희상도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억울한 듯 말했다.
“야, 나도 방금 네 곡 너무 좋다고 했잖아. 내 말은 안 들려?”
“아, 미안. 너도 좋다고 한 거 나도 알아. 내가 지금 당황해서 말실수했어. 좋다고 해 줘서 정말 고맙다.”
결국, 이번에도 역시 세 명의 작곡가들은 모두 곡이 좋다고 느꼈지만, 곡을 직접 불러야 하는 유재성 형님의 성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거의 앞선 상황의 반복이었다.
또다시 우리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돌고 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었다.
난감한 상황에 빠진 유희상 선배는 나에게 다시 물었다.
“서준이 네가 생각하기에 쟤가 왜 저러는 거 같아?”
사실 나름대로 생각해 둔 원인이 있었다.
그랬기에 유희상 선배님의 질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답을 할 수 있었다.
“일단 90년대 음악을 가슴 속에 담아 두고 계시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그때의 음악과 춤을 즐겼던 분이라 그 당시 음악보다 느린 템포의 지금 댄스 음악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 거죠.”
내 말을 들은 유재성 형님이 격하게 찬성의 뜻을 밝혔다.
“맞아. 우리 작곡가 동생이 내 마음을 잘 아네. 요즘 노래들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조금 느려. bpm이 적어도 130은 되어 줘야지 신이 나지. 안 그래?”
유재성을 말은 들은 유희상 선배는 김진영 형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들은 곡 bpm을 좀 올려서 편곡해 보면 어때? 그럼 쟤 마음에 들 수도 있잖아.”
나 역시 유희상 선배의 권유는 좋은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김진영 형님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안 그래도 내가 이 곡을 만들면서 bpm도 올려 봤어. 왜냐하면, 나도 쟤가 어느 정도 빠르기를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잖아. 근데 bpm을 올려 보았더니 이 곡의 맛이 완전히 죽어 버리더라고. 그래서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했지. 그래서 나 혼자 내린 결론은 bpm을 올리려면 아예 다른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어.”
김진영 형님의 대답을 들은 유희상 선배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선곡 문제를 해결할 해답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세 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름대로 해결책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걸 이야기하려면 김진영 형님의 곡을 마음대로 뜯어고쳐야 하는 만행을 저질러야 했기에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계속 이런 답보 상태로 가만히 있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기에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제가 편곡을 해 보아도 될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편곡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을 들은 유희상 선배는 반색하며 내 제안을 반겼다.
“진짜? 우리 서준이가 한번 시도해 볼래?”
“네. 근데… 김진영 형님의 노래를 많이 고쳐야 하는데… 그래도 될까요?”
나의 조심스러운 말을 듣고 이번에는 김진영 형님이 반색하며 반겼다.
“괜찮아. 다 뜯어고쳐도 되니까 네 마음대로 해 봐.”
“네, 감사합니다. 그럼 허락하셨으니까 리듬부터 바꿔 보도록 할게요.”
“리듬?”
“네. 리듬을 바꿔야지 편곡이 될 거 같아요.”
나는 새로운 리듬을 만들기 위해 드럼을 쳐야 했다.
그래서 촬영 스텝들은 부랴부랴 악기가 세팅된 녹음실에 촬영 준비를 다시 해야만 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메인 PD가 나의 부담감을 덜어 주는 말을 해 주었다.
“원래 촬영이라는 것이 방송에 내보낼 수 있는 좋은 장면을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해요. 별로 의미 없는 장면은 아무리 많이 찍어 봐야 헛수고하는 거죠. 그러니 지금 장면처럼 다 방송에 내보낼 수 있을 거 같은 장면들을 찍을 준비를 하는 것은 저희 입장에는 오히려 더 반갑죠. 그러니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메인 PD의 이런 설명을 듣고 나니 마음의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촬영 준비가 끝나자 우리는 장소를 옮겨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유희상 선배님은 드럼 연주를 직접 하려는 내가 신기한지 이렇게 물어보셨다.
“요즘은 키보드랑 컴퓨터만 있으면 모든 소리를 바로 만드는데, 넌 신기하게 직접 연주하네. 일부러 그러는 거야?”
“네. 저도 필요할 때는 기계를 쓰기는 하는데… 이렇게 직접 연주하는 삘이 기계로는 잘 안 나더라고요. 그리고 아주 세밀한 차이를 만들 때는 기계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박자나 중간에 하이햇 소리의 떨림 같은 건 키보드 건반으로는 표현할 수 없잖아요.”
“이야, 너 그 정도로 디테일하게 작업해? 완전 우리 회사 스타일이네.”
갑자기 들어오는 스카웃 제의에 우리 회사 대표인 김진영 형님이 곧바로 끼어들었다.
“너 자꾸 수작걸면 우리 회사 보물 촬영장에서 빼 버린다. 그러니 그딴 소리 하지 마.”
“쳇, 그냥 그렇다고 한 것뿐이야. 너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해?”
“시끄럽고. 정말 하지 말라고 했어.”
“알았어. 안 하면 되잖아.”
두 사람이 말로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녹음실 안으로 들어와 드럼 의자에 앉았다.
방송 촬영 중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기본 리듬을 다시 만드는 이유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bpm을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김진영 형님이 처음에 만드신 리듬 라인은 더 빨라지면 왠지 어색해지는 라인이 맞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예 다른 리듬을 만들려고 합니다.”
말을 마친 나는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두그두그 둥둥 칙 파팍♪
나는 매우 열심히 연주했고, 연주가 끝난 후 녹음실 밖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땠어요?”
내 물음에 김진영 형님이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주 좋았어. 드럼 소리만 들어도 내 곡이 어떻게 바뀔지 정말 기대가 될 정도였어.”
형님의 말은 내 드럼 비트가 괜찮았다는 말이었기에 난 안심하고 다음 악기인 베이스를 집어 들었다.
“베이스도 바로 갈게요.”
“오케이.”
녹음실 안에는 곧 아까 친 드림 리듬과 어울리는 베이스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은 기타였다.
“기타 프레이즈는 형님이 만든 게 너무 좋으니까 약간만 바꾸어서 치겠습니다.”
“지금 전부 다 좋았으니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너 근데 진심 최고다.”
유희상 선배님의 말투를 들으니 내 편곡 버전이 마음에 드셔하는 것 같아서 나는 더욱 신이 난 상태에서 연주했다.
그렇게 편곡 버전의 악기 연주가 끝이 난 후 나는 녹음실 부스를 빠져나왔다.
녹음실을 나오는 나에게 세 사람은 모두 엄지를 들어 올리며 나를 치켜세웠다.
“캬하, 너 진짜 끝내준다.”
“너무 좋았어.”
“이야, 진짜 음악 잘하는 동생을 내가 여기서 만나네.”
저마다의 감탄 섞인 말을 해 주니 약간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얼굴이 살짝 후끈거리는 기분도 들었다.
칭찬을 계속 듣는 것도 곤욕이었기에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럼 연주한 걸 집어넣은 후 어느 정도 편곡한 곡을 들어 볼까요?”
“좋지.”
나는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거의 혼자 곡을 만들어 왔기에 웬만한 작업은 나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래서 짧은 시간 내에 곡을 만들 수 있었다.
잠시 후 곡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기에 형님들을 보고 물었다.
“어느 정도 됐는데… 한번 들어 보실래요?”
“그래? 그럼 들어 보자. 이거 너무 기대되는데…….”
세 분의 형님 모두가 약간 흥분한 얼굴로 귀를 쫑긋 세우는 모습을 보이니 그걸 보고 있던 나는 조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음을 꾹 참은 내가 곡을 재생시키자 녹음실 스피커를 통해 녹음실 안으로 내가 편곡한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 눈은 자연스럽게 유재성 형님 쪽으로 향하였다.
다행히 형님의 몸이 조금씩 박자에 맞춰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곡이 끝나자 유재성 형님은 감탄을 터뜨리며 자신이 어느 정도 만족했음을 우리에게 알렸다.
“이야, 바로 이거야. 내가 원하는 음악이 바로 이런 거였어.”
그런 형님의 모습에 나처럼 마음 졸이던 유희상 선배랑 김진영 형님도 기쁜 모양이다.
“정말? 이거는 마음에 들어?”
“그럼 당연하지. 듣는 내내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되더라고. 다른 곡 들었을 때랑 완전히 달랐어.”
“이야, 그럼 성공이네. 하하하.”
기뻐하는 유희상 선배의 모습을 보며 난 오늘 편곡의 숨겨 둔 비장의 카드이자 마침표를 꺼내 들었다.
“아직 편곡이 마무리된 게 아니에요. 제가 아직 꺼내지 못한 무기가 두 가지가 있거든요.”
“뭐? 다른 게 또 있어?”
“그럼 궁금하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 봐. 도대체 뭐를 하려고 그래?”
난 방송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에 일부러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옛날 댄스곡과 지금 댄스곡의 가장 큰 차이점은 비트 간 간격입니다.”
내 말에 김진영 형님이 동조하고 나섰다.
“맞아. 우리 예전 댄스곡들 대부분이 비트가 빠르지.”
김진영 형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설명은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졌다.
“예전에는 빠른 비트를 사용해서 댄스곡을 만들었죠. 그래서 춤도 박자 때문에 빠르고 간결한 동작이 주를 이루었고요. 그러나 요즘 곡들은 비트가 빠른 것보다는 강약이 중요하죠. 그리고 일부러 비트 간의 간격을 넓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야 춤을 출 때 박자를 쪼개는 동작을 넣거나 춤 선이 크고 아름다운 동작을 넣기가 좋죠. 거기에 강한 마디감이 생기게 비트의 강약을 표현하면 춤에도 저절로 강약 표현이 가능하니 요즘 춤 스타일에는 이런 곡 스타일이 춤을 추기 더 적합한 곡입니다.”
“맞아. 정확한 설명이야. 그래서 선을 강조하는 내 춤은 빠른 비트에는 어울리지 않아.”
“근데 유재성 형님은 빠르고 간결한 춤을 더 선호하실 거 같습니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흥이 날 때 하는 동작과 유사하거든요. 그러니 제가 그 빠른 비트를 더 두드러지게 표현해 드리겠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내가 가지고 있던 히든카드였다.
“방법은 바로 디스코 리듬과 EDM 사운드입니다.”
“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드였는지 세 분 형님은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