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부모란(1)
“디스코?”
“네, 디스코 느낌을 살짝 섞어 보려고요. 그러면 곡이 더 살 거 같아서요.”
디스코라는 단어가 나오자 유희상 선배는 친구인 김진영 형님의 어깨를 툭 하고 치며 말했다.
“디스코는 네가 잘하잖아. 이렇게 들어갈 거면 아예 네가 처음 만들 때부터 그냥 넣었으면 되잖아. 근데 넌 디스코 음악 만들 생각은 안 해 봤어?”
김진영 형님은 유희상 선배의 물음에 멋쩍은지 머리를 끄적이며 대답했다.
“디스코 음악이면 아무래도 복고풍이잖아. 난 그런 복고풍의 노래는 원하지 않는 줄 알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디스코는 그렇게 빠른 음악이 아니야. 저 빠른 bpm 중독자가 좋아할 만한 장르의 음악이 아니라고.”
지금쯤 나도 끼어들어 설명을 보태는 게 좋겠지?
“저도 양념처럼 약간만 집어넣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냥 훅 부분이나 다른 부분에서 맛을 살리는 정도만요. 그래서 신시사이저 소리로 이런 디스코 느낌을 가미할 생각입니다.”
♪징징지이잉 지잉♩ 징♪
내가 직접 신시사이저를 연주해서 내가 넣고자 하는 신시사이저 소리를 들려줬다.
아직은 방금 편곡한 곡에 이게 더해지면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 상상만 할 수 있는 단계로 모두 듣고도 약간 어리둥절해 보이는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나는 형님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그대로 다음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EDM 사운드는 아주 유명한 곡을 샘플링해서 넣을게요. 형님들도 다 아시는 유명한 노래를 사용할 생각입니다.”
모두가 다 아는 노래라는 내 설명에 유재성 형님이 호기심을 나타내며 내게 물었다.
“우리가 다 아는 노래? 그럼 아주 유명한 노래를 쓰겠다는 건데… 그런 유명한 노래 중에 여기에 사용할 만한 노래가 어떤 게 있을까?”
난 고민하는 형님에게 아주 대놓고 큰 힌트를 던졌다.
“형님이 직접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셨던 곡입니다. 이 정도 힌트면 충분히 아시겠죠?”
내 힌트를 들은 형님은 곧 깜짝 놀라며 답을 외쳤다.
“혹시 강남 남자 스타일?”
“네, 맞습니다.”
“진짜 그걸 넣겠다고?”
“네, 듣는 사람을 신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그리고 이것 역시 양념처럼 조금만 넣을 거예요.”
김진영 형님은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내가 만들려고 하는 최종 편곡 버전이 어떻게 나올지 감이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야, 이거 도대체 감이 안 오네. 네가 말한 것들이 들어가면 어떤 노래가 될까? 보통은 이쯤 되면 대충이라도 감이 와야 하는데, 지금은 도저히 머릿속에서 안 떠오른다.”
내가 하려는 게 무엇인지 짐작 가지 않는 것은 유희상 선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나도 도통 모르겠다. 그러니 그냥 서준이보고 빨리 작업하라고 하자. 무슨 생각을 하고 저러는지는 직접 들어 봐야 알 거 같아.”
안 그래도 지금 내 손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빨리 결과물을 만들어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내가 생각했던 1차 결과물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나는 내 뒤의 소파에 앉아, 내 작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분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바로 틀까요?”
내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이런 대답들이었다.
“당연하지. 당연한 걸 왜 물어? 궁금하니까 바로 틀어.”
“그래, 얼른 듣자. 궁금해 미치겠다.”
“고고, 한번 들어 보자고.”
형님들의 열화와 같은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나는 곧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녹음실 스피커를 통해 김진영 형님이 만들고 내가 편곡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약 3분 30초 정도 길이가 노래가 금방 끝나 버렸다.
노래를 듣고 난 유재성 형님은 소파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며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짝짝짝.
그리고는 나를 껴안으며 고마워했다.
“우리 음악 잘하는 동생, 서준이. 형이 너무 고맙다.”
고마워하시는 마음은 감사한데,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형님은 내 부끄러워하는 반응에도 포옹을 풀지 않으시며 감동한 목소리로 내게 계속 말을 하셨다.
“내가 그동안 노래에 ‘노’ 자도 모르는 주제에 좋은 노래들을 깐다며 알게 모르게 엄청난 핍박을 받아 왔다. 근데 그동안의 아픔이 헛된 것이 아니었어. 그 모든 게 바로 이 노래를 만나기 위한 힘든 여정의 일부였을 뿐이야.”
마치 드라마나 영화 속 배우가 대사를 읊듯 말하는 형님의 모습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부끄러운 마음에 살짝 떨어지려고 했지만, 형님은 여전히 날 놓아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내가 널 만나려고 이렇게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다. 우리 동생 정말 고맙다.”
나와 재성 형님의 모습에 질투를 느끼셨던 것일까?
옆에서 우리 둘을 모습을 지켜보던 김진영 형님이 약간 서운한 말투로 유재성 형님에게 말했다.
“야, 그래도 노래는 내가 만들었어. 그럼 내 공도 어느 정도는 인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일리가 있는 투정이었기에 나를 안고 있던 유재성 형님은 그제야 나를 놓고 김진영 형님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까 나를 껴안는 모습 그대로 섭섭해하는 형님을 껴안아 주었다.
“그래 형도 고마워. 형이 고생한 덕분에 내가 원하던 진정한 댄스곡을 만났어. 형 정말 고마워.”
녹음실 안은 어느새 감동의 물결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녹음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런 물결에 휩싸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매의 눈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오버하는 유재성 형님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는 바로 유희상 선배였다.
선배는 인상을 잔뜩 쓴 얼굴로 유재성 형님을 바라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짧지만 굵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아주 꼴값들을 떨어요. 자기가 까탈스럽게 굴어서 스텝 모두가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걸 또 저렇게 포장하네. 저렇게 할 때 보면 아주 포장하는 데 선수야 선수. 너 밖에 돌아다니는 미담도 다 이런 식으로 포장해서 직접 퍼뜨리는 거지?”
유희상 선배의 말에 약간 뜨끔했던지 유재성 형님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항변했다.
“형, 내가 까다롭게 군 거는 정말 미안해. 그러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작진에서 이런 컨셉을 줘서 전 컨셉대로 한 것뿐이에요. 저 역시 억울한 부분이 있다 이 말입니다.”
항변하는 유재성 형님은 어느새 카메라를 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방송을 보시는 시청자 여러분, 절대로 지금 상황에 대해서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나올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유희상 선배님은 나와 다른 의미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야, 너 지금 이 상황에서도 시청자들 우롱하는 거야? 이 가식 덩어리 같은 녀석… 시청자들도 알아야 해. 네가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녀석인 걸 말이야.”
“겉과 속이 다른 건 맛있는 튀김이고.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다시 말싸움을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난 이렇게 생각했다.
저 정도 자연스럽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만한 장면들을 만들어 내는 것도 보통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제대로 견학한 셈이다.
* * *
부산의 한 여고 앞.
수업이 마치는 종이 울리자, 잠시 후 교실 안에 갇혀 있던 수많은 여고생 무리가 떼를 지은 채 우르르 몰려나왔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밝은 얼굴로 학교를 나서는 소녀들의 입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난 그들 중 그리웠던 얼굴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내가 기다리는 사람을 놓칠까 하는 걱정에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돌리며 교문을 나서는 소녀들의 얼굴을 확인하던 나는, 곧 내가 기다리던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그리고 웃으며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수정아!”
내 목소리를 듣고 주위를 살피던 소녀는, 곧 나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달려와 안겼다.
“오빠!”
오랜만에 느끼는 동생의 체온에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다.
“잘 지냈어?”
“히히, 고3이 잘 지낼 일이 뭐가 있어? 그냥 엉덩이만 커지게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지.”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이네.”
“공부야 항상… 억지로 하고 있고. 가끔 도망도 쳐 가면서 말이야.”
나는 밝게 웃으며 대답하는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나와 나이 터울이 제법 큰 동생이라 그런지 볼 때마다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는 여동생이었다.
내게 안겨 있던 동생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우리 남매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옆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을 나에게 소개했다.
“오빠, 내 친구들 처음 보지? 얘는 착한 소현이, 그리고 옆에 예쁜 척하며 서 있는 얘는 미연이야.”
미연이란 친구는 내 동생의 소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즉시 발끈하며 사실관계의 정정을 요구했다.
“야, 예쁜 척이 아니라 진짜 예쁜 거잖아.”
그 말을 들은 내 동생은 나를 보며 말했다.
“얘는 착한데… 지금처럼 약간 정신이 이상한 아이처럼 굴 때도 있어. 얘는 정말 착하니까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
이어진 수정이의 설명에 미연이란 친구는 더욱 흥분하며 따지고 들었다.
“야, 친구란 녀석이 내 소개를 그따위로 하냐? 그리고 하필 잘생긴 오빠 앞에서 이럴래? 아, 그리고 잘생긴 오빠, 알았다는 듯이 고개 끄덕이지 마요. 내가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남매가 커플로 이상한 집이네. 누가 친남매 아니라고 의심할까 봐 이러는 거야?”
* * *
나는 동생과 동생의 친구들을 데리고 그녀들이 좋아하는 피자집으로 향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화덕 피자와 파스타를 잘하는 브런치 카페였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피자 가게라고 하면 일명 미스미스터 피자밖에 몰랐는데, 세월이 흘러 외식 트렌드도 금방 바뀐다는 것을 오늘 이곳에서 느끼게 되었다.
“진짜 마음대로 다 시켜도 돼?”
“응. 오빠 이제 돈 잘 버니까 마음대로 시켜도 돼.”
내 경제력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못하는 동생에게 통 큰 오빠의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실제로 내 주머니 사정은 매우 좋은 상태였다.
근데 재밌는 것은 얼마 전 정산 받은 통장 속 숫자를 보고도 내가 전과 비교해서 많이 성공했구나 하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는데, 동생에게 음식을 시켜 주면서 지금은 내가 꽤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리고 이런 음식을 부담 없이 시켜 줄 수 있다는 현실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하였다.
여동생은 그동안 톡으로 나랑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내가 요즘 꽤 잘 나가는 작곡가가 된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었는지 내 주머니 사정을 몇 번 확인하더니 통 크게 주문하기 시작했다.
“화덕 피자 2판 하고요, 쉬림프 로제 파스타 2개 주세요. 그리고… 얘들아, 음료는 콜라로 시킬까?”
“당연하지.”
“오케이, 콜라도 4개 부탁드려요.”
화통한 주문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맛있는 음식들이 차곡차곡 테이블 위에 세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된 먹방 쇼.
난 개인적으로 먹방을 즐겨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조금 알 거 같았다.
맛있는 음식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먹는 사람이 모습이 참 보기 좋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