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39화 (39/189)

39. 부모란(2)

동생을 만나러 오기 전 배가 고파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그런 까닭에 충분히 배가 부른 상태였는데도 이상하게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의 먹방 장면이었다.

처음 시킬 때는 수정이가 제법 넉넉하게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여고생 3명이 먹는 장면을 보게 되니 처음부터 많이 부족하게 주문한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깨달음을 얻은 나는 열심히 먹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혹시 부족하지 않아? 부족하면 더 시켜도 돼.”

내 질문에 파스타 면을 흡입하듯이 먹던 미연이가 나를 보며 미소 지은 얼굴로 답했다.

“괜찮아요. 저녁 먹어서 조금만 먹어도 돼요.”

조금만?

내가 방금 잘못 들었나?

분명 지금 나를 보고 웃고 있는 이 여리여리해 보이는 여고생이 조금만 먹고 있다고 한 거 같은데…….

내 귀에 문제가 생겨 이상한 환청이 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내 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은 동생 수정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일부러 조금 시켰어. 우리 모두 저녁은 먹었거든.”

그리고 수정이가 착하다고 소개한 소현이란 친구도 조용히 한마디를 더한다.

“저녁 안 먹었으면 1인 1 피자를 기본으로 깔고 달리겠지.”

“그거야 당연한 소리지.”

이제야 내 머릿속에 들어있던 잘못된 고정관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는 ‘여고생=여자라 식사량이 적음’이란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오늘 함께한 여고생 3명 덕분에 ‘여고생=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많이 먹음’이라고 고칠 기회가 생기게 된 것이다.

하긴 나도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엄청 많이 먹었던 기억도 났다.

‘어느새 내가 올챙이 시절을 까맣게 잊은 개구리가 되어 버렸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피자 2판과 파스타 2개가 테이블에서 사라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콜라로 입가심을 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던 미연이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오빠는 직장이 서울이에요?”

“응, 서울에서 일해.”

미연이는 잔뜩 궁금해하는 얼굴로 나에게 계속 물었다.

“오빠, 혹시 어떤 회사 다니는지 물어도 돼요?”

그녀의 질문을 들은 난, 대답 대신 동생 수정이를 바라봤다.

친구들에게 내 신상 정보를 공개한 적이 없냐는 무언의 질문이 담긴 눈빛이었다.

“혹시 몰라서 오빠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한 적은 없어.”

보통의 여고생이라면 오빠가 유명 연예인이 잔뜩 있는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며 자랑할 만도 한데, 생각 깊은 우리 동생은 그런 보통의 여고생이 아닌 모양이었다.

내 소속을 굳이 감출 이유도 없었기에 내 입으로 내가 소속된 회사의 이름을 밝혔다.

“오빠, JYK에 다녀. 너희도 우리 회사 이름은 들어 본 적 있지?”

그러나 소녀들의 반응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뜨거운 반응이었다.

“네에? 어디요?”

“JYK.”

“까아악!”

난데없는 괴성에 내 얼굴은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 모습을 본 동생 수정이 친구들의 기이한 행동의 원인을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얘들이 스트리트 키즈 팬이거든. 스트리트 키즈도 오빠 회사잖아.”

“…그렇긴 하지.”

미연이와 소현이는 이때부터 나를 보는 눈빛이 많이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그전에는 그냥 친한 친구의 오빠를 보는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큰 은혜를 입은, 아니 앞으로 입을 은인을 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거… 어쩌다 보니 너희를 만나려고 내가 이걸 준비한 상황처럼 되어 버렸네. 아무튼, 이것도 인연이니… 뜻에 따라야겠지.”

난 여동생 주려고 가지고 왔던 선물 중 한 가지를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었다.

처음에는 내가 뭘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눈빛을 보내던 아이들은, 잠시 후 내가 꺼낸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후 다시 괴성을 질러 댔다.

“꺄아악! 이거 실화야?”

“이거 찐이야, 찐. 우리 오빠들 사인이 맞아! 까악!”

이 아이들이 내가 꺼낸 물건을 보고 다시 경악한 이유는, 내가 꺼낸 물건 중에 스트리트 키즈의 친필 사인 시디가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짬을 내 집에 다녀오기로 결심하였을 때, 가장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수정이 선물이었다.

부모님 선물이야 백화점의 비싼 물건보다 좋아하실 현금으로 준비를 했으니 굳이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 보였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여동생 선물은 꼭 챙겨 주고 싶었다.

그동안 벌이가 시원치 않아 오빠로서 제대로 뭘 사 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옷이나 신발 등을 사려다가 문득 내가 동생의 정확히 치수를 모른다는 큰 문제점을 뒤늦게 발견했다.

혹시라도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서울로 와서 교환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니 사려던 신발과 옷은 과감히 포기해 버렸다.

다음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선물 후보는 바로 우리 회사 소속 가수들의 친필 사인 시디였다.

여동생이 한창 연예인을 좋아할 나이인 여고생이었기에 우리 회사 소속 가수 중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회사에서 구할 수 있는 시디는 죄다 끌어모아 가방에 넣어 왔다.

수정이가 챙길 건 챙기고 굳이 가지고 싶지 않은 시디는 팬인 다른 친구들 챙겨 주면서 친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라는 오빠의 깊은 사랑이 담긴 선물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챙겨 왔던 선물들이 지금 이 브런치 카페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거 진짜 저 가져도 돼요?”

“그래, 가져도 돼. 대신 우리 동생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알았지?”

“네, 오빠. 수정이를 제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길게요. 우리 오빠들 친필 사인 시디 정말 감사합니다. 흑흑. ”

아니 얘들아 시디 선물을 받았으면 기뻐해야지, 갑자기 왜 울어?

갑작스러운 아이들의 기쁨의 눈물에 난 뻘쭘한 얼굴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었다.

* * *

친구들과 헤어지고 동생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길가의 가로수가 밤인데도 예쁘게 느껴졌다.

아마 오랜만에 동생과 함께 집을 향해 걸으니 감회가 남다른 탓인 테다.

고개를 돌려 동생의 얼굴을 살펴보니 역시 동생도 기분이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녀석도 오빠를 오랜만에 봐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기분 좋은 리듬으로 발을 놀리던 동생이 갑자기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근데, 아까 친구들한테는 왜 오빠가 JYK 매니저라고 그랬어? 오빤 작곡가지 매니저 아니잖아.”

“난 그렇게 말한 적 없어. 네 친구들이 지레짐작해서 그렇게 생각해 버린 거지.”

“오빠도 오해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굳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잖아. 그럼 오빠 역시 친구들의 지레짐작을 인정해 버린 셈 아냐?”

갑자기 따지고 드는 동생에게 나는 다소 억울한 마음으로 항변했다.

“아까 걔들이 무슨 대화가 통하는 상태였어? 아마 내가 매니저가 아니라고 말했어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을 거야. 모든 관심은 사인 시디에 향해 있는 와중에 잘도 내 이야기를 들었겠다.”

“…하긴.”

아니라는 말을 굳이 하려면 할 수도 있었지만, 난 그런 불필요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얘들이 과하게 흥분한 상황이라 뭐라 설명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을 거란 사실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동생도 그런 정신 없는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했기에 더이상 친구들이 자신의 오빠를 JYK 매니저로 오해한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더 걷다가 동생에게 줄 선물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내가 네 통장에 돈 보냈어.”

갑자기 돈을 보냈다는 내 말에 동생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돈? 무슨 돈?”

“오빠가 이제 제법 돈을 버는 관계로, 앞으로 네 용돈은 오빠가 챙길 거야. 그러니 부모님께는 용돈 받지 마. 혹시 내가 보내는 돈이 떨어져서 돈이 더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오빠에게 바로 톡 하고.”

“진짜? 오, 우리 오빠 대단한데? 근데 얼마나 보냈어?”

액수를 궁금해하는 동생에게 나는 대충 두루뭉술하게 답을 해 줬다.

“고등학생이 쓰기에 모자라지 않는 돈이야. 갑자기 돈 생겼다고 마구 쓰지 말고 잘 가지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꺼내 써.”

“우와, 도대체 얼마나 보냈기에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야? 오빠 말하는 거 보면 한 백만 원 정도 보낸 사람 같아. 설마 그렇게 많은 돈을 보낸 것은 아니겠지?”

“구체적인 금액은 나중에 네가 직접 확인해 봐. 다시 말하지만 절대 너 쓰기에 모자라지는 않을 거야.”

“히히, 내가 오래 살다 보니 오빠한테 용돈을 다 받아 보네. 히히, 기분 이상하다. 아무튼, 잘 쓸게, 오빠.”

용돈 이야기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안 끼던 팔짱까지 끼는 동생이었다.

이럴 때 보면 의외로 애교가 많은 타입이었다.

기분 좋아 보이는 여동생의 모습에 이백만 원을 보냈다는 말을 꺼내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중에 본인이 직접 통장에 찍힌 금액을 확인하고 크게 놀랄 기회를 굳이 내 손으로 없애고 싶지 않았다.

참고로 내 동생은 돈을 함부로 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우리 부모님께 경제 교육을 제대로 받은 동생은, 나보다도 돈을 계획적으로 쓸 줄 알았다.

어릴 때부터 항상 적은 용돈이지만 아껴 모아 두었다가 자신이 필요할 때 돈을 꺼내 쓰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었다.

그런 과거의 모습을 알고 있었기에 동생에게 이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한 번에 보내도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다.

내가 보낸 돈으로 그동안 사고 싶어도 사지 못했던 옷이며 신발 등을 사고 기뻐할 동생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부모님도 이런 맛에 그동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셨나 보다.

그렇게 기분 좋게 걷던 와중에 동생이 갑자기 생각났는지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무슨 일 있어 내려온 거 아니야? 요즘 엄청나게 바쁘다고 했잖아. 오빠가 바쁜 와중에도 집에 내려왔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어?”

“흐흐, 똑똑한 내 동생. 맞아. 중요한 일이 생겨서 엄마, 아빠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급하게 내려왔어.”

동생은 중요한 일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도대체 뭔데? 그 중요한 일이 뭔지 내게 먼저 보고해 봐.”

어차피 동생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에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오빠가 아무래도 앞으로 TV에도 나오고 할 거 같아. 그리고 지금보다 더 본격적으로 음악 쪽 일을 할 거고. 그래서 앞으로 더는 부모님 속이고 있을 수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에 큰맘 먹고 엄마, 아빠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려고 해.”

내가 말하던 중요한 일의 정체를 알게 된 동생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였다.

내 예상에는 동생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하면 부모님이 큰 충격을 받지 않게 전달할지 나와 함께 고민할 줄 알았는데, 뭔가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뭔가를 직감한 나는 동생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캐물었다.

“야, 이수정. 너랑 나랑 9살 차이 나는 남매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이 오빠가 네 똥 기저귀 직접 갈아 준 사람이야. 그걸 안다면 솔직히 불어. 너 뭔가 내게 숨기는 거 있지?”

내가 초등학생 때 갓난쟁이 아기였던 동생의 기저귀를 직접 갈아 준 적이 여러 번이었다.

부모님 모두 경제 활동 때문에 바빴던 관계로 내 고사리 같은 작은 손도 필요했던 탓이다.

그렇게 따지면 우린 보통의 남매 사이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남매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다소 유치한 내 협박도 동생에게는 먹혀들었다.

“…화 안 낼 거야?”

“…일단 들어 보고.”

원하던 안전 보장에 관한 약속은 받아 내지 못했지만, 거듭된 내 눈빛 공격에 결국 항복을 선언하는 동생이었다.

“…이미 다 알고 계셔. 내가 말실수하는 바람에 다 불었거든.”

“뭐?”

이건 완전히 믿는 도끼에, 아니 믿던 여동생에게 뒤통수 한 방을 제대로 얻어맞았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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