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부모란(3)
부산 외곽 동네 언덕배기에 외로이 서 있는 오래된 빌라 한 채.
외관부터 이 건물의 나이를 알려 주는 5층짜리 건물에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긴 그리운 우리 집이 있다.
5층짜리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다.
그리고 하필 우리 집은 빌라 최고층인 5층에 있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내게 가장 큰 곤욕이었다.
지금 5층 우리 집 거실에는, 오래된 상을 가운데 두고 우리 네 식구가 오랜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그리고 상 위에는 양념치킨 한 마리가 맛있는 자태를 뽐내듯 놓여 있었다.
저녁도 먹고, 수정이와 외식까지 했던 터라 배는 이미 불렀지만, 오랜만에 보는 아들에게 뭐라고 먹이고 싶었던 우리 어머니는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집 앞 치킨집으로 직접 가셔서 양념치킨 한 마리를 사 오셨다.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치킨이라 사 오신 모양이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것치고는 분위기가 썩 좋진 않았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소주를 혼자 조금씩 음미하며 앉아 계셨고, 엄마와 수정이는 그런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치킨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만든 주범인 나는, 마치 큰 죄를 지은 대역 죄인처럼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수정이가 이미 부모님께 내가 평범한 회사가 아니라 음악 쪽 일을 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작곡가로 일하고 있단 사실을 부모님께 모두 이실직고한 상황이라 처음부터 눈칫밥 아니, 눈치치킨을 먹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어차피 바쁜 내가 억지로 시간을 내 집에 내려온 이유도 앞으로 음악 쪽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부모님께 솔직히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
입이 싼 동생 덕분에 그럴 수고는 아끼게 된 것이다.
소주잔을 입에서 뗀 아버지가 처음으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지금 하는 일은 언제까지 할 생각이냐?”
많은 설명이 생략된 아주 축약된 질문이었지만, 나는 아버지가 무엇이 궁금해서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 질문의 요지를 단박에 알아챘다.
지금 아버지는 내가 음악 쪽의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묻고 계신 거였다.
즉, 잠깐만 하다가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생각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이쪽 일에 매진할 생각인지를 묻고 계셨다.
아버지가 무엇을 묻고 싶으신지 그 요지는 정확히 읽어 냈지만, 물음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선뜻 입을 열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내 생각을 입 밖에 꺼냈을 때, 크게 실망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거짓말을 섞어 답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난 흔들리는 마음을 굳게 잡으며 내 솔직한 마음을 꺼내기 시작했다.
“…지금 하는 일을 제대로 해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가 없었던 말들을 드디어 입 밖으로 꺼내었다.
그래서 약간 속이 시원한 마음도 살짝 들었다.
대답을 한 후 살짝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아버지는 특별한 표정 변화가 없으셨다.
혼자서 상상하기로는 내가 이 말을 꺼내자마자 화가 잔뜩 나신 아버지가 내게 호통을 치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기도 했었는데, 역시 상상과 현실은 괴리감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아버지의 담담한 표정에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도 들고 있었다.
마음은 복잡했지만, 기왕 꺼낸 말이니 제대로 솔직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리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한 건 정말 죄송합니다. 실망하실 거라는 생각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일을 말씀드리다 보니 어느새 1년 몇 개월 전에 혼자서 고민하며 괴로워하던 내가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음악 쪽의 일을 시작한 지 이제 고작 1년 몇 개월밖에 지났지 않았지만, 그동안 정말 밤잠도 잊어 가며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노력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는지 회사분들에게 나름대로 인정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허락해 주신다면 정말 제대로 일해 보고 싶습니다.”
드디어 꺼내기 힘들었던 내 마음 깊숙이 숨어 있던 말을 아버지께 속 시원히 해 버렸다.
내 말은 끝났지만,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까지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폭풍전야라는 말처럼 폭풍이 치기 전에는 바람이 잔잔하다고 하던데, 이제 곧 내 말을 듣고 실망한 부모님의 화가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조마조마한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그때 조용히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내게 다시 물으셨다.
“…후회하지 않겠니?”
화 대신 질문이 날아와 조금 당황했지만, 일단 아버지의 질문에 대한 답부터 드렸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혹시 후회하게 돼도 괜찮습니다. 하고 싶은 음악 일을 하지 않고 평생 후회하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니까요. 그러니 만약 후회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충분히 이겨 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
아버지는 이번에도 별다른 말씀을 바로 하시진 않았다.
다만 처음과 다르게 무언가를 고민하시는 듯한 표정은 짓고 계셨다.
잠시 그런 표정을 짓던 아버지는 본인이 마시던 소주잔을 내 앞에 내려놓으셨다.
“한 잔 받아라.”
“네?”
“아버지가 술 한 잔 따라 줄 테니 받으라고.”
“…네.”
갑자기 소주를 따라 주시기에 더욱 당황했지만, 일단 두 손으로 아버지가 따라 주시는 소주를 받았다.
“마셔라.”
“…네.”
나는 아버지의 말대로 고개 돌려 소주를 마셨다.
다 마신 잔을 상 위에 내려놓자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자식인 네게 바라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건 몸 건강히 열심히 사는 거다. 부모에게는 그거면 충분하다. 내 말 알아듣겠지?”
응?
방금 아버지가 뭐라고 하신 거야?
난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변해 버렸다.
아버지의 말씀에 담긴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말귀가 어두워서 생긴 문제가 아니었다.
내 머릿속 우리말 번역기로 방금 들은 아버지 말을 해석하면, ‘내가 하려는 일을 열심히 해라.’라고 해석이 되니 머리가 복잡해진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허락이라는 두 글자가 포함된 표현이었으니까.
“왜 대답이 없어?”
“…네, 아버지. 열심히 할게요.”
아직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단 알겠다는 답은 드렸다.
근데 여전히 믿기질 않았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번뇌를 했었나?
부모님의 실망을 어떻게 감당할지 답을 찾기 위해 그리도 많이 고민했건만, 고민했던 순간이 무색할 만큼 간단히 허락을 얻어 버렸으니 혹시 지금 내가 꿈속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옆에서 아버지의 얘기를 들은 수정이는 속이 시원한 표정으로 치킨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의 나를 보며 ‘씩’ 하고 웃으며 말했다.
“히히, 이제야 치킨 맘 편히 먹을 수 있겠네. 오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내가 오빠 대신 엄마랑 아빠한테 미리 다 설명을 잘해 드린 덕분에 이렇게 쉽게 허락이 떨어진 거야. 알겠어?”
“…….”
너무 얼떨떨한 상황이라 잘난 척하는 동생을 보고도 구박할 여유가 없었다.
“우리 아들 이 집 치킨 정말 좋아하잖아. 오랜만에 먹는 거니 어서 먹어라. 다 식는다.”
엄마는 나를 보고 웃으며 치킨을 권했다.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드디어 난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것이다.
안도감이 느껴지니 그제야 맛있는 치킨이 눈에 들어왔다.
배는 여전히 부른 상황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양념치킨의 양념 소스 냄새가 잠들어 있던 내 식욕을 일깨우고 있었다.
흔하디흔한 동네 치킨집의 평범한 양념치킨이지만, 난 어릴 때부터 이 집 치킨을 유독 좋아했었다.
사장님의 비법이 가득 담긴 이 집 특유의 양념 소스에는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이 가득했지만, 내가 이 집 치킨을 유독 좋아했던 이유는 그것보다 양념치킨이란 음식 안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시장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는, 그날 장사가 괜찮은 날이면 기분이 좋으셨는지 이 집에서 치킨을 사서 들어오시곤 하셨다.
장사가 잘된 날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정이 유독 행복해 보였었다.
부모님 모두가 그런 표정을 짓고 나와 함께 이 치킨을 드셨기에 어린 나 역시 더 맛있게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함께 하기에 이 집 치킨 맛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맛이었다.
상 위의 치킨이 거의 사라져 갈 무렵 나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내 통장이었다.
나는 통장을 아버지 앞에 내려놓았다.
그걸 본 아버지는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웬 통장이냐?”
“제 통장입니다. 요번에 돈이 생겨서 가지고 왔어요.”
“…돈 벌었다고 나에게 자랑하려고 꺼낸 것은 아닐 테고… 무슨 이유로 이걸 내 앞에 놓는 거냐?”
아버지의 물음에 난 통장을 내민 이유를 설명했다.
“집에 아직 빚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돈으로 그걸 갚았으면 좋겠어요.”
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많이 놀란 듯 보였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장에서 일하셨다.
주로 채소와 과일 등을 시장 내 가게로 배달하는 일을 주로 하셨는데, 몇 년 전에 처음으로 우리 동네 시장에 점포를 내기로 하셨다.
새벽부터 일하시는 지금 일 대신에 동네 시장에서 직접 파는 일을 하시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한 어머니의 오래된 바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일해 온 친구분께 사기를 당한 까닭에 아버지는 원래의 일을 계속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덤으로 큰 금액의 빚까지 생겨 버렸다.
지금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힘든 이유도 이때의 일이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내가 내민 통장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이내 내게로 다시 밀어 버리셨다.
“일 없다. 아직 아빠가 힘이 있으니 네가 집 걱정을 할 필요 없다. 넌 그냥 네가 잘살 걱정만 하고 살면 돼. 그게 날 도와주는 일이다.”
아버지가 극구 사양하시지만, 나도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저야 아직 어리고 지금 당장 큰돈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일단 빚을 없애는 데 이 돈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또 벌면 됩니다.”
아버지는 거듭된 내 요청을 들으시고도 계속 완강한 거절 의사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때,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을 해결해 줄 해결사가 홀연히 등장했으니,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