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부모란(4)
엄마는 일단 아버지를 달랬다.
“수정 아버지, 아들이 기특하게도 돈 벌어서 준다고 하니 그냥 받아요.”
“어허, 그냥 둬. 아직 자식 놈 돈까지 필요한 상황은 아니야.”
여전한 아버지의 반대에 엄마는 기가 막힌 해법을 제시하셨다.
“그래요? 그럼 당신은 받지 마세요. 제가 대신 받을 테니. 그러면 문제없죠?”
엄마의 해결책을 들은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엄마를 말렸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당신이 받으면 내가 받는 거랑 뭐가 달라?”
“그게 어떻게 같아요? 이젠 이 돈 엄연히 제 돈이니까 수정 아버지는 관심 끄세요.”
“관심을 끄라니 그게 어떻게…….”
“수정 아빠!”
계속 따지는 아버지를 보며 엄마는 오랜만에 인상을 쓰셨다.
그리고 그것을 본 아버지는 순간 찔끔한 표정으로 거짓말같이 항의를 그대로 멈추었다.
사실 이게 우리 집의 권력 구조였다.
우리 아버지는 남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츤데레 스타일의 경상도 남자였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였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애처가인 아버지는 예전부터 엄마의 말에는 꼼짝을 못 하셨다.
그러니 엄마가 강한 어조로 말하는 순간 아버지의 고집은 그대로 끝이었다.
오늘도 우리 집 특유의 힘의 역학 관계가 옛날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엄마도 언제나처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남편을 쳐다보셨다.
항상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 주는 동네 최고 잉꼬부부답게, 오늘도 엄마의 눈빛에는 항상 자신의 말에 따라 주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하긴 우리 아버지처럼 가족을 위해 묵묵히 열심히 일하시고 엄마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라면 내가 생각해도 멋진 남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진 않았어도 마음보다 소중한 건 없으니 마음이 최고였다.
“그럼 우리 아들이 사랑하는 엄마에게 얼마나 주려고 하는지 확인해 볼까?”
어머니는 내가 드리는 돈의 액수가 얼마인지 궁금하신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내민 통장을 펴 보셨다.
그리고 금액을 확인하고 난 후 깜짝 놀라셨다.
“어머! 이게 도대체 공이 몇 개야?”
수정이는 엄마의 놀란 모습에 본인도 궁금증이 일었는지 통장 쪽으로 고개를 가져갔다.
그리고 금액을 확인한 수정이 역시 크게 놀라며 말했다.
“엉? 돈이 왜 이렇게 많아? 오빠, 도대체 이게 얼마야?”
나도 처음 정산 들어온 금액을 확인했을 때 수정이와 엄마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작곡한 노래가 좀 잘됐어. 그건 너도 이미 알고 있었잖아.”
“그건 나도 알고 있었지. 근데 이번에 처음으로 잘된 거잖아. 그런데도 들어온 돈이 이렇게 많아?”
“내 곡을 불러 준 가수가 워낙 팬이 많은 가수니까 그런 거 같아. 그리고 나도 더 자세한 내막은 몰라. 회사에서 알아서 챙겨 준 거니까.”
엄마와 동생은 금액을 보고 너무 놀랐는지 도통 통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는 두 사람과 달리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노력하고 계셨지만, 아버지 역시 많이 놀라신 것을 숨기긴 힘들어 보이셨다.
“아버지, 비어 있는 잔을 왜 마시세요? 제가 술 따라 드릴 테니 그때 드세요.”
“커험, 잔이 언제 비었지? 내가 요즘 정신이 없다.”
텅 빈 소주잔을 입에 가져가시던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고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잔을 다시 내려놓으셨다.
난 그런 아버지 모습에 터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비어 있던 아버지의 소주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 * *
오랜만에 들어온 내 방의 모습은 새로웠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보낸 방이었는데, 떨어져 있던 시간이 제법 되었다고 낯선 모양이다.
방이 여전히 깨끗한 것을 보니 엄마는 내가 없어도 항상 이 방을 깨끗하게 치우시는 모양이었다.
아마 연락 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아들 생각에 먼지가 쌓이는 꼴을 보지 못한 탓일 테다.
항상 나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똑똑.
노크가 들리고 곧 방문이 열렸다.
엄마였다.
“이거 먹고 자.”
방안으로 들어온 엄마의 손에는 작은 쟁반이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쟁반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식혜가 한 그릇 놓여 있었다.
“갑자기 식혜는 왜 하셨어요?”
“이상하게 식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만들어 두었지. 아마 네가 오려는 걸 미리 느꼈나 봐.”
그런 게 엄마의 육감이란 걸까?
과정이야 어쨌든 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표 식혜를 보고 난 기쁜 얼굴로 쟁반을 받았다.
양념치킨까지 먹어 여전히 배가 터질 듯이 부른 상태였지만, 이건 배가 부른 것과 상관없는 음식이었기에 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그릇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식혜를 마시며 아까 묻지 못한 말들을 엄마에게 했다.
“엄마, 정말 의외에요.”
“뭐가 의외야?”
“내가 음악 쪽 일을 한다는 걸 알면, 전 아버지가 곧바로 화를 내며 실망하실 줄 알았거든요. 근데 별다른 말 없이 그냥 열심히 하라고만 하시니까 너무 이상해요.”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여전히 미소가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설명했다.
“아버지나 나나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많이 속상했단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대학을 졸업한 네가 번듯한 직장 대신 배고프다고 하는 음악 쪽 일을 한다고 하니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지.”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말을 하는 엄마의 얼굴에서 아쉬움이란 세 글자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거 같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우리 아들이 어떤 아들인지 누구보다 잘 알지. 어릴 때부터 바쁜 엄마 도와준다고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수정이 기저귀를 알아서 먼저 갈던 아이가 바로 너야.”
어릴 때 일을 말하는 엄마는 지금도 내게 미안해하는 기색을 비치셨다.
“항상 경제적으로 부족하게 키운 부모인데도 항상 너는 그런 우릴 보고는 일부러 웃어 보이곤 했지. 어린 나이인데도 고생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던 속 깊은 아들이 바로 너였단다. 그런 네가 그런 결정을 했다는 건 나름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엄마, 아빠는 생각했단다.”
엄마의 말은 아들인 나를 믿어 주셨다는 말이었다.
이제야 알게 된 부모님의 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물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고요? 그게 뭐예요?”
내 물음에 엄마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있지. 네가 어릴 때부터 음악을 달고 살았던 것도 바로 누군가의 아들이기 때문이지.”
“…그게 대체 무슨 뜻이에요?”
난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오래된 추억의 사진첩을 넘겨 가며 내 물음에 대한 답을 들려주셨다.
“원래 네 아빠도 젊은 시절 꿈이 가수셨어. 물론 삶에 치이다 보니 자신의 꿈은 외면하고 살 수밖에 없으셨지. 그런 아빠의 꿈이 그대로 너한테 내려간 거야. 그러니 네 아빠도 그런 널 보며 더는 말리지 못하셨을 거다.”
“…….”
진심으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난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앞에서 노래 한 자락도 부르지 않은 아버지였기에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네가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문득 예전 생각이 떠오르셨을 테지. 그리고 자신도 꿈을 포기했던 시절을 겪어 봤으니 꿈을 포기하는 게 얼마나 아픈지 누구보다 잘 아셨을 거고. 그러니 만류하기 힘드셨을 거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을 하던 엄마는 어느새 회한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건 하나밖에 없단다. 그건 자식의 행복이지. 자신의 행복 따위는 어떻게 돼도 좋으니 그저 자식인 네가 행복하게 살기만 한다면 그걸로 족한 것이 부모의 마음이란다. 너도 시간이 지나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땐 이 엄마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거다.”
솔직히 엄마가 말하는 부모의 마음을 백 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단지 조금이라도 알게 된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알게 되니 너무나 큰 사랑에 말을 하기 힘들 정도였다.
“…고맙습니다.”
난 울음을 참으며 단지 이 한마디만 겨우 할 수 있었다.
* * *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서울로 올라온 나는, 곧 있을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내 매니저를 맡은 조상구 실장님은 집에 다녀온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속도를 내죠.”
“네, 열심히 할게요.”
분명 조상구 실장님은 웃으며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내 귀에는 실장님 말이 이렇게 들렸다.
‘할 일 많은데, 네가 집에 다녀온다고 일이 엉망으로 밀렸어. 그러니 힘들단 소리 말고 무조건 따라와. 알겠어?’
이렇게 들리는 바람에 난 실장님이 갑자기 너무 무섭게 보였다.
그래서 그의 말에 난 최대한 진심인 표정으로 열심히 하겠노라 답을 했다.
앨범 표지부터 의상 컨셉, 그리고 뮤직비디오 콘티까지 다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물론 JYK에는 최고의 스텝들이 있지만, 이번에 발표할 노래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기에 내 손으로 챙겨야 직성이 풀리었다.
녹음 마지막 점검, 그리고 의상 등을 정하고 나니 이제 뮤직비디오 촬영만이 남게 되었다.
뮤직비디오는 타이틀곡인 ‘sight’만 일단 만들 생각이었다.
회사에서는 한 곡 정도 더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내가 직접 회사를 만류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뮤직비디오 촬영하는 데 들어가는 금액을 보고는 내심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앨범이 실패하게 되면 모두 버리는 돈이 되기에 알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타이틀곡 ‘sight’는 나를 둘러싼 주변의 시선들에 관해 쓴 곡이다.
그래서 뮤직비디오도 그런 가사 내용과 어울리는 장면으로 구성할 생각이었다.
뮤직비디오 촬영 일정이 잡히자 기대도 안 한 든든한 응원군이 갑자기 등장했는데, 그들은 바로 쓰리타임즈와 워너비 걸즈였다.
그 친구들이 먼저 내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겠다는 의지를 회사에 표명해 주었는데, 신인인 덕분에 인지도가 제로인 내 입장에는 무척 고마운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멤버 모두를 뮤직비디오에 출연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현실 속에서 남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기에 그녀들이 그런 사람들로 출연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루 앞둔 날, 드디어 이전에 촬영했던 ‘캐릭터 세상’이 TV에서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