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뮤직비디오 촬영(1)
채연의 말을 들은 팬들은 적극적으로 잘하고 있다는 칭찬의 글을 마구 올렸다.
―잘하고 있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음 곡도 확실히 주겠다는 확답을 받아.
―윗님 말 동감. 워너비 걸즈 먼저 챙겨 줄 수도 있으니 확실히 줄 잘 서야 함.
―줄 제일 앞은 당연히 우리 쓰리타임즈닷.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을 보며 채연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케이. 알아들었어요. 우리 팬분들 말씀대로 오빠한테 곡 주겠다는 확답을 받을게요. 여러분 말대로 혹시 모르니 녹음이라도 할까요?”
그녀의 말을 들은 팬들 덕분에 다시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물론 채팅창을 가득 메운 것은 녹음 좋다는 내용이 담긴 말들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한 가지 참신한 생각도 있었으니, 실시간 방송을 보고 있던 팬 한 분은 이런 글을 채팅창에 올렸다.
―그러지 말고 우리 이서준에게 밥차 조공하자. 빚을 가득 만들어 놔야 우리 쓰리타임즈 애들 먼저 생각하지.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
―괜찮은 생각임. 팬클럽 회장님 구체적으로 추진 부탁요.
재밌는 사실은 또 다른 곳에서 팬들과 소통 중인 워너비 걸즈의 실시간 채팅창에도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의견이 올라왔다는 점이다.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그쪽은 밥차가 아니라 커피차라는 조공 목록만 다를 뿐이었다.
쓰리타임즈와 워너비 걸즈가 뮤비 촬영 시간 절약을 위해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촬영에 열중하던 그때, 이서준 역시 다른 곳에서 촬영에 한창이었다.
* * *
내가 찍어야 하는 장면은 내용만 살펴보면 매우 간단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시선 등의 표정 연기가 필요했고, 다음은 그냥 기타와 드럼, 그리고 베이스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만 찍으면 되었다.
대신 장소를 여러 군데 옮겨 가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찍어야 했기에 실제 촬영 분량은 결코, 만만치 않게 많았다.
고층 빌딩 옥상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촬영을 방금 끝냈다.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드론을 보며 노래를 불러야 했기에 촬영의 부작용으로 목이 아팠다.
뮤직비디오 감독님인 내게 다가와 고맙게도 칭찬의 말을 직접 해 주셨다.
“서준 씨, 아주 좋아. 노래도 정말 좋고 서준 씨 화면발도 완전 죽여줘.”
칭찬을 들으면 쑥스러운 마음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는 나는, 칭찬을 건네는 감독님께 그저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뿐이었다.
“그럼 다음 장소로 이동할까?”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은 전과 다르게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내게 주의의 말을 건넸다.
“이번 촬영은 스튜디오에서 표정 연기를 주로 찍을 거야. 콘티 읽어 봤으니까, 우리가 무슨 촬영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자기가 뮤직비디오를 이번에 처음 찍잖아. 내 경험상 처음 찍는 가수들이 이런 종류의 촬영을 가장 힘들어해. 표정 연기가 무척 어렵거든. 그래서 스텝들도 이때가 가장 힘들어. 그러니까 이동할 때 미리 표정을 어떻게 지을까 생각을 좀 해 둬. 알았지?”
“네, 감독님. 열심히 연습할게요.”
나도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가장 찍기 힘든 촬영이 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카메라만 쳐다보며 웃었다, 울었다 하는 식의 표정을 연기하는 것은 연기라곤 해 본 적 없는 나 같은 초짜에게 정말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차를 타고 스튜디오로 이동하는 도중에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 전화기는 이번에 새로 개통한 새 전화기였다.
갑자기 너무 많은 전화가 걸려 와서 기존의 전화기는 이번에 회사에서 마련해 준 새 숙소에 두고 온 상태였다.
지금 이 전화기의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은 내 개인 스텝과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전화기에 영상 녹화 버튼을 누르고 나는 곧바로 여러 가지 표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이동 중인 차의 뒷좌석에 앉아서 혼자 이러고 있는 내 모습에 솔직히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내가 못하면 엄청난 인원의 촬영진이 고생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먹고 연습에 매진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스튜디오.
나는 차에서 내려 내 스타일리스트인 은비가 챙겨 주는 의상으로 빠르게 갈아입었다.
그리고 어색한 표정으로 화장도 다시 점검했다.
어느새 다가온 감독님이 내 얼굴에 화장 중인 은비를 향해 말했다.
“우리 서준 씨는 여성스럽게 색조 화장하면 안 돼요. 그럼 오히려 잘생긴 얼굴 자체가 죽어 버려요. 알겠죠?”
“네, 감독님.”
안 그래도 그런 식으로 화장하는 중이라 은비 입장에는 감독님의 충고가 귀찮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촬영장에서는 이분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은비는 그냥 묵묵히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뮤직비디오 촬영 시간이 길어질수록 곧바로 촬영 비용이 비례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에 우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느새 카메라 앞으로 이동해 감독님의 지시대로 표정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 * *
이서준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맡게 된 이진섭 감독은 촬영 화면을 모니터를 통해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캬하, 좋다. 이 친구 보면 볼수록 배우상이야. 어떻게 이렇게 화면발이 좋냐?”
제법 많은 작품을 찍은 덕분에 수많은 배우를 카메라 앵글에 담는 작업을 해 봤지만, 이 정도로 화면발이 좋은 사람은 그의 감독 생활 중 처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 다음 작품 주연 배우로 쓰고 싶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이야기가 잘 된다면 드라마 감독으로 전격 데뷔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런 혼잣말을 할 수 있었다.
초짜 감독이 배우를 마음대로 작품에 꽂을 수 없다는 걸 그도 잘 알았기에 그냥 혼자서 해 보는 말이었지만, 진짜 자신에게 그럴 권한이 주어진다면 어떻게든 출연시키고 싶은 비주얼의 소유자가 이서준이었다.
“자, 서준 씨, 아직 표정이 어색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얼굴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다시 한번 갈까?”
“죄송합니다. 감독님. 괜찮으시면 1분만 주십시오.”
표정 연기는 역시 조금 어색했다.
연기자도 아니고, 그리고 이런 식의 촬영이 처음 해 본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매우 괜찮은 편이긴 했지만, 지금은 좀 못해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봐 주는 학예회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족하다는 말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가수도 자신의 뮤직비디오에서만큼은 그 어떤 연기자보다도 잘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니, 그의 베스트를 단기간에 끌어내는 것이 뮤직비디오 감독인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숙제였다.
‘그래도 기특하네. 감정을 잡으려고 시간을 달라고 하는 걸 보니.’
부족하다는 말에 더 집중하기 위해 1분을 달라고 하는 말이 무척 귀여웠다.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1분 뒤에는 크게 달라질 거라는 허황된 기대를 가지지는 않았다.
1분 정도 주어진다고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연기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어 가며 좀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인 바람이었다.
“감독님, 됐습니다.”
1분이 지났는지 이서준이 준비가 끝났다는 말을 전해 왔다.
이진섭 감독은 기대를 전혀 가지지 않은 채 일단 촬영에 다시 들어갔다.
지금 하는 촬영은 그냥 연습일 뿐이라고 그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니터를 지켜보다가 다시 깜짝 놀랐다.
이서준의 얼굴에서 자신이 원하던 표정이 나오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악한 얼굴로 모니터를 지켜보다가 너무 놀라 ‘컷’을 외치는 것도 잊고 있었다.
“…커, 컷!”
다행히 끊어야 한다는 걸 겨우 생각해 낸 그는 다급히 ‘컷’을 외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이서준을 향해 외쳤다.
“서준 씨, 지금 너무 좋아. 이대로만 가자. 할 수 있지?”
“네, 저도 조금 감정이 잡히는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바로 가야지. 다음은 힘을 내라는 격려가 담긴 표정이야, 알겠지? 레뒤~ 액션!”
이서준의 전혀 예상 밖의 선전으로 촬영은 순풍에 돛 단 배처럼 쾌속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 * *
어느덧 마지막 촬영 장면을 앞두고 잠시의 휴식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텝들도 출출한 상황이라 김진영 형님이 손수 챙겨 준 피자를 먹으며 쉬고 있었다.
출연자 대기실에는 쓰리타임즈 멤버들과 워너비 걸즈 멤버 모두가 모여 함께 쉬고 있었다.
이 정도 가수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최근에 보기 힘든 일이었다.
나 때문에 이런 진귀한 장면을 연출해 준 동생들이 고마웠다.
이 고마운 동생들에게 맛있는 걸 대접하고 싶었던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대기실 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맛있는 음식이 지금 바로 도착했습니다.”
내 부탁으로 음식을 사러 갔던 조상구 실장님이 드디어 대기실에 나타나며 이렇게 외쳤다.
“와, 이게 다 뭐야?”
“샐러드에 샌드위치, 그리고 초밥도 있네. 대박.”
“너무 맛있겠다.”
그녀들에게 고맙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수소문해서 알아본 맛집에서 이것저것 사 온 것이다.
참고로 백 퍼센트 사비로 산 음식들이었다.
이왕이면 내가 직접 사러 가고 싶었는데, 촬영이라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나 대신 이것들을 사다 준 조상구 실장님께 그저 고마운 따름이었다.
“고마워요. 실장님.”
“하하, 이게 내 일이야. 그러니 앞으로도 이런 부탁은 부담 없이 해도 돼.”
고마워하는 나를 보며 웃어 준 그는, 사 온 맛있는 음식을 대기실 안 여성분들 앞에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요한 이 말도 빼먹지 않는 센스를 보여 주셨다.
“이건 회사에서 사는 게 아니라 서준이가 직접 사비로 사 주는 거니까, 모두 알고 맛있게 먹어.”
그 말을 들은 그녀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곧 많은 인원의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음~~ 이거 너무 맛있어.”
홍대 앞에서 제일 맛있다는 연어 샐러드를 먹은 나영은 그녀 특유의 감탄사를 뱉으며 맛있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맛있어?”
“오빠, 너무 맛있어요.”
“그래, 기분 좋은 소리네. 많이 먹어. 오늘 출연해 줘서 너무 고마워.”
내 말을 들은 나영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오빠, 우리가 오빠 뮤비에 출연해서 이런 걸 준비한 거예요? 에이, 우리 사이에 이런 거 필요 없어요.”
난 갑자기 장난이 치고 싶은 마음에 그녀에게로 조금 다가가며 물었다.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
두근.
내 장난에 조금 놀랐는지 나영은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우, 우리 관계야 당연히 오빠 동생 사이죠. 좋은 작곡자이자 프로듀서인 오빠와 오빠의 노래를 잘 소화해 내는 예쁜 동생들이 바로 우리고요. 그렇게 따지면 거의 남매 사이네요.”
“오, 우리 남매 사이야? 그럼 우리 사이는 회사로 인해 맺어진 사회적인 남매 사이네.”
내 말에 다른 얘들도 재밌는지 한마디 거들었다.
“회사 안에서는 남매고, 회사 밖에서는 남이야.”
“히히, 신기한 관계네.”
농담이 오가는 도중에 채연이 손을 들고 대표로 말했다.
“아까 팬들이 오빠한테 약속을 받아 내라고 했어요.”
“무슨 약속?”
“우리 다음 컴백 노래도 오빠가 만들어 준다는 약속요. 해 주실 거죠?”
그녀의 말을 들은 워너비 걸즈 멤버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우리 팬들도 그런 말 했어요. 오빠 저희 곡도 만들어 주세요.”
팬들도 내 노래를 듣고 마음에 들어 했다는 말이었기에 난 기분 좋은 얼굴로 약속했다.
“당연히 만들어야지. 이번 노래보다 더 좋은 곡을 만들어 줄 테니 기대해도 좋아.”
“와아, 약속받았다.”
그렇게 난 곡 의뢰를 2곡이나 받았다.
그것도 아주 잘 나가는 가수들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