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44화 (44/189)

44. 뮤직비디오 촬영(2)

맛있는 음식이 테이블에 세팅되어 있고, 더군다나 친한 사이인 지인들이 여럿이 모였다면 곧 그곳에서는 화목한 대화의 장이 열리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언니 머리 색깔 너무 이뻐요.”

“그래?”

이런 외모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저번에 음악 방송에 무대에 올라갔는데 의상이…….”

이런 식의 무대에 설 때 생겼던 에피소드 등을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만큼 아주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오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기억에서 지워진 존재가 되어 테이블 한쪽에 앉아 음식만 먹고 있었다.

‘이야,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네.’

연애 경험이 별로 없는 나는 여자들의 이런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이런 수다를 떨곤 하지만, 맨정신에는 말이 많이 없는 게 보통이었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못 하겠지? 예외는 있으니까. 내 주변 남자들이 그런 편일 수도 있고… 근데, 여자들은 정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네. 이런 느낌으로 노래를 만들어도 괜찮겠다.’

방금 머릿속에 떠올린 노래의 제목은 ‘내 말 들어줘’라고 하면 좋을 거 같았다.

바쁜 일상에 지친 여자들이 반가운 친구들과 카페에서 즐거운 일상을 공유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내용으로 가사를 만들면 재밌는 노랫말이 나올 듯했다.

그때, 이상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나와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여자들의 수다를 멈추게 하는 사람이 대기실 안에 나타났다.

“아이고, 안녕. 우리 JYK의 예쁜 꽃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네.”

아재 감성 가득한 말을 던지며 대기실에 들어온 사람은 뮤직비디오 감독인 이진섭 감독님이었다.

JYK의 뮤직비디오 감독을 여러 번 맡은 분이었기에 이곳에 있는 가수들 모두와 안면이 있었다.

“한창 즐거운 분위기인 거 같은데… 이거 어쩌지? 이제 촬영에 들어갈 시간이 되어 버렸어.”

감독님의 말에 지금 이곳에 모인 여자 가수 중 제일 언니인 나영이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해도 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은 촬영하러 왔으니까 촬영에 힘써야죠. 이제 저희가 뭘 하면 되나요?”

그녀의 물음에 이진섭 감독님은 다음 장면 촬영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찍을 장면은 여러분들이 우리 서준 씨의 음악에 모든 근심 걱정을 잊고 즐겁게 즐기는 장면을 찍을 거야. 귀에 들리는 음악에 미친 듯이 춤을 추면서 말이야.”

춤이라는 말에 나영이 옆에 있던 채연이가 감독님께 물었다.

“어떤 식으로 춤을 춰요?”

“음… 그냥 락 페스티발 같은데 놀러 와서 즐기는 사람들 모습 본 적 있지? 그 사람들처럼 그냥 흥겹게 놀면 돼. 어때, 간단하지?”

이진섭 감독님의 말에 정현이 볼멘소리를 했다.

“에이, 감독님. 그런 종류의 촬영이 더 힘들어요. 신경 안 쓰려고 해도 자꾸 카메라를 의식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리고 자꾸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하는 현타도 마구 오고요.”

“크크, 맞아요. 이러고 있는 내가 정말 싫다. 뭐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모두 정현과 다영이의 말에 동의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을 보며 감독님은 웃으며 말했다.

“이거 선수들이 왜 이래? 뮤비 촬영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잖아. 내가 여러분 뮤비 감독을 했던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말하는데 말은 이렇게 해도 마음 제대로 먹고 찍으면 한 방이면 끝낼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이야. 그러니 우는소리 하지 말고 파이팅해서 한 방에 끝내자고.”

감독님의 설명이 끝나고 난 뒤, 우리는 마지막 촬영을 하기 위해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촬영장은 홍대 앞 공원이었다.

이곳은 많은 아티스트 분들이 버스킹 공연을 자주 하는 곳으로도 유명한 장소였다.

회사에서 미리 서두른 덕분에 이곳에서 촬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준 씨는 그냥 즐겁게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면 모습 보여 주면 돼. 알겠지?”

“네, 감독님.”

전보다 더 신나게 노래 부르면 된다는 감독님의 간단한 설명에 나는 이 한 몸 불사를 각오를 다지며 기타를 매만졌다.

“레뒤~ 액션!”

촬영 시작을 알리는 감독님의 큰소리에 나는 곧바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뮤직비디오에 우정 출연 해 준 의리의 그녀들도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까 어렵다며 투정 부리던 모습은 어디로 날아가 버리고 베테랑 가수들의 멋진 춤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그렇게 노래가 끝난 뒤 감독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컷!”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래했기에 끝나고 나니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녹음된 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상황이라서 입만 뻐끔거리는 립싱크를 해도 되었지만, 난 리얼함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실제 연주와 똑같이 기타를 쳤고 노래도 실제로 열심히 불렀다.

녹화된 장면을 모니터를 통해 보던 감독님의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아마 마음에 드시는 장면이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 기운 내서 다시 한번 갑시다.”

감독님의 말을 들은 출연자 전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생각보다 더운 날씨로 인해 체력 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그걸 본 나는 감독님에게로 뛰어갔다.

건의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갑자기 뛰어오며 할 말이 있다고 하는 나를 보며 이진섭 감독님의 얼굴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조금 전에 찍은 장면은 어땠나요?”

“뭐라고 해야 할까? …사실 별로였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분위기가 안 사는 느낌이야. 왜 그러냐면…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냥 네가 직접 볼래?”

“네.”

감독님은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데리고 가 직접 촬영된 장면을 보여 주었다.

촬영본을 직접 보니 왜 감독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촬영하는 장면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모든 걸 잊고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인데, 자신을 구속하던 것들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듯한 느낌은 아쉽게도 들지 않았다.

내 노래가 전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부분이기에 확인하는 나 역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감독님께 급하게 달려온 이유도 혹시 이러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해결할 좋은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감독님께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말씀드렸다.

“감독님, 제가 진짜로 연주도 하고 노래까지 부르면 어떨까요?”

“뭐? 진짜로 하겠다고?”

“네. 진짜 진심으로 흥이 나도록 만들고 싶어서요. 그렇게 되면 애들이 진짜로 신나게 노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내 아이디어를 듣고 잠시 고민하던 감독님은 문득 드는 걱정을 내게 말했다.

“만약에 그렇게 촬영했는데도 마음에 안 들면 네 체력만 떨어지는 셈이 될 거야. 그래도 괜찮아?”

“그러지 않도록 이번에 제대로 촬영합시다. 전 자신 있어요. 그리고 혹시 감독님 말대로 되더라도 그때는 립싱크로 하면 돼요.”

시원시원한 내 대답을 들은 이진섭 감독님은 이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내 생각대로 한번 시도해 보기로 결심하셨다.

“좋아. 그럼 아예 콘서트 영상 담는 것처럼 촬영 장비를 세팅할게. 그게 좋겠지?”

“네, 그게 좋겠네요.”

리얼로 가기로 합의한 우리 두 사람은 곧바로 콘서트 버전 촬영 준비에 서둘렀다.

서두른 덕분에 짧은 시간 내에 준비가 완료되었고, 난 감독님에게 신호를 보낸 후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지금 내가 연주하는 곡은 ‘sight’가 아니라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노래였다.

♪지이잉 지지지잉♪

전자 기타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자 촬영을 준비하고 있던 쓰리타임즈와 워너비 걸즈 멤버들이 깜짝 놀랐다.

“이거 너희 노래 아니야?”

“이거 우리 노래 맞아요.”

지금 내가 연주하고 있는 곡은 내가 작곡했던 워너비 걸즈의 ‘놀자’였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놀자’의 일렉트로닉 기타 버전 연주라고 할 수 있었다.

본래 버전과 다르게 완전 헤비한 락 느낌이 드는 기타 솔로 연주였다.

이런 연주를 들으면 락 음악을 잘 몰라도 몸이 저절로 흔들리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우왕, 너무 좋아.”

“으윽, 짜릿해.”

몸이 저절로 기타 소리에 반응하며 그녀들도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나는 곧바로 다음 곡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이~ 예, 이번에는 우리 노래다.”

“히히, 이번엔 우리 차례야.”

내가 ‘놀자’에 이어서 연주하기 시작한 곡은 쓰리타임즈의 ‘love me’였다.

쓰리타임즈는 자신들의 노래가 나오자 무척 반가워하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역시 이번에도 헤비락 버전의 기타 솔로 연주였다.

난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 애드리브 라인을 집어넣으며 듣고 있는 그녀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흥이 이제 제대로 올라왔는지 쓰리타임즈와 워너비 걸즈 전원이 들려오는 흥겨운 기타 연주에 반응하고 있었다.

이때다 싶었던 나는 마이크를 켜고 그녀들을 보며 물었다.

“모두 기분 어때?”

내 물음에 모두 큰소리로 대답했다.

“기분 최고예요!”

그들의 뜨거운 반응에 난 이진섭 감독님을 슬쩍 쳐다봤다.

감독님은 녹화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서 알려 주셨다.

그것을 본 나는 드디어 내 데뷔곡인 ‘sight’를 연주하며 크게 외쳤다.

“자, 가자!”

“꺄아악!”

처음으로 제대로 된 MR 반주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난 녹음된 노래에 느낌이 가는 데로 즉흥적인 기타 소리를 섞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미친 기타 애드리브가 노래의 전주부터 터져 나온 것이다.

“우와아!”

그걸 듣고 있는 사람들은 미칠 것 같이 신이 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연주였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댔다.

이젠 노래를 부를 차례였기 때문이다.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

♪난 네가 강요하는 그런 사람 아냐♩

폭발적인 락 사운드와 너무 잘 어울리는 내 목소리가 노래에 더해지자, 내가 만든 ‘sight’의 진짜 모습이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실행되는 공연 장면이 내가 그리던 바로 그 모습이 맞았다.

노래는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원래의 노래도 엄청 신이 나는 노래인데, 여기에 라이브 기타 연주가 즉흥적으로 더해지니 듣다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멋진 노래가 만들어졌다.

듣던 사람들은 그로 인해 점점 노래에 빠져들 게 되었다.

흥이 오를 때로 오른 쓰리타임즈와 워너비 걸즈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격하게 방방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드디어 카메라에 담고 싶던 뮤비 콘티 속 장면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을 모니터로 확인하던 이진섭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어!”

자신이 원하던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감독인 그는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한 가지 재밌는 장면이 그의 눈에 또 들어왔다.

“어?”

그의 눈에는 촬영장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들리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홍대 앞 공원이라 아주 다양한 사람이 낮인데도 불구하고 많이 모여 있었는데, 남녀 고등학생 무리가 춤을 추는 모습도 보였고, 대학생 무리처럼 보이는 젊은이 사람들의 무리도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군인 복장의 남자들 무리도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였는데, 마치 아저씨들 춤처럼 세련되지 못하게 보이는 춤이었지만,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 이진섭 감독은 순간 좋은 그림 한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지금 떠오른 장면은 카메라 밥을 먹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절대 그냥 외면할 수 없는 매력적인 장면이었다.

이진섭 감독은 방금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를 황급히 찾았다.

“야, 조연출! 영철아, 어딨어? 이게 감독 옆에 찰싹 붙어 있어야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필요 없을 때는 눈에 거슬릴 정도로 옆에 바짝 붙어 있던 그였는데, 때마침 찾으니 보이지 않는 야속한 조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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