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드디어 데뷔하다(1)
“쇼케이스 전까지 회사의 모든 힘을 집중해서 서준일 홍보할 테니, 조 실장도 우리 서준이 앞으로 잘 챙겨 줘. 모든 게 처음인 친구니까 데뷔하고 활동할 때 모르는 게 정말 많을 거야. 나도 데뷔 전에는 그랬거든.”
“네, 알겠습니다. 그가 좋은 가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내가 조 실장만 믿어.”
김진영은 듬직한 매니저인 조상구 실장을 신뢰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 * *
가수로 데뷔를 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정말 생각지도 않은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 혼자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라서 많은 회사 직원분들이 나와 함께 고생해 줘야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활동 끝나면 나 때문에 고생한 스텝들에게 선물 하나씩이라도 돌려야겠다.’
수많은 스텝들의 노고를 직접 목격한 나는, 혼자 이런 다짐을 해 보았다.
“오빠, 의상 다 됐으니까 입어 봐요.”
내가 부탁한 의상을 다시 만들어 온 스타일리스트 은비는,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무대 의상을 건넸다.
이번이 3번째 의상 확인이니 불안해 보이는 모습도 이해는 갔다.
난 은비가 건네는 의상을 입어 봤다.
그리고 거울을 통해 꼼꼼히 확인했다.
“이번에는 괜찮네.”
저번과 다르게 이번에는 내가 원하던 의상 그대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 의상을 입은 내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 줬다.
“어때? 네가 보기에도 잘 나왔지?”
내 말을 들은 은비는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이번에는 마음에 드시나 봐요?”
“응, 마음에 들어. 고생했어, 은비야.”
“휴~ 마음에 드신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색깔이 너무 진하다, 모양이 원래 디자인과 다르다 등 많은 이유로 수정 지시가 내려졌다가 이제야 드디어 오케이 사인을 받아 낸 것이다.
‘우리 은비도 정말 고생이 많구나…….’
다른 일도 하면서 의상까지 챙기랴 고생하는 은비의 모습이 짠해 보였다.
그런 마음에 난 그녀에게 물었다.
“은비는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
“그냥 문득 궁금해서 그래.”
나중에 고맙다는 의미로 깜짝 선물을 할 작정이라 살짝 그녀의 의중을 물은 것이다.
그녀는 내 질문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갖고 싶은 것을 내게 말했다.
“음… 집?”
“…….”
어이, 그건 내가 깜짝 선물할 수 있는 수준의 물건이 아니잖아?
하필 말해도 집이라는 어마어마한 단어를 꺼낼 줄이야…….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신선한 대답에 나는 하고자 했던 모든 말들을 다시 속으로 삼켜 버렸다.
‘집’이라는 단어는 내가 함부로 언급할 만한 무게를 가진 단어가 아니었다.
“서준이 형, 샵에 가셔야 될 시간이에요.”
때마침 내 스케줄을 챙기러 나타난 찬식이.
이 친구는 내 로드 매니저다.
착하고 성실한 친구라 같이 지낼수록 마음에 쏙 드는 면이 많은 친구였다.
참고로 내 숙소에서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동거인이기도 했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도중에 난 찬식이를 보며 물었다.
“찬식아, 너 혹시 갖고 싶은 거 있어?”
“갖고 싶은 거요?”
“응, 최근에 갖고 싶은데 아직 사지 못한 물건 같은 거 말이야. 있으면 얘기해 봐.”
“왜요?”
“그냥 문득 궁금해서 그래.”
내 물음에 잠깐 고민하던 그는, 이윽고 나를 보며 대답했다.
“차요.”
“…….”
야, 짰냐?
은비랑 짰냐고…….
정말 원하는 것도 스케일이 남다른 내 스텝들이었다.
당황한, 아니 황당한 기분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주차된 차에 도착했다.
차에는 잠시 다른 일을 챙기러 나갔던 조상구 실장님이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샵에 갔다가 앨범에 실릴 사진이 나왔으니 함께 보러 가자고.”
“네.”
또 하나의 스케줄이 추가되고 우리는 차에 올라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차가 이동하는 도중에 나는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조 실장님에게 물었다.
그 역시 나로 인해 많이 고생하는 분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저… 실장님도 혹시 가지고 싶으신 게 있나요?”
갑자기 던져진 내 뜬금없는 질문에 조 실장의 얼굴에는 의문이 담긴 표정이 나타났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요.”
실장님은 내가 그걸 왜 묻는지 이유를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무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 질문에 답을 하셨다.
“가지고 싶은 것은 없어. 대신 소원이 하나 있는데, 그걸 얘기해 줄까?”
“네, 좋아요.”
실장님은 내 눈을 쳐다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내 소원은 내 가수인 이서준이 무대 위에서 행복하게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어. 그게 내 소원이야.”
갑자기 툭 치고 들어오는 감동적인 멘트에 난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런 나를 보며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잇는 실장님이었다.
“그 소원은 네가 곧 들어줄 수 있는 간단한 소원인 거 같은데 말이야…….”
실장님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은 나는, 곧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호언장담했다.
“이번 쇼케이스에서 그 소원 바로 이루게 해 드릴게요.”
“하하하, 약속했다. 약속했으니 반드시 지켜야 해.”
“네, 물론이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스타일리스트 은비가 갑자기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이서준 파이팅!”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찬식이도 운전대를 잡은 채 소리를 질렀다.
“우리 서준이 형, 파이팅!”
스텝들의 응원에 부끄러워진 나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둘 다 시끄러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개를 돌리는 내 얼굴에는 흐뭇한 마음이 표현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좋은 스텝들과 함께 일하는 사실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드는 날이었다.
* * *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가고, 드디어 나의 첫 쇼케이스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새벽부터 내 전담 스텝과 회사 직원분들은 쇼케이스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며 쇼케이스 준비에 매진했다.
어느새 모든 준비를 끝내고 쇼케이스 장소에 도착한 나는,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밥은 먹었어요. 엄마는 밥 먹었어요?”
오늘 내가 쇼케이스를 한다는 걸 수정이를 통해 들은 엄마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오셨다.
조금은 흥분한 듯 보이는 엄마의 목소리에 나 역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다독이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분명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우리 아들 파이팅.]
“흐흐, 고마워요. 엄마.”
엄마와의 통화가 끝났다.
별다른 대화를 한 건 아니지만, 엄마와 통화한 덕분인지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으니 은비가 계속 내 헤어며 화장을 손본다고 내 옆에 붙어 부산을 떨었다.
아마 이 친구도 쇼케이스 때문에 긴장한 것이 분명했다.
무대에 서는 당사자는 분명 나지만, 우리는 한 팀이란 생각에 그녀의 심장까지 마구 뛰게 된 모양이었다.
그때, 내가 있던 대기실로 우리 회사 대표인 진영 형님과 조 실장님이 들어왔다.
“오셨어요?”
인사를 건네는 나를 보며 형님이 물었다.
“기분이 어때?”
“…솔직히 떨리네요.”
내 말은 들은 형님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우리 서준이는 남다른 면이 많을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다른 친구들하고 똑같구나. 근데 너무 걱정하지 마. 기자 간담회는 형이 함께하니까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내가 많이 도와줄게. 그리고 노래 부르는 거야 네가 워낙 잘하잖아. 그냥 평소처럼 네 노래에 푹 빠져 부르면 돼.”
“네, 형님.”
내 어깨를 두드려 주신 형님은 웃으며 실장님과 다시 대기실을 빠져나가셨다.
오늘의 든든한 응원군을 봤기에 마음이 더 편해졌다.
그래서 나 혼자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다짐했다.
‘잘하자, 이서준. 넌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오늘 멋지게 해내는 거야.’
어느새 한결 편해진 얼굴로 쇼케이스를 기다리게 된 나였다.
잠시 뒤 나는 기자회견장에 앉아 있었다.
이미 내 뮤직비디오는 기자님들이 보는 앞에서 상영이 된 상태였다.
긴장한 표정의 내 옆에는 김진영 형님이 앉아 있었고, 한쪽에는 오늘의 쇼케이스를 진행해 줄 잘 모르는 진행자 한 분이 서 있었다.
찰칵찰칵.
나를 향해 반짝이는 수많은 카메라 셔터 소리를 들으며 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와, 우리나라에 연예 관련 기자들이 이렇게 많았어?’
정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내 쇼케이스 장에 취재를 위해 와 주셨다.
아마 우리 회사가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였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기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래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내 3대 기획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연예계 내에서 떠돌아다니는 모양이다.
내가 소속된 회사의 힘을 실감하며 앉아 있을 때, 드디어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남자 솔로 가수의 등장은 아이돌 전문 회사인 JYK에서는 잘 볼 수 없던 의외의 모습이란 생각이 듭니다. 왜 JYK에서 솔로 가수인 이서준 씨를 전격 데뷔시키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이 질문의 대답은 내 옆에 앉은 김진영 형님의 몫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해 온 형님답게 마이크를 잡은 형님의 표정은 아주 여유로웠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좋은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를 훌륭하게 소화할 가수이기에 데뷔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좋은 아티스트를 보고도 데뷔시킬 생각을 못 한다면 그건 제가 능력이 없는 사람이죠.”
김진영 형님의 대답을 들은 기자는 추가 질문을 연이어 던졌다.
“김진영 씨의 방금 말씀은 이서준 씨가 매우 훌륭한 아티스트이기에 데뷔를 시켰다는 말씀이시네요. 혹시 기존 가수와 비교한다면 이서준 씨는 어느 가수와 비슷한 스타일인가요? 혹시 예를 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기자의 질문을 들은 김진영 형님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 채 마이크를 잡았다.
그걸 보는 내 얼굴에는 일말의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누구와 비교해서 말씀을 드리면 좋을까 하고 잠깐 생각해 봤는데… 솔직히 잘 떠오르지 않네요. 그건 아마 지금까지 전무후무한 대단한 아티스트가 될 사람이 이서준 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답변을 드리는 것이 좋겠네요. 앞으로 이서준 군은 누군가와 비견될 정도의 가수가 아니라 누군가가 꼭 닮고 싶고 목표로 삼을 만한 엄청난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요. 마치 미국에서 마이클 존슨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형님의 답변을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나를 그 정도로 높게 평가해 주시는 건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지만, 수많은 기자들이 펜을 들고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감히 마이클 존슨의 이름을 내 이야기와 섞어 거론한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될 거란 생각을 왜 하지 못하실까 하는 원망이 들었다.
벌써 내 머릿속에는 ‘이서준, 한국의 마이클 존슨이 되겠다고 선언’이라고 적힌 기사 제목이 떠올랐고, 그리고 그 기사를 보고 혀를 차며 날 욕할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가끔 이 형님이 왜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지 그 이유도 살짝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