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51화 (51/189)

51. 음악 방송 출연(4)

제임스 권은 KBC 별관 뒤쪽 컨테이너 박스 뒤쪽으로 향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누군가를 만나 생긴 더러운 기분 때문에 담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제임스 권이 찾아온 이곳은 방송 관계자나 연예인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편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 방송국 사람들만의 비밀 장소였다.

다행히 비밀 장소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속에 담아 두었던 욕부터 시원하게 쏟아내었다.

“에이, 씨벌… 이서준 개새끼.”

마음 같아선 대놓고 면전에서 욕을 해 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할 수 없어 너무 답답했었다.

참았던 욕을 이제라도 내뱉으며 담배까지 피우니 이제야 한결 마음이 편해진 기분이 들었다.

입 안 가득 머금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제임스 권은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나도 많이 변했네. 참을 줄도 알고.’

예전의 자신이라면 이서준을 보자마자 싫은 티를 팍팍 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사회의 쓴 물을 제법 마셨기에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휴~ 나도 이서준 저 개자식처럼 잘 나갈 줄 알았는데…….”

내뿜는 담배 연기를 따라 지나간 수개월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호기롭게 JYK의 문을 박차고 나왔을 때, 그는 곧바로 아버지 회사 내에서 데뷔를 준비 중인 걸그룹을 자신이 직접 키워 보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맡게 된 그룹이 바로 지금 자신이 데리고 있는 캔디걸이었다.

얼굴이 반반하고 노래도 곧잘 하는 애들로 구성했으니 당연히 잘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그녀들에게 부르라고 준 곡은 눈이 이상한 JYK에서 알아보지 못하고 내친 자신의 곡이었다.

제임스 권은 자신이 만든 노래를 직접 띄워서 JYK의 무능력함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자신의 마음과 너무 달랐다.

그의 예상과 달리 캔디걸의 ‘love candy’는 음원 차트에서 최고 순위 56위를 끝으로 쓸쓸히 퇴장하고 말았다.

예상과 다르게 너무 저조한 결과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실패의 쓴맛을 맛본 자신과 달리 이서준은 계속 승승장구하였다.

자신과 경쟁했던 워너비 걸즈의 타이틀곡은 발매와 동시에 대히트를 쳤고, 워너비 걸즈 다음으로 쓰리타임즈의 컴백 앨범의 수록곡도 직접 작곡해서 프로듀서까지 맡아 또 한 번의 성공 신화를 이루어 내었다.

그리고 솔직히 녀석의 가수 데뷔곡도 궁금해서 들어 봤는데,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녀석의 노래가 좋다는 건 부인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오늘 녀석을 보고 속을 감추며 웃어 보였다.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부모를 죽인 원수하고도 손을 잡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 냉혹한 어른의 세계에서 성공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서준이 녀석과 내가 가는 길도 다르고…….”

이제는 솔직히 인정했다.

자신에게는 작곡가로서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앞으로의 목표도 바꿔 버렸다.

성공한 제작자가 되기로 마음을 바꿔 먹은 것이다.

“어차피 작곡가는 음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야. 그러니 난 양지에서 살아가는 삶을 살도록 하겠어.”

그런 마음을 먹었기에 이서준에게 웃어 줄 수 있었다.

인간적으로 재수가 없는 놈이지만, 작곡가로서의 재능은 분명 뛰어난 놈이다.

나중에 이 바닥에서 계속 살아가다 보면 제작자와 작곡가로 만날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바닥에서는 실력이 최고였다.

가수로서는 아직 몰라도 작곡가로는 현재 최고인 녀석이기에 그런 녀석과 계속 척을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죽기보다 싫었지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처럼 더러운 기분을 덤으로 얻어야 했다.

“오빠.”

담배를 피우며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난데없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임스 권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놀라게 만들며 나타난 사람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야, 누가 보면 어쩌려고 여길 와. 너 내가 행동 조심하라고 했어, 안 했어?”

버럭 성질을 내는 그를 보며 캔디걸의 리더이자 메인 보컬인 세진은 화를 내는 중인 제임스 권에게로 다가가 팔짱을 껴 버렸다.

“에이, 오빠, 누가 본다고 그래?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데 말이야.”

제임스 권은 철없이 구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버럭 화를 내려다가 그만 포기해 버렸다.

“…에잇, 말을 말자. 말한다고 네가 들어 처먹을 녀석도 아니니… 그냥 대기실에 조용히 있지 않고 여긴 왜 왔어?”

“왜긴, 나도 니코틴이 당겨서 왔지.”

그녀의 말을 들은 제임스 권은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 속에 있던 담배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담배를 본 세진은 참았던 흡연 욕구를 풀 수 있단 생각에 신이 났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그의 손에 있던 담배를 낚아채 갔다.

제임스 권은 맛있게 담배를 피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후회했다.

‘씨벌, 내가 그날 술을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는 게 아닌데… 괜히 저년을 안는 바람에 코가 꿰였어.’

얼굴은 예쁜 편이지만, 가수로서의 실력은 부족하고 노력도 안 하는 편이었다.

한마디로 얼굴만 예쁜 멤버라고 할 수 있다.

그룹의 간판 얼굴로 ‘캔디걸’에 합류한 케이스인데, 능력도 없는 것이 이상하게 욕심은 또 많았다.

그리고 수작질에도 능한 편이라 자신이 실권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교묘하게 유혹해 왔다.

결국, 여우 같은 년이 만든 유혹의 덫에 걸리는 바람에 이번에 활동하는 노래에도 센터에 서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제임스 권에게 골칫거리를 안기는 여자였다.

* * *

2번의 리허설을 거치고 이젠 진짜 음악 방송 무대에 설 차례가 되었다.

난 오늘 사전 녹화를 하게 된다.

음방은 구성에 따라 생방송으로 노래하는 팀도 있고 사전 녹화를 통해 화면에 나가는 팀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악기 세팅이 필요한 경우라서 생방송에 나가기는 힘들었다.

“오빠, 머리 좀 만질 테니까 가만히 있어요.”

내가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 같은데, 은비의 눈에는 뭐가 계속 보이는지 옷도 다시 만졌다가 이번에는 머리까지 손을 뻗치고 있었다.

은비가 머리를 손질하게 좋게 다리를 벌려 선 키를 낮춘 나는, 그 자세 그대로 귀에 낀 인이어를 다시 매만지며 긴장감을 다스리고 있었다.

오늘 음방에 처음 온 덕분에 몰랐던 것들을 참 많이 배워 가고 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아내었다.

가수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 인이어를 차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인이어를 차는 순간 지금 무대에서 공연하는 팀의 목소리가 아주 생생하게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준비한 MR은 코러스가 심하게 깔려 있거나 라이브로 부르기 어렵고 중요한 파트는 일부러 녹음된 부분을 MR에 미리 넣어 두기 때문에 실제 가수의 진짜 목소리를 듣기가 힘든데, 인이어로는 가수의 목소리를 아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귀에 들려오는 가수들의 목소리는 아까 제임스 권이 키우고 있다고 소개받은 캔디걸이었다.

그녀들은 내 바로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런 까닭에 나는 그녀들의 노래 실력을 낱낱이 파악하며 듣고 있었다.

나도 웃긴 것이 프로듀싱을 몇 번 했다고 어느새 프로듀서의 눈으로 그녀들의 실력을 살피고 있었다.

이것도 직업병이라 할 수 있을까?

‘전체적으로는 노래가 아쉽네. 노래 중에 숨 쉬는 법도 제대로 숙지가 안 된 듯한 느낌이야. 춤이 격렬해서 그런가?’

뒤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살폈지만, 춤이 격렬한 것은 원인이 아닌 거 같았다.

섹시 컨셉의 노래와 춤이라 그런지 느낌 위주의 동작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전체적으로 노래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아쉽다는 생각이 든 멤버는 아이러니하게도 메인 보컬로 보이는 멤버였다.

‘목소리를 억지로 꾸며서 부르니 노래가 너무 부자연스럽고, 거기다가 이 친구 역시 호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거 같네. 그게 아니면 선천적으로 호흡이 짧은 편일 수도 있고.’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별로 나은 게 없는데, 왜 메인 보컬이지?’

난 제임스 권이 이렇게 노래의 파트를 나누고 저 친구가 메인 보컬을 맡은 이유에 대해 추론해 보았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모를 그의 숨은 의도까지 찾아내려고 했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그렇게 내가 쓸데없이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낭비하던 그 순간, 날 놀라게 하는 목소리가 인이어를 통해 갑자기 훅하고 들어왔다.

♩날 보는 네 눈동자의 의미 나는 알고 있어♪

중요한 후렴구에 지금까지 거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멤버 한 명이 앞으로 치고 나오면서 시원한 고음을 내질렀다.

그게 내 귀를 번뜩이게 만든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날 놀라게 만든 그녀에게 집중했다.

노래의 초반과 중반에는 거의 분량이 없던 그녀가, 노래의 후반부에 와서는 제법 많은 파트를 소화하고 있었다.

내가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녀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매력 때문이다.

그녀의 약간 탁한 듯하면서 미성인 것 같은 묘한 목소리와 그 속에 담긴 소울풀한 감성이 내 귀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래는 금방 끝이 나 버렸다.

그녀가 거의 후반부에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난 그녀의 목소리가 남겨 준 여운 때문에 여전히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나를 보며 은비가 타박했다.

“오빠, 갑자기 멍하니 서서 뭐 해요? 이제 오빠 차례니까 정신 차리세요.”

“어? 아, 그래.”

난 계속 넋이 나간 상태로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어서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젠 내가 무대에 설 차례였기 때문이다.

“이서준 씨, 무대로 올라가 주세요.”

“네.”

스텝의 안내에 따라 난 무대로 향했다.

바로 그때 방금 무대를 마친 캔디걸이 무대를 내려오다 나와 엇갈리며 스쳐 지나가게 되었다.

7명이라는 대인원이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갔지만, 그중에서도 내 눈은 한 명의 여성에게로 쏠려 있었다.

그 주인공은 조금 전 나를 놀라도록 만들었던 목소리의 그녀였다.

매우 여성적인 마스크의 소유자를 바라보던 나는, 어느새 그녀가 무대 뒤로 사라지자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무대 위로 향해야 했다.

* * *

무대에 올라와 악기 세팅을 시작했다.

MR을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과 다르게, 나처럼 연주를 직접 하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은 악기 세팅이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 그냥 대충 끝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관객석에는 내 팬으로 보이는 아주 소수의 무리가 떡하니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도 고마운 분들을 보니 힘이 솟는 거 같았다.

그리고 다른 가수의 팬으로 보이는 관객들도 눈에 들어왔다.

방송상으로 많은 관객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여야 하니 아마 방송국에서 다른 가수의 팬들 역시 내 무대를 보며 앉아 있게 만든 모양이다.

다른 가수와 달리 악기를 세팅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니 조금 지루했을까?

갑자기 관객석에서 이런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우리 오빠들 기다리기 힘드니 어서 빨리 부르고 들어가요.”

“하하하.”

그 소리를 들은 내 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렇게 시작된 싸움.

방송 스텝이 재빨리 나선 덕분에 소란은 금방 일단락되었지만, 난 이 두 눈으로 그 장면들을 생생히 목격하였다.

자신의 오빠를 보러 왔으니 내가 시간 끄는 게 별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해하는 내 소중한 팬의 모습을 보게 되자 순간 오기가 생겼다.

‘그래 내 무대를 기대하지 않는 너희에게 진짜 음악이 뭔지 제대로 보여 줄게.’

이런 각오를 다진 나는, 고개를 돌려 방송 스텝에게 물었다.

“사운드 체크 좀 해도 될까요?”

“아, 네. 하세요.”

사실 리허설을 몇 번 했기에 따로 사운드 체크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제대로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 연주를 시작했다.

오늘 나와 함께 ‘sight’를 연주해 줄 베이스와 드럼 세팅 점검이 완료될 때까지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진짜 음악의 세계를 보여 줄 작정이었다.

♩♪지이이이잉~~~ 지그징 징징 지그지지 징징♩

내 전자 기타에서 나오는 경쾌한 로큰롤 사운드가 녹화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즉흥 잼과 같은 연주였다.

오기가 생겨서 그런지 평소보다 많이 파워풀한 사운드였다.

“!”

내 무대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소녀들이 어느새 내 쪽으로 시선이 향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1단계 성공.’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1단계 목표를 어느새 달성한 나는 다음 2단계 목표를 향해 열렬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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