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57화 (57/189)

57. 토크 버스킹(3)

처음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터라 너무 긴장했었다.

그런 긴장감 때문에 평소보다 몸에 힘도 더 들어간 탓에 녹화가 끝이 나니 완전히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힘이 없어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힘들게 밴까지 걸어오니, 반가운 회사 식구들이 너무나 밝은 웃음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래요, 오빠. 오늘 너무 고생했어요. 힘드실 텐데 차에 앉아 좀 쉬세요.”

내 노고를 알아주는 찬식이와 은비의 모습에 힘들지만 웃을 수 있었다.

“그래, 고맙다. 내 고생을 알아주는 건 역시 너희밖에 없어. 근데 차에 마실 게 있어? 지금 너무 목마른데…….”

갑자기 찾아온 갈증 덕분에 난 마실 것부터 찾았다.

그때,

찰칵.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음료수 캔의 뚜껑을 따서 내게 건네는 조상구 실장님의 모습을 보고 난 웃음이 터졌다.

“하하, 제가 음료수 찾을 거란 걸 어떻게 알고 때마침 그걸 들고 계세요?”

내 말을 들은 실장님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첫 녹화라 많이 긴장했을 테고… 그런 탓에 물 마실 여유도 없었을 거야. 그러니 다 끝난 지금에는 당연히 목이 마르겠지. 매니저를 오래 하다 보니 이런 게 보이더라고.”

실장님의 대답은 나의 탄성을 저절로 만들어 냈다.

“이야, 역시 우리 실장님의 짬밥은 무시 못 하겠네요. 아무튼, 음료수는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실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한 나는 심한 갈증 때문에 캔 음료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이제 막 냉장고에서 꺼내 온 음료라서 그런지 너무나 시원해서 더욱 괜찮았다.

갈증이 사라지는 쾌감에 몸서리쳐질 때 실장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노래 정말 좋았어.”

노래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신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으로 내 노래를 칭찬하셨다.

“보셨어요?”

“그럼 당연하지. 내 가수가 노래하는데 매니저인 내가 반드시 체크해야지. 그동안 부른 노래가 물론 다 좋았지만, 오늘 녹화장에서 부른 노래들은 정말로 다 최고였어. 그리고 특히 마지막 노래가 그중 가장 최고였던 거 같아.”

생각지도 못한 노래 칭찬을 들으니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칭찬은 항상 기분이 좋은 법이었다.

“좋았다니 다행이네요. 첫 녹화라 솔직히 너무 긴장했었거든요. 그래서 긴장 때문에 노래를 제대로 못 부른 거 같아 약간 아쉬웠는데… 그런데도 좋았다고 하시니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되네요.”

갑자기 조 실장님은 약간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 눈빛의 의미가 궁금해진 내가 직접 이유를 물었다.

“갑자기 왜 그렇게 보세요?”

“…너를 보니 갑자기 누군가가 생각이 나서.”

“누구요?”

“…그런 사람이 있다.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회사로 갈 거지?”

“네. 회사에서 작업할 곡이 있어요.”

실장님은 나를 보고 누굴 생각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말해 줄 거 같지 않아 나 역시 그냥 넘어갔다.

차에 탄 우리는 곧바로 회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밴에 편하게 앉은 나는 녹화 때문에 차에 놓아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확인한 핸드폰에는 나영이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오빠, 연경이가 사정이 생겨 오빠 말대로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네요. 제게 대신 말을 전해 달래서 제가 이렇게 메시지 보냅니다. ㅜㅜ

그 문자를 본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거절당한 건가…….’

연경이의 개인 사정에 대해서는 나영이에게 들어서 조금은 알고 있었다.

집의 경제적 사정이 좋지 못해 빨리 데뷔할 수 있는 MBT로 회사를 옮겨 데뷔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아버지의 지병이 심해져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나영이에게서 들었다.

내 제의를 거절한 이유도 혹시 그러한 개인 사정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한 건 직접 본인한테 그 이유를 듣지 않는 이상 알 도리가 없었다.

지금 내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연경이의 거절 소식 때문에 내 마음이 속상하게 변했다는 사실이다.

문자를 받고 기분이 조금 다운된 나를 향해 뒷자리에 앉은 은비가 말을 걸어 왔다.

“오빠.”

“왜?”

“아까 오빠가 부른 노래가 지금까지 제가 들은 오빠 노래 중에 제일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랬어?”

개인적으로 잘 불렀다는 생각을 못 가졌는데, 실장님에 이어 은비까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나름 괜찮은 무대였나 보다.

“제 생각에는 이번 노래가 혹시 방송을 타게 되면 오빠가 더 많이 유명해질 것 같아요.”

“그래? 하지만 방송에 나갈지 안 나갈지는 아직은 몰라. 방송국에서 편집을 어떻게 할지에 달린 문제니까. 근데,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방송에 꼭 나갔으면 좋겠다.”

“저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내가 더 유명해져야 우리 은비도 회사에서 보너스 많이 받을 거 아니야. 안 그래?”

“진짜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은비의 재치 넘치는 라임에 나는 다운된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이서준을 작업실에 데려준 조상구 실장은,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 JYK 본사 건물 최고층으로 향했다.

그가 그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최고층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최고층에 도착한 조상구는 아주 편한 얼굴로 누군가의 방문을 열었다.

“왔어?”

그가 등장하자마자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JYK의 대표인 김진영이었다.

바로 그가 조상구를 기다리는 친구였다.

“대표님이 부르시는데 말단 직원인 제가 안 올 수야 있나요?”

“실장이 무슨 말단 직원이야. 그리고 우리 둘밖에 없으니 말 편하게 말해. 오늘은 친구끼리 맥주 한잔하러 보는 거니까.”

두 사람은 원래 친한 친구 사이였다.

김진영은 연예인 생활을 시작하고 우연히 만나게 된 매니저 조상구와 마음이 맞아 금방 친구 사이가 되었고, 그러한 두 사람의 인연도 횟수로 2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딱.

손수 맥주캔 뚜껑까지 따서 건네는 친구의 친절한 모습에 조상구는 웃으며 맥주를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좋지? 내가 요즘 이것만 마셔. 먹어 보니 너무 맛있는 거야. 네 입맛에는 어때?”

“좋네. 맛있어. 그리고 먹어 보니 네가 딱 좋아할 만한 맛이야.”

“그지?”

이렇게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힘들었던 하루를 정리하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방송은 어땠어?”

슬쩍 궁금했던 본론을 꺼내는 친구 모습에 조상구는 다시 웃음이 터졌다.

“하하, 너 사실은 서준이 녹화가 어땠는지 물어보려고 나보고 올라오라고 한 거지?”

“흐흐, 겸사겸사인 거지. 친구도 보고 궁금했던 일도 물어보고.”

능글맞은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친구를 향해 조상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오늘 녹화를 보니 그동안 네가 괜한 걱정을 했던 거 같아.”

“괜한 걱정?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처음에는 서준이가 토크 버스킹에 출연하는 거 반대했잖아. 근데 서준이가 강하게 원해서 결국은 출연하게 된 것이고. 근데 오늘 하는 거 보니 서준이가 제법 잘하더라고. 같이 지내 보니 매번 느끼는 건데, 겉은 어리숙해 보여도 속은 달라. 아주 똑똑한 친구야.”

조상구의 말은 서준이가 녹화를 잘했다는 말이었기에 속으로 크게 걱정했던 김진영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사실 김진영은 지금까지도 이서준이 토크 버스킹에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이서준이 가수로서 엄청난 스타가 될 재목이라 믿었기 때문에 불필요한 이미지 소모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유희상이 이서준 마음을 먼저 흔들지 않았고, 또한 이서준 역시 출연을 강하게 원치 않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토크 버스킹이란 듣보잡 프로그램에 출연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그런 마음과 달리 이서준은 출연을 강하게 원했다.

그는 출연을 만류하는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했었다.

“제가 방송을 해 본 적 없는 방송 초짜잖아요. 그러니 차라리 이런 프로그램이 부담 없이 도전해 볼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방송 포맷도 노래를 많이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니 제가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적고요. 요즘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는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서 방송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예능에 최대한 빠르게 적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워낙 똑 부러지는 대답이라 김진영도 더 이상 만류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내보낸 예능에서 걱정과 달리 잘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 것이다.

조상구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진영에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봤는데… 앞으로도 예능 프로그램에 좀 더 출연시키는 게 좋겠어.”

“뭐? 안 돼. 걘 제대로 뜰 친구라 이미지 아껴야 해.”

“나도 그 생각엔 동의해. 하지만 최소한은 해야지. 그리고 네가 말리는 이유는 방송 중에 실수해서 괜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거잖아. 근데 내 생각에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아. 왜냐면, 서준이가 아주 똑똑하니까. 걔가 괜히 한국대에 간 친구가 아니더라고.”

“…그래도 될까?”

아직도 걱정하는 친구를 보며 조상구는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내가 잘 케어할 테니 걱정하지 마. 방송도 내가 잘 선별해서 출연시킬게. 설마 나를 못 믿는 건 아니겠지?”

“넌 내가 믿지. 그러니 일부러 일할 마음도 없는 널 억지로 데려다가 서준이 옆에 둔 거고.”

“그럼 날 믿고 기다려 봐. 지금 방송 환경상 노출 없이 큰 인기를 얻기는 어려워. 그러니 내가 서준이 이미지에 도움이 될 만한 방송만 내보낼게. 그리고 다음 앨범 준비도 차곡차곡 시키고. 아, 중간에 미니 앨범 형식의 신곡 하나 가는 것도 괜찮겠다.”

김진영은 조상구를 믿었기에 그의 계획을 듣고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상구라면 방송 프로그램도 가리면서 출연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업종에 일하는 일반적인 매니저라면 어떤 방송이라도 잡으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겠지만, 조상구의 방송 인맥이라면 출연할 프로그램 가려 가면서 방송할 수 있는 게 가능했다.

김진영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재미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근데 상구 너 이상하다. 원래 서준이 자리 잡을 때까지만 봐주다가 손 털려고 했잖아. 근데 지금 하는 거 보니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닌 사람처럼 보여.”

“…그래 보여?”

“응.”

원래 조상구는 잠깐만 이서준을 따라다니며 챙겨 줄 생각이었다.

친구인 김진영이 워낙 강하게 부탁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서준과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조상구의 생각은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

“어떻게 바뀌었어?”

“…오늘 서준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서준이가 현석이 형처럼 보이더라.”

많은 의미를 내포한 말이었다.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장현석을 거론하며 하는 말이었기에 김진영도 조용히 조상구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오늘 보면서 확신했다. 그 녀석 이대로 큰다면 진짜 제대로 될 물건이라고. 그래서 현석이 형처럼 고통받으며 노래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현석이 형을 제대로 케어하지 못했다는 내 원죄 의식이 만들어 낸 허상일 수도 있고…….”

감정이 조금 올라왔는지 조상구는 들고 있던 맥주를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했다.

김진영은 그런 친구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봐 주었다.

“일단 지금은 그저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니 너도 회사 차원에서 나 많이 지원해 주고. 알겠지?”

“그럼 당연하지. 나도 서준이가 얼마나 크게 될지가 너무 궁금한 사람이야. 그러니 우리 둘이 합심해서 이서준을 세계적인 스타로 한번 키워 보자. 그런 의미에서 건배할까?”

“좋지.”

두 사람은 가볍게 캔을 부딪친 후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 * *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JYK 홍보실의 김윤정과 이대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람이 제대로 불고 있어요.”

이서준이 출연한 토크 버스킹은 첫방부터 나름 대박이 났다.

신규 파일럿 프로그램이 첫 방송부터 시청률이 7%가 넘게 나왔으면 그건 진정 대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방송은 10%를 넘겨 버렸다.

토크 버스킹이 대박이 난 이유는 이런 스트리트 토크쇼에 특화된 진행자 김제영의 능력에도 큰 성공 요인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 큰 이유는 버스킹 공연을 보여 준 이서준의 몫이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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