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처음으로 음원 차트 1위에 오르다(2)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빠를 위해 이수정은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아빠, 음원 차트 1위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성관지 감이 안 오지? 우리나라 같은 작은 나라에도 하루에 발매되는 노래가 수백 곡이 넘어. 그렇게 많은 노래가 지금 이 순간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오빠 노래가 그 많은 노래를 다 제치고 당당하게 1등을 한 거야. 대단하지 않아?”
“…….”
아직도 감이 오지 않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아빠를 위해 이수정은 비장의 한 수를 꺼내 들었다.
“아빠, 오빠 노래가 옛날 가요 톱 10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말이야. 이제는 감이 좀 오지?”
“헉!”
평소 과묵한 편인 아빠가 이렇게 놀라는 모습은 이수정이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18년의 세월 동안 처음 보는 거 같았다.
“네 오빠 노래가 가요 톱 10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그렇지. 바로 그런 엄청난 일이 지금 오빠에게 일어난 거야.”
이광철은 이제는 음원 1위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놀라운 일을 자신의 아들인 이서준이 해냈다는 사실 때문에 여전히 정신을 차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게 잠깐 멍한 표정을 지으며 정신을 수습하던 그는, 문득 함께 술자리를 즐기던 정육점 김 사장을 향해 말했다.
“혹시 지금 고기 파는가?”
뜬금없는 그의 말에 정육점 김 사장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형님, 지금 뭐라고요?”
그의 물음에 이광철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금 고기를 살 수 있는가 물었네. 우리 서준이가 그런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하니… 그냥 빈손으로 집에 가기는 그렇고… 잔치라도 해야 할 판에 하다못해 고기 몇 근이라도 들고 가야 할 거 아닌가.”
이광철을 말을 들은 김 사장은 이제야 알아들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아이고, 맞죠. 우리 서준이가 가요 톱 10에서 1위를 했다는데,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 그냥 빈손으로 집으로 갈 수는 없죠. 마침 좋은 돼지고기를 따로 챙겨 둔 것이 있는데, 제가 특별히 그놈을 형님께 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 제 가게로 가시죠.”
마치 자기 아들이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낸 것처럼 기뻐하던 김 사장은, 신이 나서 정육점을 향해 출발하려고 했다.
그런 그를 이광철은 급히 잡으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정정했다.
“돼지고기 말고 소고기로 챙겨 줘. 오늘은 소고기를 사 가야겠어.”
“헉, 소고기요.”
“응.”
김 사장은 자신의 두 귀로 직접 듣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 베푸는 걸 아끼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에게만은 아주 검소한 편이었던 이광철의 입에서 소고기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정말 몰랐기 때문이다.
소고기라는 단어를 옆에서 들은 이수정은 놀라서 아빠에게 다시 물었다.
“아빠, 오늘 우리 소고기 먹어?”
딸의 물음에 이광철은 오늘만은 아끼지 않겠다는 듯이 스웩 넘치게 말했다.
“오늘 같은 날은 우리 집도 소고기 먹자. 기분이다.”
“우와, 신난다. 오랜만에 소고기 파티다.”
이광철은 신나서 방방 뛰는 딸의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김 사장에게 말했다.
“어서 가자고. 장사 안 할 거야?”
“아, 예 장사 해야죠. 그럼 제 가게로 가시죠, 형님.”
짠돌이 이광철의 스웩 넘치는 모습이 여전히 어색한 정육점 김 사장님은 어색한 걸음걸이로 두 사람을 데리고 자신의 가게로 향했다.
* * *
드디어 음원 차트 1위에 오른 ‘sight’였다.
발매 후 꾸준히 순위가 상승했지만, 오늘에야 비로소 제일 꼭대기 자리에 오른 것이다.
한 음원 사이트에서 처음으로 1위를 달성한 후 다음 날, 내 노래 ‘sight’는 규모로 따졌을 때 가장 큰 편에 속하는 국내 음원 사이트 5곳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다.
내 첫 타이틀곡 ‘sight’가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음원 올킬’에 성공한 것이다.
이 기쁜 소식을 나도 무척 빨리 알게 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첫 1위 소식을 알린 사람이 의외로 내 동생 수정이이란 사실이다.
요 녀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매번 음원 차트만 보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로 1위가 올라서자마자 소식을 전해 온 것이다.
난 그때 마침 라디오 방송 중 잠시 쉬고 있었기에 수정이가 전하는 기쁜 소식을 곧바로 받을 수 있었다.
실제 내 눈으로 ‘sight’가 1위 자리에 떡하니 표기된 것을 봤을 때의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감정이었다.
사실 내가 만든 노래가 음원 사이트에서 처음으로 1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쓰리타임즈와 워너비 걸즈, 그리고 드라마 ost로 좋은 음원 성적을 거뒀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 일어난 일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그때는 모두 내가 만든 노래를 받은 가수들이 불러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가수들 자체가 음악판에서도 알아주는 가수들이었기 때문에 온전한 내 공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앞서 경험했던 일들과 분명 달랐다.
내가 만든 노래를 내가 직접 불러서 이룬 성과였기 때문에 분명 남다른 느낌이 있었다.
일단 음악을 처음으로 하려고 했을 때의 꿈인 멋진 싱어송라이터가 드디어 된 것 같아 너무 기뻤다.
그동안 꿈꿔 온 나의 이상향을 현실에서 이루어 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벅찬 감동이 속에서부터 확 하고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보고 싶은 가족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때마침 울리는 내 전화.
텔레파시라도 통했는지 수정이가 다시 내게 전화를 건 것이다.
전화 통화를 하니 엄마와 수정이는 너무 기뻐서 울고 있는 거 같았고, 아빠도 감격하셨는지 목이 메신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 역시 목이 메어 제대로 말 한마디 할 수 없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 상황이라 우리가 감동을 나누는 데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1위 첫날에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스케줄이 있는 관계로 회식을 못 하였기에 다음 날이 되어서야 우리 팀끼리 조촐한 회식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때마침 음원 올킬에 성공한 날이라 어제보다 더욱 뜻깊은 날에 갖는 회식 자리였다.
조상구 실장님과 로드 매니저 찬식이, 그리고 날 예쁘게 만들어 주는 스타일리스트 은비까지 총 4명의 조촐한 식구들은 회식을 하기 위해 유명 일식집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날이라 내가 직접 쏜다는 사실을 이들에게 알리고 이곳으로 식구들을 데리고 왔다.
좀 비싼 집이긴 해도 각종 음원 수입이 꽤 많이 들어오는 편이라 이 정도는 부담 없이 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에게 이사할 곳을 알아보시라는 말을 했는데, 제대로 알아보시는 중인지 궁금했다.
내 제안을 들은 엄마는 아들이 힘들게 번 돈 본인들이 살 집 사는 데 쓰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거절 의사를 표하셨는데, 내가 엄청나게 고집을 부리니 일단 알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실제로 내 말을 들어주실지는 나 역시 자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의 충성스러운 첩보원 수정이에게 예쁜 원피스 하나 보내며 제대로 알아보라는 지령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기만 해도 맛있을 것 같은 음식들이 나왔고, 우리는 일식집에 온 만큼 사케까지 주문해서 잔에 따랐다.
왠지 그래야 구색이 맞는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실장님은 자신의 술잔에 사케를 따르는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자, 우리의 스타께서 한 말씀 하며 건배할까?”
평소라면 무슨 소리냐며 사양하겠지만, 오늘은 나를 위해 일해 주는 이 사람들에게 전할 말이 있었기에 사양하지 않은 채 말을 시작했다.
“오늘 제가 음원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저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여기 있는 세 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전하고 싶네요.”
내 감사의 인사를 들은 세 사람은 기분이 좋은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노고를 알아주니 더 기분 좋네요. 이 기분 그대로 살려서 제대로 짠 한번 할까요?”
은비의 말에 실장님이 문득 궁금한지 물었다.
“그냥 잔을 부딪치는 건 너무 심심하지 않아? 나 대학 다닐 때는 건배하기 전에 멋진 말을 외치며 건배를 하곤 했는데.”
“예전에는 뭐라고 하면서 건배했는데요?”
은비의 물음에 실장님은 오랜만에 라떼를 소환했다.
“나 때는 이런 건배사를 많이 했지. 우리의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뭐 이런 식으로 많이 했어.”
그 말을 들은 은비는 깔깔 웃으며 실장님을 타박했다.
“아, 여기 오래된 아재 한 명 있어요. 크크, 실장님, 요즘 누가 그렇게 건배해요? 그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살던 사람들이 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과 같은 건배사잖아요.”
그녀의 말을 들은 실장님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약간 붉히며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럼 요즘은 어떻게 해?”
“누가 무게 잡으며 건배사 하는 거 자체가 아재라는 증거에요. 요즘은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우리 음원 1위 가수의 이름을 예로 사용해 볼까요? 이서준 마신다 이서준 마신다, 이 짝짝짝 서 짝짝짝 준 짝짝짝 원~샷! 뭐 이렇게 해야 요즘 세대죠.”
나도 아직 20대인데 이렇게 건배하는 건 처음 들었다.
하긴 대학 때도 작곡 배운다고 친구들과 거의 제대로 어울린 적이 없으니 이런 잡기에 약한 것은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은비와 찬식이는 서로 눈을 맞추며 의견을 조율하더니 실장님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우리 실장님도 함께해 주시는 뜻깊은 회식 자리인 만큼 세대 통합의 버전으로 건배사를 한번 해 보죠. 그냥 옛날식으로 건배하자는 말입니다. 어때요?”
“좋지. 원래 클래식은 위대한 법이야. 그럼 실장님이 예전에 했다는 위하여로 할까요?”
그들의 제의를 들은 실장님 역시 웃으며 잔을 들었다.
“그럼 오늘은 우리들의 슈퍼스타 이서준을 위하여로 할까?”
“크크, 아재삘이라 더 좋네요. 복고 느낌이에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저도 좋습니다.”
한 번의 건배를 위해 역사적 고찰까지 하며 논의한 세 사람은 극적 화합에 성공한 후 약속했다는 듯이 나를 동시에 쳐다봤다.
아마 나보고 선창하라는 의미의 행동이겠지?
근데, 내 입으로 슈퍼스타 이서준 어쩌고 하면 너무 웃긴 거 아닌가?
은비는 쑥스러워하는 내 마음을 표정만 보고도 읽었는지 고맙게도 본인이 나서 주었다.
“우리의 연예인이 너무 부끄러워하는 관계로 제가 대신 선창하도록 하겠습니다. 슈퍼스타 이서준을 위하여!”
“위하여!”
은비의 솔선수범 덕분에 우리는 드디어 건배에 성공했다.
건배에 성공한 우리는 맛있는 음식과 술 덕분에 아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덕분에 나도 평소와 다르게 과음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알딸딸한 술이 취하는 기분이 들어 가게 밖으로 잠깐 나왔다.
찬바람을 쐬며 정신을 차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니 마침 담배를 태우기 위해 나보다 먼저 밖으로 나갔던 실장님의 흡연 장면이 눈에 보였다.
“괜찮아?”
실장님의 물음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약간 취한 거 같아요. 원체 술을 못 마셔서… 아버지는 약주를 좀 하시는데 전 엄마를 닮았나 봐요.”
“그럼 바로 숙소로 갈까?”
“아뇨. 애들이 즐거워하니 조금 더 먹고 마시다 가요. 저도 오늘은 더 달리고 싶네요.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잖아요.”
“후후, 그래 그러자.”
난 찬바람을 맞으며 밤하늘을 바라봤다.
옆에서 남은 담배를 마저 피운 실장님이 내게 말했다.
“요즘 회사에 엄청나게 연락 오는 건 알지?”
“그래요? 전 몰랐어요.”
“회사에서 네게 전달을 안 했나 보군. 하긴 내가 말할 거라 생각해서 안 했을 수도 있을 거야.”
문득 무슨 내용의 연락이 오는지가 궁금해졌다.
“무슨 연락이 그렇게 많이 오는데요?”
“종류야 무척 다양하지. 광고도 있고, 행사 제의도 있어. 그리고 다른 아티스트한테 콜라보 제의도 많이 오고.”
광고와 행사라…….
이런 단어들을 듣게 되니 내가 진짜 가수로 데뷔한 것이 다시 한번 실감 났다.
“그럼 광고나 행사를 하는 거예요?”
내 물음에 실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소속된 회사가 JYK라는 사실을 잊지 마. 이 회사에서는 푼돈 버는 앵벌이는 안 해도 돼. 만약 네가 중소 기획사에 있었으면 당연히 해야 했겠지만. 그런 형편이 아니고 회사가 빵빵한 우리는 최대한 굵직한 것만 하도록 하자.”
“굵직한 거요? 그게 어떤 거예요?”
내 이어진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실장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행사라면 대학 행사 같은 금액도 크고 파급력도 좋은 놈들만 골라서 해야지. 그리고 광고도 대기업에서 들어온 거만 하고.”
이미 계획이 있으셨는지 굳이 내가 묻지 않았는데도 오늘 이후의 내 활동 계획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