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미니 앨범(3)
회사 안에 들어가니 이미 이야기가 되었는지 데스크에 앉아 있던 직원이 직접 앞장서서 안내해 주었다.
그녀 뒤를 따라 들어가니 내 작업실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방이 나왔다.
아마 작업실일 것이라 예상되는 방이었다.
방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니 드디어 오늘 내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상대인 이세린 선배의 실제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서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후배인 내가 먼저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랬더니 이세린 선배도 약간 수줍어하는 모습으로 내게 인사를 전해 왔다.
우리 둘과 함께하고 있는 조 실장님과 우리 실장님과 이세린 선배의 매니저로 보이는 여자분과도 모두 인사를 나누었다.
첫 만남이라 모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는데, 대화의 물꼬는 조 실장님이 먼저 터 주셨다.
“고맙게도 먼저 콜라보 제의를 해 주셨는데, 혹시 생각해 둔 컨셉 같은 것이 있나요?”
그리고 저쪽도 배영숙 팀장이란 분이 먼저 나서서 대답을 하셨다.
“우리 세린이가 콜라보를 위해 만들어 둔 곡이 있어요. 맞지, 세린아?”
그녀의 물음에 이세린 선배는 많이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이서준 씨를 생각하며 쓴 곡이 있는데… 아, 생각했다는 말은 다른 뜻이 아니라 이서준 씨 노래가 저한테 자극이 되어 곡을 쓰, 쓰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오, 오해하지 마세요.”
부끄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가 혼자 놀라서 말까지 더듬으며 변명하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그래도 나보다 나이도 많고 선배인데 귀엽다는 말을 하면 실례겠지?
실제로 보니까 TV 화면 속에서 보던 체구보다 훨씬 더 작은 체형을 가진 사람이란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머리도 주먹만 하고…….
저 작은 머리에 저렇게 큰 눈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어울렸다.
“하하하, 오해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두 분 말씀 들어 보니 곡 이외에는 만들어진 게 없다는 말이네요. 그럼 이러는 게 어떨까요?”
조 실장님의 말에 배영숙 팀장님이 대꾸했다.
“어떻게요?”
“일단 함께 작업할 두 사람이 친해지는 시간을 먼저 가지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요? 새로 만들었다는 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요.”
“오, 괜찮은 생각 같네요. 어차피 콜라보하려면 두 사람 모두가 마음에 드는 곡이 있어야 하니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주는 것도 괜찮을 듯하네요.”
자기네들끼리 그렇게 의견 조율을 해 버리더니 자리에서 일어서 함께 나가 버렸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뇨, 아직입니다. 혹시 이 근처에 맛있는 식당 있으면 소개 좀 해 주시겠습니까?”
“하하, 그냥 저랑 같이 드시러 가시죠. 저도 마침 배가 고프네요. 제가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찌개 집으로 모시고 갈게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가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아시고… 하하, 얼른 가시죠. 맛있는 식당을 알려 주시고 또 같이 먹어 주시기까지 한다니 식사비는 제가 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나를 보며 오늘 처음 봤다고 하더니 마치 10년 이상 알고 지낸 친한 지인처럼 죽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난 황당한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 두 사람.
이세린 선배는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열심히 낯가림 중이었다.
아무래도 후배인 내가 그래도 먼저 다가가는 게 도리겠지?
“선배님, 식사는 하셨어요?”
“…네.”
“…….”
“…….”
단 한마디를 던지고 곧바로 건넬 대화거리가 바닥이 났다는 사실에 나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몇 시간 같은 몇 분이 흘렀다.
편한 사이가 되라고 우리 두 사람이 작업실이 남겨진 건데 ‘이러다 더 불편한 사이가 될 수도 있겠다.’라는 걱정이 생길 정도였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용기를 내어 이세린 선배에게 물었다.
“혹시 저기 있는 피아노를 좀 쳐도 될까요?”
작업실에 의외로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기에 나는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작업실 주인에게 허락을 구했다.
“네, 치셔도 돼요.”
허락의 말은 금방 떨어졌지만, 이세린 선배의 눈은 ‘갑자기 피아노는 왜 친다고 하는 거야?’라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제가 왜 갑자기 피아노를 치려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세요?
이유는 다른 거 없어요.
선배랑 더 친해지려고 연주하는 겁니다.
우리 같이 음악 하는 사람들이니 음악만큼 좋은 소통의 창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배의 허락을 얻은 나는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냅다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내 연주가 시작되자 여전히 낯가림을 시전 중인 이세린 선배의 귀가 쫑긋하는 듯한 반응이 나왔다.
그렇지.
내가 이걸 노리고 연주를 시작한 거니 반응이 오셔야 정상이지.
계속 연주하는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힐끔거리던 이세린 선배는, 결국에는 참을 수 없었는지 부끄러워 더욱 붉어진 얼굴로 내게 물었다.
“지금 연주… 하시는 곡이 혹시 제 노랜가요?”
드디어 내가 원하던 장면이 나왔기에 난 한결 마음이 편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네, 선배님의 데뷔곡인 ‘길을 잃다’입니다. 제가 이 노래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내 말을 들은 선배님은 조금 놀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다시 말했다.
“그 노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생각보다 잘 안됐거든요. 근데 어떻게 그 노래를 아시네요.”
“제가 선배님이 앞에 있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로 선배님 노래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곡도 좀 아는 편입니다. 저번 앨범에서는 ‘창틀’이란 노래가 전 참 좋더라고요. 근데 콘서트에서 부르신 거 말고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 번도 부르신 적 없죠?”
“그걸 어떻게…….”
내가 너무 세세한 것까지 아는 듯 보이자 선배님은 내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열리고 있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 위해 난 최선을 다해 연주하기 시작했다.
♪♪♩♩
“어, 그건…….”
“선배님 3집에 있던 ‘일기장’이란 노래죠. 원래는 어쿠스틱 기타 반주 하나로 녹음하셨죠? 그래서 제가 피아노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 예전에 작업실에서 이렇게 편곡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재미 삼아 했던 행동인데… 이렇게 실제 노래 주인에게 들려주게 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입은 열심히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내 손은 절대 쉬지 않았다.
일기장이란 노래의 내 피아노 편곡 버전을 듣고 있던 이세린 선배는, 꽤 마음에 들었는지 이젠 확실히 밝아진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내 연주에 빠져들고 있었다.
* * *
식사를 마치고 나온 조상구 실장과 배영숙 팀장은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고 나온 덕분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길을 걸었다.
길가에 있던 테이크아웃 커피까지 한 손에 든 채 걸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가득 빨아 마신 배영숙 팀장은, 곧 걱정이 드는지 조상구 실장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빨리 친해지라는 생각에서 그러긴 했는데… 너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네요.”
“시간을 줄여 보려는 욕심에 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긴 했죠. 근데… 우리 서준이가 의외로 붙임성이 있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친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세린의 낯가림이 얼마나 심한지 배영숙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조상구 실장의 기대 섞인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걱정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냥 조상구 실장의 말처럼 되기를 바라는 방법뿐이었다.
그래서 애써 밝은 표정으로 조상구 실장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세린이가 좀 더 편한 얼굴로 말하고 있는 모습을 기대하며 어서 빨리 작업실로 다시 갈까요?”
“네, 그러시죠.”
속으로는 큰 걱정을 안고 있던 두 사람이기에 작업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척 빨랐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 곧 작업실에 도착했다.
걱정을 한가득 안고 작업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간 두 사람은, 자신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의외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의 눈에 비친 두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오누이 사이처럼 정답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하, 나도 제영이 오빠 정말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해. 저번에 나랑 식사하는데, 너한테 한 것처럼 나한테도 똑같이 굴더라니까.”
“그래요? 하하, 이제 보니 그 형님 상습범이시네. 하하하.”
두 사람이 어서 빨리 친해지기를 바랐지만, 이 정도로 가까워지길 기대한 것은 아니었기에 보고 있던 조상구 실장과 배영숙 팀장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야 두 사람이 다시 작업실로 온 걸 깨달은 이세린은, 배영숙 팀장을 향해 이렇게 부탁했다.
“어, 언니 식사하고 왔어? 언니, 우리도 배가 고프니까 뭐 좀 시켜 먹었으면 좋겠어. 주문 좀 해 줄래?”
지금 이 상황에 여전히 적응 못 한 배영숙은, 당황한 탓에 약간 더듬거리는 말투로 이세린의 말을 받았다.
“어, 어 그, 그래. 뭐 시켜 줄까?”
이세린은 이서준을 보며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
“우리 서준이 뭐 먹을래?”
이세린의 물음에 이서준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누나랑 이야기를 계속 나누면서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주문했으며 좋겠는데… 혹시 햄버거 같은 것도 좋아하세요? 아, 체중 조절 때문에 못 드시는 거 아니에요?”
“흐흐, 나 의외로 먹어도 살이 안 쪄.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 제대로 먹은 것도 없고. 그러니 햄버거 먹어도 될 거 같아.”
“그럼 햄버거 먹어요, 우리.”
“그래, 메뉴는 햄버거로 결정한다.”
가장 어려운 메뉴 선정을 끝낸 이세린은 고개를 돌려 배영숙 팀장에게 부탁했다.
“언니, 우리 계속 작업하고 있을 테니까 햄버거 좀 주문해 줄 수 있어?”
“어, 그래. 두 사람은 계속 작업해. 내가 맛있는 햄버거랑 샐러드까지 주문해서 가지고 올게.”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그녀는 햄버거를 주문하기 위해 얼른 밖으로 향했다.
배영숙 옆에 서 있던 조상구도 자신이 작업실에 없는 게 두 사람이 작업하기에 더 나을 거 같다는 판단에 배영숙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왜 이렇게 빨리 친해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짐작되지 않는 상태라 작업실을 빠져나가던 조상구는 고개를 계속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 * *
가수가 곡을 한 곡 발표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그리고 노래라는 것이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면이 많은 예술 장르이기 때문에 아티스트가 왜 이런 노래를 만들었는지 그 숨은 과정을 아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불면의 밤을 여러 날 지새며 고민한 피와 땀이 담긴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자신이 만든 노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아주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그런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면 무슨 기분이 들까?
적어도 나는 이세린 선배의 노래들에 담긴 메시지를 정확히 읽고 있다고 자부했다.
왠지 이런 생각으로 곡을 만들었겠다는 생각이 노래를 들을 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들을 이세린 선배를 향해 말했고, 그것을 들은 선배는 내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버렸다.
햄버거와 샐러드를 맛있게 나눠 먹고 있던 와중에 나는 이세린 선배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선배, 근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일 중요한 일을 잊어버린 거 같아요.”
내 말을 들은 선배는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제일 중요한 거? 그게 뭔데?”
“선배가 만들어 놓은 노래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거 듣는 걸 깜빡 잊고 지금까지 딴짓만 하고 있었어요.”
“어머, 그렇네. 그럼 지금이라도 들을까?”
“네.”
햄버거도 대충 다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만들었다는 곡을 함께 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세린 선배가 자신의 핸드폰에 담겨 있던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집중한 채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난 뒤 선배가 내게 물었다.
“노래 어때?”
“…좋은데요.”
선배는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하하, 너도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타입이구나. 나랑 비슷한 사람이네.”
그렇게 웃던 선배는 웃는 얼굴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노래가 별로라면 그렇다고 해도 돼. 나 보기와 다르게 그런 말에 상처 안 받아. 생각보다 털털하다고.”
나는 선배의 말을 믿고 솔직한 감상평을 말했다.
“노래는 괜찮은데요. 우리 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네요. 솔직히 선배가 혼자 부르면 괜찮은 노래 같아요.”
“그래?”
이미 만들어 둔 노래는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선배를 향해 이렇게 제안했다.
“선배, 그냥 우리 지금 노래를 함께 만들어 보면 어때요?”
“지금?”
“네, 바로 지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