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65화 (65/189)

65. love letter(3)

이제는 노래를 녹음할 차례였다.

노래의 시작은 나부터였다.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가려는 나에게 세린 선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서준아, 근데 정말 여자 키로 가도 되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인 너한테는 여자 키로 만들어진 이 노래 음역대가 너무 부담스러울 거 같은데… 음역대가 넓은 너라면 한두 번은 충분히 부를 수는 있겠지만, 활동하려면 계속 이렇게 여자 키 노래를 불러야 할 텐데 그러다 목 상할까 봐 너무 걱정돼.”

선배의 걱정에 난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제일 고음 부분에서는 어차피 제가 화음 넣을 거잖아요. 그리고 힘들면 가성 쓸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마. 지금은 네가 데뷔해서 목이 아주 쌩쌩하지만 지금 너무 혹사하면 나중에 크게 고생해. 나도 성대 결절 왔을 때 가수 생활 다시 못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과 걱정에 며칠 밤을 울며 지샜어.”

“네, 신경 쓸 테니 염려하지 마세요.”

세린 선배의 걱정과 당부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젠 제법 많이 친해졌다는 느낌이 담긴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TV 화면 속의 연예인 중의 연예인 이세린과 많이 친해졌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예전과 달라진 내 상황이 제대로 느껴졌다.

‘나도 연예인이 다 됐네. 이세린과 친한 사이도 되고 말이야.’

군대에서 이세린을 보며 환호했던 동료들이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면 부러워 죽을 거 같다는 엉뚱한 생각과 함께 나는 녹음 부스 안으로 걸어갔다.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간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잡았다.

이윽고 감정이 잡힌다는 느낌이 든 나는, 녹음 부스 밖의 세린 선배를 향해 말했다.

“준비 다 됐습니다.”

“오케이, 그럼 시작할게.”

“네.”

잠시 후 쓰고 있던 헤드폰에서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노래의 반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입도 열렸다.

♪잘 지내고 있나요?♩

♪내가 지금 아픈 것만큼 당신도 아프지 않을까 걱정돼.♩

생각보다 목소리가 잘 나온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나는 곧 노래에 집중했다.

그렇게 전반부 내 파트를 다 부른 나는, 고개를 들어 부스 밖의 세린 선배를 쳐다봤다.

방금 부른 내 노래가 어땠냐는 물음이 담긴 행동이었다.

부스 밖의 선배는 나를 보며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생각보다 좋은 반응에 나는 기분 좋게 녹음 부스를 빠져나왔다.

“노래 너~무 좋다. 만들 때 살짝 불러 본 적은 있지만, 진짜 이렇게 제대로 들으니 정말 좋은데…….”

“그 정도로 괜찮았어요?”

“응, 정말 좋았어. 그래서 네가 노래를 정말 잘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다시 들고 있어.”

“하하하, 같이 만들었잖아요.”

“엄밀히 말하면 네가 80% 이상 만들었지. 난 조금 거들었을 뿐이고. 그래서 든 생각인데… 편곡에는 네 이름만 올려. 난 작사, 작곡에 공동으로 이름을 올려 준 것만 해도 너무 과분해.”

“나중에 딴말하지 마세요. 이거 잘되면 음원 수입 엄청날지도 몰라요.”

“흐흐, 그런 일 생기면 그때 가서 후회하지 뭐. 대신 맛있는 밥 많이 사 주면 되잖아.”

“네, 알겠습니다.”

역시 가수들은 녹음이 잘되면 그것보다 기쁜 일은 없었다.

첫 녹음을 맡은 내 파트 녹음이 잘 되었으니 우리 둘 사이에서 이렇게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마 녹음이 잘 안 되었다면 지금 완전히 차가운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나 다음으로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가야 할 세린 선배는 약간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하는 건데… 네가 스타트를 너무 잘 끊어 놔서 내가 오히려 부담되네.”

선배 입장에서 후배인 나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시나 보다.

나는 그런 선배를 향해 진심으로 응원했다.

“선배가 부른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만든 노래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마시고 편하게 부르세요. 이 노래는 선배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에요.”

“야, 방금 그 말이 더 부담된다. 날 위해 만들었는데 내가 못 부르면 어떡해?”

응원한답시고 더 부담을 주는 나를 향해 눈을 흘긴 세린 선배는, 그 모습 그대로 녹음실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잠깐 눈을 감고 감정을 잡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던 선배는, 이윽고 준비가 되었는지 날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는 그런 선배의 신호를 보고 노래를 틀었다.

다시 시작된 노래.

노래에 담긴 감성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내가 방금 부른 노래도 함께 흘러나오도록 만들었다.

내가 부른 노래의 앞부분을 눈을 감은 채 듣고 있던 세린 선배는 드디어 자신의 파트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고 싶어요. 그리워요.♩

♪당신과 이제 만날 수 없단 사실이 내 심장을 너무 아프게 해요.♩

듣자마자 역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의 멋진 노래였다.

선배 특유의 유니크한 보이스도 정말 최고였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역시 목소리에 담겨 있는 감성이었다.

진짜 노래 속 여자 주인공이 부르는 거라는 생각이 곧바로 들 정도로 아픈 마음에 그녀의 목소리에 제대로 담겨 있었다.

그렇게 선배의 녹음도 훌륭히 끝나고 드디어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후렴 부분을 녹음할 차례가 되었다.

원래는 이것 역시 따로 녹음해야 정상이지만, 첫 듀엣 파트 녹음 때는 일부러 함께 부르는 연습 형태의 녹음을 진행해 보기로 했다.

나중에 따로 녹음할 때도 지금의 듀엣 한 기억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런 이유로 선배와 나는 녹음 부스 안에 함께 노래를 부르기 위해 들어갔다.

두 사람 모두 감정 때문에 눈을 감은 채 앞서 녹음한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가 함께 불러야 하는 후렴 부분이 시작됐다.

♩너무 사랑해요. 헤어질 수 없어요. 다시는 우리 서로 떨어지지 않기로 해요.♪

♩어떤 어려움이 우리를 다시 갈라놓으려 해도 지금 잡은 손 절대 놓지 말아요.♪

나는 지금은 가수 이서준이 아니라 노래 속 사연의 남자 주인공이 되어 눈앞의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둘이서 약속하고 다짐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내 감정도 어느덧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메인 음을 부르는 세린 선배와 달리 화음을 주로 부르던 나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조금 있었기에 사전에 아무런 협의가 안 된 애드리브 라인을 나도 모르게 불러 버렸다.

♪두~ 번 다시, 두 번 다시 헤어지지 말아요. 오~우 오우 예~~~~ 너무 사랑~~해♪

녹음 전 생각대로라면 가성으로 처리해야 할 정도의 높은 음이 나오는 파트였지만, 삘이 온 나는 그런 사실도 어느덧 잊어버린 채 진성으로 불러 버렸다.

너무 집중해서 정신없이 끝난 첫 녹음.

과몰입의 후유증으로 약간 지친 우리 두 사람은, 녹음 부스를 좀비처럼 걸어 나와 녹음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깐 침묵을 동반한 휴식을 취한 뒤 나는 선배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녹음한 거 들어 볼까요? 어떻게 됐나 너무 궁금하네요.”

“나도 궁금하네. 어서 들어 보자.”

다시 녹음실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우리 두 사람의 노래.

우리는 조용히 집중해서 첫 녹음 버전을 들었다.

다 듣고 난 후 잠시 고민하던 나는 세린 선배를 향해 먼저 제안했다.

“선배,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요… 우리 그냥 녹음실에서 원테이크 녹음을 해 보면 어떨까요?”

“원테이크 녹음?”

“네.”

“…….”

선배는 내 제안에 조금 놀랐는지 선뜻 입을 열어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선배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원테이크 녹음이란 보통의 녹음처럼 부분 부분 끊어서 녹음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번에 녹음하는 녹음 방식을 뜻했다.

보통의 녹음일 때는 실수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그냥 중간에 끊고 다시 불러서 가장 좋았던 녹음 버전을 편집해 음원을 완성하곤 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녹음할 경우 너무 노래의 완성도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감정이 조금 끊기거나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간혹 있었다.

워낙 여러 번 반복해서 부르다 보니 노래 전체를 관조하는 느낌이 끊기면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일관된 감정을 중시해서 노래 전체의 감성을 만들고 싶을 때는 평소와 달리 한 번에 녹음하는 방식을 사용하곤 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 내가 제안한 원테이크 녹음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방금 들은 첫 녹음 때문이었다.

조금 전 두 사람이 동시에 녹음 부스에 들어가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의 질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미흡하다고 할 수 있지만, 감정이 확실히 살아 있음을 느꼈고 더불어 두 사람의 감정이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앞부분의 따로 녹음된 부분은 상대적으로 이런 맛이 적었다.

그래서 내가 원테이크로 가자는 말을 꺼낸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선배는 곧 나를 보며 물었다.

“감정 때문에?”

“네. 방금 둘이 함께 부른 부분이 따로 부른 부분보다 전 훨씬 좋게 들렸어요. 이 노래는 우리 두 사람의 감정이 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 제 생각에는 이렇게 녹음하는 게 나중에 우리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이 훨씬 더 쉽게 공감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내 말을 듣고 조금 더 고민하던 선배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번 해 보자. 해 보고 안 되면 다시 녹음하지 뭐.”

“하하, 우리 세린 선배 결정 한번 시원하게 해 주시네요.”

“이거 왜 이래? 나 화끈한 성격이야. 너 몰랐어?”

“지금 알았습니다. 확실하게요.”

다행히 세린 선배는 내 제안을 받아 주셨고, 우리는 곧바로 함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녹음 부스로 걸어가던 선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 후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맞다. 아까 노래할 때 애드리브 했지?”

“애드리브요? 아, 제가 좀 과했죠? 이번에는 안 할게요. 죄송합니다.”

나는 애드리브를 평소에 잘 안 하는 세린 선배의 스타일을 알기에 바로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선배가 내 애드리브를 지적하려고 말을 꺼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짐작은 완전히 틀렸다.

“아니, 빼지 마. 좋았어. 이번에는 더 느낌대로 해 보라고 하고 싶었어. 조금 더 과해도 좋을 거 같아.”

“진짜요? 의외네요. 선배는 노래에 애드리브 넣는 거 싫어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애드리브 싫어한다고?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선배 노래에 애드리브 라인이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노래의 완성도 때문에 일부러 안 넣으시려는 자신만의 노래 철학이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거 사실과 완전 달라. 나 애드리브 좋아해. 부른 사람도 짜릿하지만, 듣는 사람도 짜릿하잖아. 내 노래에 애드리브 라인이 거의 없는 이유는 내가 애드리브를 못해서 그래. 나도 내가 그런 거 잘하는 편이었으면 넣고 싶었어.”

완전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 나였다.

좋아, 그럼 허락을 받았으니 제대로 감성 터지는 노래를 불러도 될 듯했다.

“근데, 네 애드리브 엄청 높던데… 너 sight에서 고음 낼 때 최고 음높이가 얼마였지?”

“3옥타브 레요”

“그때보다 반음 정도 더 높지 않았나?”

“아마 그 정도 될 겁니다. 정확한 건 건반을 눌러 봐야 알겠죠.”

“대단해. 그 정도로 고음이 나와? 하지만 무리해서는 하지 마. 아까 내가 한 잔소리 기억하지?”

“네. 할머니.”

“어쭈, 이게 누구 보고 할머니래? 너 잔소리쟁이 할머니 주먹맛 좀 볼 테야?”

우리 둘은 다시 장난을 치며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다시 우리가 만든 ‘love letter’ 속에 흠뻑 빠져들 시간이었다.

* * *

녹음실에서 조용히 두 사람이 녹음하는 걸 보고 있던 조상구 실장과 배영숙 팀장은, 녹음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의견을 나눴다.

“팀장님 듣기에는 어때요? 전 정말 좋은 거 같아요.”

조상구 실장의 의견에 배영숙 팀장이 반색하며 말했다.

“저도 그래요. 안 그래도 제가 먼저 실장님께 물어보려고 했는데… 두 사람의 호흡도 좋고, 무엇보다 지금 녹음하는 저 노래가 너무 좋네요. 우리 세린이나 서준 씨 두 사람을 대표하는 명곡이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거 같아 저 혼자 약간 감동하고 있는 중이에요.”

조상구 실장 역시 배영숙 팀장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한국형 발라드 음악을 좋아하는 조상구 실장의 귀에는 지금 이 노래가 이서준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sight’보다 더 좋게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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