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66화 (66/189)

66. 바쁘다 바빠

두 사람이 연예계 쪽에서 일한 기간만 합쳐도 반백 년이 넘었다.

그런 경력자들의 귀에 최고로 들릴 정도라면 이 노래의 성공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한 가지만 남게 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노래가 언제 뜨냐는 시기적 문제만 남았네요.”

“그렇죠.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을 거라는 건 확신해도 좋을 거 같아요.”

“결국, 이 노래가 빨리 못 뜨면 우리 탓이고요.”

“하하, 이야기의 끝이 그렇게 결론 나나요? 너무 부담스러운 결론이네요.”

“그래도 노래가 별로라서 부담이 없는 것보다는 노래가 너무 좋아 부담이 큰 게 낫지 않습니까?”

“그거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부담스러운 게 훨씬 낫죠.”

노래를 잘 만들고 잘 부르는 것이 가수와 창작자의 몫이라면 그 노래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하는 것은 회사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이서준과 이세린의 매니저로서 회사 사람들과 잘 협력해서 노래를 알려야 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책무를 가진 두 사람이 현재 작업 진행 상황을 확인하니 회사 차원에서 아주 빠르게 홍보 계획을 세울 필요성이 느껴졌다.

“두 회사 실무진끼리 회의를 한번 해야겠네요. 그것도 아주 빨리요.”

조상구 실장의 말에 배영숙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네, 그래야죠. 두 사람 작업하는 거 보니까 제 생각에도 빠르게 미팅을 해야 할 거 같네요. 전 오늘 바로 회사에 건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실무자들이 모두 모여 미팅을 하도록 하죠.”

“좋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움직일 때가 되었기에 두 실무진은 일단 간략하게 일정을 조율했다.

“방송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할지 혹시 생각해 둔 게 있나요?”

조상구 실장의 물음에 배영숙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 생각해 둔 건 없어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조상구 실장은 자신의 의견을 그녀에게 전달했다.

“두 사람이 함께 꾸미는 콘서트 형식의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거기서 신곡도 발표하고요.”

그의 의견을 들은 배영숙 팀장은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방송이 만들어진다면 그야말로 최고이기는 한데… 가능할까요? 그 정도 수준이면 저희가 하고 싶다고 방송국에서 쉽게 만들어 줄 정도의 방송 규모는 아닌데요…….”

그녀의 걱정이 뭔지 느낀 조상구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저도 방송국에 그냥 건의해 본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건의해 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셨군요. 전 너무 어려운 걸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셔서 조금 놀랐어요.”

“제가 그랬습니까? 하하, 일개 매니저 주제에 잠시 제가 착각을 했나 봅니다. 하하하.”

조상구 실장은 웃으며 말을 마무리했다.

사실 방송국은 항상 연예인에게 갑이었다.

그런 방송국에서 자신들 스스로가 그럴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는데, 기획사에서 요구한다고 그런 프로그램을 편성해 줄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내심 조상구 실장은 자신이 있었다.

‘이세린 정도라면 방송국에서도 절대 무시 못 하지. 거기다가 요즘 잘 나가는 우리 서준이까지 포함되면… 한번 만들어 볼 만해.’

조상구 실장의 생각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세린에 대한 평가를 그녀의 소속사에서 제일 박하게 하고 있었다.

그녀 정도의 경력과 영향력이라면 방송국 입장에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기획이었고, 여기에 요즘 가장 핫한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이서준까지 포함된 콜라보 기획이라면 그들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모든 방송국이 이런 기획을 들으면 서로 하겠다고 나올 수도 있는 아이템인데, 항상 ‘을’의 입장에서 방송국을 상대하다 보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거라 여겨졌다.

그리고 자신과 친한 방송국 내 인사가 나서 주면 충분히 성사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아직 아무것도 만들어진 게 없었기 때문에 굳이 미리 설레발을 치는 우를 범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방송국 관계자랑 먼저 만난 후 성과가 있을 때 다시 꺼낼 이야기였기에 지금은 그저 웃으며 넘어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조상구 실장의 눈은 다시 녹음 중인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지으며 생각했다.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은데…….’

오랜 시간 쉬다가 복귀한 그였기에 일이 많아지는 것은 개인적으로 기쁜 일이었다.

* * *

요즘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은 최근 가장 바쁜 날이 될 수도 있었다.

그만큼 할 일이 많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씻고 회사로 향했다.

오늘은 뮤직비디오 촬영 스케줄이 있었는데, 오전에 잠깐 비는 시간에도 회사로 나가 미뤘던 일을 처리해야 했다.

내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와서 연습하고 있던 연경의 모습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어, 반가워 연경아. 일찍 왔네.”

“저도 조금 전에 왔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응, 시리얼 먹었어.”

함께 일해 보자는 내 제안을 거절했던 연경이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일단 개인적인 상황이 변하게 되어 이제야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시 연락을 해 왔고, 난 기쁜 마음으로 연경이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지금 그녀는 다시 JYK 소속 연습생 신분이 되었다.

뭐 정확하게는 내가 키우는 신인 가수 같은 개념이었지만, 일단 회사 내의 공식적 신분은 연습생이었다.

연경이가 다시 JYK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일단 우리 회사 대표인 김진영 형님이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형님 입장은 이해했다.

MBT라는 회사에서 걸그룹 활동을 이미 했던 가수를 굳이 JYK에서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우리 회사 안에서만 찾아봐도 아직 데뷔하지 못한 실력파 연습생들이 줄을 서서 데뷔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속된 표현으로 데뷔했지만 뜨지도 못한 듣보잡 여자 연예인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 입장은 달랐다.

내가 만들어 놓은 곡 ‘위로’는 연경이가 불러 줘야 할 곡이었다.

그리고 난 연경이가 머릿속에 그렸던 이미지대로만 성장한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여자 가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랬기에 자신 있게 형님에게 말을 꺼낸 것이다.

일단 미팅을 했다.

내가 강하게 추천하니 형님도 만나지 않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거기서 연경이는 내가 만든 ‘위로’를 처음 남 앞에서 불렀다.

아직 내가 원하는 ‘위로’가 아니었지만, 우리 형님도 보통 분이 아니다 보니 노래를 듣자마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아마 연경이의 노래를 듣고 내가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위로’의 모습이 형님의 머릿속에 짜잔 하고 나타났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감동한 형님은 특유의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서준아, 네 말이 맞아. 네가 왜 연경이가 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지 알 거 같아. 그리고 쟤 가능성 있어.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 더 연습하면 미국의 사모라 프랭키 같은 가수가 될 거 같아.”

참고로 난 사모라 프랭키라는 가수를 몰랐다.

내가 연경이를 통해 본 가수는 위트니 휴스턴이었지만, 두 사람의 머릿속 배경이 달라 그려지는 그림도 차이가 난 모양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거론한 두 가수가 미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디바가 분명하니 연경이가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에는 같은 의견을 낸 셈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연경이는 다시 JYK에 들어왔고, 내가 과제로 준 노래를 듣고 연습하는 데 모든 시간을 쓰고 있었다.

“연습은 잘 돼?”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근데 연습을 하다 보니 걱정도 생겼어요.”

“걱정? 무슨 걱정?”

“이렇게 많이 듣다 따라 부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위트니 휴스턴을 모창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그러다 보면 제 개성이 사라지잖아요.”

“음… 그런 걱정이 생길 수도 있겠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사실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걱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연경이를 보며 자세히 설명했다.

“모방이라는 것이 과연 나쁜 걸까?”

“네?”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연경이가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모방이 나쁘냐고 물었어.”

그제야 내 질문을 이해한 연경이가 잠깐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무턱대고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을 거 같아요.”

“맞아. 근데 음악적으로 봤을 때 모방은 긍정적인 의미의 행위야. 물론 심해지면 부정적으로 변하겠지. 모방이 심해지면 표절이 되기도 하니까.”

나는 예전부터 생각하던 좋은 가수가 되기 위한 연습 방법 하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창은 나쁜 게 아니야. 자신이 좋아하거나 닮고 싶은 가수의 비법을 그대로 배우는 연습이니까. 그 가수가 노래 부를 때 어떻게 숨을 쉬고 높은 고음은 어떻게 내는지를 굳이 배우려 하지 않아도 그저 듣고 흉내를 내다 보면 어느새 따라 부르던 가수처럼 노래하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을 거야. 거기에 자신의 개성을 더한다면 그보다 좋은 트레이닝 방법은 없을 거라고 확신해.”

그리고 내가 연경이에게 위트니 휴스턴을 따라 하라고 권한 이유는 그녀의 창법을 흉내 내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연습을 시킨 이유는 창법을 흉내 내라는 뜻은 아니었어. 내 개인적 판단으로 노래에 소울을 담는 능력이 팝 역사상 가장 좋았던 가수가 바로 위트니 휴스턴이었어. 난 네가 그녀에게 노래에 소울을 담는 걸 배우길 바라서 권한 거야.”

내 설명을 듣고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한 모양인지 연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를 보고 조금이라도 이해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연습실 문이 열리며 내가 기다리던 손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선배였기에 벌떡 일어나 먼저 인사를 건네야 했다.

“어, 오셨어요?”

“그래, 조금 늦었지. 그리고 바쁜데 시간 내 줘서 너무 고마워.”

내 작업실로 찾아온 손님은 비스트 보이즈의 리더이자 메인 보컬인 준명 선배였다.

최근에 선배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 오셔서 서둘러 약속 시각을 잡았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같은 회사라 그런지 선배는 내 근황에 대해 알고 계셨다.

“너 이세린하고 콜라보 작업한다며? 콜라보 앨범 때문에 바쁜 텐데 그런 와중에도 시간을 빼 주다니… 거듭 말하지만, 정말 고마워.”

“하하, 제가 예전부터 선배님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뵙게 될 기회가 생겼는데, 없는 시간도 내야지요.”

“네가 내 팬이었다고? 이거 기분 좋은 소리네. 그럼 나 방송 나가서 네가 내 팬이란 사실 말해도 돼? 내 팬 중에 요즘 최고로 잘 나가는 이서준도 있다고 자랑 좀 하게 말이야. 요즘은 자랑할 게 별로 없어서 말이야.”

“당연히 되죠. 선배님, 그럼 저도 선배님 팬이었다는 사실을 방송에서 말해도 될까요?”

“당연하지. 아주 방송 나갈 때마다 얘기하도록 해.”

“넵. 그럼 선배님께 직접 허락까지 받았으니 자주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

사실 팬이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워낙 뜬 선배들이다 보니 노래는 나도 잘 알았지만, 팬이라 부를 정도로 좋아한 적은 없었다.

그냥 처음으로 만나게 된 선배인지라 기분 좋으시라는 의미에서 마구마구 립서비스를 날린 것이다.

약효가 제대로 먹혔는지 아침인데도 준명 선배의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

때론 상대를 배려한 하얀 거짓말이 원활한 사회생활의 윤활유로 작용하는 법이었다.

기분 좋게 웃던 선배님은 드디어 날 보자고 한 용건을 꺼내셨다.

“내가 널 보자고 한 건 노래 때문이야.”

“노래요?”

“응, 이제 얼마 있으면 우리 멤버 전원이 군에서 전역을 하게 돼. 그럼 오랜만에 완전체 활동이 가능해진 셈이지. 그래서 활동 곡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진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곡이 없어 고민이야.”

선배님 설명을 들어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컴백 준비를 해 온 모양이었다.

컴백곡을 만들기 위해 회사 내 작곡가들과도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눠 왔었고, 본인 스스로도 계속 곡을 만들어 보았지만,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곡이 없다는 말이었다.

“예전에 네 노래 청음회 때 나도 있었거든. 그때 네 노래를 처음으로 들었지.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 큰 충격이었어. 네가 만든 노래가 정말 신선한 느낌이었어. 그래서 타이틀로 삼을 만한 노래가 안 만들어지니 답답한 마음에 자꾸 네 생각이 나더라.”

“그럼 제가 타이틀곡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세요?”

“너 바쁜 거 알지만… 솔직히 맞아. 우리가 부를 만한 노래를 너만의 감성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

잠깐 고민하게 되는 부탁이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하고 싶은 일이었다.

전성기가 지나갔다고 하지만, 비스트 보이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정상의 그룹이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우리 회사 매출 1위의 아티스트가 바로 비스트 보이즈였다.

그리고 지금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대단한 선배가 지금 내게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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