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미니 앨범 대박(3)
비스트 보이즈 선배님들이 나와의 신곡 관련 미팅을 마치고 작업실을 빠져나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한 사람이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주인공은 오늘 나에게 평가를 받을 예정이었던 연경이었다.
연경이는 그동안 내가 짜 준 스케줄대로 묵묵히 연습해 온 결과를 오늘 나에게 제대로 보여 줄 계획이었다.
만약 오늘 연경이가 나에게 그동안 내가 바라던 모습을 실제로 보여 준다면, 그녀의 솔로 가수 데뷔는 곧바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게 예정되어 있었다.
데뷔가 걸린 중요한 평가의 자리라서 그런지 오늘따라 긴장된 표정이 역력한 그녀를 향해 내가 물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말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긴장이 안 될 수는 없겠지?”
“그렇죠. 긴장이야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 긴장감에 익숙해져. 우리 실장님이 첫 데뷔 무대를 앞둔 나에게 해 줬던 말이야. 우리처럼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항상 긴장감을 느끼며 지내야 하니까 익숙해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셨어. 그리고 이 말이 장현석 선배님이 직접 해 준 말이라고도 하셨는데… 여기에 내가 한마디 더 하면, 긴장감한테 지지 말라고 하고 싶네. 싸워서 이겨야지. 지면 노래를 망칠 거 아니야, 안 그래?”
“후후. 네, 맞아요.”
내 말이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는지 연경이의 표정이 전보다는 밝아졌다.
나는 그런 연경이를 보며 다시 말했다.
“대표님 이제 곧 오실 테니까 준비하면서 기다리자.”
“네, 오빠.”
오늘은 김진영 대표님도 연경이를 보러 직접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아무래도 ‘위로’라는 곡을 이미 들어 보셨던 형님은 이 곡의 성공 가능성을 매우 크게 보셨다.
그래서 연경이의 연습 과정도 틈틈이 챙기셨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었는데, 오늘도 와 달라는 내 부탁에 흔쾌히 ‘알았다’라는 대답을 해 주셨다.
지금 연경이의 상태를 제대로 가늠하기 위해서는 대표님의 예리한 시선도 필요했다.
그리고 더불어 대표님의 마음에 든다면 최종 결제자의 사인이 바로 떨어진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데뷔가 빨리 진행된다는 장점도 있었다.
덜컥.
문이 열리며 대표님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늦었나?”
“아니에요. 딱 맞게 오셨네요.”
“그렇지? 내가 시간 약속 하나는 잘 지키거든. 작업하면서도 약속 시각 안 잊어버리게 핸드폰으로 알람도 설정하고 작업했잖아. 근데 늦은 줄 알고 조금 놀랐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더니, 우리 김진영 대표님은 자기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때 정확하게 작업실 문을 열고 나타나셨다.
나도 그렇고 형님도 무척 바쁜 관계로 간단한 인사만 주고받은 후 우리는 곧바로 용무를 시작했다.
“그럼 노래를 들어 볼까? 어떻게… 바로 가능해?”
성질 급한 대표님의 귀여운 성화에 웃음이 난 나는, 웃는 얼굴로 연경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연경아, 준비됐어? 혹시 시간이 필요하면 편하게 기다려 달라고 말해도 돼.”
“준비됐어요. 대신 오빠가 피아노로 반주 좀 해 주세요.”
“내가? MR 안 틀고?”
“네. 오빠 반주가 감정 잡기 더 편해요.”
감정선이 가장 중요한 노래이기 때문인지 감정을 잡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은 분명 좋은 자세다.
그러나, 왜 나에게 직접 반주를 부탁하는지는 솔직히 잘 공감되지는 않았다.
내 생각에는 제대로 녹음된 MR이 내 연주보다 감정 잡는 데 더 도움이 될 거 같은데, 연경이는 내 생각과 다른 모양이었다.
뭐 노래를 하는 사람은 연경이니, 그녀의 말대로 해 주는 것이 좋을 듯싶어 나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반주를 해 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작업실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조상구 실장님이 작업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실장님은 웃는 얼굴로 우리를 향해 물었다.
“저도 같이 들어도 될까요?”
“그럼 물론이지. 이리 와 앉아.”
대표님의 허락을 얻은 실장님까지 연경이의 ‘위로’를 듣기 위해 소파에 앉았고, 나는 연경이와 눈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후 연주를 시작했다.
♩♩♪♪
“음… 좋다.”
연주만 듣고도 특유의 오디션 표정을 짓는 대표님의 모습에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연주를 망칠 뻔한 위기를 넘기고 연주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리고 때마침 연경이의 노래도 시작되었다.
♪괜찮아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
연경이의 노래 첫 소절만 듣고도 전과 다른 느낌이 곧바로 내 머리를 강타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연경이에게 이 노래를 주려고 했던 이유였기 때문이다.
연경이는 그동안 각고의 노력을 다했는지 내 생각보다 빨리 내 머릿속에서 상상만으로 들을 수 있었던 그 목소리를 그대로 현실에 재현해 내었다.
연경이의 목소리에 나 역시 순간적으로 제대로 된 감정이 올라왔기에 눈을 질끈 감고 연주를 이어 갔다.
지금 느낀 감동을 그대로 연주에 실어 연경이와 함께 좋은 무대를 꾸미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경이의 노래는 너무 훌륭했다.
김진영 형님은 어느새 노래에 푹 빠지셨는지 눈을 감고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며 노래를 듣고 계셨다.
그렇게 우리는 연경이의 노래에 매료된 채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노래가 만들어 준 감정의 바다에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약 4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감정의 바다에 표류했던 우리는 노래가 끝나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노래의 여운은 여전히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김진영 형님은 가장 먼저 눈을 뜨고 감탄했다.
“와아… 너무 좋다. 이 노래 정말 최곤데…….”
어찌 보면 완성본을 처음 들으시는 거였기 때문에 이 말을 제일 먼저 하셨다.
그렇게 노래에 대한 칭찬을 먼저 한 후 노래를 끝난 연경이를 쳐다보며 자신의 감상을 전했다.
“그리고… 연경이 네 노래도 정말 최고다. 이런 애를 왜 걸그룹을 시키려고 했는지… 우리 회사 연습생 교육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가 들 정도야.”
연경이의 노래가 너무 좋았기에 나오는 말이었다.
다행히 마음에 드셨나 보다.
그리고 내 감상도 형님과 똑같았다.
연경이는 자신의 숨겨진 목소리를 이제야 제대로 토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연경이의 노래를 들었던 또 한 명의 참석자 조상구 실장님도 우리와 비슷한 느낌을 전했다.
“저도 너무 좋았습니다. 노래도 너무 잘 만들었고 연경이의 노래도 정말 좋네요. 이 정도 노래라면 어서 빨리 데뷔해야 할 거 같네요.”
여기 모인 세 사람 모두의 평가가 좋았기에 노래를 부르고 평가까지 받은 연경이는 감격한 얼굴이었다.
약간 눈물까지 글썽이는 그녀를 보고 난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고생했어. 오늘 정말 잘했어. 그럼 나가서 좀 쉬어. 우리랑 함께 있으면 계속 신경 쓰여 제대로 쉴 수 없을 거야.”
“네.”
내 배려에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얼른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었다.
아마 연경이는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한참을 울 것이 분명했다.
기특한 자식…….
연경이가 나가자 형님은 나를 보며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경이까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으니… 이번 기회에 너 독립해야겠다.”
엉? 갑자기 독립?
독립이란 단어가 이 타이밍에 나와도 되는 단언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조상구 실장님이 친절히 설명을 해 주었다.
“며칠 전에 대표님하고 이야기했던 건데… JYK 회사 내 솔로 아티스트만 따로 독립해 회사 산하 레이블을 만들 계획이라고 하셨어. 본사 규모가 점점 커지니 솔로 아티스트를 제대도 케어하려면 독립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란 말씀이셨지.”
조 실장님의 설명에 자연스럽게 형님의 설명이 더해졌다.
“원래 우리 회사가 그룹 활동을 주로 하는 회사였잖아. 그래서 솔로 가수들은 부수적으로 매니지먼트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독립해서 제대로 키울 생각이야.”
일단 형님의 설명은 이해가 갔지만, 의문점도 동시에 생겨났다.
“솔로 가수가 누가 있다고요? 일단 지금 활동 중인 솔로 가수는 저밖에 없지 않나요? 기존의 솔로 가수들은 계약이 만료되어서 이번에 많이 나갔잖아요.”
내 물음에 형님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현재는 너밖에 없지.”
“그렇다면 독립을 해도 일이 너무 없지 않나요? 소속 아티스트가 달랑 저 하나잖아요. 연경이가 곧 데뷔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자리 잡을 때까지는 활동 중인 아티스트가 저뿐인 상황이에요.”
내 물음을 들은 형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넌 네가 요즘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아직 감이 안 오나 보다. 지금 회사 내 네 공식 팬클럽 회원 수가 얼만지 알아?”
네 팬클럽 회원 수?
얼마 전에 들은 적이 있었기에 다행히 숫자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15만 명이 넘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내 대답을 들은 김진영 형님은 피식 웃으며 현재의 정확한 회원 수를 나에게 알려 줬다.
“너 의외로 그런 데 별로 관심이 없구나. 지금 네가 말한 숫자는 정확히 일주일 전의 숫자야. 지금은 20만 명이 넘었어.”
“헉! 진짜요?”
생각보다 큰 숫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 만에 5만 명이 늘었다는 말이기도 했기에 그것 또한 크게 놀랄 말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김진영 형님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 진짜다. 남자 솔로 가수 중 비공식을 제외한 공식 팬클럽 회원 수가 지금 현재 가장 많은 가수가 바로 너야. 한마디로 대박이 난 거지. 그리고 데뷔해서 활동한 지 이제 막 반년 정도 되어 간다는 점을 더해서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낸 거고.”
대표님의 말을 듣고 있던 조상구 실장님도 빙그레 웃으며 나를 보고 말했다.
“대표님 말씀은 결론적으로 너 하나면 웬만한 솔로 가수 여럿보다 낫다는 말씀이야. 그리고 넌 네 노래만 만드는 것도 아니잖아. 이미 쓰리타임즈와 워너비 걸즈의 세계적인 히트곡을 만든 사람이 바로 너지. 그러니 JYK 산하 독립 레이블로 떨어져 나가는 것도 절대 이상한 일은 아닌 거지.”
설명을 들어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내가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것을 표정으로 읽으셨는지 김진영 형님이 정리하는 것 같은 말씀을 해 주셨다.
“앞으로 JYK에서는 너를 중심으로 또 다른 음악적 영역을 구축하려고 해. 기존의 그룹 중심의 음악은 지금처럼 유지하면서, 솔로 아티스트나 기존의 음악적 색깔과 다른 영역을 시도하는 것은 너와 함께 새로 설립하는 레이블이 중심에 서게 되겠지. 어때? 괜찮지?”
“…제 입으로 괜찮다, 안 괜찮다 대답하는 건 적절치 못한 거 같고요… 그냥 절 믿어 주시는 거니까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는 게 맞을 거 같네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내 질문에 우리 회사 대표님인 김진영 형님이 내게 물었다.
“질문? 뭐가 궁금한데?”
“그럼 저는 다른 곳으로 작업실을 옮겨야 하나요?”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다.
이곳에서 많은 곡들을 만들어 냈기에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 내 질문에 형님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시며 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여기 계속 있으면 독립하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독립 레이블 전담 운영팀도 만들어지는데 본사에 계속 있을 수 있겠어?”
옮겨야 한다는 형님의 말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여기에 애착이 많은 나로서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형님은 웃으며 나를 달랬다.
“하하하, 우리 서준이는 새로운 곳으로 옮기기 싫은가 보네? 네가 우리 회사에 이렇게 애착이 크다는 걸 알게 되어 대표로서 너무 기쁘다. 하지만 너무 섭섭해할 필요 없어. 옮기긴 하지만 바로 옆으로 옮길 거니까.”
“네? 바로 옆이요?”
“응, 지금 증축하고 있는 본사 뒤편 건물에 새 레이블 작업실과 사무실이 들어갈 거야. 연습실과 휴게실도 만들 거고. 말 그대로 독립적인 공간을 사용하는 거지만, 바로 옆으로 가는 거지. 그러니 실상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어.”
“휴~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네요.”
난 그제야 진심으로 안심하며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