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도깨비를 다시 만나다(2)
“네, 연기요. 연기도 남들을 위한 선한 업을 쌓는 좋은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 같은 극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즐기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만큼 서준 씨가 얻은 능력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덕을 많이 쌓는 일이기도 하죠. 그러니 반드시 하셔야 하는 일이 연기라는 말이 되죠.”
도깨비님의 설명을 정리하면, 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고, 그런 내 운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을 도깨비님이 풀어 주셨다는 그동안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도깨비님의 도움을 받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 대가를 치르는 방법이 바로 노래와 연기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자상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던 도깨비님은, 지금은 조금 진지하다고 할 수 있는 표정을 지으시며 나에게 다시 말했다.
“서준 님은 그냥 지금처럼 음악과 연기만 생각하고 열심히 활동하시면 됩니다. 물론 지금처럼 착한 마음을 가지고요. 다만 오늘처럼 나쁜 사람에게 휘둘리지는 않아야겠죠. 그러니 전보다는 더 단단해지실 필요는 있어요.”
지금 내게 딱 필요한 충고를 하시는 도깨비님의 모습을 보니 아마 오늘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이미 알고 계시나 보다.
“물론 알고 있죠. 이미 말씀드렸죠? 제가 신이란 사실을요. 후후후.”
웃던 도깨비님은 입고 있던 양복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손에 들었다.
도깨비님과 스마트폰이라…….
너무 이질적인 조합이라 나는 속으로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그런 내 마음을 이번에도 읽었는지 도깨비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하, 시대에 따라 도구도 달라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서준 씨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래도 조금 어색한 장면이기는 하네요. 아주 어릴 때 할머니께 듣던 도깨비님의 이야기 속에는 스마트폰이 등장하지 않았거든요. 도깨비방망이를 주로 쓰신다는 이야기만 듣고 자라서 그런지 고정관념 같은 게 생긴 모양이에요.”
내 말은 들은 도깨비님은 전혀 상상도 못 한 말을 해 주었다.
“도깨비방망이요? 이게 바로 도깨비방망이입니다.”
“네?”
내 눈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면 분명 도깨비님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도깨비방망이라 칭하고 있었다.
이름대로라면 나무 몽둥이를 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더 맞는 상황이 아닌가?
“하하, 자고로 사물이란 그 시대에 어울리는 모습이 있는 법이지요. 그 당시 시대에는 방망이가 더 쉽게 볼 수 있는 도구였으니 그런 모습을 가졌던 거고요, 지금은 아무래도 방망이보다는 이런 모습이 더 친근하잖아요.”
도깨비님은 그렇게 친절하게 도깨비방망이라 불리는 스마트폰에 관한 부가 설명까지 해 주신 후 자신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만지기 시작하셨다.
마치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과 너무 비슷한 도깨비님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려 했지만, 예의가 아닌 거 같아 꾹 참았다.
그때, 도깨비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선물 하나 정도는 드려야겠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무것도 없던 테이블 위에 갑자기 점 크기만 한 하얀 빛이 생겨났다.
작은 빛 덩어리는 천천히 테이블 위에 내려오더니 어느새 빛은 사라지고 안경 하나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내가 그걸 쳐다보고 있으니 도깨비님이 다시 친절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도깨비 안경이란 물건입니다. 제가 즐겨 사용하는 아이템이죠. 앞으로 서준 씨에게 필요한 것으로 예상이 되니까 다시 만난 기념으로 통 크게 선물하도록 할게요.”
갑자기 선물을 받으니 얼떨떨한 기분이 든 나는 그저 테이블 위에 놓인 안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일단 생김새만 놓고 봤을 때는 다른 안경과 아무런 차이가 보이지 않은 평범한 생김새였다.
“…그냥 평범한 안경은 아니겠죠?”
“하하하, 당연하죠. 평범하게 보여도 제가 즐겨 쓰던 아이템이란 설명을 이미 드렸습니다. 그러니 절대 평범할 리가 없죠.”
“그럼 어떤 특수한 기능 같은 게 있는 안경인가요?”
“후후, 네, 맞습니다. 아주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안경이죠.”
“그게 뭔데요?”
기능을 묻는 내 질문에 도깨비님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냥 안경을 써 보시면 가지고 있는 기능은 바로 아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지금은 설명을 생략할게요.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아, 맞다. 한 가지 더 드려야 할 게 있었는데… 다른 이야기 한다고 잠깐 잊었네요.”
도깨비님은 주머니에서 한 가지 물건을 더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것은 바로 의문의 usb였다.
그것이 usb란 사실을 확인한 나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도깨비님께 다시 물어보려고 했다.
“도깨비님, 이 usb는 또 뭔가… 헉! 도깨비님? 도깨비님?”
그러나 어느새 도깨비님은 사라지고 없었다.
깜짝 놀란 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지만, 도깨비님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맥주를 마시다가 순간 깜빡 졸아 꿈을 꾸다 깬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테이블 위에 놓인 안경과 usb를 바라보니 꿈이 아니란 걸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또 이렇게 가 버리셨네.”
처음 만날 때처럼 갑자기 사라진 도깨비님 때문에 난 잠시 멍하니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물건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런다고 다시 도깨비님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기에 난 그만 마음을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지금은 맥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기에 김에 새어 맛이 밍밍해진 맥주를 편의점에 버리고 선물로 받은 안경과 usb를 챙겨서 주머니에 넣은 후 다시 걸음을 옮겨야 했다.
지금은 전과 다르게 집이라는 목적지가 분명한 발걸음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연기는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구나… 안 하면 노래까지 못 하게 될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해야지. 근데 이 안경은 도대체 어떤 기능을 가진 물건일까? 그리고 이 usb는 또 뭐고?”
여러 가지 의문을 해결하지 못해 머릿속이 뒤죽박죽된 상태로 난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 *
[네? 계약을 해지하자고요?]
[그래, 해지해. 서로를 위해서는 그게 좋다고 생각해. 그러니 너도 다른 생각하지 말고 그냥 회사를 따르도록 해.]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회사를 왜 나가요? 말도 안 돼요.]
[회사에서 왜 나가라고 하는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넌 지금 팀에 민폐야.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네 생각엔 지금 캔디걸이 밀고 있는 섹시 컨셉과 네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너도 양심이 있으면 생각 좀 해 봐. 지금 네가 섹시 컨셉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함께 무대에 서니까 그룹의 섹시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질 않잖아. 그걸 넌 못 느껴? 너 바보야?]
뚝.
조상구 실장님은 녹음 파일 속에 가득한 폭언 때문에 더는 듣고 있기가 힘들었는지 재생을 중단하고 꺼 버렸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연경이가 아무도 몰래 가지고 있다 건네준 거라고 했지?”
“…네.”
거짓말이기에 약간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 걱정은 이런 간단한 거짓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내가 어떻게 연기를 할까 하는 걱정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 정도 카드면 저쪽을 조용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거 같아. 그러니 연경이 문제는 내게 맡기고 서준이 넌 내 일이나 열심히 해. 콘서트도 해야 하잖아.”
“네, 실장님.”
걱정하지 말라며 내 어깨까지 두드려 준 실장님은 곧 작업실을 나가셨다.
방금 우리 두 사람이 들었던 녹음 파일은 바로 어제 도깨비님이 내게 주었던 usb 안에 들어있던 녹음 파일이었다.
연경이와 제임스 권과의 대화 내용이 담겨 있는 녹음 파일이었는데, 연경이가 어떻게 계약 해지가 되었는지 그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마 도깨비님이 이걸 내게 주신 이유는, 제임스 권과의 문제를 잘 해결하라는 의미에서 도움을 주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연경이를 만나 이 녹음 파일의 출처에 관한 알리바이를 맞춘 후 다시 실장님과 이렇게 만나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했고 녹음 파일까지 직접 들려드린 것이다.
노련한 실장님이라면 이 녹음 파일로 연경이와 제임스 권과의 일을 잘 해결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실장님이 나간 후 나는 주머니 속에서 안경을 꺼냈다.
큰일을 해결했으니 가지고 있던 큰 의문도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안경을 들고는 심호흡을 크게 몇 번 한 후 천천히 안경을 썼다.
안경을 쓰는 일이 사실 아주 간단한 동작일 뿐이지만, 그 안경이 도깨비라는 신이 준 선물이었기에 안경을 끼는 단순한 동작 자체도 무척 조심스럽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안경을 쓴 나는 곧이어 알게 된 안경의 능력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와! 이게 도대체…….”
안경을 쓰고 알게 된 신비한 능력에 난 다시 바보처럼 한참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 * *
짝.
“…아빠, 지금 나 때린 거야?”
태어나서 처음 아버지에게 뺨을 맞은 제임스 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권성동 사장을 쳐다봤다.
화가 난 권선동 사장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처음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맞을 짓을 하면 맞아야지. 지금 네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정말 몰라서 그래?”
서슬 퍼런 아버지의 외침에 제임스 권은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아들의 못난 모습에 다시 한번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장 나가! 그리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방에서 나오지 마. 넌 내 별도의 말이 있을 때까지 외출 금지다. 가지고 있는 카드는 당장 사용 정지 할 테니 허튼짓하지 말고 내 말대로 따르는 게 좋을 거다.”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잠시 쳐다보던 제임스 권은 이내 체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힘없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자신의 방을 힘없이 나가는 아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쯤 권성동 사장은 다소 힘이 빠진 모습으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을 수 있었다.
방금 너무 흥분한 나머지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와중에도 담배가 생각났는지 떨리는 손으로 힘들게 담배를 무는 권선동이었다.
니코틴의 도움으로 냉정을 찾으려 노력할 때 다시 방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MBT의 2인자인 이재선 부사장이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는 권선동의 모습을 보더니 한쪽 편에 놓여 있던 물컵을 들고 물을 따라 권선동 앞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찬물이라도 한잔하시죠. 사장님 연세라면 과한 흥분은 위험합니다.”
권선동 사장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저쪽하고 이야기는 잘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