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85화 (85/189)

85. 드라마 방영(3)

내가 출연한 드라마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아주 객관적인 순수한 시청자의 눈으로 보더라도 우리 드라마는 충분히 대박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정말 재미있었다는 의미에서 대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드라마 초반부터 보는 사람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스토리 전개도 무척 좋았고, 이어지는 장면들도 촘촘하게 연결되어 짜임새가 느껴져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 방송가 일각에는 이번 ‘목소리’ 시즌 3에 새로운 감독과 작가가 기용된 것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만약 그런 걱정을 했었다면 오늘 방송을 보고 그런 걱정은 머릿속에서 한 방에 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출연자인 내 입장에는 내가 직접 현장에서 연기하거나 혹은 옆에서 지켜봤던 장면들이 드라마 속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실제로 TV 화면을 통해 보게 되니 무척 신기한 기분이었다.

“서준아, 이 드라마 정말 재밌네. 우리 아들 연기한다고 고생했다.”

엄마는 보고 난 뒤 약간 감격하셨는지 내 엉덩일 토닥토닥해 주시며 이렇게 칭찬의 말을 건네셨다.

세월이 지나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는데도 이상하게 엄마의 칭찬만큼 기분 좋은 칭찬은 다신 없는 걸 보면 참 엄마라는 존재가 신비롭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동생 수정이는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내 팬 사이트에 접속해 실시간 채팅 창의 반응을 확인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목소리3’을 어떻게 봤는지가 매우 궁금한 모양이다.

드라마를 본 내 팬들의 반응을 확인한 수정이는,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내게 말했다.

“오빠 팬들 다시 난리 났어. 드라마 본 사람들 모두 너무 재미있게 봤나 봐. 올라오는 댓글 전부 다 칭찬 일색이야.”

“그래? 정말 다행이네. 솔직히 조금 걱정은 했거든. 사람들이 별로라고 하면 어떡하냐 하는 걱정.”

“크크, 이 정도 반응이면 그런 소심한 걱정은 당장 던져 버려도 될 거 같아. 그냥 머릿속에서 바로 지워 버려.”

“오케이, 다시는 머릿속에 자리하지 못하도록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릴게.”

수정이의 말은 내 입장에서 너무나 기다렸던 말이기에 난 진심으로 웃으며 농담을 나눌 수 있었다.

수정이는 오빠인 나처럼 밝게 웃으며 다른 기쁜 소식도 까먹지 않고 전했다.

“그리고 오빠 화면발 지렸다는 말도 엄청 많아. 나도 드라마 보면서 비슷한 생각 했는데, 다른 사람도 다 나처럼 생각했나 봐. 너무 신기하다. 오늘 오빠가 화면에 처음으로 등장할 때 그때가 압권이었어. 그 신에서는 오빠가 정말 잘생기게 나오긴 하더라.”

“히히, 내가 화면이 잘 받긴 하지.”

사랑하는 가족 앞이라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잘난 척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내 첫 연기가 담긴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어서 그런지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큰 걱정을 품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남에게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셈이니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내 팬이기 때문에 약간 팔이 안으로 굽듯 조금은 객관성을 잃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시청자의 입장에서 본 건 맞으니까 드라마가 어느 정도 괜찮았다고는 볼 수 있었다.

아마 좀 더 확실한 반응은 매스컴이나 내 팬이 아닌 사람들의 의견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맞다. 지인들에게 톡으로 물어보면 되겠네.’

드라마에 관한 반응을 확인할 생각으로 나는 책상 위에 던져 둔 내 스마트폰을 황급히 찾기 시작했다.

* * *

‘연애할까요?’와 ‘목소리3’의 맞대결이 펼쳐졌던 주말이 지나고 첫 대결에 관한 결과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두 드라마의 첫 대결의 결과는 많은 사람의 예상대로 ‘연애할까요?’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연애할까요?’가 2화까지의 평균 시청률이 무려 19%대가 넘을 정도로 높게 나온 것이다.

그에 반해 ‘목소리3’은 1, 2화 평균 5%대의 시청률을 얻는 데 그쳤다.

물론 1화, 2화는 방영 초기이다 보니 평균 시청률보다 조금 낮게 나오는 시기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분명한 건 ‘연애할까요?’의 초반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이었다.

‘연애할까요?’는 나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라서 다시 보기를 통해 챙겨 보았다.

도깨비 안경을 통해 폭망할 거라는 미래의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터라 초반부터 드라마가 엉망이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하고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장면들이 이어져 많이 놀라면서 드라마를 보았다.

그래서 다 보고 난 후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도깨비 안경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란 존재 자체가 도깨비님의 능력을 통해 이렇게 달라졌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에 계속 바보처럼 의심하고 있진 않았다.

아마 어떤 계기가 있어 드라마가 잘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엉망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예상을 해 봤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이 갑자기 촬영 중에 미국에 가 버려 드라마가 엉망이 되어 버린 사건도 있었고, 초반에는 잘 나가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원래의 목적지가 아닌 산으로 가 버리면서 초반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청률이 바닥까지 꼬꾸라진 경우도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곳이 바로 이곳 연예계였기 때문에 난 그냥 내가 할 일만 열심히 하면 결과를 기다리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 * *

오랜만에 드라마 촬영에 힘쓰는 배우 대신 가수로서의 스케줄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이 바로 내가 가수가 되어서 처음으로 맞게 되는 시상식 날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촬영 스케줄이 빡빡한 관계로 시상식에 불참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했었지만, 내가 신인상을 받을 거라는 주최 측의 이야기를 들으니 절대로 빠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케줄을 무리하게 조정해서 참석했다.

♩♪♪♩

한참을 피아노 앞에서 연주하던 나는, 갑자기 연주를 멈추고 음악 감독님을 향해 말했다.

“감독님, 피아노 소리가 너무 작은 거 같아요. 소리를 조금만 크게 해 주세요.”

리허설 도중 피아노 소리가 다른 악기 소리에 묻힌다는 걸 느낀 내가 이렇게 요청했다.

내 말을 들은 감독님은 그렇게 할 경우 발생할 부작용을 나에게 설명했다.

“그럼 노래 앞부분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앞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너무 튀면 안 되잖아?”

그 정도 애로 사항은 내가 연주할 때 기술적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기에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감독님께 말했다.

“볼륨 변화는 그냥 제가 연주하면서 알아서 조절할게요. 앞부분에서는 더 소프트하고 가볍게 건반을 누르면 되거든요.”

“그럴래? 오케이, 알겠어.”

음악 감독님은 내 말을 믿고 소리 조절을 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실제 방송으로 볼 때는 내가 노래하고 연주하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준비하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무대에 앞서 이렇게 디테일하게 점검을 해야 구상해 온 음악을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보여 줄 수 있기에 작은 문제점 하나도 그냥 허투루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꼼꼼하게 리허설을 마친 나는, 리허설이라 참았던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로 달려갔다.

리허설 도중 화장실을 갈 수는 없었기에 참고 있었던 탓에 마음이 너무 급했다.

그렇게 도착한 화장실.

나는 소변기 앞에서 미뤄왔던 볼 일을 해결하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참느라 힘들었던 고통에서 해방된 탓이었다.

그렇게 생리 현상을 해결한 나는,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기분 나쁜 면상 하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시원해? 리허설 한다고 소변을 많이 참은 모양이야. 크크크.”

웃음소리부터 재수가 없는 불청객은 바로 제임스 권이었다.

나타난 타이밍과 서서 기다리고 있는 자세를 살펴보니 아마 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행차하신 모양이었다.

“날 보러 일부러 화장실까지 따라온 거야? 우리가 그 정도로 친밀했던 사이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넌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른가 봐?”

내 비꼬는 인사말에 제임스 권 역시 비릿한 미소와 함께 내 말에 응답했다.

“그럼 다르지. 난 너한테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거든. 저번에는 네가 손수 세수까지 시켜 줬잖아. 너무나도 고맙게 마시던 생수를 바로 얼굴에 끼얹어 주면서 말이야…….”

“…이 정도로 고마워할 줄 알았다면 한 컵이 아니라 몇 컵 더 끼얹어 줄 걸… 내가 생각을 잘못했네. 혹시 오늘도 필요하면 편하게 말해. 마침 이곳이 화장실이라 물 구하기가 어렵지 않거든.”

내 말을 들은 제임스 권은 기분이 갑자기 나빠졌는지 웃는 얼굴로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저 역겨운 면상에 마구 주먹질을 하고 싶은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기에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쳐다봐 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날 노려보던 놈은 갑자기 피식하고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네가 오줌 누는 뒷모습까지 보면서 널 기다렸던 이유는 네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야.”

고마워?

또 무슨 개소리를 늘어놓으려 하는 거야?

간만에 듣는 신선한 헛소리였기에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사람 볼 줄 모르는 멍청한 드라마 국장의 출연 제의를 네가 제대로 걷어차 주었잖아. 네가 그렇게 해 주지 않았으면 ‘연애할까요?’라는 좋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네놈이 되었을 거고… 근데 네놈은 고맙게도 손수 좋은 자리를 걷어차고 머저리처럼 케이블 방송국의 허접한 드라마 조연 자리고 가 주었지. 그런 멍청한 판단 덕분에 우리 드라마 주인공 자리엔 제대로 된 배우가 마침내 들어갔고 말이야. 혹시 우리 회사가 이 드라마에 투자한 걸 알고 한 일은 아니지?”

드디어 이 자식이 날 만나러 화장실까지 따라온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두 드라마 간의 2화까지의 시청률 차이에 고무된 녀석이 내 속을 뒤집어 줄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고 여기까지 따라온 모양이었다.

하여튼 재수 없는 짓은 어떻게 이렇게 배우지 않아도 잘하는지…….

이런 것까지 타고나야 하는지 정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이 녀석에게 고마운 점이 생겨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다.

“고맙다라… 이제 2화까지 방영되었는데, 너무 김칫국 마시는 거 아니야? 너 그러다 속 버려. 그리고 우리 드라마보다 너희 회사가 투자했다는 그 드라마가 더 잘되었다고 결론이 나기에는 아직 3달 정도 더 기다려 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거잖아. 설마 3달 뒤까지 기다릴 인내력이 부족해서 그래?”

내 말을 들은 녀석은 코웃음까지 쳐 가며 대꾸했다.

“크큭,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 봐야 아냐고… 이번에는 이 말을 너에게 해 주고 싶네. 그리고 네 말도 어느 정도는 맞아. 네가 세 달 뒤에 너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넌 더 이상 우길 건덕지가 없으니 오늘처럼 우기며 넘어가질 못했겠지? 조금 더 기다렸다가 널 보며 이렇게 말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네 말대로 내가 인내심이 많은 편은 아닌가 봐. 인정할게.”

혹시 나에게 도깨비 안경이 없었다면 이 녀석의 말에 조금 흔들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녀석의 입장에서 너무나 안타깝게도 나에겐 도깨비 안경이 있어 전혀 타격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내 머릿속에는 문득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물론 내 앞에서 깐죽거리는 이 녀석을 혼내 줄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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