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86화 (86/189)

86. 과연 누구 말이 옳은지 이번에 따져 보면 어떨까?

나는 이미 두 드라마의 미래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 점을 이용해서 이 녀석을 혼내 줄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일단 이 재수 없는 자식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 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세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이 녀석을 도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그 드라마 안 하기로 한 게 고맙다고? 고맙다고 해 주니 나 역시 고맙기는 한데…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하네. 왜냐하면, 난 나를 위해 그 드라마를 안 한 거거든. 그럼 내가 왜 그 드라마 주인공 자리를 마다했을까? 혹시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어?”

민감한 주제라서 그런지 녀석은 고맙게도 내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었다.

“이유? 그냥 네 주제를 네가 잘 알아서 스스로 물러난 거 아니야? 누가 봐도 연기를 해 본 적이 없는 네가 단번에 주인공으로 가는 건 솔직히 아니잖아.”

의외로 타당한 말이지만, 생긴 것처럼 아주 얄밉게 대답하는 녀석을 보며 난 낚시질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미안하지만 아니야. 나도 욕심이 있는 놈인데 주인공을 하고 싶은 게 정상이지. 근데 내가 그 드라마를 깐 이유는 찬찬히 살펴보니 무조건 잘 안 될 드라마라는 판단이 서 버렸거든. 근데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너처럼 똑똑한 놈이 그걸 왜 못 보고 투자까지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투자는 조금만 했지? 걱정돼서 물어보는 거야. 그러니 오해는 하지 마.”

녀석이 표정이 바뀌었다.

슬슬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도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설마 투자한 금액이 커? 그럼 정말 큰 일인데…….”

내가 걱정하는 척하며 놀리는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녀석의 얼굴은 어느새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녀석은 귀엽게도 나한테 그런 속마음을 들키기 싫었는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억지로 미소까지 지으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 너 갑자기 왜 이래? 나 웃기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야? 아니면…….”

말을 끊은 녀석의 눈빛이 조금 바뀌었다.

태연한 척하는 모습에서 화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기가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다.

“진짜 미친 거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말했다면 너 지금 큰 실수하는 거야. 네가 뭘 안다고 드라마를 논해? 노래 몇 곡 잘되었다고 연예계가 모두 네 손바닥 위에 있는 거 같아? 진짜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거야?”

점점 거칠어지는 녀석의 말을 듣고도 난 여전히 태연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드라마가 잘될지 안 될지 판단하는 게 뭐가 그리 힘들어? 의외로 간단하잖아. 대본 좋고, 감독님 휘하 스텝들 괜찮은지 따져 보면 되잖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캐스팅된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는지 확인해 보면 되는 거잖아. 그런 점들을 따져 봤을 때는 우리 드라마가 ‘연애할까요?’보다는 확실히 더 나아. 그게 바로 내가 네 드라마를 깐 결정적인 이유였고.”

내 말이 가소롭게 들렸는지 녀석은 박장대소했다.

“크하하, 뭐? 너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 네 주제에 무슨 평가야? 그냥 회사에서 차려 주는 밥상이나 받아먹어야 할 초짜 녀석이 겁도 없이 앞에 나서서 깽판을 치고 있었네. 뭐 그 지랄 덕분에 제대로 된 주인공을 내 드라마에 꽂아 넣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한참을 웃던 녀석은 마치 나를 가르친다는 듯이 거만한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내 말을 못 알아들어도 두 번은 없으니 지금 해 줄 때 잘 새겨들어. 드라마가 잘된다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니야. 내용이 재밌고,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이런 것들은 할 일 없이 드라마만 보고 사는 그딴 머저리들에게나 중요하지 우리같이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한 가지야. 바로 사람들이 많이 보는 거지. 그리고 많이 팔려야 해. 사람들이 많이 보고 다른 나라에 많이 팔아먹기 위해서는 네가 말한 그딴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요소들이 되는 거야.”

“…드라마에서 내용과 연기가 중요하지 않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네. 그럼 좋아, 네 생각에 중요한 건 뭐야?”

“중요한 거? 크크, 궁금해? 좋아, 특별히 내가 가르쳐 주지. 그건 말이야. 자극적이어야 한다는 거야. 시청자가 이걸 계속 보고 다른 나라에도 팔아먹으려면 자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 그런 자극적인 요소에는 배우의 인지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홍보력, 그리고 시청자들이 열광할 만한 장면의 연출 등 뭐 이런 것들이 중요한 거지. 그런 게 없어도 시청률이 잘 나오는 막장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아주 자극적인 막장 대본이 있잖아. 그런 드라마 역시 내가 지금 한 말처럼 자극적인 요소를 갖추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걸 너도 잘 알아야 해.”

완전히 동의하기 힘든 헛소리 같은 괴변이었다.

예전에 음악적으로 대립했을 때도 느꼈던 건데 이 녀석은 항상 겉만 보는 거 같았다.

음악도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트렌드를 그냥 무작정 따라만 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드라마에 관해서도 드라마 관계자들이 술자리에서 떠들 만한 이야기를 그냥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저런 속 빈 강정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음악을 했으니 그동안 계속 삽질만 했을 것이다.

뭐, 저 재수 없는 자식이 삽질을 계속하는 건 나로서는 오히려 기쁘게 반길 만한 일이니 그냥 계속 저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굳이 입 아프게 뭐가 옳은지 따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대신 원래부터 바라던 바를 얻을 순간이 되었기에 난 드디어 숨겨 둔 본론을 꺼내었다.

“뭐, 누구나 생각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 일단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 줘서 고맙다는 말부터 전할게. 정말 고마워. 근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네 말이 틀린 거 같아. 그래서 말이야… 과연 누구 말이 옳은지 이번에 따져 보면 어떨까?”

다시 표정이 변하는 제임스 권이었다.

내 말의 진의가 궁금했던지 약간 의문이 생긴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누가 옳은지 따져 보자? …내기라도 하자는 말이야?”

“굳이 내기하자는 건 아닌데… 네가 원한다면 나도 마다할 생각은 없어.”

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끝냈다.

즉 준비한 미끼를 던졌다는 말이다.

물고 안 물고는 저 녀석의 몫이니 난 그냥 편하게 녀석의 대답을 기다리면 되었다.

제임스 권의 표정은 다시 바뀌었다.

묘한 미소를 지은 채 골똘히 생각하는 걸 보니 일단 지금 생각하기엔 자신에게 나쁘지 않은 제안이 확실한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불리한 점은 없는지 열심히 통밥을 굴리며 확인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제임스 권은, 드디어 결심이 섰는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너와 내가 내기를 한다면 누가 이겼는지 판정할 기준이 필요하겠지. 혹시 생각해 둔 판정 기준이 있어?”

녀석의 물음에 난 미리 생각해 두었던 것을 설명했다.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의 평균 시청률로 판정하자. 어때? 괜찮아?”

“…좋아. 그럼 이기는 사람이 가질 혜택은?”

“만약 내가 지면 네가 전에 나에게 요구한 대로 ‘캔디걸’의 프로듀서를 맡아 주지. 물론 작곡도 하고. 기한은 음원 차트 1위 곡이 나올 때까지. 어때, 마음에 들어?”

내 벌칙 내용이 마음에 들었는지 녀석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흐흐, 나쁘지 않은 조건이네. 그럼 내가 지면?”

녀석의 물음에 난 지금까지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녀석에게 말했다.

“연경이한테 무릎 꿇고 사과해. 한 사람의 인생을 네 마음대로 흔들려고 한 잘못을 반성하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란 말이야. 할 수 있겠어?”

“뭐,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무조건 자신이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녀석은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이로써 오늘은 월척을 낚은 기쁜 날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혹시 모를 노파심에 한마디 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저번 내기에서 내가 이겼는데… 넌 약속을 어기고 그냥 내뺐어. 저번에 내가 바에서 네 얼굴에 물을 뿌린 적이 있으니 그때 약속 어긴 것은 그대로 퉁 치지만… 이번에는 절대 내빼지 마. 내 말 알겠어?”

“그럴 리 절대 없으니 너나 약속 잘 지켜.”

“난 약속 반드시 지켜.”

“나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단단히 못까지 박았으니 이번에는 저 녀석도 약속을 지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저 얄미운 자식이 연경이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화장실을 나설 수 있었다.

* * *

같은 대학교에 다니는 김남호와 이혜지 커플.

데이트하던 두 사람은 곧 시작될 주말 드라마를 보기 위해 여자 친구인 이혜지 집으로 향했다.

이혜지의 부모님이 친구분들과 여행을 간 상황이라 편하게 드라마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니 이혜지의 동생 이예지가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김남호는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예지 안녕?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네, 오빠. 잘 지냈어요. 근데 오늘 어쩐 일로 우리 집까지 행차하셨나요?”

동생의 물음에 대한 답은 옆에서 겉옷을 벗던 이혜지가 대신했다.

“오늘 우리 부모님이 집에 없잖아. 그래서 오빠랑 함께 드라마 보려고 집으로 왔어.”

언니의 답을 들은 이예지는 김남호를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그건 괜찮은데… 설마 남의 집을 방문하면서 맨손으로 온 건 아니죠?”

이예지의 물음에 김남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것도 없는 두 손을 보여 주며 대답했다.

“어? 어떡하지? 나 진짜 맨손인데…….”

“엉, 정말이네. 오빠, 왜 이렇게 센스가 없어요? 실망이에요.”

이혜지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센스 타령하는 동생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혼내며 말했다.

“야, 요즘 같이 배달 앱이 발달한 시대에 무슨 헛소리야. 오면서 치킨 시켰으니 조용히 짜그러져 있어.”

이예지는 치킨이라는 단어를 듣고 환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뭐? 치킨? 히히, 역시 우리 언냐와 오빠. 원래 이 커플이 한 센스 했단 걸 내가 잠시 잊었네. 잠시라도 오해해서 너무 미안해.”

“시끄러. 더우니까 저리 가.”

이혜지는 사과한다는 뜻에서 자신에게 안기는 동생을 덥다는 핑계로 억지로 떼어 놓으려고 한참을 동생과 실랑이를 벌였다.

잠시 후 치킨은 도착했고, 한 상 제대로 차려서 앉은 그들은 곧바로 드라마 시청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겨 버렸다.

서로가 원하는 드라마가 달랐던 것이다.

이예지는 ‘목소리3’를 보려는 언니를 향해 따졌다.

“아니, 왜 그딴 드라마를 봐? 지금 ‘연애할까요?’가 대세인 거 언니 몰라?”

이혜지 역시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너야말로 왜 이래? ‘연애할까요?’ 같은 저급 드라마를 내가 왜 보니? 너 언니 말 듣고 지금부터라도 갈아타.”

“어디로?”

“당연히 ‘목소리3’이지.”

“싫어. 난 ‘연애할까요?’ 볼 거야. 계속 보던 드라마란 말이야.”

생각보다 거센 동생의 반항에 이혜지는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설득할지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한 것이다.

자신의 동생이 의외로 귀가 얇다는 사실을 기억한 그녀는 강한 방법보다는 부드러운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혜지는 동생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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