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89화 (89/189)

89. 드라마 대박 행진(3)

어떤 곡인지 설명을 못 들은 사람이 들으면 지금 내가 피아노로 연주하는 곡이 ‘한숨에’라는 것을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원래의 곡과 많이 다른 편곡 버전의 연주였다.

원래 이 곡을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너무 달라진 전주 부분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든 편곡이기에 나름대로 좋게 들어주실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의 감미롭고 따뜻한 피아노 선율이 어느새 녹화 현장에 모인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쯤 나는 드디어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크게 숨을 쉬어 보세요.♩

내 노래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곳에 자리한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지금 부르는 내 노래가 듣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었다는 신호와 같은 소리였기에 나는 더 몰입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계속될수록 점점 조용해지는 녹화 현장.

많은 인파로 인해 계속 시끌벅적했던 시민공원에는 어느새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는 공간으로 변하였다.

유일하게 이 넓은 공간을 메우는 것은 바로 내 목소리와 피아노 소리였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내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가수가 되어 노래를 부르다 보니 전에 몰랐던 것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건 과연 어떤 뜻일까?

흔히들 하는 말처럼 음정과 박자를 정확하게 부르고 고음도 많이 올라가는 것이 과연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그런 이야기들이 절대 틀린 설명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수가 되어 무대에서 관객들을 향해 노래하다 보니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문득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생각할 때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에 담겨 있는 감정을 잘 느끼고 잘 표현하는 거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표현한 느낌을 관객들이 함께 공유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진정으로 노래를 잘하는 것일 테다.

내 노래를 듣는 사람과 내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해야지 내가 부르는 노래가 진정한 생명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봤을 때 오늘 내 노래는 개인적 판단으로 100점 만점에 100점에 가까운 정도로 마음에 드는 노래였다.

♩내가 힘이 되어 줄게요.♪

내 노래가 드디어 끝이 났다.

노래가 끝난 뒤 갑자기 찾아든 정적.

모두가 노래의 여운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관객석에 앉아 계신 관객 한 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박수를 보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한 분, 두 분, 그리고 대다수의 관객 역시 자신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박수를 보냈다.

관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녹화장을 울리는 엄청난 박수 소리.

온몸에 닭살이 돋게 되는 명장면이었다.

그로 인한 짜릿한 쾌감으로 나는 온몸이 살짝 떨어야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관객의 박수와 환호 소리가 녹화 현장을 가득 메웠고, 잠시 후 관객들의 반응이 어느 정도 잠잠해질 때쯤 진행자인 김제영 형님이 천천히 마이크를 들었다.

“제가 솔직히 음악은 잘 모릅니다. 물론 음악을 즐기는 편이긴 합니다만,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묘한 미소를 띤 얼굴로 관객들을 향해 입을 여신 형님은, 현장에 계신 관객분들과 두루두루 눈을 맞추며 하시던 말씀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러나, 음악을 모른다고 뭐가 좋은지 뭐가 나쁜지 구분도 못 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음악은 머리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거니까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멋진 멘트를 관객들에게 던지는 형님의 모습에 나 역시 그런 형님을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방금 우리 서준 씨의 노래가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냥 잘 모르겠지만… 제 마음은 서준 씨의 노래가 정말 좋은 노래였다고 말해 주고 있네요. 혹시 여러분도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나요?”

“네!”

형님의 물음에 고맙게도 관객 모두가 한목소리로 내 노래가 좋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가수로서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어떻게 보면 오늘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제작진에게 특별 요청까지 해 주신 오늘의 초대 가수 판치 씨도 제영 형님 다음으로 마이크를 들고 내 노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전 음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말씀 드려야 될 거 같네요. 방금 이서준 씨의 노래는 아직도 음악이 어려운 저에게 큰 감동과 숙제를 동시에 안겨 준 무대였습니다.”

제영 형님은 능숙한 진행자답게 판치 씨의 말에 곧바로 되물었다.

“어떤 부분에서 감동을 받으셨고, 또 어떠한 숙제를 얻으셨나요?”

“감동이었던 부분은 방금 이서준 씨의 노래를 통해 따뜻한 감정적인 위로를 받았다는 점이에요. 개인적으로 요즘 힘든 일이 많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큰 위로를 오늘 이 자리에서 받아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숙제는 가수로서 노래할 때 악기 연주에 왜 신경을 써야 하는지 제대로 느낀 무대였기 때문에 생겼네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음악을 공부해야 할지를 제대로 느꼈고 또 무엇이 부족한지도 깨달았기 때문에 제가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영 형님 역시 방금 판치 씨의 말에 동감하는 부분이 있었는지 판치 씨에 이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저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고 보면 서준 씨 목소리는 악기 같아요. 피아노 소리와 서준 씨의 목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노래를 만들었거든요.”

“제가 말씀드린 부분이 바로 그거에요. 요즘은 가수라는 말보다 보컬리스트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거든요. 가수를 보컬리스트로 바꾸어 부르는 이유는 가수의 목소리 역시 하나의 음악에 등장하는 다양한 악기 중 하나라는 뜻이 담긴 표현이죠. 오늘 서준 씨의 보컬은 목소리 또한 훌륭한 악기가 되어 다른 악기 소리와 어떻게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는지 저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었어요. 저로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 할 정도의 높은 수준의 진짜 음악을 보여 준 셈인 거죠.”

듣고 있기가 부끄러울 정도의 찬사였다.

그래서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려 버렸다.

“형님, 이제 다음 순서 진행하시죠. 이야기를 나눠 볼 분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제영 형님은 크게 웃으며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서준이가 자기 칭찬한다고 많이 부끄러운 모양이네요. 알겠어요. 얼른 다음 순서로 넘어갈 테니 보채지 마세요. 흐흐, 우리 서준이가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그때 관중석에서 ‘이서준 너무 귀여워요!’ 하고 외치는 여자 관객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제영 형님은 뭔가 껄끄러워진 표정을 짓더니 방금 소리친 관객을 향해 말했다.

“그건 그쪽이나 그렇겠죠. 오늘 오신 분들이 너무 서준 씨만 예뻐하니까 조금씩 배가 아프려고 하네요. 조금 전까지 기분이 좋았다가 이젠 나빠지려고 하니까 어서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자, 오늘은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었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혹시 처음으로 일하러 간 날의 기억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실 분은 없나요?”

형님의 물음에 여기저기에서 손을 드는 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관객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면 그만큼 오늘 녹화가 잘 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었기에 나는 기쁜 표정으로 손을 든 관객들을 쳐다볼 수 있었다.

* * *

시간이 지날수록 두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기 시작했다.

‘목소리3’은 회가 거듭될수록 탄탄한 스토리 전개 덕분에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배우들의 열연이 계속 이어지면서 드라마 자체에 대한 반응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출연자 중 한 명인 배우 이서준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르고 계속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었기에 드라마 시청률은 계속 상승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연애할까요?’는 회가 거듭될수록 시청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단순한 스토리 전개와 배우들의 연기 또한 계속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면서 초반의 뜨거웠던 열기는 계속 식어만 가고 있었다.

어느덧 두 드라마 모두 15%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비슷해진 그때, ‘연애할까요?’의 남자 주연 배우인 이민규가 다시 한번 사고를 치게 된다.

“뭐? …알았어. 내 당장 그리고 갈 테니, 그 계집애 어디 가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고 있어. 알겠어?”

스마트폰이 부서진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격하게 전화를 끊은 제임스 권은, 서둘러 주차장으로 뛰어가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이윽고 엄청난 소음과 함께 출발하는 스포츠카.

차에 올라 운전하는 제임스 권은 애타는 마음에 액셀을 더욱 세게 밟았다.

“멍청한 자식! 도대체 발정 난 개도 아니고…….”

방금 그에게 다급히 전화를 건 사람은 이민규의 매니저였다.

촬영이 한창이라 바쁘게 지냈던 이민규는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옛말처럼 또 엄청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잠도 못 자고 촬영에 힘써야 할 이때에 친구의 생일이라는 구실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클럽에 간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그나마 큰 문제가 아니었다.

술만 처먹고 잘 놀다가 집으로 갔으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미친놈이 술이 만취한 상태에서 전에 추행으로 문제가 되었던 여자를 다시 클럽으로 불렀다.

다시 만난 두 남녀.

만취한 이민규는 그만 꽃뱀과 같은 여우 년을 다시 건드려 버렸고, 이에 분개한 여우 년은 홧김에 곧바로 경찰서에 성추행에 관해 신고를 해 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깜짝 놀란 이민규의 매니저는 일단 저번 일을 수습해 주었던 제임스 권에게 즉각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이를 들은 제임스 권은 지금 자신의 스포츠카의 엔진 성능을 뽐내며 클럽으로 날아가듯 달려가는 중이었다.

“…잘 나가고 있는 와중에 이 무슨 개 같은 일이야?”

가뜩이나 시청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머리가 아픈 와중에 이런 사고나 치고 다니는 이민규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어떡하겠는가?

일단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외부로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까지 언론에 의해 대중에게 알려진다면 그때는 정말 답이 없게 된다.

그러니 제임스 권은 아무리 화가 나고 짜증이 나도 열심히 액셀을 밟으며 클럽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 * *

다시 돌아온 주말.

이번 주말에도 이혜지는 자신의 남자친구인 김남호와 같이 자신의 집에 있었다.

그들이 황금과 같은 주말에 집에 틀어박혀 있는 이유는 요즘 한참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를 함께 시청하기 위해서였다.

“얘는 왜 안 와? 곧 있으면 드라마 시작인데…….”

이혜지는 아직 오지 않은 또 한 명의 시청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열리는 현관문.

동생 이예지가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오늘 있을 드라마 시청을 위해 맛있는 먹거리를 공수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래서 집 근처 맛집으로 소문난 보쌈 집에서 보쌈을 포장해 집으로 온 것이다.

세 사람은 드라마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서둘러 음식을 탁자에 세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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