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94화 (94/189)

94. 한 번 더 오케이?(2)

갑자기 정색에 가까울 정도의 진지한 표정을 한 채 저렇게 말하니 내가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런 감이 왔다는 것일까?

나는 약간의 의구심을 가진 채 물었다.

“…진심이세요?”

“그럼, 당연하지. 나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제대로 소화도 못 할 사람을 주인공 자리에 떡하니 앉히겠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럼 그 말씀은 제가 이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는 거예요?”

이번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으셨는지 잠시 고민한 후 입을 여셨다.

“솔직히 반반이야.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으면 너한테 주인공 제의를 안 했을 수도 있었을 거 같아. 그러나 진심으로 가능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 이유는 묻지 말고. 아까 왠지 그런 감이 와서 그렇다는 말은 했지?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믿어도 돼.”

“……”

감독님의 대답에 나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감이 그렇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나?

그러나 내게 주인공 제의는 정말 진심으로 한 거라는 사실은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두 분의 제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감독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 잠깐 밖에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올게. 괜찮지?”

감독님이 니코틴 충전을 위해 나갔다 오신다고 하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최 작가님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서셨다.

“그럼 나도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렇게 두 분이 함께 밖으로 나가시고 혼자 남은 나는, 내 앞에 덩그러니 놓인 시놉시스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건 상황상 안 하는 게 맞는데… 좋아하는 두 분이 제의한 거니까 거절하기가 너무 힘드네…….’

사실 대답은 뻔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지금은 안 하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2집을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내 개인적으로도 콘서트를 너무 하고 싶었기에 일정을 미루는 것이 썩 내키지도 않았다.

거기다가 워너비 걸즈와 쓰리 타임즈도 매일 메시지로 다음 타이틀곡을 어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매일 해 오고 있는 와중이라 지금 바로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콘서트 끝나고 하면 딱 좋은데…….’

개인적으로 바라는 시가가 있었지만, 아까 감독님께 전후 사정을 들으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 분명했다.

내 마음이 점점 거절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던 그때, 문득 가방에 넣어 둔 도깨비 안경이 생각났다.

불안한 마음에 항상 들고 다녔는데, 지금도 내 가방 속에 들어 있었다.

도깨비 안경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저절로 궁금증도 생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드라마의 앞날을 확인해 보고 싶어진 것이다.

궁금증을 해소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가방을 들어 안경을 꺼냈고, 안경을 조심스럽게 얼굴에 썼다.

그러자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도깨비 안경 이용권의 개수였다.

그동안 드라마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인지 지금 현재 나는 이용권을 두 장이나 가지고 있었다.

이윽고 눈에 보이는 메시지.

【착용자께서는 현재 도깨비 안경을 착용하셨습니다. 이 안경은 확인을 원하는 사물이나 사람의 흥망성쇠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확인하고 싶은 물건이나 사람이 있을 경우 그 대상을 2초 이상 바라봐 주시기 바랍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내 앞에 놓인 시놉시스를 바라봤다.

그러자 다시 또 다른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이 시놉시스에 적힌 드라마에 관한 흥망성쇠를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네’라는 버튼을 손가락으로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도깨비 안경이 안내하는 대로 눈앞에 보이는 ‘네’라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러자 시놉시스가 적힌 종이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착용자님이 요청하신 대로 시놉시스에 적힌 드라마의 흥망성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작업을 마치고 나면 가지고 계신 이용권 중 1장을 소모하여 없어지게 된다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잠시 후 작업이 끝났는지 시놉시스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깔을 확인한 나는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헉! 이게 뭐야?”

도깨비 안경을 통해 바라본 시놉시스는 아주 선명한 색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황금색 빛과 파란색 빛을 번갈아 가며 뿜어내고 있었다.

황금색은 돈을 뜻하고 파란색은 명예를 뜻하는 것이니 지금 두 가지 빛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이 작품에 출연할 경우 큰돈도 벌고 좋은 명성도 얻을 수 있다는 매우 긍정적인 뜻이었다.

거기다가 두 가지 색깔이 번갈아 나오는 것도 대단한데, 그 빛깔이 매우 선명한 것을 보니 내가 얻게 될 보상의 양이 무척 크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나는 도깨비 안경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 덕분에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돈도 벌고 좋은 명성도 얻게 되는 황금 같은 기회를 그대로 날릴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새 나는 조금 전과 다르게 어떻게 하면 출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 * *

이서준 때문에 급하게 레이블 사무실에 나타난 김진영.

그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을 기다리는 있던 조상구 실장을 보며 물었다.

“서준이가 갑자기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고?”

“응. 어제 이진섭 감독과 최은희 작가를 만나고 난 뒤 마음이 바뀐 모양이야.”

마침 사무실에 두 사람밖에 없는 관계로 평소와 다르게 편하게 말하는 조상구 실장이었다.

“그래? 알겠으니 작업실로 어서 들어가자. 일단 만나서 왜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 본인한테 직접 들어 보는 게 가장 좋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

이서준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서둘러 그의 작업실로 향했다.

피아노를 치며 음악 작업을 하고 있던 이서준은, 두 사람의 등장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역시 이 두 사람과 의논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기에 그들의 방문을 반긴 것이다.

서로 간의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은 그들은 작업실 소파에 앉았고, 모두가 자리에 앉자마자 가장 먼저 입을 뗀 사람은 성격이 급한 김진영 대표였다.

“서준아, 이제부터는 곡 작업에 몰두해야 할 때인데… 갑자기 드라마는 왜 하겠다는 거야?”

김진영의 물음에 이서준이 답했다.

“이진섭 감독님과 최은희 작가님이 먼저 제안을 주셨고요, 그리고 솔직히 대본이 너무 좋아요.”

“대본이?”

“네.”

대답과 동시에 테이블 위에 꺼내 놓는 1화 대본.

김진영을 설득하기 위해 이서준이 미리 준비한 설득 카드였다.

사실 도깨비 안경을 통해 이 작품의 큰 성공을 확인한 그가 드라마를 안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2집 작업도 중요했지만, 크고 달콤한 성공이라는 열매가 열릴 것이 분명한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젠 남은 숙제는 회사 식구들의 설득이었다.

사실상 본사에서 독립하였기에 본사 소속일 때처럼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하위 레이블의 실질적 운영자 중 하나인 조 실장님과 김진영 대표를 설득할 필요는 있었기에 미리 준비물까지 챙겨 둔 것이다.

이서준은 ‘미라클’이라는 제목이 적힌 1화 대본을 김진영 앞에 내밀며 준비한 멘트를 던졌다.

“한번 읽어 보실래요? 대본이 너무 좋아요. 사실 형님도 연기를 제대로 하셨기 때문에 대본을 조금만 훑어보셔도 제가 왜 이러는지 그 이유를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거예요.”

내 말을 들은 형님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그리고 나 대본도 쓴 적 있잖아. 너 그건 몰랐지?”

“아, 그래요? 대본까지 직접 쓰셨다고요?”

“그럼, 아쉽게 제작은 안 됐지만…….”

“아, 그건 제가 또 몰랐네요. 그럼 형님 작가이시니 이 대본이 얼마나 좋은지 바로 알아보시겠네요. 그러면 제가 왜 이 드라마를 하겠다고 하는지도 이해하실 거고요. 그럼 작가의 눈으로 간단하게라도 한번 살펴보시죠.”

“그럴까?”

사실 우리 대표님을 설득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남에게 인정을 받거나 칭찬을 받는 걸 매우 좋아하는 분이셨기에, 서두에 형님에 관한 칭찬을 잘 섞어서 말을 시작하면 웬만하면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가 가능했다.

지금도 의외로 강한 연기 부심을 가진 형님에게, 과거 연기 이력을 살짝 어필하는 고난도의 기술을 사용하였더니 바로 표정이 좋아지셨다.

얼마나 기분 좋으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대본을 집필한 경험까지 먼저 꺼낼까?

흐뭇한 얼굴로 대본을 보기 시작하는 형님.

나는 솔직히 자신 있었다.

나 역시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흔한 첩보 액션 드라마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1화 대본을 제대로 읽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최은희 작가님은 천재였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아직 무명에 가까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정도 대본이었기에 나는 곧바로 대본을 공수해 왔다.

대본을 본다면 내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을 반대하기 힘들 거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읽다 보니 어느새 집중해서 보기 시작하는 우리 대표님.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을 대본에 집중했던 형님은,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이렇게 감탄했다.

“와… 대본 미쳤다…….”

“재밌죠?”

“이건 재밌다는 표현만으로 부족해. 엄청나네. 이 대본 누가 쓴 거니?”

“최은희 작가님요. 이번에 제가 출연한 드라마 작가님이기 하고요.”

“그래? 어떻게 이런 사람이 아직도 무명이니?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예상대로 형님은 대본을 보고 한 방에 넘어갔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있던 실장님이 입을 여셨다.

“대본만 좋다고 드라마가 잘되는 건 아니지 않나?”

실장님의 물음에 답을 하려던 그때, 대표님이 먼저 나서서 내 대답 기회를 빼앗아 갔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대로 드라마나 영화는 시나리오의 비중이 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시나리오가 전부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나도 그건 같은 의견이야.”

대표님까지 나서서 대본이 좋다고 하니 실장님도 더는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럼 내가 쐐기를 박을 차례인가?

“대본이 좋다는 건 지금 읽으셔서 아실 거고… 덧붙이면 최은희 작가님은 이번 ‘목소리3’에서도 대박을 터뜨리셨죠. 더군다나 시즌 3에 갑자기 투입되셨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이분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곧바로 아실 겁니다. 거기다가 감독은 우리 회사에서 오랜 시간 함께 작업했던 이진섭 감독님이고요. 감독님의 능력은 대표님이 누구보다 잘 아실 거니 불필요한 부연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도 그 능력 어디 가지 않는다는 걸 제대로 입증하셨고요. 이런 두 분이 만드는 드라마 주인공입니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을 향해 자신감을 가지고 외쳤다.

“결국, 문제는 접니다. 저만 잘하면 이 드라마 무조건 됩니다. 이런 조건의 주인공 자리라면 한번 도전해 봐도 충분한 기회이지 않을까요?”

준비한 말을 모두 마친 나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이젠 두 사람의 대답을 기다릴 차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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