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96화 (96/189)

96. 액션스쿨(2)

“하하, 액션스쿨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정주홍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감독님. 저는 이서준 씨 매니저인 조상구라고 합니다.”

“감독님, 반갑습니다. 이서준입니다.”

초면이라 당연히 서로 간의 인사가 먼저 오갔다.

그리고 간단한 안부까지 묻고 나니, 정주홍 감독님이 먼저 빠르게 수업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

“원래는 천천히 적응 좀 하고 나서 운동하자고 하는데… 시간이 없는 건 서준 씨도 잘 알죠?”

“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바로 수업에 들어갑시다. 우리 이 감독이 원하는 액션이 상당히 어려운 액션이에요. 그래서 출연할 액션 배우들도 지금 바짝 긴장한 채 액션 신을 연습하고 있고요. 그러니 주인공 서준 씨도 최선을 다해 주셔야겠죠?”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 좋아요. 그럼 우리 함께 열심히 해 봅시다.”

액션 감독님이라 직업 때문에 상당히 남자답게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투가 너무 부드러우셔서 속으로 많이 놀라긴 했다.

조곤조곤 친절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분이었다.

그렇게 감독님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후, 나는 곧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연습 장소인 대강당에 들어서니 이미 연습 중인 배우분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을 본 나는 후배이기에 서둘러 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여러 명에게 고개를 숙이던 도중, 다음 차례의 선배님을 확인한 나는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목소리3’에 함께 출연했던 선배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와서 액션을 연습하던 선배는 ‘목소리3’에 함께 특수 수사팀 동료로 출연했던 배우였다.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불편하게 지냈던 분이었는데, 성함은 박상원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불편한 관계라고 하여도 후배 입장에서 인사를 안 드릴 수 없었기는,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내 인사를 받은 박상원 선배는 잠시 어색하게 나를 쳐다보더니 그냥 간단하게 고개만 끄덕이며 내 인사를 받아 줬다.

아는 사람이라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이왕이면 좀 더 따뜻하게 인사를 받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봤지만, 곧바로 그러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 선배가 나와 어떤 인연으로 얽혀 있는지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들어 잘 알고 있었기에, 나를 불편해하는 박상원 선배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었다.

선배와 내가 처음으로 만난 날은 대본 리딩 현장이었다.

그날 현장에서 처음 인사를 건넸을 때는 마치 시베리아 벌판 한복판에 선 것처럼 차가운 냉기를 느껴야만 했다.

그때는 너무 의외의 반응이라 나에게 왜 저러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이명우 역을 맡기로 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 게 되니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내가 합류 의사를 늦게 밝히는 덕분에 제작진은 비어 있던 이명우 역을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고, 그 사람이 바로 박상원 선배였다.

하지만 내가 다소 늦게 합류 소식을 밝혔고, 그로 인해 도미노 현상처럼 박상원 선배의 역할까지 바뀌게 되었다.

그런 사정을 겪은 선배가 나를 불편하게 대하는 건 오히려 이해가 가는 행동이었다.

‘하필 여기서 저분과 만나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다.

대부분의 배우와 친하게 지냈는데, 하필 유일하게 친하지 않은 분과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나도 사람인지라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부상 예방을 위해 몸을 꼼꼼하게 푼 다음 수업에 들어갔다.

액션 연기 자체를 배운 적이 없었기에 배워야 할 건 너무 많았고 제대로 배우기엔 시간이 부족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저 열심히 연습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업 강도는 이런 맥락 때문에 처음부터 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지. 그렇게 하면 다쳐. 액션 연기에 가장 중요한 점은 안전이야. 그러니 다치지 않게 연기하는 게 제일 중요해. 알겠어?”

“네.”

“좋아, 항상 명심하도록 하고… 그럼 내가 하는 걸 잘 보고 따라 해.”

수업이 시작되자 어느새 엄격한 선생님으로 변한 감독님은, 아주 강한 강도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강도 높은 수업에 어느새 내 몸은 땀에 흠뻑 젖고 말았다.

자신이 가르쳐 준 대로 하려고 땀을 뻘뻘 흘리는 내 모습이 조금 짠해 보이셨는지, 감독님은 잠시 쉬고 오라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말을 해 주셨다.

“조금 쉬고 와. 할 게 많아서 오래 쉬게는 못 해 주니 그건 이해하고.”

“네, 감사합니다.”

감독님께 인사한 나는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강당 밖으로 나왔다.

대강당 주변을 둘러보니 한쪽 편에 파라솔이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나는 아무도 없는 그곳을 향해 걸어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너무 힘들어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시험 삼아 손을 들어 힘을 줘 보니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완전 약골이구나.”

JYK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내 생활을 가만히 되새겨 보면, 공부 아니면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

한마디로 운동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철저히 벽을 쌓고 살았단 말이다.

그런 몸뚱이를 갖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상의가 땀범벅으로 변할 정도로 몸을 움직였으니 손이 어디 아픈 사람처럼 바르르 떨리는 것도 당연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릴 때 태권도 배우러 도장에 가는 건데…….”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른 보통의 남자애들과 다르게 태권도를 배우러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차라리 그럴 시간이 있으면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기에 태권도장이란 곳은 나와 인연이 없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인생을 살아온 내가 액션 배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린 시절에 내가 했던 결정을 후회했다.

시원한 찬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로 인해 상쾌함을 느끼는 동시에 갈증까지 느끼게 되었다.

급하게 주변을 살펴보니 갈증을 해소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정수가 어디에 있더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던 그때, 갑자기 내 앞에 음료수 하나가 놓였다.

탁.

고개를 들어 음료수를 내 앞에 놓은 사람을 쳐다보니 놀랍게도 지금까지 내게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던 박상원 선배였다.

선배는 조금 쑥스러워하는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목마를 테니 마셔. 다행히 내가 음료수를 많이 가지고 왔어.”

“…감사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의 호의에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일단 선배님이 주시는 거니 감사한 마음으로 음료수를 받았다.

또 다른 손에 음료수를 들고 있던 박상원 선배는, 내 눈치를 보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듯한 선배의 모습에 나는 계속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봐야 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앉아만 있었다.

나는 그냥 앉아 있기 뭐해서 선배가 건네준 음료수 뚜껑을 따 마셨다.

선배도 목이 탔는지 나와 같이 음료수를 마시기 시작했다.

어색하게 마주 보며 음료수를 마신 두 사람.

음료수를 조금 마신 선배는 용기를 내어 나에게 말했다.

“…예전엔 미안했다.”

뜬금없이 사과를 건네는 선배의 모습에 난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저번에 같이 촬영할 때… 네가 계속 말 거는데, 대답 안 하고 모른 척해서 미안했다고… 내가 어른답지 못하게 조금 옹졸하게 굴었던 거 같아.”

“…….”

솔직하게 사과하는 선배의 모습에 난 일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선배는 그런 내 모습에 신경 쓰지 않고 하고자 했던 말을 계속 이어 나가셨다.

“처음에는 좀 오해를 했었는데… 같이 작업하다 보니 네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잘 알겠더라. 그래서 가능하면 너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그런지 그게 쉽지가 않더라. 넌 나를 볼 때마다 먼저 살갑게 인사도 해 주고 그랬는데… 다 내가 못나서 그랬어. 그래서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

약간 딱딱한 말투였지만, 오히려 그런 말투로 진솔하게 미안하다고 하시니 더 마음에 와닿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진심으로 선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먼저 감사합니다. 나이도 어린 후배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 힘드셨을 텐데… 그런 어려운 말을 후배에게 할 수 있는 선배님의 모습이 더 존경스럽네요. 저도 그런 부분은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 왜 그러셨는지 솔직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선배 입장이라면, 저도 분명히 마음이 불편했을 겁니다.”

내 말을 들은 박상원 선배는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다. 너만 허락한다면 난 너와 편하게 지내고 싶다. 이번 드라마도 함께 촬영하게 될 거 같으니 친하게 지내면 더 좋을 거 같아.”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앞으로 좋은 후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하, 지금 너무 딱딱해 보여. 이왕이면 편하게 지내면 좋을 거 같아. 말도 편하게 하고.”

“그럼 제가 상원 형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거 좋지. 그럼 나도 너를 ‘서준아’라고 편하게 불러도 되니?”

“물론이죠, 형님.”

조금 불편했던 선배와 갑자기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게 돼서 아직까진 조금 어색했지만,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었기에 나는 더욱 살갑게 대하려고 했다.

내가 조금 편해진 것일까?

상원 형님은 전보다 편해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 이명우 역은 처음부터 네가 맡는 게 맞았어. 나였다면 너처럼 연기하지 못했을 거다.”

“에이, 저 기분 좋아지라고 일부러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제가 형님 연기하는 걸 바로 옆에서 본 사람인데, 그런 소리를 하시면 안 되죠. 저 두 번 죽이시는 거예요.”

상원 형님은 내 너스레를 보고 조금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너와 처음으로 함께 하는 신 찍을 때 난 바로 알겠더라. 왜 감독님이 너에게 그 배역을 맡기려고 하셨는지 말이야. 내가 했다면 절대 그 그림은 안 나와.”

다른 사람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이 형님도 장난이 아니었다.

연극판에서 거의 톱을 먹고 메이저에 올라온 경우기 때문에 연기로는 깔 게 없는 사람이 바로 이 형님이었다.

그런 형님의 말씀이니 들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너 연기 좋아. 따로 배운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웬만한 배우들 5년 이상 연기한 것보다 네가 낫더라. 특히 목소리하고 눈빛이 좋아. 혹시 그 부분은 배웠어?”

“아니요. 연기는 촬영 전 잠깐 배웠어요.”

“그래? 그렇다면 너도 그쪽 과 사람이네.”

“그쪽 과요?”

“응, 연기를 타고 난 사람들. 우리 같이 엄청 노력해야 보통이라도 하는 사람들에겐 정말 부러운 사람들이지.”

과찬에 가까운 말이라 뭐라 대답하기도 애매했다.

애매한 마음에 그저 미소짓고 있는 나를 보며 형님이 진지하게 다시 말했다.

“연기 계속해. 그리고 이번에 제대로 해서 주인공으로 자리 굳히고. 우리 같은 조연 라인들은 우리만의 길이 있고, 너 같은 주연 배우들은 그들만의 길이 있는 거야. 우리나라 연기 판이 잘 되려면 이런 사람들이 다 잘 되어야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솔직히 동종 업계 관계자들만 하는 깊숙한 이야기라서 나는 형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알아듣지는 못한 거 같았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말뿐이었다.

그리고 한 번 입이 열린 형님은 의외로 말이 많았다.

“그리고 연기라는 것이 말이야. 합이 중요하거든. 합이란 것은 또 뭐냐면…….”

이 형님 은근 말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너무 진지하기까지…….

차라리 예전 관계가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지만, 나쁜 생각인 거 같아 얼른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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