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97화 (97/189)

97. 액션스쿨(3)

아무리 바빠도 챙길 건 챙기며 살아야 한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나는, 오전에 헬스장으로 가서 힘든 운동을 끝내고 난 뒤 액션스쿨 수업 시작 전까지 잠깐 비는 시간을 이용해서 그동안 미뤄 왔던 일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시내로 향했다.

밴에 탄 채 목적지 근처로 온 나는, 황급히 운전하는 찬식이에게 말했다.

“찬식아, 난 여기서 내릴게. 넌 이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맛있는 점심 먹어.”

내 말을 들은 찬식이는 근처에 차를 잠깐 세워서 내가 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와 모자를 쓴 나는, 차를 내리는 와중에 찬식이를 보며 말했다.

“이 근처에 초밥집 유명해. 너 초밥 좋아하니까 거기 가서 점심 해라. 바로 이 가게야.”

나는 혹시 찬식이가 가게를 못 찾을까 하는 걱정에 실제로 식당까지 검색해서 찬식이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비싼 점심을 먹을 찬식이의 부담을 생각해 내 카드까지 건네주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계산은 이걸로 해. 부담 없이 비싼 거 먹어.”

찬식이는 내가 내미는 카드를 선뜻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형, 그냥 법인 카드 쓸게요. 일하면서 밥 먹는데 왜 형 카드를 써요?”

그러나 찬식이가 회사 사람들 눈치 보는 게 싫었던 나는 억지로 카드를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야, 너무 비싼 거 먹으면 회사 눈치 봐야 하잖아. 오늘은 형이 우리 동생 맛있는 거 사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그냥 가지고 가. 같이 먹으러 못 가서 미안해.”

내 마음 씀씀이에 감격한 표정을 짓는 찬식이를 뒤로하고, 나는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한국대 근처에서 내린 나는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보는 모교의 모습에 설레는 기분을 느낄 때쯤, 학교 안에서 밖으로 걸어 나오는 많은 사람 중 나와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바로 발견했다.

나처럼 약속 상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그녀, 아니 여동생의 모습에 내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만들어졌다.

“오빠!”

반가운 마음에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가, 내가 유명 연예인이란 사실을 깨달을 동생은 급히 주변을 돌아보며 자신 때문에 나를 알아본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귀여운 동생의 어리숙한 행동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동생에게 말했다.

“지금 네 행동이 더 수상하니까 두리번거리는 거 그만하고 빨리 와. 다행히 나 알아보는 사람 아무도 없어.”

“아, 그래?”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즐겁게 말했다.

“자, 가자. 저번에 약속한 대로 밥 먹고 옷 사 줄게. 돈 잘 버는 오빠가 동생 옷도 제대로 못 챙겨 준 거 같아 항상 미안했다. 오늘 제대로 플렉스 해서 그동안의 미안함을 한 번에 씻어 보도록 하자.”

“나 정말 옷은 괜찮아. 그리고 옷이 필요하면 오빠가 주는 용돈으로 사면 돼. 오빠가 충분히 많은 용돈을 주잖아.”

오빠가 돈을 많이 번다고 덩달아 과소비하는 되바라진 동생이 아니었기에, 옷 사러 가자는 말을 하자마자 또다시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 동생이었다.

나는 예쁜 얼굴에 말까지 예쁘게 하는 동생을 억지로 끌고 미리 정해 둔 옷가게로 향했다.

사실 돈만 줘서 사 입으라고 해도 되겠지만, 오빠로서 직접 동생을 챙기고 싶은 마음에 무리해서 함께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그렇게 동생 수정이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 걸어가니, 목적지가 눈에 보였다.

모처럼 비싼 옷을 사 주고 싶은 마음에 은비에게 물어 미리 정해둔 편집샵이었다.

도착한 가게 앞에는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게스트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녀를 본 수정이는 반가움에 크게 손을 흔들며 이름을 외쳤다.

“은비 언니!”

“하하, 수정이 왔어?”

나도 내 부탁에 쉬는 날에 여기까지 와 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쉬는 날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나도 쇼핑하는 거 좋아해서 이런 가게 오는 게 제 취미에요.”

“그래? 그럼 은비는 여기서 주로 옷을 사?”

“아니요. 여긴 비싸서 진짜 옷을 살 때는 여기 올 일이 거의 없죠.”

“그럼 사지도 않는데 왜 이런 가게에 자주 오는 거야?”

“트렌드를 보려고요. 명색이 제 직업이 스타일리스트인데 요즘 유행하는 옷들은 알아야죠.”

“그렇구나.”

직업상 이런 가게에 자주 온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이해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세 사람은 사이좋게 편집샵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일행 중 가장 앞선 사람은 이런 가게에 자주 와 봤던 은비였다.

은비의 리드에 따라 샵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즐겁게 쇼핑을 시작했다.

은비는 꾸미기 좋은 모델인 수정이를 최고로 예쁘게 만들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수정이의 패션을 스타일링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정이는 은비가 가지고 오는 옷들을 입기 바빴고,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내 눈에 괜찮아 보이는 옷들의 경우에는 그 즉시 구매를 시도했다.

이렇게 많은 옷을 입어 보며 옷을 사 본 적이 없던 수정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우리가 이끄는 대로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가격표를 보았는지 깜짝 놀라 안 그래도 큰 눈이 쏟아질까 걱정될 정도로 크게 떴다.

“오, 오빠.”

“왜?”

수정이는 남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내 곁으로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이거 너무 비싼 거 아냐? 무슨 청바지 하나가 이 가격이야?”

이 가게 옷들이 비싸다는 이야기는 이미 은비를 통해 들었지만,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이었나 보다.

하지만 이미 구체적인 가격을 대략적으로 들어 알고 있던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으며 대꾸했다.

“오빠랑 함께 옷 사러 올 때는 이 정도 비싼 옷 사 입어. 그 정도는 충분히 사 줄 수 있어.”

“아니 그래도 오빠…….”

괜찮다는 내 말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비싼 가격 때문에 갑자기 옷을 입어 보기를 주저하는 동생.

난 그런 동생을 억지로 설득해 옷을 입혔고, 결국 마음에 드는 옷들을 구매했다.

그리고 쇼핑 중간에 마음에 든다고 했던 옷을 은비 몰래 구매해서 주었다.

“이게 뭐예요?”

“선물. 오늘 패션을 전혀 모르는 나를 위해 이곳까지 와서 수정이 예쁘게 꾸며 주었잖아. 그거에 대한 보답이야.”

“선물은 고맙지만, 이거 엄청 비싼 옷인데…….”

“나 돈 많이 버는 거 네가 잘 알지? 그러니 부담 가지지 마. 그리고 예전부터 이런 선물 한번 해 주고 싶었어. 그러나 두말하지 말고 받아.”

거듭된 내 이야기에 은비 역시 마지 못해 선물을 받았다.

동생을 챙겨 주려는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우리는, 간단히 식사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은비는 다른 사람과 만나기로 했는지 중간에 헤어졌다.

우리가 선택한 음식은 분식이었다.

내가 평소 분식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연예인이 되고 나서는 먹을 기회가 없어 고집을 부려 선택한 가게였다.

칸막이가 있는 구석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한 우리 남매.

매운 떡볶이가 입에 들어가자 갑자기 온몸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 모습이 칸막이로 가려지는 거 같아 나는 주변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과감하게 모자와 상의를 벗었다.

면티만 입은 내 모습을 본 수정이는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 우리 오빠 몸이 왜 이렇게 좋아졌어. 옛날에 내가 알던 멸치남은 없어졌어.”

동생의 농담에 나 역시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과거는 잊어. 지금 네 오빠는 근육남이라고. 내 운동 도와주는 관장님이 대회 나가자고 살짝 꼬실 정도의 근육남… 알겠어?”

지금 동생에게 농담처럼 한 이야기는 실제 사실이었다.

함께 운동하던 내 모습이 마음에 드셨는지, 옆에서 코치하던 관장님이 은근슬쩍 나에게 대회 나가 볼 생각 없냐고 묻기도 하셨다.

물론 하필 그때 나와 함께 있던 실장님이 그 소리를 듣고는 관장님을 무섭게 째려보셨지만…….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따지는 듯한 실장님의 살벌한 눈빛에, 대회 출전을 권하던 관장님은 곧바로 입을 다무셔야 했다.

지금 내 몸은 내가 생각해도 제법 많이 변했다.

제대로 운동한 지 이제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근육이 예상과 달리 정말 많이 붙었다.

거기다가 만들어진 근육의 종류도 좋았다. 내가 맡은 스파이 역할을 생각하면 몸이 둔해 보일 정도로 커진 근육은 피해야 했는데, 다행히 커지는 근육보다는 내적으로 단단해지는 타입의 근육이었다.

그래서 운동을 할수록 내가 원하던 모습으로 변하고 있어 재미가 쏠쏠했다.

동생은 오랜만에 나랑 점심을 먹어서 그런지 질문이 무척 많았다.

“밥 먹고 이제 어디가?”

“연습하러 액션스쿨 가야지. 연습할 게 아직 산더미야.”

“연습은 잘 돼?”

동생의 물음에 나는 오늘 처음으로 기분이 가라앉았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 액션 연습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약간 풀이 죽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잘 안 돼.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몸이 잘 안 따르더라.”

“하긴 오빠가 약간 몸치이기는 하지. 공부만 잘하고 운동은 잘 못했잖아.”

“아니야. 운동은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지. 하면 또 잘해.”

체면이 뭐라고… 내 과거를 낱낱이 아는 동생에게 과감한 거짓말을 던졌다.

뭐 거짓말했다고 동생이 사실관계를 따지고 들 것도 아니니 거짓말을 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씁쓸해지는 마음도 느꼈다.

누구보다 내 운동 신경이 원망스러운 사람은 바로 나였다.

연습하면 할수록 감독님이 원하는 그림이 어떤 건지 잘 알겠는데, 나 때문에 그런 멋진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기에 속상한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액션스쿨에서 연습하는 것 자체가 내겐 큰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뭐 좋은 방법 없나? …그냥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될 거 같은데…….’

맛있는 떡볶이를 먹다 말고 액션 연습에 대한 걱정을 시작하는 나였다.

* * *

나를 향해 주먹이 날아오는 걸 상체를 숙이며 피했다.

그리고 상대에게 날아간 내 발.

원래라면 닿는 것처럼 보이게 근처까지 갔다고 돌아와야 하는데, 이상하게 발에 차이는 느낌이 났다.

“큭!”

실수를 깨달은 나는 급하게 액션 배우님에게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자신의 배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있는 남자.

다행히 잠시 후 액션 배우님이 몸을 일으켰다.

고통이 나아진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 때문에 피해를 당한 상대는 웃으며 괜찮다고 하지만, 실수한 내 마음은 쉽게 편해지지 않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하, 괜찮아요. 액션 연기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요. 그러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계속 걱정하는 내 모습이 안되었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정주홍 감독님이 잠시 쉴 시간을 주셨다.

찬 바람을 맞기 위해 강당 밖으로 나온 나.

내 얼굴을 스치는 바람 덕분에 내 몸의 열기는 점점 식어 갔지만, 액션 연기에 대한 내 근심은 더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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