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98화 (98/189)

98. 도깨비 상점(1)

“하, 마음대로 잘 안 되네…….”

내가 표현할 주인공에 대한 이미지가 세부적으로 잡혀 갈수록 드라마에서 액션 장면이 얼마나 중요한 신으로 작용할지 잘 알기에 더욱 답답했다.

턱.

심란한 마음 때문에 힘없이 서 있는 내 어깨에 누군가 갑자기 손을 올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정주홍 감독님이 미소 지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내가 걱정되어 나와 보신 모양이다.

“액션 연기가 쉽지 않지?”

“…네, 생각처럼 되지가 않아 힘드네요.”

“하하, 액션이 원래 어려워. 그래서 우리같이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거고.”

목소리와 얼굴에 담긴 따뜻함 덕분에 심란했던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전과 다르게 웃는 얼굴로 대답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액션을 배우면서 액션 배우분들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절실히 깨닫고 있어요.”

“그렇지? 그 마음 변치 않고 잘 간직해서 앞으로 현장에서 우리 액션 배우들 많이 챙겨 줘. 너 같은 주연 배우가 현장에서 우리를 챙겨 줘야 앞으로 액션 배우들에 대한 대우가 더 나아지니까.”

“네, 그러도록 할게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드셨는지 감독님은 기분 좋게 웃으셨다.

그리고 나를 보며 위로하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야. 그리고 안 되는 걸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건 현명한 생각이 아니라 미련한 거고.”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이야기하는 감독님의 모습에, 나 역시 진지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액션이 조금 모자라도 다른 방법이 많아. 움직이는 동선하고 카메라 구도만 조금 바꿔도 네가 그렇게 많이 등장할 필요가 없는 거지. 어차피 감독이 너한테 원하는 건 인물 연기잖아. 그러니 내가 네가 부담스럽지 않게 액션 신 조금씩 바꿔 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 알겠지?”

“…네.”

정주홍 감독님의 따뜻한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나에게 정말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으윽~ 너무 힘들다.”

고된 연습으로 인해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도 마음도 매우 지친 상태라 방문을 열자마자 보게 된 침대 위로 그대로 쓰러지는 것처럼 누워 버렸다.

잠시 눈을 감고 쉬어 보려고 했지만, 이내 다시 눈이 떠졌다.

편히 쉬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계속 불편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정주홍 감독님의 따뜻한 말도 내겐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

감독님이 날 생각해 주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기분은 한결 나아졌지만, 역시 내가 제 역할을 못 한 탓에 감독님만 개고생하게 되었다는 죄책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모두가 원하는 멋진 액션 연기를 선보일 수 있을까?

침대 위에 누운 나는 계속 생각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더니 마지막으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존재는 도깨비님의 얼굴이었다.

‘…어차피 특별한 능력을 주실 거라면, 액션 연기도 잘하게 좀 해 주시지…….’

잠깐 투정을 부려 봤지만, 누구보다 고마운 존재이기에 바로 머리를 흔들며 나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도깨비님 얼굴 다음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물건 한 가지.

그것은 나에게 신비한 경험을 하게 해 준 도깨비 안경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도깨비 안경을 꺼냈다.

끊어질 것 같은 연약한 지푸라기라고 잡아 봐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무심코 쓴 도깨비 안경.

안경을 착용하니 바로 도깨비 안경 이용권이 2장이 있다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번에 사용해서 한 장도 없었는데, 그새 2장이 는 모양이다.

내가 액션 연기에 정신이 팔린 이 와중에도 내 팬들은 내 노래와 내가 출연한 드라마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우연히 눈에 띄는 한 단어.

안경 쓴 내 눈 상단 구석에 적혀 있는 ‘부가 기능’이란 작은 글씨가 눈에 보였다.

‘부가 기능?’

도깨비 안경을 자주 착용해 보지 않아서 이제야 보게 된 글자였다.

궁금한 마음이 생긴 나는, 곧바로 손가락으로 그 글자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그러자 처음 보는 내용의 메시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착용자께서는 도깨비 안경의 부가 기능을 선택해 주셨습니다. 현재 도깨비 안경이 가지고 있는 부가 기능에는 정식 절차를 무시해서 도깨비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개구멍’ 기능이 있습니다.】

‘개구멍?’

이름 자체부터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호기심은 더욱 깊어졌다.

메시지 내용에 따르면, 도깨비 상점이란 곳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긴데, 도깨비 상점이 어떤 곳인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개구멍이란 글자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도깨비 상점을 이용하시겠습니까? 이용을 원하시면 가지고 계신 도깨비 안경 이용권 한 장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뭐?”

소중한 이용권 한 장을 써야 한다는 황당한 말에 나는 그대로 멈추었다.

“아니 도깨비 상점이란 곳을 이용하는 데만 소중한 이용권 한 장을 써야 한다는 거야? 말도 안 돼.”

도깨비 안경의 엄청난 기능을 직접 맛본 내 입장에는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황당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도깨비 안경도 정말 엄청난 능력을 선보였는데, 도깨비 상점이란 곳은 그런 신비한 물건이 많은 곳이 아닐까? 상점이란 단어가 왠지 그런 뜻 같은데…….’

상점이란 단어가 가진 뜻은 뭘까?

우선 여러 종류의 물건이 있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고, 또한 무엇을 파는 곳이란 뜻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만약 도깨비 상점이란 곳이 정말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장소라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해결할 방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렇게 한참을 도깨비 상점이란 곳에 대해 고민했던 나는, 결국 한번 이용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 생각대로 나는 눈에 보이는 ‘네’라는 글자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착용자께서는 도깨비 상점으로 가는 개구멍을 이용하는 것에 동의하셨습니다. 개구멍을 여는 데 이용권 한 장이 소모됩니다.】

메시지를 읽자마자 갑자기 눈앞에 빛이 번쩍였다.

번쩍.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 뜬 사이, 나는 어느새 내 방이 아닌 낯선 공간에 와 있었다.

놀라서 사방을 둘러보니 오래된 구멍가게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TV 속에서 보던 아주 옛날 슈퍼마켓 같은 곳이었는데,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문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도깨비 상점인가?”

전혀 예상치 못한 비주얼에 살짝 겁이 났다.

하지만, 소중한 이용권을 한 장 사용해서 온 곳이었기에 무서움을 느끼는 와중에도 용기 내어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약 3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었는데, 사방의 흙벽에는 나무로 만든 선반이 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어떤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바로 앞으로 가 선배 위 물건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이거 금괴 아니야?”

금빛을 띤 육각형 모양의 물건은, 내가 예전에 TV 같은 곳에서 본 바에 따르면 금괴가 분명했다.

처음부터 대단한 물건을 발견한 나는 심장이 그때부터 쿵쾅쿵쾅 뛰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마음을 다스리며 금괴를 자세히 살피자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금괴를 가지고 싶으신가요? 원하신다면 가지고 계신 도깨비 안경 이용권 한 장을 사용해서 금괴 2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길 원하신다면 ‘네’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황금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갑자기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는 내 마음을 마구마구 흔들어놓았다.

‘저 정도면 무게가 얼마지? TV에서 우연히 본 금괴랑 비슷한 크기 같은데… 그게 약 1kg 정도라고 했던 거 같은데… 가격은 얼마라고 하더라? 한 8천만 원 정도였던 거 같은데… 맞는지는 모르겠네.’

다행히 기억력은 좋은 편이어서 예전이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본 금괴에 관한 설명이 떠올랐다.

크기와 가격까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엄청난 가격은 분명했으므로 순간적으로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손이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황금빛을 뽐내고 있는 금괴로 움직이던 그때,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야, 너 뭐 하냐? 지금 금괴 가지러 여기 온 거 아니잖아. 정신 차려.’

내가 아까운 이용권 1장을 소비하면서까지 이곳에 온 이유는 액션 연기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탐나는 금괴를 가지는 것은 내가 이곳에 온 목적과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부에 관한 욕망을 가까스로 누른 나는, 억지로 보고 있던 금괴에서 시선을 돌렸다.

마치 목을 돌리는 것을 막는 듯한 무형의 힘을 느꼈지만, 강한 정신력을 발휘해서 마침내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다른 물건들도 보였다.

나는 그것들이 무슨 물건인지가 궁금했기에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보자기 같은 것에 쌓여 있었는데, 어떤 보이지 않는 힘 때문에 만질 수가 없었다.

내가 보자기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방금처럼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방문자께서는 정식 이용자가 아닌 관계로 해당 물건을 만질 수 없습니다.]

너무 아쉬운 말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기에 나는 다른 것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때 작은 나무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상자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그것을 읽으니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브레드 리의 눈.

‘브레드 리? 그리고 눈?’

브레드 리라는 이름은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낯설지가 않다는 것은 분명 내가 들어 본 이름이란 뜻이었기에 나는 열심히 예전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분명 이 이름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인상을 써가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덕분에 나는 곧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브레드 리라면 전설의 액션 스타 이서령의 아들이잖아.”

이서령은 아시아 최고의 액션 스타이다.

멋진 액션을 선보였던 그가 홍콩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인기를 얻었는데, 나중에는 미국 헐리우드까지 진출하게 된다.

그때,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브레드 리였다.

브레드 리 역시 아버지처럼 멋진 액션 배우가 되었는데, 알 수 없는 일 때문에 죽은 비운의 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필사적인 노력 끝에 그걸 기억해 냈다.

“브레드 리는 액션 배우잖아. 혹시…….”

브레드 리라는 이름 때문에 나는 혹시 이것이 나를 도와줄 물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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