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99화 (99/189)

99. 도깨비 상점(2)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목각 상자 근처로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리고 내 손이 상자에 닿기 바로 직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문자께서는 정식 이용자가 아닌 관계로 해당 물건을 만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해당 물건의 구매를 원하시면 가지고 계신 도깨비 안경 이용권 1장을 이용하여 구매하실 수는 있습니다. 해당 물건을 구매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곧이어 보이는 ‘네’와 ‘아니오’ 글자.

이놈의 목소리는 만지지는 말라고 하더니 또 구매는 가능하다고 하면서 내 머릿속을 아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었다.

“뭐가 들었는지 궁금한데… 만지지는 말라고 하니 볼 수는 없고… 그리곤 이번엔 갑자기 구매하라고 하네… 사람을 너무 많이 헷갈리게 하는군… 아, 머리 아파.”

나는 푸념에 푸념을 거듭하며 고민에 빠졌다.

혹시 액션 연기에 도움이 될지 모르는 물건처럼 보였기에 가능하면 구매를 하고 싶었지만, 아까운 이용권을 또 한 장을 써야 하고, 잘 모르고 샀다가 이상한 물건이면 이용권을 그대로 날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꾸만 망설여졌다.

그렇게 혼자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중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방문자의 도깨비 상점 방문 시간인 10분이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방문자님은 정확히 1분 뒤 이전에 계셨던 곳으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강제 귀환 소식에 나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기 계속 머무는 것 또한 절대 원하는 바가 아니지만, 적어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는 것 또한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나는 점점 나를 조여 오는 시간의 압박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내 고민은 ‘브레드 리의 눈’이라고 적혀 있는 저 목각 상자 속 물건을 구매할 거냐 말 거냐 하는 것이었기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고민했다.

[이제 10초 남았습니다. 10, 9, 8…….]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을 때,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브레드 리의 눈’이란 이상한 이름의 물건을 큰맘 먹고 구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름 큰 결심을 하였기에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사, 살게. 이거 살 거야. 구매한다고!”

큰소리로 외침과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네’ 글자를 눌렀다.

혹시나 누르지 않았을까 염려해서 허공에 손을 여러 번 허우적거리기까지 하였다.

[방문자께서는 ‘브레드 리의 눈’을 구입하셨습니다. 상품의 구입을 위해 소지하고 계신 이용권 한 장을 사용합니다.]

구입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눈앞에 빛이 번쩍였다.

번쩍.

심한 눈부심으로 인해 잠시 시야가 흐릿해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시야가 또렷해지기 시작했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니 완전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는 책상과 침대, 그리고 붙박이장까지 모두 눈에 익은 것들이 분명하니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내 방이 분명했다.

혼란스러웠다.

지금 내가 방금 겪은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

조금 전 내가 겪은 일의 정체성이 고민되어 머리가 아플 때쯤, 갑자기 우리 집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뜬금없는 벨 소리에 자기 방에 있던 찬식이가 나와서 인터폰을 받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그리고 잠시 후 내 방문을 두드리는 찬식.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 보니 택배 상자를 든 찬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 웬일로 이 밤중에 형한테 택배가 왔어요. 혹시 형이 시키신 거 맞아요? 아니면 제가 뜯어 볼게요. 나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나 역시 이상한 시간대에 등장한 택배의 정체가 궁금했기에 택배 상자에 붙어 있는 보낸 사람부터 확인했다.

도깨비 상점이라는 회사명이 눈에 바로 들어왔다.

“!”

속으로 많이 놀란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찬식이에게 말했다.

“응, 내가 시킨 거 맞아. 근데 이게 밤에 배달될 줄은 나도 몰랐어. 너도 피곤할 텐데 그만 네 방으로 가서 쉬어.”

“피곤한 건 형이죠. 그럼 이거 받으시고 어서 쉬세요. 잘 자요, 형님.”

모 디제이처럼 ‘잘 자요.’라는 느끼한 인사를 건넨 찬식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엉덩이를 벅벅 긁으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고, 택배 상자를 건네받은 나는 상자를 손에 든 채 책상에 앉았다.

상자 안에 든 물건을 확인해 볼 시간이었다.

드드득.

서둘러 포장 테이프를 뜯고 안에 든 물건을 꺼냈다.

상자 안에 든 물건의 정체는 놀랍게도 콘택트렌즈였다.

“이게 ‘브레드 리의 눈’이야?”

보낸 사람에 도깨비 상점이란 단어가 적혀 있고 콘택트렌즈가 갑자기 택배로 배달되었다.

그렇다면 이게 ‘브레드 리의 눈’이란 물건이란 뜻인데…….

혹시나 ‘브레드 리의 눈이 진짜 눈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잠시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점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렌즈를 착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혹시 어떤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는 게 아닐까?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 생각을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리던 나는, 용기 내어 렌즈 뚜껑을 열고 렌즈를 꺼내었다.

이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직접 껴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렌즈를 껴 보는 나.

눈이 좋은 편이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렌즈를 직접 껴 볼 일은 없었지만, 렌즈를 끼는 모습을 본 적은 직간접적으로 여러 번 있었기에 혼자 착용을 시도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드디어 착용한 렌즈.

렌즈를 끼자마자 나는 곧바로 어떤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변화에, 나는 한참 동안 놀라움을 느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오늘도 역시 액션스쿨 내부 연습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출연 배우들은 물론이고 촬영에 투입될 액션 배우들까지 실제 촬영에 가까울 정도의 강도 높은 연습을 매진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모두를 감독해야 할 정주홍 감독은, 어딘가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의 이목을 끈 사람은 요즘 가장 ‘핫’한 스타인 가수이자 배우인 이서준이었다.

‘자세는 많이 좋아졌네. 시간 날 때마다 자세 연습을 많이 한 것이 분명해.’

정주홍 감독 정도만 되면 배우의 동작만 봐도 해당 배우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곧바로 견적서를 뽑을 수 있었다.

자세만 봐도 이서준이란 배우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알 수 있었기에, 정주홍 감독은 그런 그를 아주 대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서준이란 배우와 함께 지내면서 그의 열정적인 연습 태도에 많이 반한 상태였다.

소위 잘나간다는 배우들과 연습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본인 스스로 프라이드가 강하고 자신이 소위 잘나가는 중이라는 걸 매우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금만 불편한 상황이 나와도 그로 인한 불평불만이 너무 심했다.

그리고 해야 할 연습도 제대로 안 해 미리 짜인 액션 장면을 모조리 수정해야 할 경우도 제법 많았다.

그런 그들과 이서준은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이서준은 겸손했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국대 출신이라서 그런지 머리도 좋아 액션 순서 같은 것도 금방 외웠다.

이런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함께 일하기 너무나 좋은 배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운동신경이었다.

어설픈 자세 같은 건 반복 연습하면 분명히 나아질 수 있는 문제였는데, 빠르게 진행되는 연결 동작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어설퍼 보이는 동작이 계속 나왔다.

이건 바로 운동신경이 둔해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그의 경험상 절대로 단기간엔 고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기에 지금은 이 부분에 관해선 거의 포기한 상황이었다.

‘주인공의 얼굴이 많이 등장하는 액션 신을 어쩔 수 없이 줄여야 해.’

주인공의 얼굴이 나오는 장면 대신 대역 배우가 많이 등장하는 신의 비중을 늘려야 하는 것은, 베테랑 액션 감독인 그로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오늘도 시작은 항상 연습해 오던 연결 동작이 등장하는 액션 신이었다.

어제처럼 진지하게 연기에 나서는 이서준과 액션 배우들.

그들이 만들어 내는 동작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정주홍 감독의 눈은 놀라움에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의 예상과 다르게 너무나 멋진 액션 장면이 지금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서준의 움직임과 자세가 정말 최고였다.

30여 합이 넘는 액션이 끝났을 때, 배우들이 서 있던 체육관에서 난데없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야, 이서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맞아. 너 이상해.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보여.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

환호성을 지른 사람들은 이서준과 함께 연기한 액션 배우들이었다.

어쩌면 이서준과 많은 연습을 했던 그들이기에 오늘 이서준의 연기가 더욱 놀라웠을 것이다.

동료들의 칭찬을 받은 이서준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연습 열심히 해서 그런 거 같아요. 그리고 집에 가서도 계속 연습했거든요.”

“그래? 너 집에서 엄청 열심히 연습했나 보네. 기특해, 이서준. 잘 나온 김에 한 번 더 갈까?”

“네, 그래 주시면 제가 더 고맙죠.”

함께 연기하는 동료들의 칭찬만큼 기분 좋은 칭찬은 없었기에 다시 연기를 준비하는 이서준의 얼굴에는 그 어떤 때보다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 * *

땀을 흠뻑 흘리고 찾아온 대강당 옆 파라솔.

의자에 앉아 이온 음료를 마시고 있는 이서준의 표정은 여느 때와 크게 달랐다.

전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은 액션 연기 때문에 잔뜩 풀이 죽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면, 지금은 연습이 잘돼 너무나 흡족한 표정이었다.

때마침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덕분에 기분이 더욱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짜릿하네. 액션 연기가 의외로 중독성이 쩔어.’

여러 명의 동료와 함께 몸을 움직이며 만들어 가는 액션 신이 제대로 만들어지자, 그 쾌감은 정말 짜릿했다.

예전에는 제대로 연기를 못한 탓인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이대로 계속 연습한다면 액션 연기가 가지다 주는 쾌감에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게 다 새로 장착한 아이템 덕분이지.’

지금 내 눈에는 도깨비 상점에서 구입한 콘택트렌즈를 낀 상태였다.

그리고 오늘 연습에서 신규 아이템의 효능을 제대로 맛보기까지 했으니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었다.

‘내가 만약 이걸 안 샀으면… 에휴, 상상하는 것조차 싫다. 정말 이걸 사기로 결정한 건 내가 도깨비님을 우연히 만날 기회를 줬던 산행을 결정했던 것만큼 잘한 일이야.’

‘브레드 리의 눈’이란 아이템, 아니 렌즈는 내게 능숙한 액션 배우로서의 눈을 가지게 해 주었다.

즉 이 렌즈를 끼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브레드 리가 되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