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05화 (105/189)

105. 최고 인기 스타의 자리에 오르다(4)

차를 마셔 몸속이 따뜻해진 덕분일까?

나는 오늘 처음으로 편하게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드라마가 계속될수록 몰입도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운 관계로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그래서 은비나 찬식이 같은 내 식구들에게도 편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긴장감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실장님.”

진심으로 감사하는 내 마음이 담긴 인사에, 실장님 역시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고작 차 한 잔에 고맙긴… 그것도 요즘 친구들 입맛에 맞지 않는 국화차 한 잔을 주고 듣기에는 많이 부담스러운 말이네.”

“하지만, 그 평범한 차 한 잔이 제게는 큰 위안이 되었어요. 오늘 계속 신경이 예민해서 조금 힘들었거든요.”

오늘 내 옆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실장님도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짐작이 갔다.

아마 그래서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다가 이렇게 차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겠지.

아직 완전히 마음이 편해지진 않았지만, 나를 걱정해 주시는 실장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기운을 내야 할 거 같았다.

계속 다운된 상태로 있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는, 우선 내 앞에 놓인 차를 후후 불어 가며 다 마셔 버렸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실장님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하하, 다 마셨네요. 이제 씩씩하게 마지막 촬영 다녀올게요.”

실장님은 그런 내 어깨를 토닥여 주시고는 응원의 말도 잊지 않으셨다.

“그래 다녀와. 오늘 잘하고. 알겠지?”

“…네.”

실장님의 격려를 받으며 몸을 돌리니, 어느새 나타난 은비와 찬식이가 나를 보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었다.

오늘 예민한 나 때문에 많이 불편했을 텐데도, 이렇게 나를 위해 응원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응원하는 그들을 향해 씩씩하게 말했다.

“…잘 찍고 올게.”

“이서준 파이팅.”

“형, 파이팅.”

어느새 진짜 동생처럼 느껴지는 두 사람의 파이팅 소리를 들으며 나는 녹화장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 * *

“…언제부터 안 거냐?”

국정원장의 물음에 이준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미국 CIA가 나를 쫓아올 때 확신할 수 있었어. 사실… 처음부터 당신을 어느 정도 의심하고는 있었지. 항상 당신을 보면 왠지 모를 구린 냄새가 풍기곤 했으니까. 결국, 그때부터 당신을 의심한 내 촉이 맞았던 거지.”

이준혁의 대답을 들은 국정원장의 눈은 놀라움으로 인해 커졌다.

지금까지 완벽하게 숨기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저 늑대 새끼 같은 자식이 눈치를 채고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 그의 반응이 마음에 들어서일까?

배신자에게 총을 겨누고 있던 이준혁의 입가에는 무언가에 만족한 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 바로 그 표정이야. 내가 당신 때문에 미친 듯이 쫓기면서도, 이렇게 당신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고 놀라는 당신의 표정을 꼭 보고 싶었거든. 오늘에서야 내 소원을 이룬 것 같아 너무 기분이 좋네.”

지금 현재 상황이 자신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국정원장도 알았다.

그랬기에 자신을 비웃는 듯한 이준혁의 말에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이다.

이미 틀어져 버린 상황에 대해 생각하는 건 그만두고, 지금부터는 최선의 방책을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그는, 이준혁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두자. 너나 나나 한가한 사람은 아니잖아.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아마도 나를 경찰에 넘길 생각이겠지. 아니면 국정원 차장을 통해 정부하고 이미 말을 나눈 상황인가? 어느 쪽을 선택했던지 모두 나쁘지 않은 선택이란 생각이 드는군.”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이 틀어진 건 이젠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내심 자신도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과 비밀리에 교류를 나누고 있던 유력 인사들의 수가 제법 되었기에 지금 정도의 비밀이 풀린 상태에서 붙잡힌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준혁은 그런 국정원장의 그런 속내를 읽었을까?

그는 이번에도 배신자를 바라보며 다시 웃었다.

다만 이전의 웃음과는 다르게 이번 웃음에는 많은 살기가 담겨 있었다.

“크크, 당신 의외로 단순한 사람이군. 아마 지금쯤 어떻게 하면 다시 자유롭게 풀려날 수 있을까 하고 그 방법을 찾느라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다 보여. 근데 어쩌지? 난 당신을 정부에도, 그리고 경찰에게도 넘겨줄 마음이 전혀 없는데 말이야…….”

“!”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이준혁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계산하던 국정원장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지? 날 그쪽에 넘기지 않겠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

많이 당황한 채 물어보는 그의 물음에, 이준혁은 비웃음을 띤 얼굴로 그를 조롱했다.

“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못 해 본 모양이군.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할지 궁금해? 방금 말한 그대로야. 난 네놈을 남들에게 전달해 줄 마음이 조금도 없어. 왜냐고? 그야 당연히 그 녀석들은 네 녀석과 짝짜꿍이 되어 조금 데리고 있다가 너를 그냥 풀어 줄 게 뻔하니까. 네놈 뒤를 조사하며 우연히 발견한 사실에 따르면 네놈도 그 녀석들의 약점을 꽤 많이 들고 있는 게 분명하잖아. 그러니 아마 쉽게 타협을 볼 수 있을 거야.”

아주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던 이준혁의 말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억양 또한 점점 강해져 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지금 그의 머릿속에 떠올라 있는 한 명의 얼굴 때문이었다.

으득.

“우… 리는 조국을 위해 우리 생명을 던져 가며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어. 상범이도 그런 멍청한 녀석이었지. 그러나 너처럼 버러지 같은 놈들은 그런 우리의 생명을 그저 장기판 위의 졸처럼 가볍게 생각할 뿐이었지. 그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내가 지금 네놈에게 제대로 알려 줄 생각이야. 그러니 내가 주는 가르침 달게 받고. 지옥에 가서 상범이 만나면 다시 벌을 받도록 해. 아마 상범이도 너를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을 테니까 말이야.”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국정원장은 크게 당황해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이준혁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지, 지금 네놈의 말은, 네놈 손으로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냐?”

히죽.

이준혁은 아주 잔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천천히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 대답을 들은 국정원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갔다.

그리고 그는 이상하게 행동하는 이준혁을 달래기 위해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너 역시 큰일 나는 거야. 앞으로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나를 처리한 너를 그냥 둘 리 없다는 사실을 잘 모르겠니?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거야? 제발 정신 차리고 날 그냥 경찰에 넘…….”

타앙.

사력을 다해 이준혁을 설득하고 있던 그는, 이준혁이 쏜 총알에 맞아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털썩.

쓰러진 배신자의 피가 사무실 바닥에 흥건히 고이기 시작했다.

아직 숨이 미약하게 붙어 있던 국정원장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준혁을 바라보며 피 끓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흐… 흑, 아니 어… 떻게 네놈이 나… 를 쏘… 컥.”

턱.

국정원장은 마지막 말을 제대로 끝맺지도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이준혁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의 대의를 위해 죽음까지 각오하며 살아왔다. 그런 우리를 네놈 마음대로 이용한 건 네 죽음 정도로는 도저히 갚지 못 할만큼의 큰 죄야. 그러니 지옥에서 조금만 기다려. 나중에 그곳에서 널 다시 만나면 그때는 내가 너를 다시 죽여 줄게. 죽일 육신이 없다면 네 영혼이라도 제대로 소멸시켜 줄 테니 그곳에서 나에게 제대로 교육받을 때까지 엉뚱한 짓 하지 말고 악착같이 살고 있으라고… 알겠지?”

이준혁은 그 말을 끝으로 서서히 문을 향해 걸었다.

이제 그는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야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한 선택에는 단 한 점의 후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카트!”

갑자기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

촬영 종료를 알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얼굴의 이진섭 감독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멋진 연기를 펼친 주인공 이서준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우리 서준이 정말 잘했어. 마지막 눈빛 연기 너무 좋았어. 최고야, 정말.”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리고 감독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하하, 나보다는 네가 고생이 많았지. 수고했다, 서준아.”

아직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괴로운 이서준이었지만, 끝났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연기자와 스태프의 모습을 보며 그 역시 억지로라도 웃으며 수고한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자, 일단 빨리 마무리하고 해산합시다. 잘 시간도 없이 진행된 촬영 때문에 잠이 너무 고픈 사람들이 많을 테니, 조금 쉬다가 저녁에 뒤풀이 장소에서 봅시다. 촬영도 끝났으니 오늘 제대로 마셔야 할 거 아닙니까?”

“오오, 좋죠. 오늘 나 말리지 마쇼. 마시다 그냥 뒈질 거니까. 하하하”

“좋지.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 먹으며 제대로 한번 달려 봅시다. 뭐 해? 어서 서둘러. 잠 안 잘 거야?”

촬영 종료에 신이 난 조감독과 카메라 감독의 농담 섞인 목소리에 모든 스태프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환호했다.

힘들었던 촬영이 끝났다는 사실만큼 이들을 기쁘게 하는 말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 * *

SBC 예능국.

화가 난 예능국장은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김 피디를 향해 소리쳤다.

“아니 내가 이서준을 섭외하라고 지시한 지가 도대체 언제야? 왜 지금까지 이서준 출연 약속을 JYK에서 받아 오지 못하는 거야? 도대체 왜?”

국장의 불호령에 김 피디는 눈을 찔끔 감으며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너무 억울했다.

그 누구보다 이서준을 섭외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와 통화한 횟수가 몇 번인지는 너무 많아 세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니 갑자기 사라져 회사에서도 어디 갔는지 모르는 친구를 도대체 내가 어디에서 찾아와?’

너무 억울해 노발대발하는 국장 앞에서 속 시원하게 쏟아 내고 싶지만, 올해 15년 차가 되어 가는 오랜 직장 생활 경험 덕분에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실수를 범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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