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2집 타이틀곡 작업(1)
원래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화가 나 계속 언성을 높이던 국장도,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김 피디를 상대로 계속해서 화를 내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사무실 안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던 국장은, 이제는 지쳤는지 의자에 깊숙이 등을 기대며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살짝 눈치를 살피다가 그제야 고개를 조금 드는 김 피디.
그는 이제 서서히 무섭게 몰아치던 폭풍우가 그쳐 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 정도에서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조심스럽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때, 국장의 목소리가 다시 자신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JYK에서는 뭐라고 그래?”
이전의 화를 내던 목소리와 다른 국장의 물음에 지금까지 굳게 닫혔던 김 피디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회사 측에서도 지금 이서준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고 합니다.”
“진짜야? 그냥 여러 가지로 상황이 복잡하니까 외부에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 거 아니야?”
국장은 다른 곳과의 은밀한 협상 때문에 자신들에게 거짓말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저도 그게 의심이 되어 실제로 JYK 본사 뒤편에 있는 이서준의 소속사까지 가 봤는데요. 거기서도 이서준이 회사에 안 나온 지 꽤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믿어?”
“회사 근처에 작은 커피숍이 하나 있는데요, 거기가 이서준 단골 가게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가게에 가서 물으니 그 집 사장도 이서준이 가게에 들리지 않은 지 한참 되었다고 하더군요. 이서준이 회사에 있으면 가끔 가게에 들러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를 사서 회사에 들고 가곤 하는데… 최근에는 그 모습을 못 본 지 제법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주변에서 이서준의 모습을 자주 보던 사람의 증언이라면 제법 신뢰가 갔다.
그러나 혹시 모르니 다시 물었다.
“그냥 단골 가게를 바꿨을 수도 있잖아. 길거리에 널린 게 커피숍이니까.”
김 피디는 국장의 예리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을 이어 갔다.
“저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회사 주변을 더 돌아다니며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모두 한결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평소에 이서준이 그 근처를 제법 편하게 돌아다닌 모양이더라고요. 근데 물어본 곳 모두 다 이서준을 본 지 제법 오래되었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결정적으로?”
“다른 방송국 피디들도 우리와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어떻게든 이서준을 잡아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라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막상 이서준을 만나서 설득해야 하는 피디들도 지금 우리처럼 그 녀석이 어디 있는지 몰라 발만 동동 굴리고 있습니다. 결국, 모두가 이런 비슷한 상황이라면 JYK에서 ‘이서준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기 위해 거짓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 피디의 상황 설명을 들은 국장은 다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방금 김 피디가 설명한 상황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서준은 진짜로 잠적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다시 한 가지 질문이 그의 머릿속에 저절로 떠올랐다.
“그럼 이서준은 숨어 있는 이유가 뭐야? 그것도 지금처럼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고 있는 이 중요한 때에 말이야?”
“…….”
이어진 국장의 질문에는 김 피디 역시 답을 알지 못했기에 또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 *
이서준의 행방에 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방송국 쪽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보통 때라면 편하게 이서준과 만나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들 역시 이서준이 어디 갔는지 몰라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듀엣곡을 작업하기 위해 모인 세린과 연경 역시 이서준의 행방이 궁금했다.
세린의 작업실에 모인 두 사람.
그녀들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누군가가 보낸 음악 파일 하나를 재생시켰다.
♪♩우우 우~~우우 우♩♪
애절한 피아노 선율에 실려 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
듣기만 해도 마음 한쪽 구석이 아련해 오는 피아노 선율, 그리고 깊은 슬픔이 담긴 듯한 남자의 목소리는 듣고 있는 두 사람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버리고 있었다.
약 3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던 노래가 드디어 끝이 났다.
잠시 작업실에는 정적이 흐르고, 입을 다물고 있던 두 사람 중 이세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와… 서준이는 항상 내 생각의 범위를 뛰어넘네… 방금 느낀 감정선은 도대체 뭐지? 어떻게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길로 멜로디를 풀어 갈 수 있는지 본인을 내 앞에 앉히고 자세히 묻고 싶은 심정이야. 도대체 어떤 걸 머릿속에 떠올렸기에 이런 전개를 만들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아.”
떨리는 목소리로 방금 느낀 곡에 대한 감상을 말하고 있는 이세린은, 솔직히 많이 당황한 상태였다.
자신이 이서준에게 곡을 부탁한 건 당연히 그라면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멋진 음악을 만들어 줄 거라는 기대감 때문에 부탁한 것이지만, 이 정도로 소름 끼치는 결과물을 보내올 줄은 그녀 역시 예상치 못했다.
큰 충격을 받은 이세린은, 지금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연경에게 고백했다.
“나 솔직히 질투도 나려고 해.”
“질투요? 오빠에게요?”
“그래 서준이. 나도 스스로 평가할 때 제법 괜찮은 작곡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얜 나 같은 사람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그냥 괴물이야. 음악을 제대로 한 지가 얼마 되지도 않는 애가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자신을 뛰어넘는 이서준의 재능에 대해 놀란 이세린은, 마치 누군가에게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세린이 귀여웠던 연경은 혼자 웃었다.
연경이 자신을 보고 웃는 것도 모른 채 이세린은 연경에게 다시 물었다.
“질투하는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너도 나랑 비슷한 마음 아니야?”
그녀의 물음에 연경은 참았던 웃음이 터지며 대답했다.
“하하, 전 질투 안 느껴요. 왜냐구요? 질투도 언니 정도 되는 사람이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어디 비벼 볼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질투가 생겨요?”
크게 웃으며 세린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한 연경은, 이제 그만하라는 듯한 얼굴로 이세린을 보며 재촉했다.
“질투같이 오늘 우리가 작업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감정은 훌훌 털어 버리세요. 그리고 얼른 작업합시다. 이렇게 좋은 곡이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언니도 서준 오빠가 부러워할 만한 언니만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주세요.”
연경이가 말한 자기만의 재능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세린은, 다시 그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서준이가 부러워할 만한 언니만의 재능? 그게 무슨 소리야?”
연경은 이세린을 보고 조금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대답했다.
“그건 바로 언니의 작사 능력이죠. 유명한 작사가님이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가셔서 우리나라에서는 언니가 최고 작사가란 말을 한 적도 있잖아요. 언니는 그 이야기 들은 적 없어요?”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저 역시 그분 발언에 동감이에요. 왜냐고요? 언니랑 같이 일하면서 저도 느꼈거든요. 어떻게 저런 가사를 생각할 수 있지 하며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그러니 언니 역시 서준 오빠만큼 천재라는 말이죠. 그리고 천재답게 방금 들은 슬픈 멜로디에 어울릴 만한 멋진 가사를 어서 뽑아 주세요.”
농담 반 응원 반이 담긴 동생의 귀여운 성화에 이세린은 그제야 밝게 웃을 수 있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엄청난 재능에 살짝 기가 죽을 뻔했는데, 귀여운 동생이 다시 자신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고 있어 고마웠다.
그런 고마운 동생의 말처럼 지금은 일할 때란 걸 다시 깨달았다.
“알겠어. 그리고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다는 말도 전하고 싶네. 서준이의 무시무시한 음악적 능력 때문에 잠시 우울해질 뻔했는데, 마침 네가 옆에 있어 금방 헤어 나올 수 있었어.”
“후후, 이 동생이 예쁜 세린 언니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기분이 좋네요. 그럼 노랫말 작업을 제대로 시작해 볼까요?”
“그래, 시작하자.”
두 사람은 이서준이 보내 준 곡에 어울릴 만한 가사를 함께 만들기 시작했다.
연경은 머릿속의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막 풀어놓았고, 훌륭한 작사가인 이세린이 그것을 다듬고 정리해 주며 본인의 생각도 더했다.
그렇게 한참을 작업한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던 연경이 문득 생각났는지 세린에게 물었다.
“근데 언니도 몰라요?”
“뭘?”
“서준 오빠 어디에 있는지요.”
이세린은 연경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몰라. 연락은 메시지로 주고받고 있지만… 서준이를 보러 가려고 해도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는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네. 혹시 회사 사람들은 아니?”
이번에는 조연경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몰라요. 만약 알았으면 저도 알았겠죠. 이건 그냥 제 짐작인데요. 오빠가 있는 곳은 실장님만 알고 계신 거 같아요. 실장님이 요즘 회사에 가끔 오시거든요. 아마 회사에 안 계실 때는 오빠 옆에 계시는 게 아닐까 하는 짐작은 해요.”
“그렇구나…….”
이세린은 이서준만 생각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그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서준이 드라마 배역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후유증 때문에 잠적한 지가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연락은 되어 어려운 곡 작업도 부탁할 수 있었지만,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는 건 여전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이세린.
그녀는 어딘가에 있을 이서준을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빨리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어. 나도 예전에 드라마 끝나고 힘들었거든. 근데 계속 숨어 있으니 더 벗어나기 힘들더라. 그러니 어서 용기 내서 세상으로 나와. 세상에는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니 네가 힘을 낼 때 큰 도움이 될 거야.’
이서준에겐 전해지지 않을 이야기지만, 텔레파시처럼 그냥 마음속으로 전달되기를 바라보았다.
* * *
인적이 드문 바닷가 어촌 마을.
방파제 위에는 운동복 차림의 남자 한 명이 의자에 앉아 있다.
그 앞에는 낚싯대가 놓여 있었는데, 낚싯대는 전혀 쳐다보지 않고 바다만 보고 있는 것을 모습을 보니 낚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근처를 지나던 어촌이장은 젊은 남자를 보고 반가운 얼굴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때? 오늘은 물고기 잡았는가?”
어촌이장을 보고 인사를 한 청년은 멋쩍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전혀요. 전 낚시에는 소질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들은 어촌이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낚을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물고기가 잡혀 줄 줄 알았나? 그런 일 없을 테니 기대도 하지 말게. 허허허.”
청년에게 농담을 건넨 어촌이장은 할 일이 바쁜지 빠른 걸음으로 방파제를 벗어났다.
떠나는 이장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쳐다보던 남자는 다시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다를 보고 멍 때리는 것만큼 좋은 건 다신 없을 거 같네. 잡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지잖아. 너무 좋다.”
바다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 남자는 많은 사람들이 행방을 궁금해하는 이서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