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07화 (107/189)

107. 2집 타이틀곡 작업(2)

애초에 낚시는 그냥 핑계였다.

그냥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는 게 너무 좋아서 낚시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매번 이렇게 방파제에 나와 있는 거였다.

나는 이장님이 떠나고 난 뒤에도 제법 긴 시간을 그곳에 앉아 있었다.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올 때쯤 나는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이라 이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오늘도 역시 수확물이 전혀 없었던 관계로 빈 양동이를 손에 들고 허름한 어촌 집을 향해 걸어갔다.

집 근처에 이르자 코를 간지럽히는 맛있는 된장찌개 냄새가, 때마침 배고픔을 느끼고 있던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을 생각에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마당에 서서 나를 반겨 주셨다.

“아이고, 어여 와. 안 그래도 식사 때라서 부르러 가려고 했는데…….”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생각날 정도로 날 따뜻하게 반겨 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기분 좋게 웃으며 낚시 도구를 내려놓는데,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손님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그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형님? 여긴 언제 오신 거예요?”

“하하하, 안녕 서준아. 여기 온 지는 이제 한 시간 정도 됐어.”

“그래요? 그럼 저 부르시지… 아, 제가 어디 있는지 모르셨겠구나…….”

나를 찾아온 깜짝 손님의 정체는 내 소속사 대표님이자 친한 형님인 김진영 형이었다.

형님은 나를 보려고 이 먼 곳까지 찾아와서, 내가 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형님이 온 줄 알았으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을 텐데…….

왜 연락을 안 하셨는지 모르겠다.

하긴 내가 핸드폰도 두고 밖으로 쏘다니는 중이라 연락을 하셔도 연락은 안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직접 찾아다녀야 할 텐데, 이곳 지리를 모르는 형님이라면 밖에 있는 나를 찾기가 무척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형님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알았어. 이 동네 사람분들 모두가 네가 방파제에서 낚싯대만 걸쳐 놓고 바다 보고 있을 거라는 걸 다 알던데? 너 시간만 나면 거기 있다고 하시더라.”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는 말이라 나는 조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어디 있는지 아시면 찾아오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이렇게 오래 안 기다리고 계셔도 됐을 텐데…….”

“나도 오랜만에 바닷가에 왔으니 이 근처를 돌아다니며 힐링 좀 했지. 너 방해하기도 싫었고.”

“그래도… 아! 할아버지 제가 들게요!”

나를 보러 찾아와 준 형과 반갑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할아버지가 무거운 상을 드는 모습을 본 나는 급하게 할아버지에게로 뛰어가 대신 상을 받아 들었다.

“아니 이 무거운 걸 왜 할아버지가 드시고 그래요? 그냥 저보고 들라고 하시면 되잖아요. 가뜩이나 요즘에 허리 아프시다고 하셨으면서…….”

진짜 손자처럼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며 타박하는 내 모습이 무척 귀여우셨는지,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보이셨다.

“허허허, 괜찮아, 이 정도는.”

“에이, 그래도 제가 있을 때는 아니죠. 저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저 있을 때만이라도 무거운 거 들 때는 꼭 저한테 시키세요. 아시겠죠, 할아버지?”

“허허, 그려, 그려.”

우리는 할머니가 맛있게 차려 주신 상을 마당에 놓인 평상 위에 올려 두고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맛있게 먹고 있는 형님을 보며 물었다.

“어때요? 맛있죠?”

내 물음에 형님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와… 진짜 맛있다. 서울에 있는 웬만한 고급 식당 음식보다 더 맛있는 거 같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너무나 맛있는 음식 맛의 비밀을 궁금해하는 형을 보며 나는 웃으며 그 이유를 설명해 드렸다.

“이 음식들을 만든 재료가 모두 이곳 어촌에서 키운 거예요. 평소에 형님이 그렇게 강조하시는 질 좋은 유기농 재료로 만들었다는 뜻이죠. 거기에다 몇십 년을 요리해 오신 우리 할머니의 훌륭한 손맛까지 더해졌으니 당연히 음식 맛이 좋을 수밖에 없죠. 안 그렇습니까, 형님?”

내 설명을 들은 형님은 내 말이 맞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맞네. 네 말이 맞아.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이 맛이 없을 리가 없지. 아무튼, 오늘 저녁은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먹은 음식 중에 최고다, 최고.”

그렇게 환상적인 맛을 자랑하는 저녁의 비밀을 알아본 우리는, 다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우리 두 사람은 산책에 나섰다.

저녁을 먹은 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동네를 거니는 것은 이곳에 와서 생긴 나의 새로운 습관이었다.

내가 산책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그림처럼 예쁜 동네를 천천히 걸어 다니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매일 걷던 산책길에 함께 걷고 있는 김진영 형님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문득 궁금했다.

“좀 어때?”

형님이 갑자기 물었다.

조금 포괄적인 질문이었지만, 형님이 무엇이 궁금해서 물어본 건지, 그 질문의 포인트를 나는 잘 알고 있었기에, 형님을 보며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많이 좋아졌어요. 지금은 원래 내가 누구였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아요. 며칠 전만 해도 내가 이서준인지 아니면 상처 입은 이준혁인지 많이 헷갈렸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아요.”

“그래?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다. 그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네가 느끼는 혼란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네, 다행이죠. 그리고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일부로 맡았던 세린 누나 곡 작업도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오랜만에 음악 작업을 하니까 원래 내가 가수였다는 사실이 더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이준혁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내 대답을 들은 형님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숨겨 둔 사탕을 발견한 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곳에서 제대로 곡 작업을 해 보는 건 어때? 그래야 본래의 너로 빨리 돌아올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나 역시 형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회사에 제대로 이야기하려던 계획을 이 자리에서 바로 설명했다.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드리는 말인데요… 그냥 여기서 2집 작업을 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인 거 같아요.”

내 말을 들은 형님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2집을?”

“네. 원래 작업하던 곡은 있는데요, 아직까지 타이틀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드는 곡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곳에서 2집 작업을 하면, 제가 연기했던 이준혁에게서 더 빨리 빠져나올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미루었던 2집 작업도 서두를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요?”

“그렇지,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근데 여긴 작업할 장비가 없잖아.”

“기타는 지금 들고 있고요. 피아노는 이곳에 있는 폐교에 한 대 있더라고요. 전 그거면 충분해요. 어차피 본격적인 작업은 서울에 돌아가서 할 거니까요.”

“좋네. 그렇게 하도록 해.”

형님은 내 계획을 듣고는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그냥 정처 없이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도착했던 이곳.

난 이제 이곳에서 중요한 일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것은 바로 내 2집 타이틀곡 작업이었다.

나를 보며 안도의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형님은, 이제야 진짜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네가 말한 계획까지 들으니 이제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거 같아. 난 솔직히 네 상태가 내 예상보다 더 나쁠까 봐 많이 걱정했거든. 조 실장한테 설명을 듣긴 했지만, 내 눈으로 본 게 없으니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어. 근데 너랑 저녁도 먹고, 이렇게 산책을 하다 보니 걱정이 사라지고 있어. 혼란한 마음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널 보니까 이제야 진짜 안심이 된 거지. 흐흐, 내가 안 보는 곳에서도 우리 서준이 혼자 노력하고 있었네. 장하다 이서준.”

내가 기특한지 어깨까지 토닥거려 주신 형님을 보며 나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물론 형님과 함께.

아직 형님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게 많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걷다 보면 하늘의 별이 잘 보이는 곳이 나오니까.

그곳에 가면 분명 형님도 지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것이다.

* * *

좋은 곡은 의외로 창작자가 괴로운 순간에 많이 탄생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슬픈 발라드 명곡들도 실연의 아픔을 겪은 창작자의 고통을 통해 탄생되었다는 에피소드가 따라 다니는 곡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현재의 내 상태도 그런 곡을 만들기에 딱 좋은 상태였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는 비극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마음으로는 무척 힘든 경험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는 이미 끝났지만, 나는 아직 아쉽게도 이준혁을 떠나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극 중에서 가지고 있던 슬픔과 아픔, 그리고 커다란 절망감이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잡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려고만 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니었다.

나는 이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 내 앞에 놓인 피아노를 통해 모조리 토해 내 보려고 한다.

“후우~~”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해 봤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오래된 교실의 벽에는 이곳에서 공부하며 뛰어놀던 아이들의 흔적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불과 작년까지 이곳에는 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그 학생이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한 이후로 더 이상 새로 입학할 학생이 없어 폐교가 된 학교였다.

지금은 마을분들이 마을 회관처럼 이용하는 이곳에는 텅 빈 교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피아노 한 대가 있었는데, 의외로 피아노의 상태는 괜찮았다.

얼마 전에 이 피아노를 통해 세린 누나에게 보내 준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음… 의외로 여기라면 내 감정을 편하게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

난 이곳이 편했다.

그랬기에 무작정 연주해 볼 용기가 생긴 것이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그와 동시에 내 손가락이 피아노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연주였다.

살다 보면 앞이 보이지 않아 갑갑하고 괴로운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왠지 모를 허무함 때문에 자기가 지금껏 노력해 왔던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해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사방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

난 그들의 마음에 전달되었으면 하는 메시지를 피아노를 통해 만들어 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이 노래가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길 바랐다.

♪♩♩♩♪

나는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의 곡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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