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08화 (108/189)

108. 2집 타이틀곡 작업(3)

연주가 끝난 뒤 잠시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피아노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조금 전 나를 이끌어 가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멈추지 않은 탓에 나 자신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지금 내가 연주한 곡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제법 괜찮은 거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제법이란 말보다는 ‘미쳤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멋진 곡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조심스럽게 자평하면, 지금까지 내가 만든 노래 중에 최고의 노래가, 지금 나온 거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다시 욕심이 생겼다.

“감이 올 때 멜로디까지 만들어 보자.”

곡의 뼈대가 아주 제대로 뽑혔으니, 감이 올 때 세부적인 멜로디까지 단숨에 뽑아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나는 다시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즉흥적으로 연주한 곡을 다시 연주하니 방금 느꼈던 좋은 느낌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알맞은 멜로디가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 곧바로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나~~ 나나 나 나~~~ 나 나나 나~”

그렇게 한참을 흥얼거리던 나는, 끝내고 나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노래의 멜로디도 한 번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단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쭉 끝까지 갔으니 진짜 미친 듯이 곡 하나를 뚝딱하고 만들어 낸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이 곡의 편곡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샘솟듯 솟아나고 있었다.

몸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악기들로 이 노래를 완성하고 싶은 욕구가 미친 듯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안 되겠다.”

결국 일어선 나는, 숙소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꺼 두었던 내 핸드폰을 켜서 찬식이에게 부탁의 말을 전해야 했다.

바로 데리러 와 달라는 부탁을 할 참이었다.

* * *

이서준이 조용했다.

지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인 이서준이 너무 조용했다.

물밀 듯이 밀려드는 광고도 찍고,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해 팬 미팅도 진행하고, 손쉽게 열 수 있는 사인회도 하는 등.

돈을 그냥 쓸어 담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도 이서준 측의 반응은 너무 조용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상황.

그랬기에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이서준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강 이상설’과 갑자기 소속사에서 반대하는 여자와 사랑의 도피를 강행했다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열애설’이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제대로 크게 한 방을 터뜨린 이서준이 이토록 조용하게 있지 않을 거라는 대중의 생각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근거 없는 루머였다.

그러나 그런 루머들은 단 한 번에 정리가 되었다.

왜냐하면, 왜 그동안 이서준이 이토록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지, 그에 대한 해답을 알려 줄 만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전설의 구미호’.

이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노래가 하나 있다.

바로 드라마에 삽입된 OST ‘슬픈 속삭임’이란 노래였다.

이 노래는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에게 소개되자마자 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OST계의 진행형 전설의 가수인 이세린과 떠오르는 신예 OST 장인 조연경이 함께 부른 ‘슬픈 속삭임’이란 노래는, 노래에 담긴 슬픈 멜로디를 덕분에 단번에 대중의 마음을 마구마구 흔들어 버렸다.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큰 관심을 받기 시작한 이 곡은,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더욱 유명세를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 곡을 작곡한 사람이 이서준이란 사실이었다.

결국, 이서준이 이토록 조용히 지냈던 이유는 바로 이런 훌륭한 곡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소속사에서는 이서준의 2집 발매에 관한 공식적인 코멘트를 달게 된다.

현재 이서준은 빠른 2집 정규 앨범 발매를 위해 조용한 곳에서 곡 작업을 하는 중이란 사실과 더불어 이서준이 평범한 옷차림으로 기타를 치는 사진 한 장이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다.

소속사의 발 빠른 대응에 말도 안 되는 루머들은 빠르게 종식되어 갔다.

그것을 본 그의 팬들은 좋은 연기를 보여 주자마자 곧바로 본연의 자리인 가수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서준을 향해 큰 기대를 보내기 시작했다.

드라마 ‘미라클’의 인기를 통해 전보다 훨씬 많아진 팬들이 그의 빠른 컴백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 * *

이서준의 드럼 스틱이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다.

그와 동시에 폭발적인 리듬이 녹음 부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연히 이서준의 녹음을 도와주게 된 김영환 피디는, 그런 이서준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완전 괴물이네…….”

그와 이서준은 나름대로 큰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이였다.

왜냐하면, 이서준의 첫 녹음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사람이 바로 김영환 피디였기 때문이다.

한동안 잠적했던 이서준이 갑자기 회사에 나타나, 다급한 표정으로 회사를 돌아다니며 녹음 스태프를 찾는 바람에 우연히 그 모습을 보게 된 김영환이 정말 오랜만에 이서준과 함께 작업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기억 속의 풋풋한 이서준의 모습은 지금 녹음실 안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완전 괴물 아티스트처럼 느껴질 만한 포스를 마구마구 뿜어내는 이서준은, 15년 경력의 프로듀서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음표를 마구 쏟아 내는 통에 김영환 피디를 크게 당황시켰다.

덜컥.

그때 녹음실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두 사람.

한 명은 JYK의 대표 김진영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서준의 총괄 매니저로 알려진 조상구 실장이었다.

녹음실 안으로 들어온 김진영은, 설렌다는 표정으로 김영환 피디에게 물었다.

“녹음은 잘하고 있지?”

아마 갑자기 회사로 복귀했다는 이서준의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왔을 것이다.

그런 김진영의 기대 가득한 질문에, 김영환 피디는 감당하기 버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녹음은 잘하고 있죠. 너무 잘해서 버거울 지경입니다. 저 녀석 완전히 음악에 미친 사람처럼 녹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그 모습에 질려 프로듀서란 놈이 음악적으로 단 한 마디의 조언도 못 하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거 같은데……. 못 본 새 저 녀석 완전 괴물이 됐네요.”

그의 투정과 놀라움이 섞인 대답을 들은 김진영은, 그의 말에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녹음 부스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미 녹음된 기타와 베이스의 소리에 맞춰 신들린 사람처럼 드럼 스틱을 휘두르고 있는 이서준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이서준이 녹음하고 있는 노래를 듣고 있던 그는, 곧 밝은 표정으로 김영환 피디에게 물었다.

“이 곡이 이번에 서준이가 가지고 온 곡이야? 잠깐 들었을 뿐인데도 너무 좋네. 김 피디 말대로 괴물이 맞아. 음악 질리게 잘하는 진짜 음악 괴물.”

소속 아티스트의 멋진 창작물을 듣고 진심으로 감탄해 웃고 있는 김진영을 향해 김영환 피디는 더 놀랄 만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첫 곡은 이미 벌써 녹음을 끝냈어요. 지금 연주하는 곡은 갑자기 생각났다며 녹음하기 시작한 새 노래예요.”

김영환 피디의 대답을 들은 김진영은 경악했다.

“뭐? 새 노래라고?”

“네, 새 노래요. 그러니까 오자마자 연달아 두 곡째 연주하고 있는 거예요.”

이제야 조금 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김진영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녹음하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두 곡째 녹음하고 있는 거라니…….

그 사실을 들은 김진영은 진짜 진심으로 이서준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녹음 부스 밖의 상황을 전혀 모른 채 그냥 정신없이 드럼을 두드리던 이서준은, 마침내 연주를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발견한 김진영과 조상구의 모습에 이서준은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아, 두 분 오셨네요. 마침 잘 오셨어요. 제가 급하게 녹음한 곡이 있는데, 한번 들어 봐 주시면 좋겠어요.”

“……그래. 들어 보자.”

여전히 놀라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약간 멍해 보이는 표정을 짓던 김진영은, 이서준의 요청에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진영의 대답을 들은 이서준은 신난다는 표정으로 김영환 피디에게 부탁했다.

“피디님, 아까 녹음한 거 틀어 주세요.”

“알았어.”

이서준의 요청으로 오늘 처음으로 녹음한 곡을 재생하기 위해 손을 움직이는 김영환.

그의 손이 움직이자 녹음실 안 스피커에는 이서준이 방금 녹음한 따끈따끈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대는 지금 어디에 서 있나요?♪

♩혹시 어두운 골목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진 않나요?♪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맞춰 흘러나오는 이서준의 목소리.

시작부터 단번에 듣는 이의 귀를 간지럽게 만드는 그의 노래에, 어느새 김진영과 조상구도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서준은 그런 그들에게 마치 백 점 받은 시험지를 칭찬받기 위해 엄마에게 보여 주는 아이처럼 순진한 얼굴을 한 채 설명했다.

“원래는 피아노로 녹음하려고 했는데요. 생각해 보니 기타 소리가 더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악기를 바꿔서 녹음했죠.”

두 사람은 별다른 대꾸 없이 계속 집중했다.

왜냐하면 이서준의 노래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노래가 끝나자, 김진영은 여운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무슨 생각으로 곡을 썼는지 물어도 될까?”

“그냥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썼어요. 지금 저처럼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혹시 느껴지세요?”

“……그래 느껴져. 그래서 그런지 여운이 많이 남네. 들으면 마음이 간질간질거릴 만한 노래야. 비 오는 날 들으면 괴롭겠어.”

“……그럼 노래의 톤을 조금만 더 밝게 할까요?”

“오, 좋은 생각이야. 그래야 더 편하게 듣지.”

작곡가들만의 대화가 끝난 후, 지금 방금 녹음했던 노래도 바로 들었다.

아직 반주만 녹음한 노래였는데, 처음에 들은 곡과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곡이었다.

“첫 곡을 녹음하고 나니 오기가 들더라고요. 감정이란 녀석에 왠지 제가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요. 그래서 완전 반대의 느낌의 곡을 쓰고 싶어졌어요. 그게 이 녀석이고요. 제 의지가 절대 약하지 않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하면 정확하려나…….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만든 노래예요.”

이서준만의 느낌이 가득 담긴 락 베이스의 음악이었다.

인서트 부분의 경쾌한 느낌의 기타 리프가 무척 인상적인 곡이었는데, 요즘 대한민국에서 유행하는 곡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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