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해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1)
이서준이 만든 두 곡을 모두 들은 김진영은, 기대하는 표정으로 이서준에게 물었다.
“두 곡 다 좋아.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졌어.”
“뭐가요?”
“네가 어떤 곡을 타이틀곡으로 정할지가 말이야. 만약 내가 네 입장이라면 정말 머리가 아플 거 같거든.”
김진영의 말을 들은 이서준은 그의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도 고르긴 힘들어요. 왜냐하면, 두 곡 다 제 마음에 쏙 드니까요. 그래서 계속 고민해 봐야겠어요. 두 곡의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니까 더 고르기 힘든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두 곡의 분위기가 완전 정반대야. 사람들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기에는 두 번째 곡이 나은데… 들으면 들을수록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건 첫 번째 곡이거든. 이거 완전히 취향의 문제인데… 혹시 한 곡은 아낄까? 다음 앨범에 쓰자는 말이야.”
김진영이 생각하기에 두 곡 다 타이틀곡으로 쓰기에 모자람이 없기에 가볍게 제안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진영의 의견을 들은 이서준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건 좀 그렇네요. 두 노래 다 하나의 테두리로 연결이 되니까 한 앨범에 같이 들어가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같은 앨범에 수록되는 게 맞지. 근데 혹시라도 한 곡이 다른 곡 때문에 묻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하네.”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 앨범 자체의 주제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되거든요.”
이서준과 김진영이 노래에 관해 열띤 토론을 나누던 중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끊기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상구 실장이 그 틈을 타 이서준에게 물었다.
“다시 마을로 돌아갈 거지?”
녹음이 어느 정도 끝나면 다시 어촌 마을로 돌아갈 거냐고 묻는 조 실장의 물음에, 이서준은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못 가요. 아직 가사도 다 못 썼고… 편곡도 마무리해야 하니 당분간 못 갈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전화 드려야겠네요. 저 언제 오나 하고 걱정하고 계실 텐데.”
이서준의 대답을 들은 조상구는 속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공기 좋고 인심 좋은 그곳에서 편하게 쉬는 게 이서준의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그도 잘 알았지만, 너무 이런 상황에 맞서지 못하고 도망만 치는 것 같아 내심 다른 방법도 사용하길 바랐는데 저절로 그렇게 되어 가고 있었다.
혼자만 조용히 있는 게 아니라 가끔 사람들도 만나고, 일도 조금씩 하는 등 점점 외부 활동을 늘려 가는 게 이서준이 혼란스러운 마음의 무게 중심을 빨리 잡는 방법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는 거 같아 참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자신이 옆에 붙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면 다시 예전의 씩씩한 이서준의 모습으로 금방 돌아올 거라는 희망 가득한 기대감도 혼자 마음속으로 가져 봤다.
* * *
일본의 소도시 내에 자리한 야마나가 고등학교.
이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가부꼬 나미에는 피곤에 절은 좀비처럼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등 뒤로 살금살금 다가오는 한 소녀.
그녀의 정체는 같은 반 친구이자 단짝 친구인 고니시 야꼬였다.
그녀는 힘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친구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랄 서프라이즈 같은 아침 인사를 건네기로 마음먹었다.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그녀의 등 뒤까지 다가간 그녀는, 머릿속에 그리던 계획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덥석.
“나미에!”
“으악!”
갑자기 자신의 어깨를 덥석 잡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 덕분에 깜짝 놀란 나미에는, 비명까지 지르며 땅바닥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주저앉은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친구 야꼬의 모습을 그제야 확인한 그녀는, 원망을 가득 담은 얼굴로 그녀에게 따졌다.
“야꼬, 이게 무슨 짓이야? 깜짝 놀라 심장이 떨어질 뻔했잖아.”
“히히, 그 정도로 놀랐어? 그럼 완전 제대로 성공이네. 이예~~”
자신이 놀랐다는 말에 기뻐하는 친구의 모습에 나미에의 얼굴은 잔뜩 삐친 얼굴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삐친 상태로 자신의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 나미에.
그제야 야꼬는 자신의 장난 때문에 친구가 삐친 것을 확인했다.
친구의 마음을 풀어 줄 생각으로 한 걸음 다가간 그녀는, 자신의 팔을 그녀의 목에 감으며 매달렸다.
“야, 이게 또 뭐 하는 짓이야? 장난 계속 치는 거야?”
“에이, 이건 장난이 아니지. 지금 내가 삐친 친구의 마음을 풀어 주기 위해 온몸으로 애교 부리고 있는 거잖아.”
“뭐? 이게 애교라고? 이런 아프고 괴로운 애교가 세상에 어디에 있냐?”
“히히, 바로 여기에 있지. 이게 바로 나 야꼬식 애교거든. 우리 사랑스러운 친구야, 나 때문에 많이 놀랐어? 정말 미안해. 내가 진심으로 사과할게. 그러니 화 풀어. 응?”
오늘도 야꼬는 평소와 같은 밝은 미소를 지은 채 삐친 친구의 마음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장난을 심하게 쳤지만, 평소 자신을 많이 챙겨 주는 다정한 친구가 바로 야꼬였기에 삐친 나미에의 마음은 봄날 얇게 언 시냇물처럼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느새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등교하는 두 사람.
야꼬는 나미에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나미에, 얼굴에 다크서클이 한가득이야.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녀의 물음에 나미에는 웃으며 대답했다.
“잠을 많이 못 자서 그래. 딱 두 시간 정도 잤거든.”
“왜 두 시간밖에 못 잤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잠을 조금밖에 못 잤다는 자신의 말에 진심으로 걱정하는 야꼬의 모습에, 나미에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비록 다크서클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기분 좋게 웃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드라마 본다고 못 잔 거야. 다음 편이 궁금해서 도저히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거든.”
“드라마? 무슨 드라마?”
“한국 드라마야. ‘목소리’라는 제목의 드라마지. 심리 수사극인데, 너무 재밌었어.”
“그래? 그런 이유라면 나미에는 반성해야 해. 며칠 있으면 시험 기간이라는 사실도 잊고 드라마 따위에 빠져 잠을 안 잔 거잖아. 네 엄마인 유미꼬 씨에게 일러야겠어.”
야꼬의 타박을 들은 나미에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아는 야꼬라면, 그 드라마를 본 순간 학교도 빠졌을 것이 분명했다.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애니메이션 같은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친구 야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억울한 마음이 생긴 나미에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야꼬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그런 친구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란 야꼬는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미에, 이건 또 뭐 하는 짓이야?”
“뭐 하는 짓이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어젯밤에 내가 발견한 왕자님을 소개해 주려는 짓이지.”
“왕자님?”
뜬금없는 왕자님 타령에 깜짝 놀란 야꼬는 나미에의 스마트폰 배경 화면을 집중해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배경 화면에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한 남자의 얼굴.
그의 얼굴을 본 야꼬는 다시 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으엑! 이 잘생긴 사람은 누구야?”
“누구긴 어젯밤 날 잠 못 들게 만든 장본인이지.”
이후 이어진 나미에의 긴 설명을 들은 야꼬는,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남자 배우를 보고 반해서 드라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말이네.”
“바로 그렇지. 아, 그리고 드라마도 정말 재밌었어. 마치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였거든. 이럴 때 보면 한국 사람들은 정말 천재 같아.”
야꼬는 소문난 K팝 팬이었기 때문에 한국 아티스트에 대한 동경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걸 잘 아는 나미에는 그녀가 깜짝 놀랄 만한 소식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 사람 본업은 가수야.”
“뭐? 가수라고?”
그냥 눈에 띄게 잘생긴 배우 정도로 생각했던 야꼬는, 나미에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크게 놀랐다.
“진짜 가수야?”
“응, 진짜 가수. 그것도 최근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지. 나 어제 이 사람 노래 처음으로 듣고 그냥 단번에 팬 됐잖아. 나 오늘부터 이서준 팬 1일 차야.”
“이서준? 이 사람 이름이 이서준이야?”
“응. 그 사람이 이름이 이서준이야. 기억해 둬. 우리 왕자님 이름을.”
이서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야꼬는 일순간 궁금증이 생겼다.
이 남자가 어떤 목소리를 가졌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자신의 친구에게 부탁했다.
“이 사람 노래를 들어 볼 수 있어?”
“히히, 궁금해? 좋아, 내가 지금 바로 들려주지. 잠깐만 기다려.”
주머니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낸 나미에는 한쪽은 자신의 귀에, 그리고 반대쪽은 야꼬의 귀에 꽂아 주었다.
그렇게 사이좋게 이어폰을 나눠 낀 두 사람은 곧바로 이서준의 ‘sight’를 함께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를 들은 야꼬의 눈은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노래에 깜짝 놀라 커졌다.
‘어! 이게 뭐야?’
듣자마자 귀를 파고드는 매력적인 한 남자의 목소리.
한국어 가사라 무슨 내용의 노랫말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마치 자신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그녀의 마음은 단번에 빼앗겨 버렸다.
그렇게 단 한 곡의 노래만 듣고 완전히 이서준에게 빠져 버린 야꼬는, 옆에서 그런 자신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웃는 나미에의 손을 꼭 잡은 채 부탁했다.
“오늘 학교 마치면 우리 집에 가서 네가 어제 본 그 드라마 함께 보자. 그리고 이 사람 뮤직비디오도 같이 감상하고. 어때?”
“흐흐, 나야 좋지. 안 그래도 집에 가면 다시 찾아보려고 했거든. 너랑 함께 보면 더 재밌겠다. 크크.”
그렇게 방과 후 계획까지 순식간에 짜 버린 두 사람은, 어느새 도착한 학교 정문을 통해 들어가 버렸다.
학교 마치고 할 일 때문에 시간이 더디게 흐를까 봐 걱정하며 자신들의 교실이 자리한 학교 본관 3층으로 올라갔다.
* * *
쾅.
화가 잔뜩 난 국장은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있는 부하 직원을 향해 소리쳤다.
“야, 김 피디! 저번에는 갑자기 잠적해서 섭외가 힘들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버젓이 회사에서 살고 있는데, 왜 섭외를 못 하는 거야? 도대체 왜?”
김 피디는 이번에도 일단 침묵하기를 선택했다.
자신이 아는 국장은 지금 이 상황에선 그 어떤 변명도 받아 주지 않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치던 국장은, 이번에도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유가 뭐야?”
조금 전과 확연히 달라진 목소리.
이젠 참고 있던 변명을 늘어놓을 순서였다.
“회사에 있는 건 맞지만… 2집 앨범 준비 때문에 모든 공식 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존에 광고하던 제품의 새 광고를 찍기 위해 딱 2번 회사 밖으로 나온 것 외에는 전혀 움직임이 없는 거죠.”
“그게 사실이야?”
“네, 사실입니다.”
김 피디의 설명을 들은 국장은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김진영은 무슨 생각이야? 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그냥 놀리냐고? 김 피디는 그런 김진영의 생각이 뭔지 알겠어?”
“…….”
자신이 그걸 알 턱이 없었기에 이번에는 다시 침묵을 선택했다.
국장 역시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런 김 피디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