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2집 발매(5)
실장님은 걱정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웃으셨다.
“하하, 걱정하지 마. 잘 해결됐어. 긴급 서버를 투입해서 잘 해결했으니까 네 쇼케이스 때에는 아무 차질이 없을 거야. 그러니 안심해도 돼.”
“그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순간 많이 놀랐어요. 쇼케이스 진행에 문제가 생긴 건 줄 알았단 말이에요.”
“하하, 그 정도는 아니야.”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는 실장님의 말을 듣고 그제야 안심한 나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실장님께 다시 물었다.
“근데, 서버는 왜 터진 거예요?”
“그거야 당연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동시에 접속해서 그렇지.”
“동시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접속했다고요?”
“응, 동시 접속자 수가 예상보다 훨씬 많았어.”
실장님의 상황 설명을 듣다 보니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쇼케이스의 시작을 앞둔 지금, 회사에서는 2집 타이틀곡인 ‘life’와 ‘I will’의 뮤직비디오를 조금 전에 공개했다.
아마 뮤직비디오를 보려는 사람이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근데 한편으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이번 쇼케이스는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중 하나인 네이스와 조인하여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랬기에 동시 접속자 과도로 서버가 터지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근데 저번 회의 때 네이스에서 서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잖아요. 다른 가수들 쇼케이스 때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면서요.”
내 말을 들은 실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그쪽에서 그렇게 말했지.”
“그러면 서버가 터지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가 없는 일 아닌가요? 그쪽에서 서버에 관해서는 그렇게 자신했으니까요.”
내 말을 들은 실장님은 이상하게 대화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약간 으스대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거야, 네가 대단해서 그런 일이 생긴 거야. 전에 네이스와 협력해서 쇼케이스를 진행했던 가수들도 진짜 아무런 문제가 없었거든. 그래서 네이스 쪽에서도 자신감을 보였던 거고. 근데 그들의 예상보다 네 팬의 수가 훨씬 많았던 거지.”
어, 말이 그렇게 되나?
사실 네 앞에서 네이스와 함께 쇼케이스를 진행한 가수가 너무 네임 밸류가 대단한 가수여서 그런 쪽의 원인은 아닐 거라고 예상했는데, 모두의 예상외로 너무 많은 팬이 모여 생긴 일이라고 하니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모두 내 노래를 들으러 온 팬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했으니까.
아마 지금 내가 표정 관리를 한다고 노력하고 있지만, 분명 어느 정도는 드러나고 있을 텐데 우리 센스 좋은 실장님은 웃으며 그냥 모른 척하시고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다.
“역대 몇 번째로 꼽힐 정도로 많은 팬이 지금 네 공연을 기다리고 있어. 더 놀라운 거는 해외 팬들 반응이야. 네가 공식적으로 해외 활동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이런 뜨거운 반응이 벌써 오다니…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해외 활동도 생각해야 할 거 같아. 괜찮지, 서준아?”
“아, 당연히 괜찮죠. 근데 해외 팬이라고 하니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드네요. 제 팬 중에 외국인이 있다는 소리니…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하하, 책임감이 느껴지나 보구나. 뭐,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너무 부담은 가지지 마. 그냥 팬들은 다 똑같은 거니까. 알겠지?”
“네, 실장님.”
쇼케이스 전에 아주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 소식 덕분에 오늘 공연을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팬들과도 만나고 하려면 오늘 이 무대부터 잘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무대를 만들어 오늘 내 공연에 관심을 보이는 모든 분에게 멋진 노래를 선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찬식이가 대기실로 들어오며 내게 말했다.
“형, 이제 나가야 해요.”
찬식이의 말을 들은 나는 조금 비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옆에 서 있는 실장님을 향해 자신감을 피력했다.
“오늘 무대 부숴 놓고 올게요. 수리 부탁합니다.”
“하하, 그래 마음대로 부숴 버려. 백 번이고 천 번이든 내가 다 수습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네.”
실장님께 나름의 각오가 담긴 말을 전한 나는, 곧바로 쇼케이스 무대를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 * *
귀엽고 예쁜 얼굴의 여자 MC와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 보이그룹 멤버이자 오늘의 진행자인 남자 MC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이번에 실시간 라이브 무대를 선보일 나를 시청자들에게 소개할 임무를 맡은 음악방송의 진행자들이었다.
저 귀여운 여자분은 어느 걸그룹 소속으로 TV에 나온 걸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갑자기 머리가 나빠진 모양인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깐 채널을 바꾸면서 본 얼굴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남자 MC분은… 죄송하지만,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걸그룹은 그냥 스치듯 지나가도 얼굴은 기억이 났는데, 남자 아이돌의 얼굴은 여러 번 봐도 전혀 기억 속에 남지 않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남자인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관객석을 바라봤다.
객석을 가득 메운 내 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각종 응원 도구와 나를 응원하는 듯한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처음 이 무대에 섰을 때도 생각이 났다.
그땐 정말 내 팬이 몇 명 없었는데…….
내 노래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는 타 가수의 팬들을 노래로 빼앗을 거라는 대책 없는 생각으로 무대에 섰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진 상태로 이 무대에 다시 서니 기분이 정말 묘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감상의 늪에 빠져 있던 나는, 두 MC의 목소리 덕분에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컴백 쇼케이스 무대부터 어마어마한 숫자의 팬들이 몰려 처음으로 해당 사이트를 마비시켰던 그 남자!”
남자 MC가 먼저 준비된 멘트를 던지고 자신의 시그니처 포즈를 취했다.
잘생긴 사람이 그러니 분명 보기 좋은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느끼해서 견디기 힘든 애교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요정 같은 외모를 가진 여자 MC가 역시 준비한 듯한 포즈를 취하며 말을 이어 갔다.
“2집 정규 앨범 발매와 동시에 더블 타이틀곡인 두 곡 모두가 음원 사이트에서 1, 2위에 오른 괴물 같은 남자!”
그리고 마지막은 두 사람이 같은 동작을 펼치며 동시에 말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 남자의 무대를 선보여 드리겠습니다. 이서준이 부릅니다. life.”
소개가 끝나자 곧바로 나를 향해 핀포인트 조명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예쁜 조명이 나를 비추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공연을 시작하라는 시작 신호와 같았기에, 나는 곧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
기타 연주가 시작되고 나는 점점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고 노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나는, 내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달할 생각이었다.
♪지금 어디에 있나요♪
삶이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내 노래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노래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어느새 방송 중이라는 중요한 사실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지금 내게는 그냥 관객들만이 보였다.
내 노래를 듣고 내가 상상으로 그리던 사람들의 반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팬들을 보며 더욱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꺄아아악.
약 4분 정도의 노래가 끝났다.
그리고 관객석을 가득 메운 팬들의 함성이 노래에 푹 빠져 있던 나를 현실 세계로 데리고 와 주었다.
그래 맞아, 나 방송 중이었지…….
현실에 돌아오자 걱정부터 들었다.
‘내가 방금 노래는 제대로 불렀나?’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생겨났지만, 너무나 좋아하시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니 제법 괜찮은 무대를 선보인 모양이었다.
물론 내 팬이었기에 나에 관한 평가를 할 땐 객관성을 확보하기 힘든 사람들이라 100% 안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흘러간 일을 지금에 와서 걱정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끝난 일이니 그냥 다음 공연을 제대로 준비해 더 잘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컴백 후 이런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다시 이서준 앓이를 시작했다. 데뷔 때부터 신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큰 성공을 거두었던 그는,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TV 드라마에 출연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서준은 사람들의 예상을 처참히 무너뜨려 버렸다. 연이은 두 편의 성공으로 어느새 국민 액션 배우가 되어 버린 이서준은, 이번에도 예상과 다르게 가수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서준의 시도는 대성공이었다. 정식 발매에 앞서 앨범 선주문이 백만을 넘겼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더니 쇼케이스를 열자마자 다음 날 각종 음원 사이트를 석권해 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더군다나…….’
기사에 적힌 내용대로 2집 앨범도 내가 직접 설명하긴 약간 부끄럽지만, 대성공을 이루었다.
발매와 동시에 음원 사이트 1위에 올랐고, 24시간이 지나자마자 국내에 있는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 1위에 오르게 되었다.
더군다나 한 곡도 아니고 타이틀곡 두 곡 모두가 1위와 2위 자리에 올랐다.
컴백 후 나는, 홍보를 위해 각종 예능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오랜만에 다시 찾은 예능은 S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달리는 녀석들’이었다.
“여러분 오늘의 초대형 게스트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고 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바로 이서준 씨입니다.”
국민 MC 유재성의 소개를 받은 나는 촬영 중인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나를 보며 모두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 이서준이야!”
전소진 누님은 내 출연 사실에 특히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 내가 게스트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저렇게 하는 걸 보면 천상 연기자는 연기자란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유재성 형님도 특유의 유쾌한 말투로 내 출연을 반겼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나랑 서준이가 특히 친해. 그래서 오늘 아주 편한 촬영이 될 거 같아.”
또 다른 출연자인 하정훈 형님은 약간 자랑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 유재성 형님을 향해 화를 냈다.
“또 성 떼고 이름 부르네. 제발 부탁이니 그렇게 하지 마. 게스트들이 형이 너무 억지스럽게 친한 척한다고 우리 프로그램 안 나오려고 해.”
시작부터 이렇게 멘트를 주고받는 걸 보니 역시 예능 베테랑들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프닝을 마무리하고 나니 담당 피디님이 오늘의 주제를 알려 주었다.
“오늘은 미라클 레이스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스파이인데요. 세상을 위험하게 만들 바이러스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백신을 구해 오셔야 합니다.”
오늘의 촬영 컨셉은 내가 출연했던 드라마 ‘미라클’을 대상으로 컨셉을 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