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예능 방송 출연(1)
‘달리는 녀석들’의 메인 피디는 자연스럽게 설명을 이어 갔다.
“그럼 힌트가 주어지는 장소로 이동하셔서 백신을 구할 장소를 찾을 힌트를 얻으세요. 그럼 레이스를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나는 오프닝 때 입은 예쁜 옷을 갈아입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원활한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서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 필요가 있었다.
대기실에 들어가니 먼저 와 있던 김국종 선배님과 유재성 형님이 옷을 갈아입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두 선배님은 나를 보며 친근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네왔다.
“서준아, 축하해. 너 컴백하자마자 바로 앨범 대박 났더라.”
“그래, 맞아. 앨범 선주문 100만 장 바로 넘겼고, 음원사이트에서도 계속 네 노래가 일등이더라고. 정말 축하해.”
“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선배님들이 칭찬을 해 주니 왠지 모르게 이분들에게 인정을 받은 듯한 마음이 들어 뿌듯했다.
그리고 저번에 함께 촬영한 기억을 아직 선명하게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봤는데도 이번에는 유독 친근감이 느껴지는 선배님들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후 본격적인 힌트 획득 레이스를 시작했다.
우리는 방송국 차량을 타고 1단계 힌트를 얻을 장소로 이동했다.
1단계 힌트를 얻을 장소는 서울에 있는 한 초등학교였는데, 우리는 여기서 초등학교 5학년 역사 문제의 정답을 맞히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숨겨진 힌트 숫자 ‘6’도 찾아내었다.
만약 이번에 문제를 못 맞혔으면 멤버 중 한 명을 감옥에 보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페널티가 있었는데, 문제를 맞혀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2단계 힌트 장소는 중학교였다.
우리가 탄 차량이 중학교에 도착하자 능력자로 알려진 김국종 선배가 오늘 프로그램이 흘러가는 방향을 추리하기 시작했다.
“어, 중학교네. 그럼 이거 다음은 고등학굔가? 초등학교 다음에 중학교라면… 답이 너무 뻔하잖아.”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제 생각에도 그렇게 흘러갈 거 같네요.”
차에서 내린 우리에게 피디님은 다시 설명을 시작하셨고, 그 말을 들으니 우리의 예측이 맞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자, 이번에도 진행 방식은 조금 전과 동일합니다. 다만 2단계 힌트 획득 문제는 중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관련 있는 내용을 출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피디님의 설명을 들은 유재성 선배님은 심히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초등학교 문제도 쉽지 않았는데, 중학교 문제를 어떻게 풀지? 걱정이다, 정말.”
유재성 선배님의 말을 들은 이정수 선배님은 펄쩍 뛰며 약한 모습을 보이는 유재성 선배를 타박했다.
“에이, 왜 그런 약한 소리를 해요? 지금 여기선 형이 에이슨데, 에이스가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죠. 안 그래요?”
이정수 선배의 말을 들은 유재성 형님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 내가 에이스야?”
“당연히 그렇죠. 나랑 지영 누나랑 소진이, 세영이는 아까 풀었던 초등학교 문제의 답도 몰랐어요. 그러니 이제부턴 우리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니 형이나 국종이 형이 두 명이 정답을 맞혀야 해요.”
“그래, 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볼게.”
중학교 문제를 모른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이정수 선배의 모습에 유재성 선배님은 포기했다는 듯이 대꾸했고, 이정수 선배님은 그런 유재성 형님의 반응에 이제야 자신의 말이 통했다는 듯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TV에서만 보던 두 사람의 재밌는 대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어 기분이 좋아 웃음이 터졌다.
출연진 모두가 자리에 앉으니 드디어 2단계 문제를 출제하기 시작했다.
출제자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메인 피디님이었다.
“난도가 전보다 높아졌다는 사실을 감안해서 여러분이 찍어서 맞힐 확률을 높이기 위해 O, X 문제를 내겠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읽어 드리는 문제가 사실이 맞으면 O, 틀리면 X를 말해 주세요.”
피디님의 말을 들은 출연자들은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피디님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문제 드리겠습니다. 중학교 과학 문제입니다. 우리의 혀는 혀의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른 맛을 느끼는데요. 단맛은 혀의 끝, 신맛은 혀의 양쪽, 쓴맛은 혀 뒤, 짠맛은 혀 가장자리에서 느낀다고 합니다. 이 말이 맞으면 O, 틀리면 X를 외쳐 주세요.”
문제를 들은 김국종 선배는 무엇인가 알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잠깐. 나 이 문제 배운 적이 있는 거 같아. 우리 중학교 때 이런 실험도 했던 거 같은데… 아닌가?”
그리고 유재성 형님도 그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렇게 배운 거 같아. 설탕물하고 소금물 만들어서 면봉으로 옆의 친구와 이 내용이 담긴 실험을 했던 게 기억이 나네. 그럼 다 같이 O를 외치면 되겠다. 괜찮지?”
모두의 의견이 O로 모이던 그때, 생각 중이던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저는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유재성 선배는 얼른 내 말에 반응해 주었다.
“다른 의견이 있어? 서준이는 이 문제의 답이 X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제 생각에는 X 같아요. 저도 학교에서는 혀의 위치에 따라 단맛과 신맛, 그리고 쓴맛, 짠맛을 느끼는 부위가 다르다고 배웠거든요. 근데 최근에 이 내용이 교과서에서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빠져? 왜 빠져?”
“잘못된 내용이라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빠졌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이 과학 교과서 내용은 독일의 한 의사가 주장한 내용을 별다른 검증 과정 없이 실었던 것인데, 이런 견해가 옳지 않다고 보는 반박 견해가 무려 100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었다고 하더라고요. 최근 의학계와 과학계에서는 혀의 위치에 따른 맛의 구분이 옳지 않은 이론이라고 결론을 냈고, 그런 이유로 교과서에서 빠지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 거 같아요.”
내 말을 들은 유재성 선배는 헷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민했다.
“네 말을 들으면 네 말이 맞는 거 같은데… 근데 내 기억에는 분명히 그런 실험을 했던 기억이 있거든. 아, 이거 헷갈리네…….”
김국종 선배님도 고민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나도 들어 보니 얘 말도 맞는 거 같아. 근데, 교과서에 틀린 내용이 실릴 리가 없잖아. 진짜 그런 기사를 읽은 거 맞아?”
“네, 정확히 읽은 적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 와, 이거 미치겠네.”
모두가 정답에 관해 고민하고 있던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배우이자 고정 출연자인 송지영 선배님은,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나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론 서준이가 한국대 졸업했다고 하던데… 맞아?”
선배님의 물음에 나는 약간 쑥스러운 마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네, 제 모교가 한국대 맞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송지영 선배님은 다른 사람들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제기했다.
“한국대 가려면 고등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 해야 하잖아. 여기 학교 때 서준이보다 공부 잘했던 사람 있어? 없지? 그럼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어? 그냥 서준이 말 듣자.”
이번에는 이정수 선배님이 송지영 선배님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나 말이 맞네. 솔직히 여기서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던 사람 아무도 없잖아. 그러면 누나 말대로 그냥 서준이 말 듣자. 그게 맞는 거 같아.”
그리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던 유재성 선배님도 결국은 내 말을 따르기로 마음을 바꾸셨는지 지영 선배님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래, 그러자. 오늘 서준이가 바쁜 와중에도 특별히 우리 프로그램을 특별히 찾아 줬으니까 서준이 말대로 하는 게 맞아. 자, 그럼 X로 가자고.”
어느새 출연진들의 의견은 내 의견대로 X로 몰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정답으로 X를 외쳤고, 그런 우리를 보며 담당 피디님은 약간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쉽지만… 정답이 맞습니다. 정답은 X이고요. 이유는 아까 이서준 씨가 정확히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제가 더 드릴 설명은 없습니다.”
피디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랬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감탄했다.
“와아, 역시 한국대네. 괜히 그런 대단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니었어. 머리가 저렇게 좋으니까 한국대에 갈 수 있었던 거야.”
“맞아, 맞아.”
이정수 선배님의 감탄과 그리고 그 말에 뒤따르는 다른 선배님들의 동조하는 말을 들으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일행들은 부끄러워하는 내가 웃겼는지 그런 내 모습에 크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
* * *
최근 주말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게 되어 인기가 급상승 중인 한수희도 S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달리는 사람들’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번 출연 때문에 쉽게 잠이 들지 못할 정도로 많이 설레는 마음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어 그런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 것은 최근 자신이 푹 빠져 버린 남자인 이서준이 자신과 함께 출연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촬영 날이 되어 드디어 꿈속에서 만나던 왕자님과 같은 남자를 현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촬영 스태프를 향해 예의 바른 모습으로 인사를 하는 이서준의 모습에 그녀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생긴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놀랐던 사실은 요즘 대한민국에서 거의 원톱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몰이 중인데도 너무나 착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 줬다는 점이다.
실제 이 바닥에서 생활하면서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연예인들도 여럿 만났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솔직히 크게 실망했다.
TV 화면 속에서 보이는 모습과 달리 너무 잘난 척하고 거만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만 보다가 이서준처럼 인기가 많아도 먼저 고개를 숙이고 살갑게 구는 사람을 보게 되니 더 반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녹화 중의 모습도 멋졌다.
한국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듯이 미션 때 나왔던 문제도 멋지게 맞히는 모습을 보여 줬다.
그것도 그냥 대충 찍어서 맞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몰랐던 사실을 그냥 그 자리에서 줄줄 읊어 대는 그의 모습은 멋있는 것을 넘어서 약간 섹시하기까지 했다.
3단계 힌트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그녀는 이서준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눈치챈 하정훈은 그녀가 웃긴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기 수희야, 왜 자꾸 서준이를 힐끔거려?”
들켰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그냥 솔직히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