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예능 방송 출연(2)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진짜 팬이에요. 그냥 예의상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요. 이서준 씨 앨범도 다 사서 집에 가지고 있어요. 조기 품절 때문에 진짜 어렵게 구한 1집 앨범하고 2집 앨범을 매일 듣거든요. 그리고 서준 오빠 나온 드라마도 몇 번씩 반복해서 봤어요. 너무 좋아서요.”
이서준의 진짜 팬이라는 한수희의 수줍은 고백을 들은 하정훈은, 그녀의 눈빛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모두에게 말했다.
“어머 얘 ‘찐’이야. 눈빛이 그냥 진짜 팬이라고 말하고 있어. 너 혹시 서준이 팬클럽 회원이니?”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네, 맞아요. 나중에 콘서트 보러 가려면 팬클럽 회원이 되어야 유리하기 때문에 진작에 가입했었어요.”
“그래? 와, 진짜 리얼 팬이구나.”
그녀의 말을 들은 이서준은 한수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콘서트 표 나오면 보내 드릴게요. 나중에 연락처 좀 주세요.”
“어머 진짜요? 너무나 감사해요.”
콘서트 표를 보내 준다는 이서준의 호의에 한수희는 기뻐했다.
그리고 속으로 다른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일부러 콘서트 표 보내 주겠다는 건가? 번호도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혹시 이게 바로 그린라이트?’
혼자 망상을 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이서준은 계속 호의를 보였다.
유명한 사람이 자신의 팬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혹시 사인 시디도 챙겨 드릴까요?”
“어머, 진짜요?”
사인 시디까지 챙겨 주겠다는 이서준의 이야기에 한수희는 다시 깜짝 놀라며 좋아했다.
촬영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말 한번 제대로 하지 않던 그녀가 이런 격한 반응을 보이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유재성이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하하하, 그렇게 좋아? 얘 반응 진짜 웃기네. 그리고 정훈이 말대로 쟤 진짜 서준이 팬 맞네. 안 그러면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모습이 안 나왔겠지. 우리같이 방송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예의상 그러는 것과 진짜 그러는 걸 구분할 수 있거든. 아, 근데, 서준아. 나는 없냐? 우리 집사람도 네 팬이라고 하던데 말이야.”
자기도 사인 시디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유재성의 말에 이서준은 깜짝 놀라며 재빨리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드려야 했었는데… 선배님, 괜찮으시면 제가 형수님 이름으로 몇 자 적어서 드릴까요?”
“네가 그렇게까지 해 주면 나야 너무 고맙지. 이야, 오늘 집에 들어갈 때 네 사인 시디 딱 들고 들어가면 우리 집사람이 정말 좋아서 잘해 주겠는데…….”
그리고 다른 좌석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출연진들도 일제히 이서준을 향해 요청했다.
“야, 나도 줘. 나도 네 노래 엄청 좋아한단 말이야.”
“그래, 네 노래 좋더라. 그러니까 나도 갖고 싶어. 내 것도 있지?”
이서준은 어쩌다 보니 오늘 출연한 모든 연예인들에게 사인 시디를 돌리게 되어 버렸다.
요즘 앨범이 빠르게 소진된 탓에 사인 시디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앨범이 많이 없었는데, 지금 요청한 사람들 모두에게 한 장씩 돌아갈 시디가 밴 트렁크에 충분히 있을지가 무척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어느 고등학교.
이곳에서는 힌트 획득 문제로 대학 수학 능력 시험 문제가 출제되었다.
그것을 안 유재성은 제작진의 의도를 단박에 알아채 버렸다.
“아, 알겠다. 제작진이 이런 문제를 냈다는 건 여기서 무조건 한 명은 감옥으로 보내라는 뜻이네.”
김국종도 유재성의 추측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일부러 그러는 걸 거야. 지금까지 많으면 3명 정도가 감옥으로 갔어야 했는데, 아직 한 명도 안 갔잖아. 그러니 감옥으로 누군가를 데리고 가고 싶은 거겠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이정수는 자연스럽게 멤버 중 한 명을 ‘쓱’ 하고 쳐다봤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달리는 사람들’ 고정 출연자 중 가장 연장자인 큰코 지석준이 있었다.
이정수의 시선을 느낀 지석준은 깜짝 놀라며 자신을 쳐다보는 이정수를 향해 항의했다.
“야, 또 나야? 왜 이럴 때는 항상 내가 걸리는 거야?”
지석준의 항의를 들은 유재성은, 그를 다독이는 척하며 쐐기를 박아 버렸다.
“오늘은 팀 레이스고, 팀 레이스면 누가 빠졌을 때 팀 전력의 손실이 가장 적은지 형도 잘 알잖아. 그냥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여. 그럼 편해.”
그리고 하동훈도 특유의 얄미운 말투로 유재석의 말을 거들었다.
“하루 이틀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감옥이 제일 내 집 같고 편한 사람이 형이잖아. 형이 먼저 가서 자리 좀 챙겨 놔. 조금 있으면 알지? 나하고 정수하고 갈 거야.”
모든 멤버들이 자신을 지목하니 지석준은 어쩔 수 없이 감옥으로 가야 할 운명이 되어 버렸다.
소심하게 반항을 해 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감옥으로 떠나려 할 때, 옆에 있던 소진이 갑자기 이서준을 향해 물었다.
“너 한국대라며. 그럼 수능도 잘 봤겠네. 수능 때 몇 점 받았어? 아니다. 이렇게 물어보는 게 맞겠지. 수능 때 몇 개 틀렸어?”
전소진에게 갑자기 질문을 받은 이서준은 약간 대답하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자신의 수능 성적을 밝히면 약간 재수 없는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서준의 표정을 읽은 유재성이 안심하라는 듯이 다독이며 대답을 유도했다.
“괜찮아, 편하게 대답해.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 일 없어. 몇 개 틀렸어?”
그래도 잠시 우물쭈물하던 이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수능 성적을 고백했다.
“…한 개요.”
“뭐? 한 개?”
“네, 한 개 틀렸어요.”
“진짜 한 개 틀렸어? 그럼 그 문제 맞혔다면 만점이었다는 말이잖아. 와, 너 진짜 공부 잘했구나.”
옆에서 이서준의 대답을 들은 이정수는 말도 안 되는 표정으로 놀라워했다.
“와, 뉴스에 나오던 공부 잘하는 애가 바로 너였어? 와, 진짜 대박이다.”
출연진 모두가 혼돈에 빠졌을 때, 촬영장에 있는 사람 중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담당 피디였다.
숨겨진 스토리 라인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여기서 최소 한 명은 감옥으로 가 줘야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암초를 만난 탓이었다.
하필 이번 주에 이서준이 출연한 것이 너무 한탄스러웠다.
담당 피디가 남들 몰래 가슴앓이를 하고 있던 그때, 이서준 역시 매우 곤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치고 모두에게 말했다.
“저 수능 본 지가 이제 거의 10년입니다. 그러니까 10년 전에 수능 문제 풀어 보고 오늘 처음으로 다시 본다는 뜻이죠. 그러니 아마 잊어버렸을 겁니다.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이서준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런 것 같았다.
“맞네. 서준이가 졸업한 지가 언제야…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겠다.”
유재성이 다시 걱정하자 이서준에게 수능 이야기를 꺼낸 전소진이 걱정 말라는 듯이 이서준을 격려했다.
“에이, 엄살 떨지 마. 아까 보니까 장난이 아니던데… 그렇게 좋은 머리로 공부했으니 금방 기억날 거야. 공부했던 거 까맣게 잊어버리는 건 나나 정수 오빠 같은 사람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야.”
너무나 맞는 이야기에 이정수도 솔직하게 시인했다.
“맞아. 나 학교 다닐 때는 어제 배운 걸 자고 일어나니 하나도 생각이 안 나 미치는 줄 알았어. 근데, 넌 나랑 머리 안쪽에 있는 놈이 다르잖아. 그러니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져.”
“…네, 열심히 한번 풀어 볼게요.”
드디어 시작된 문제 시간.
피디는 준비된 봉투 세 개를 출연자들 앞에 내밀었다.
“자, 여기에는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 한 문제씩 들어 있습니다. 이 중에 하나를 골라 주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고르신 문제를 푸시면 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세 문제 모두 작년 수능에 출제되었던 문제입니다. 자, 골라 주세요.”
피디의 말을 들은 이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가운데 있는 봉투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문제를 꺼내 확인하니 수리 영역 가형 17번 문제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피디는 씩 웃으며 준비한 문제지를 출연자들에게 모두 나눠 주었다.
그는 준비한 세 문제 중 가장 어려운 문제를 골랐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문제를 확인한 출연자들.
그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이게 도대체 우리나라 수능 문제가 맞아? 어디 하버드 대학 같은 곳에 연구하시는 박사님들이 푸는 문제 아니야?”
“이거 우리나라 말 맞죠? 근데 왜 난 하나도 못 알아듣겠지?”
모두가 경악하던 그때, 단 한 사람만이 문제지를 뚫어져라 집중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모든 출연진이 이서준 한 명만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든 이서준.
그런 이서준을 향해 유재성이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물었다.
“서준아… 혹시 풀 수 있겠어?”
그의 물음에 이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 거 같아요. 이 문제는 파보나치 수열을 응용해서 낸 거예요. 그러니 잠깐 볼펜을 구할 수 있을까요?”
이서준의 말을 들은 이정수는 곧바로 스태프에게 달려가 볼펜을 빼앗다시피 하며 구해 왔다.
이정수에게 볼펜을 건네받은 이서준은 곧바로 문제지 위에 풀이를 적어 나가며 계산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쭉 풀어 가는 이서준을 보며 전소진은 감탄하는 말이 저절로 입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와, 저 문제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것도 신기한데, 그냥 한방에 풀어 버리기까지 하네. 진짜 뇌섹남이 바로 이서준을 일컫는 말이었네.”
이정수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맞아. 아까 서준이가 말한 파 무시기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나는 알지도 못하는데, 서준이는 문제를 보자마자 그걸 떠올리고 저렇게 한 번에 풀어 버리네. 이 모습을 진짜 눈앞에서 보니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옆에서 떠들건 말건 집중한 이서준은 그대로 한 번에 값을 도출했다.
정답을 찾아낸 그는 자신 있는 모습으로 정답이 적힌 번호를 불렀다.
“정답은 5번입니다.”
“…네, 정답입니다.”
결국, 3단계에서도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전원이 통과하였다.
* * *
촬영의 막바지에 돌입했다.
‘달리는 사람들’ 팀은 힌트를 모아 백신이 숨겨진 장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은 함정이었다.
오늘 스파이 역할을 맡은 출연진 전원이 적의 속임수에 속아 함정에 빠져 버린 것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비밀번호를 풀고 탈출해야만 살아날 수 있는 긴박한 서바이벌 레이스가 시작된 셈이다.
비밀번호를 풀어낼 힌트를 찾아내기 위해 갇혀 버린 제약 회사 내부를 돌아다니던 그때, 같은 팀원들이 하나둘씩 아웃되기 시작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 남은 시간 20분입니다. 20분 동안 비밀을 풀고 탈출에 성공하거나 정체를 숨긴 첩자를 찾아내 이름표를 떼시면 여러분이 승리하는 것이고 전원이 아웃이 되거나 시간 내 탈출에 실패하시면 첩자가 승리하시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