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첫 콘서트(2)
어느덧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
땀이 흐르는 모습이 이렇게까지 멋져 보일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열정적으로 드럼을 치는 이서준의 모습 때문에 탄성이 저절로 다문 입을 뚫고 터져 나왔다.
이 모습 그대로 어떤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쯤, 미친 듯이 움직이던 드럼 스틱이 드디어 멈추었다.
열정적인 연주 덕분에 잠시 숨을 고르는 이서준.
그런 그의 모습은 콘서트장을 찾아온 4만 2천 명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드럼 의자에서 일어난 이서준은 옆에 놓여 있던 베이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열정적으로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신나는 베이스 라인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특유의 펑키한 베이스 소리는 듣고 있던 관객들의 마음을 폭발할 듯 흥분시키기 시작했고, 이어서 연주하는 일렉 기타의 엄청난 사운드는 듣고 있던 관객들의 정신을 나가게 만들어 버렸다.
까아아악.
관객들의 함성이 다시 콘서트장을 가득 메우자 열심히 연주하던 이서준의 일렉 기타 연주가 드디어 끝이 났다.
일렉 기타를 다시 내려놓은 이서준의 모습은, 이젠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사실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마지막은 피아노 연주와 노래였는지, 천천히 피아노 앞으로 걸어간 이서준은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휴~”
가볍게 숨을 토해 낸 그는, 천천히 얼굴을 마이크 앞으로 가져간 후 이렇게 외쳤다.
“원, 투, 쓰리, 포. 가자!”
♩♪♪♩♩♪
루프 스테이션에 녹음된 드럼, 베이스, 기타 소리와 함께 지금 연주 중인 피아노 소리가 더해지자 드디어 음악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소리를 듣고선 이서준이 어떤 곡을 첫 곡으로 부를 생각인지 알게 되었고, 그 때문에 흥분한 관객들은 좋아 미칠 것 같은 마음에 소리를 담아 크게 질렀다.
꺄아아악.
관객들의 환호성을 들은 이서준은 그런 관객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 후 본격적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나요.♩
♩혹시 모른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 없어요.♪
이서준이 자신의 첫 콘서트에서 택한 첫 노래는, 이번 앨범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I will’이었다.
또 다른 타이틀곡인 ‘life’와 비교해서 빠른 리듬과 이서준 특유의 락 음악이 잘 담겨 있는 곡이었기에 콘서트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곡으로 선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곡이었다.
2집이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콘서트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 곡을 따라불렀다.
이들 역시 이서준의 이번 앨범을 대표하는 곡인 ‘I will’을 너무나 좋아했기에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첫 무대부터 광란의 현장이 되어 버린 콘서트장은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 차분한 분위기로 변할 수 있었다.
첫 곡부터 미친 듯이 뛰며 함께 즐겼던 관객들 모두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노래를 마치고 물을 한 모금 마시던 이서준은 그건 관객들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미소지으며 관객들을 바라봤다.
까아악.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환호성을 만들어 내는 관객들을 향해 이서준은 이렇게 말했다.
“어서 와요, 여러분. 보고 싶었어요.”
까아아아악.
이윽고 콘서트장을 가득 메우는 엄청난 함성.
다시 한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이서준은 하던 말을 이어 갔다.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항상 이런 날을 기다렸어요. 내가 만든 음악을 듣고 공감해 주시는 여러분과 함께 즐겁게 노래하는 이 순간요. 정말 간절히 바랐지만, 이루어지기는 힘들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이런 날이 진짜로 오네요.”
“아악, 오빠, 저도 콘서트 날을 너무나 기다렸어요!”
그의 진심이 담긴 말에 다시 뜨거운 반응을 보여 주는 관객들.
이서준은 흥분한 팬들이 차분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두 번째로 부를 곡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여러분께 두 번째로 불러 드릴 곡을 먼저 설명해 드릴게요. 이 노래의 소개는 제가 이 노래를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설명해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두 번째 곡을 만들 때로 잠시 돌아간 이서준.
그는 그때 느낀 감정을 다시 떠올려 보며 말을 이어 갔다.
“누구도 혼자 살 수는 없어요.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때로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고 힘든 것이 삶이랍니다.”
원래 목소리가 좋은 줄은 잘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 좋게 들리고 있었다.
그런 목소리를 가진 이서준이었기에 어느덧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모두는 조용히 읊조리듯 말하는 이서준의 입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도 그런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힘들어할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싶었어요. 주변 사람들 때문에, 혹은 색깔을 진하게 덧칠한 안경을 쓴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을 여러분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습니다.”
두 번째 곡에 대한 소개를 마친 이서준은, 첫 곡을 위해 세팅해 둔 무대에서 일어나 무대 한가운데 있는 메인 무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오늘 세션을 맡은 사람들이 이미 준비를 마친 채 이서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넨 이서준은, 미리 옆에 세팅되어 있던 자신의 일렉 기타를 메고는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기이이잉~~♪
귀가 아플 정도의 일렉 기타의 광음이 스피커를 타고 콘서트장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현란한 애드리브 라인을 질주하는 이서준의 기타.
그 모습은 마치 이서준의 데뷔 초에 방송되었던 음악 방송 무대와 비슷했다.
기타 솔로로 듣고 있던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던 열기를 서서히 끌어 올리는 듯한 애드리브 라인은 마치 처음 가수로 데뷔했던 그 날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애드리브 라인이 끝나자 동시에 연주에 합류하는 세션들.
이윽고 그들은 귀에 익숙한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관객들은 다시 미친 듯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바로 시작할 때쯤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댄 이서준은 다시 음악을 즐기기 시작한 관객들을 향해 물었다.
“이 노래 알아?”
네에에에.
그의 물음에 큰소리로 답하는 관객들.
그들의 대답을 들은 이서준은 다시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그럼 다 같이 불러!”
이서준의 외침을 들은 관객들은 한목소리로 그의 요구에 응했다.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진짜 큰 소리로 이서준의 데뷔곡인 ‘sight’를 열창하기 시작하는 관객들.
이서준은 그런 관객들의 모습에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연주했다.
일부러 노래는 하지 않고 관객들이 자신의 노래를 즐겁게 부르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 모습은 마치 노래 부르는 관객들의 모습을 눈이라는 사진기로 찍어 마음에 저장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1절을 관객들이 끝까지 부르자 그런 관객들을 향해 이서준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까아아악.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관객들을 바라보는 이서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 * *
똑똑.
노크 소리가 먼저 들리고, 이윽고 천천히 열리는 대기실 문.
문틈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쓰리 타임즈의 나영이었다.
고개만 빼꼼 내민 그녀는, 대기실 안에 서 있던 조상구 실장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들어가도 돼요?”
그녀의 물음에 조상구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들어와도 돼.”
조상구 실장의 말을 듣고 대기실로 들어온 사람은 나영과 연경이었다.
친구 사이인 그녀들은 이서준의 첫 콘서트를 보기 위해 함께 콘서트장을 방문한 것이다.
첫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그녀들은 이서준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대기실로 방문했다.
어쩐 일인지 이서준은 보이지 않았다.
“오빠 어디 갔어요?”
그녀의 물음에 조상구 실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옷 갈아입고 화장실 갔어. 이제 곧 올 거야.”
“아, 그렇구나.”
잠시 후 대기실로 돌아온 이서준.
그는 자신의 대기실로 찾아온 두 사람을 확인한 후 반갑게 맞이했다.
“어, 나영이랑 연경이 왔어?”
“네, 오빠. 고생하셨어요. 콘서트도 너무 좋았고요. 너무 뛰어서 무릎이 다 아파요.”
“그래? 좋았다니 정말 다행이다. 콘서트 준비하면서 많이 걱정했거든. 관객들이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말이야.”
“에이, 그런 사람이 그렇게 잘해요? 난 진짜 콘서트 100회 이상 열었던 베테랑 가수 콘서트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어요. 어쩜 그렇게 잘해요?”
나영의 말은 콘서트가 좋았다는 뜻을 담고 있었기에 이서준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환하게 웃는 그를 향해 나영은 준비해 온 것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것을 본 이서준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이건 뭐야?”
“죽이에요. 저도 콘서트 해 보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멤버들과 함께 하는 거라서 중간에 쉬는 타임도 좀 있는데 오빠는 진짜 오빠 혼자 2시간 30분을 노래했잖아요. 힘들어서 배는 고픈데, 너무 힘들어 입맛이 없던 제 경험을 바탕으로 죽을 만들어 왔어요. 이것 먹고 힘 좀 내시라고요.”
너무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바람에 이서준은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나영은 팀 내 맏언니로 항상 이렇게 동생들을 챙겼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이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나영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영이는 항상 주변 사람을 이렇게 잘 챙기네. 이렇게 챙겨 주면 기분이 좋아?”
이서준의 물음에 나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호호, 네, 기분이 좋아요. 내가 뭘 챙겨 줬을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처럼 보기 좋은 모습이 없더라고요. 오빠는 안 그래요?”
“글쎄, 나도 그런 적은 있는 거 같긴 한데… 나중에 여자 친구가 생긴다면 나영이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순간적으로 심쿵한 나머지 얼굴이 약간 붉어진 나영.
속으로 많이 당황한 그녀였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이어 갔다.
“…오빠, 저 같은 사람 잘 없어요. 그러니 찾으려면 고생 좀 하실 거에요. 근데, 생각하니 괘씸하네요. 오빠를 잘 챙겨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이유가 챙김을 받으면 편할 거 같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완전 실망이에요.”
“…아니야. 오히려 내가 챙겨 주고 싶어서 그래. 항상 남을 챙겨 주는 너 같은 사람은 의외로 남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도 받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을 거 아니야. 그러니 내가 막 챙겨 주고 싶어. 좋은 사람이니까.”
이서준의 의외의 말에 다시 한번 심쿵 사고를 당한 나영은 이번에는 표정을 숨기는 것이 힘들 거 같아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이서준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는 친구의 모습을 연경은 그냥 고개를 갸우뚱하며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