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24화 (124/189)

124. 연말 시상식(2)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지나가다 우연히 TV에 나오는 연예인만 봐도 신기해서 눈을 돌리지 못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평범했던 내가 세계적인 스타인 BTC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지금 현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던 나에게, 박시혁 대표님이 오늘 우리가 만나야만 했던 용건을 자연스럽게 꺼내 주셨다.

“서준 씨, 콜라보 무대 편곡은 다 끝났어?”

“아, 네. 다 마쳤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들어 볼 수 있을까?”

“네.”

그렇다.

오늘 내가 떠오르는 대한민국 대표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빅챈스’ 본사로 온 이유가 바로 BTC 선배님들을 만나서 연말 가요 시상식 합동 무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방송국에서는 나와 BTC 선배님들이 함께 합동 무대를 꾸며 줄 것을 주문했는데, 아마 가장 ‘핫’한 두 팀이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멋진 합동 무대를 펼쳐 주면 시청자들에게 보다 신선하게 다가갈 거라는 생각 같았다.

내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는 콜라보 제의였다.

이제 만으로 1년이 조금 넘게 활동한 초짜 가수인 나로서는 무조건 해야 하는 영광스러운 무대이기도 했다.

BTC 선배님들의 경우에는 나와 함께 공연하는 것이 혼자 공연하는 것보다 조금 손해가 될 수도 있겠다 걱정했는데, 선배님들이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는 소식에 나는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곧바로 앉은 자리에서 당시의 즐거운 마음을 담아 편곡 하나를 뚝딱 만들었는데, 그 곡을 소개하러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편곡을 마쳤다는 내 이야기를 들은 박시혁 대표님은, 무척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내게 다시 말했다.

“자, 시작하지.”

“네, 알겠습니다.”

나는 BTC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편곡 버전이 저장되어 있던 내 스마트폰을 연습실 기계에 연결했고, 곧바로 곡을 재생시켰다.

♪♩♪♩♩

내가 편곡한 노래가 연습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모두가 눈을 감은 채 감상하기 시작했다.

이 곡을 편곡한 작곡가인 내 입장에는 무척 뻘쭘하고 긴장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실제론 짧았지만, 심리적으로 매우 길었던 4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편곡된 노래의 재생은 끝이 났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마자 BTC 선배님들은 내 가까이 다가와 극찬을 쏟아 냈다.

“이거 우리 노래 ‘봄날에’ 맞죠?”

“네, 맞습니다.”

“너무 좋아요. 어떻게 이렇게 편곡할 생각을 다 했어요? 소문대로 정말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너무 좋았어요.”

“맞아요. 너무 좋았어요.”

BTC 다섯 멤버의 극찬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내 신경은 온통 아직 아무런 말이 없는 박시혁 대표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회사 대표직을 맡기 전부터 유명 작곡가로 활발히 음악 활동을 해 왔던 분이셨기에, 그런 대표님이 내 편곡 버전의 ‘봄날에’를 어떻게 들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슬쩍 눈치를 살피니 여전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신 대표님은, 그제야 나를 향해 감상을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정말 좋네. 그냥 이대로 공연 준비하면 되겠어. 너무 좋아.”

박시혁 대표님의 칭찬이 담긴 말을 들은 나는 곧바로 속으로 ‘나이스’를 크게 외치며 기뻐했다.

그런 나를 향해 박시혁 대표님은 다시 한 가지 부탁을 해 오셨다.

“서준 씨, 괜찮으면 우리 콘서트에 이 편곡 버전을 좀 사용해도 될까? 팬들이 들으면 너무 좋아할 거 같아서 그래. 어때, 괜찮아?”

“아, 물론 괜찮습니다. 앞으로 공연하실 때 제 편곡 버전으로 노래해 주신다면 저로서는 정말 큰 영광일 거 같습니다.”

“오늘 서준 씨 실력 보니까 앞으로 우리가 더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할 거 같은데… 앞으론 그런 겸손한 말 하지 마. 서준 씨는 실력이 있으니 겸손할 필요 없어. 외국에서는 겸손하니까 더 손해 보더라고.”

“…네.”

박시혁 대표님이 이 정도로 이야기해 주시는 모습을 보니 진심으로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혹시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많이 했던 나였기에 그제서야 진심으로 안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내 편곡 버전의 ‘봄날에’가 모두의 동의를 순조롭게 얻었기에, 우리는 이 곡으로 합동 공연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연습만이 남은 셈이다.

다행히 우리 두 팀 모두가 오늘은 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곧바로 연습에 들어갈 수 있었다.

편곡자가 나인 관계로 오늘 연습은 나의 주도하에 진행되었다.

“문혁 선배님. 원곡보다 랩 마디가 4마디가 더 늘었어요. 추가할 가사는 다 완성하셨나요?”

“아, 준비 다 됐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정원 씨, 바뀐 박자는 따로 연습하는 시간을 갖지 않아도 바로 하실 수 있을까요?”

“음… 일단 한번 해 보죠. 만약 해 보고 따로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 다시 고민하면 되잖아요.”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럼 모두들 제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따라와 주세요. 그럼 첫 번째 연습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 만에 첫 번째 연습에 들어가는 우리.

처음으로 함께 연습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오늘 한 번 맞춰 본 후 따로 연습을 더 한 다음에 다시 한번 모여서 연습해야 어느 정도 제대로 된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역시 BTC 선배님들의 실력이 매우 뛰어난 관계로 처음의 내 예상과 다르게 같이 맞춰 보는 것은 오늘만 해도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공연 위주로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이런 편곡 연습에 그 누구보다도 적응이 빨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무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습에 매진한 우리는, 오늘의 연습을 끝낸 후 함께 모여서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3시간 넘게 연습하면서 ‘봄날에’의 편곡 버전에 많이 익숙하게 변한 우리였지만, 그것보다 더 좋았던 부분은 나와 BTC 멤버들이 처음보다 많이 친해졌다는 사실이었다.

“형, 맥주에 피자 어때?”

“헉, 그건 요즘 떠오르는 콤비잖아. 나는 무조건 콜이다.”

“하하, 역시 형이 뭐 좀 아는구나. 나 방금 형의 빛나는 센스에 반해서 앞으로 형이랑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다짐을 해 버렸어.”

“어,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럼 진짜 따로 만날까? 같이 밥도 먹고 말이야.”

“나는 좋지. 단, 형 여동생도 데리고 나와 줘. 아까 사진 보니까 너무 예쁘더라.”

“뭐야? 내가 아니고 동생이었어?”

“이런 경우에는 일석이조란 말을 인용하면 딱 좋겠지?”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모두 다 놓친다는 속담을 인용하는 건 어때?”

나와 문혁이가 이렇게 실없는 농담을 나누고 있자, 우리 옆에서 쉬고 있던 재명이도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앗, 나도 친하게 지내. 형이 나보다 2살 더 많으니까 내가 형으로 제대로 모실게. 단 여동생 나올 때 나도 데리고 가야 해. 알았지?”

“너도 주의해야 할 놈이구나.”

“서준이 형, 나는 괜찮아. 문혁이 형은 조심해야 할 사람이 맞고.”

장난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좋아하는 BTC의 모습을 보니 이럴 때는 영락없는 20대 청년들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다 보니 BTC와의 만남은 저녁까지 쭉 이어졌다.

저녁으로 피자를 시켜 먹었고, 배를 어느 정도 채운 후부터는 맥주까지 함께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외에서 공연하면 어떤 기분이 들어?”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많이 들었을 거 같은 흔한 질문이었지만, 문혁은 고맙게도 진지하게 내 물음에 답을 해 주었다.

“신기하지. 인종도 다르고 국가도 다른 사람들이 한국말로 부르는 우리 노래를 듣고 이렇게 기뻐해 준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신기하더라.”

문혁의 답변에 이어 자연스럽게 멤버 제이스의 대답이 뒤따랐다.

“나도 비슷해. 말과 문화가 다른 외국 팬들과 우리가 통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더라고. 이런 걸 보면 말을 못 알아들어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 마치 누군가 내 머리를 때린 것처럼 머릿속에는 몇 가지 단어로 가득 찼다.

‘…소통,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떤 멜로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피아노와 드럼까지 그 멜로디에 맞춰 신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노래가 떠오른 것이었다.

“어, 형 왜 그래? 맥주 먹고 취한 거야?”

내 행동과 표정이 이상했는지 BTC 멤버 수찬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의 물음에 답할 여유가 없었기에 그냥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 한쪽 편에 놓여 있던 기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던 멜로디를 기타를 통해 토해 내기 시작했다.

♩♪♪♩♪

정신없이 연주하는 나.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등은 모두 잊어버렸다.

그저 지금은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멜로디를 모두 토해 내야 한다는 한 가지 일념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연주하다 보니 어느새 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BTC 멤버인 다섯 남자들.

그들은 약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오늘 처음 만난 BTC를 앞에 두고 잠시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굴었다는 후회가 갑자기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래서 얼른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 갑자기 멜로디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라서 내가 잠시 이상하게 굴어 버렸어. 가끔 이러긴 하는데… 머리에 이상 있는 사람은 절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마.”

내가 사과를 했지만 이번에는 BTC의 귀에 내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내 사과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갑자기 쏟아 내기 시작했다.

“방금 그 노래 뭐야?”

“원래 있던 곡이야?”

“방금 연주했던 노래 뭐냐고?”

조금 전 내가 연주했던 곡에 관해 질문을 쏟아 내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이런 생각이 문득 들어 물어보았다.

“…방금 들었던 멜로디 괜찮았어?”

“너무 좋았어. 한 번 더 연주해 주면 안 돼? 다시 듣고 싶어졌어.”

“…좋아.”

좋은 반응에 용기가 생긴 나는 다시 자리에 서서 제대로 연주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아침 일찍 출근한 박시혁은, 출근하자마자 들은 깜짝 놀랄 만한 소식에 그는 황급히 녹음실을 향해 뛰어갔다.

헐레벌떡 뛰어서 녹음실로 들어가니 초췌한 모습을 한 BTC 멤버들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이서준 어딨어?”

그의 물음에 BTC 멤버들은 일제히 녹음 부스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시선.

박시혁의 눈에는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연주하고 있는 이서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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