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연말 시상식(3)
땀까지 흘리며 연주하고 있는 이서준의 모습을 본 박시혁은, 피곤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는 문혁을 향해 물었다.
“어젯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연습 끝나고 간단하게 맥주 한 캔 먹다가 갑자기 서준이 형이 무슨 영감 같은 게 떠올랐는지 미친 듯이 연주를 시작하더라고요. 그게 녹음의 시작이었는데, 지금까지 쭉 하고 있네요.”
피곤한 얼굴로 대답하는 문혁의 설명을 들으니 지금의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알기 위해서는 설명이 더 필요했기에 다시 BTC 멤버들을 향해 추가 질문을 던지려던 그 순간, 녹음 부스 안에서 들려오던 악기 소리가 멈추었다.
녹음이 끝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서준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그는, 하려던 질문을 멈추고 이서준이 부스 밖으로 나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매우 피곤해 보이는 모습으로 부스 밖으로 나오는 이서준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박시혁의 모습을 발견한 이서준은 황급히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대표님.”
“그래, 고생이 많네.”
녹음 부스 안에서 혼신의 힘을 모두 쏟아붓고 나왔는지 인사를 건네는 이서준의 얼굴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
그 모습이 안 되어 보였던 박시혁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꼬박 밤을 새운 거야?”
“네, 어쩌다 보니… 열심히 녹음하다 보니까 벌써 아침이네요.”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이서준의 모습을 보고 더욱 짠한 마음이 생겨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기대감도 생겨났다.
저렇게 혼신의 힘을 들여 만들어 낸 곡이 얼마나 좋은 곡일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네가 이렇게 고생했는데… 미안하게도 노래부터 들어 보고 싶네. 어쩌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말하는 박시혁에게 이서준은 괜찮다는 뜻으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좋습니다. 저도 제가 만든 곡을 대표님께 어서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거의 10시간 넘게 집중해서 만든 곡이 대표님 귀에는 어떻게 들릴지가 너무 궁금하네요.”
“좋아, 그럼 들어 볼까? 궁금해서 미칠 거 같다.”
“하하, 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무리 작업이 조금 남았거든요.”
“그래, 기다릴 테니 천천히 해.”
이서준은 컴퓨터 앞으로 걸어가 녹음된 소리들을 마지막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녹음된 악기 소리를 제자리에 배열 못 한 것들이 아직 남았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작업하는 이서준의 곁에는 어제부터 이서준의 녹음을 도와준 수찬이 함께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열심히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던 그때,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시혁 곁으로 BTC의 리더 문혁이 조용히 다가왔다.
다가온 문혁은 박시혁의 옆에 서서 그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저도 아직 완성본을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충분히 기대하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진짜 죽이거든요”
“그래? 그 정도야?”
“네.”
확신에 찬 눈빛으로 대답하는 문혁의 모습이 매우 낯설었다.
평소 문혁의 신중한 성격을 고려하면, 지금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랬기에 박시혁은 전보다 더욱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열심히 작업 중인 이서준의 등을 바라봤다.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드디어 마무리 작업이 완료되었다.
작업을 마친 이서준이 1차로 완성된 음악을 바로 재생시켰고, 녹음실에 있던 모든 사람은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노래에 집중했다.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처음 듣는 노래 하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듣자마자 귓속을 파고드는 듯한 노래 한 곡.
‘!’
노래에 따라 다양한 경우가 생기겠지만, 처음 들을 때는 별로 와닿는 게 안 느껴지다가 계속 반복해서 듣다 보면 노래가 점점 좋아지는 곡도 있다.
그리고 그와 다르게 듣자마자 ‘바로 이거다!’ 싶은 생각이 바로 머리를 강타하는 것처럼 강한 임팩트를 주는 곡도 있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는 분명히 후자의 경우였다.
신선한 도입부와 귀에 쏙쏙 박히는 듯한 기타 라인이 처음부터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리고 초반부에는 소프트하게 리듬을 만들어 주던 드럼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비행기처럼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어 놓고 있었다.
무엇보다 압권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 라인이었다.
아직 가사가 없어 그저 아는 단어 몇 가지로 대충 부른 멜로디 라인이었지만, 듣자마자 ‘최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느낌의 멜로디였다.
녹음실 안을 가득 메우던 노래가 드디어 끝이 났다.
노래가 모두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녹음실 안에 있는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서준이 만든 노래를 듣고 큰 충격을 받은 여파였다.
충격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사람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박시혁이었다.
그는 말까지 더듬으며 이서준에게 부탁했다.
“하, 한 번만 더 들어 봐도 될까?”
“…네.”
이서준은 별다른 말 없이 노래를 한 번 더 듣기를 원하는 박시혁의 모습에서 의문이 생겼다.
그가 지금 무슨 생각으로 노래를 한 번 더 듣기를 원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가 매우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묻기에는 조금 주저하는 마음이 생겼기에 일단 호기심을 누른 채 그가 부탁한 대로 노래를 곧바로 재생시켰다.
박시혁은 그렇게 노래를 다섯 번이나 더 듣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곡이 너무 좋네. 도대체 이 곡은 무슨 생각으로 만들기 시작한 거야?”
이서준은 박시혁의 물음에 어제를 회상하며 대답했다.
“그냥 어제 애들하고 맥주 한 캔 하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그러는 거예요. 언어와 문화, 그리고 피부색이 달라도 팬들과는 통하는 것이 있다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멜로디 하나가 만들어지더라고요. 그걸 밖으로 풀어 내다 보니 이렇게 하나의 곡까지 완성하게 되었네요.”
이서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박시혁의 온몸에는 소름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만 들어도 이서준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실제로 직접 경험하는 이서준의 실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대단했다.
그가 단 하룻밤 만에 만들어 낸 노래를 듣고 난 후라 그런지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형님이 괴물 하나를 데리고 있었군.’
그런 생각을 하던 박시혁은 황급히 머리를 털어 버렸다.
이서준의 실력이 어쨌든 간에 지금은 방금 들은 이 노래를 반드시 BTC의 곡으로 만들어야 할 순간이었다.
그것이 중요했기에 박시혁은 직접적으로 이서준에게 물었다.
“솔직히 네가 만든 이 곡을 우리 BTC가 불렀으면 좋겠어. 네 생각은 어때? 가능할까?”
박시혁의 질문을 들은 이서준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그거야 당연하죠. 누가 뭐래도 이 곡의 주인은 BTC에요. 왜냐하면, BTC의 마음을 생각해서 만든 곡이니까요. 전 그냥 팬과 BTC 사이에 만들어지는 교감을 노래로 표현했을 뿐이에요.”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하는 이서준의 모습을 보고 박시혁과 BTC 멤버들은 그제서야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곡이었기에 혹시나 자신들에게 곡을 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조금씩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곡을 얻은 박시혁은 BTC의 컴백 일정을 빠르게 당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좀 쉬려고 했던 생각이 그대로 공중분해되어 날아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 * *
올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
쉬지 않고 돌아가는 시곗바늘이 12월의 끝자락에 도달하게 되면 항상 음악 팬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주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올해의 가요 대상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다른 해와 다르게 올 한 해는 특히나 두드러진 성과들이 많았는데,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세계적인 스타인 BTC는 세계 음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빌보드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 냈다.
그리고 걸그룹 블랙펑크 역시 세계적인 인기몰이에 성공하며 월드클래스로 성장했고, 쓰리 타임즈와 워너비 걸즈 역시 아시아를 중심으로 맹활약을 펼친 한 해였다.
신인 가수 중 가장 눈에 띄는 가수는 바로 이서준이었다.
데뷔 앨범과 2집 앨범 모두 성공시키면서 단숨에 국내 탑 뮤지션의 자리를 차지한 그였다.
그리고 가수뿐만이 아니라 배우로서도 성공을 거두었기에 올해 국내 무대에서는 이서준이 가장 빛났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뭐 해? 시작해, 빨리 와.”
문가영, 문가희 자매는 곧 있으면 시작될 KBC 가요 대상을 시청하기 위해 황금연휴 기간 저녁에 오랜만에 집에 있었다.
“벌써 시작했어?”
“아니 아직이야. 그러니 어서 와. 시작부터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봐야지.”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가수가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본방사수를 할 생각이었다.
눈과 귀가 즐거운 가요 시상식이었으니 입도 즐겁기 위해 피자와 치킨, 그리고 콜라까지 준비하며 시청을 시작하는 두 사람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가요제.
첫 수상의 주인공은 신인 가수상을 받은 이서준이었다.
그의 팬인 언니 문가영은 신인상 수상자로 이서준이 호명되자 기쁨을 누르지 못해 환호성까지 질렀다.
“역시! 우리 오빠를 빼고는 줄 사람이 없지. 우리 가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동생이자 대학생인 문가희 역시 이서준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가수였으니 당연히 기뻐하는 표정으로 언니의 질문에 답했다.
“그건 당연하지. 솔직히 신인상 이서준 안 주면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언니 인정?”
“그럼 당연히 인정. 대상까지 노려야 하는 상황에 신인상은 당연히 받아야지.”
방금 문가영의 발언은 BTC의 팬인 문가희가 그냥 넘기기엔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문가희는 그 점을 콕 집어 언니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어, 잠깐. 신인상은 인정하지만, 대상은 아니지. 이서준도 잘했지만 대상은 우리 BTC 오빠들 거란 말이야. 아무리 이서준이 대단하다고 해도 아직은 대상감은 아니야. 언니, 인정?”
문가영 역시 동생의 말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불인정. BTC가 대단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지금 이 가요제가 무슨 가요제야? 우리나라에서 활약한 가수들에게 상을 주는 가요제잖아. BTC 노래가 세계적으로 히트한 것은 분명 맞지만, BTC는 국내 활동보다는 해외 활동에 주력한 팀이란 뜻이지. 그러니 BTC는 미국에서 상을 받고,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가요제 대상은 올해 국내에서 최고였던 이서준 오빠에게 주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이라는 거 인정?”
“아니, 불인정. 국내도 해외도 원탑은 우리 BTC 오빠들이었어.”
두 자매의 말싸움처럼 가요 시상식을 앞두고 언론에서부터 말이 참 많았다.
올해의 가요 대상 수상자가 누구일까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