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27화 (127/189)

127. 영화 출연 제의(1)

오랜만에 친한 두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한 거여서 그런지 이서준은 지금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이 먼저 두 사람이 아직까지 꺼내지 못한 실제 용건을 먼저 꺼내 주었다.

“두 분도 다 드셨죠? 그럼 이제 시나리오 주세요. 저도 우리 최 작가님이 이번에는 어떤 작품을 쓰셨는지 무척 궁금하거든요.”

이서준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우리가 서준이를 왜 보자고 했는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어?”

“하하, 네. 저도 두 분하고 친하게 지낸 지 제법 됐잖아요. 두 분 다 속을 감추지 못하시는 편인 건 알고 계시죠? 전화 통화할 때부터 바로 티가 나서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어요. 아,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보자고 하시는구나. 이렇게요.”

이서준의 설명을 들은 최은희 작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민망해하는 이진섭 감독에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본인은 연기를 이렇게 못하면서 촬영할 때 배우들에겐 어떻게 연기 지적을 해요? 본인부터 연기 연습을 기초부터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히딩크 감독은 축구를 잘해서 우리나라 대표팀을 월드컵 4강까지 데리고 갔어? 그러니 내가 연기를 못하는 거랑 감독 일하곤 아무런 상관없어.”

“으이구,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여전히 민망해하는 이진섭 감독을 다시 한번 눈을 흘기며 쏘아본 최은희 작가는, 미리 준비해 온 시나리오를 가방에서 꺼내 이서준 앞에 내밀었다.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니까 더 이상 네 눈치 보지 않고 그냥 말할게. 내가 최근에 쓴 시나리오야. 천천히 보고 출연 여부를 말해 줬으면 좋겠어. 아, 참고로 네게 부탁할 역할은 남자주인공 역할이야.”

이서준은 그녀에 내미는 시나리오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어떤 내용을 담은 영화 시나리오인지가 조금 궁금했던지 그 자리에서 바로 시나리오를 들고 훑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시나리오를 읽던 이서준의 눈에 이채가 서리었다.

그래서 읽는 것을 잠시 멈춘 후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최은희를 향해 물었다.

“어, 이거 제가 예상했던 장르의 영화가 전혀 아니네요?”

이서준이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대번에 알아들은 최은희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액션이나 스릴러가 아니라서 놀랐어?”

“네. …솔직히 그 둘 중 하나의 장르가 아닐까 하고 혼자서 넘겨짚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을 줄은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더 신선한 느낌이 드네요.”

최은희 작가가 이번에 이서준에게 건넨 영화 시나리오는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보고 신선하다고 평한 이서준을 향해 그런 이야기를 시나리오에 담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실 그거 우리 조카 이야기야. 우리 조카가 그 시나리오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델인 셈이지. 나이랑 직업 등 거의 모든 게 똑같아. 후후, 서준 씨가 주인공을 맡아 준다면 얼굴만은 완전히 달라지겠네.”

시나리오에 적힌 제목은 아직 가제이긴 하지만 ‘경수의 사랑’이었다.

평범한 20대 후반 사회 초년생인 경수는, 흔히 말하는 삼포 세대 중 한 명이었다.

시나리오는 결혼, 연애,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평범한 청년 중 한 명인 경수의 인생을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보여 주려 하는 듯했다.

이서준은 시나리오를 잠깐 읽었을 뿐이었지만, 무척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자신 역시 도깨비님을 우연히 만나기 전까지 시나리오 속 경수와 비슷한 존재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공감하는 바가 있어 더욱 좋았다.

그래서 경수를 연기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바로 생겼지만, 문득 걱정도 뒤따랐다.

“솔직히 해 보고 싶긴 한데요… 걱정이 되기도 해요.”

“어떤 부분이 걱정이 돼?”

이서준은 최은희의 물음에 곧바로 떠올랐던 걱정거리 하나를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제가 이제까지 딱 두 작품에 출연했잖아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두 편 모두 두 분과 작업을 했고요. 근데 공교롭게도 또 두 분이 함께하시는 작품에 출연하게 되는 거니까… 보시는 분들이 조금 피곤한 시선으로 보지 않을까요?”

이서준이 무엇을 걱정하는 건지 깨달은 이진섭 감독은, 이서준의 물음에 대답하려는 최은희 작가보다 먼저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그래서 서준이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최은희 작가가 자기를 주인공으로 하고 싶단 생각에 곧바로 반대 의사를 밝혔어. 사실 나는 또 서준이랑 같이 작업하는 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이상하게도 두 편이나 같이 했는데도 또 서준이랑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거든. 아직 내가 뽑아낼 부분이 너무 많은 배우가 바로 이서준이란 배우야. 그래서 저번 작품에선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앵글도 새롭게 만들어 보고 싶고, 사람들이 아직 모르는 서준이의 새로운 면도 뽑아낼 자신이 있어. 근데 말이야…….”

이진섭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한 그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었기에 이서준은 그에게 집중하며 대꾸해 주었다.

“그럼 뭐 때문에 반대하셨던 거에요?”

“그건 네가 너무 잘생겨서 그랬어.”

“네?”

이번에도 전혀 예상 못 한 이유가 담긴 답변이었다.

이진섭 감독은 자신의 대답을 듣고 놀라는 이서준을 향해 설명을 이어 갔다.

“아니, 생각해 봐.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건데, 넌 외모가 절대로 평범하지 않잖아. 요즘 잘생긴 남자 배우 1위로 항상 뽑히는 네가 그런 평범한 역할을 맡는다면 보시는 분들이 쉽게 공감이 생기겠어?”

“…….”

본인이 생각해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기에 이서준은 그냥 이진섭 감독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근데 최 작가가 나한테 그러더라고. 서준이 너 말고 다른 주인공 감은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고. 그래서 내가 또 이렇게 물었지. 도대체 왜 서준이만 생각이 나냐고. 그랬더니 최 작가가 다시 이렇게 대답하더라. 네 눈빛 말고 다른 배우의 눈빛으로는 도저히 주인공 경수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래서 나도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니 최 작가의 말이 어느 정도 맞더라고. 외모가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잘생긴 부분은 어떻게 다른 기술로 커버하면 될 듯하고 말이야.”

이서준은 자신의 앞에 앉은 두 사람이 자신을 얼마나 높게 평가해 주고 있는지 그 마음이 느껴져 무척 고마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깨비 안경을 사용해 작품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그냥 단번에 출연을 약속했다.

“알겠습니다. 저 할게요. 두 분이 실망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믿어 주세요.”

이서준의 화끈한 출연 승낙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은 뛸 듯이 기뻐했다.

“오, 진짜?”

“그래, 잘 생각했어. 우린 드림팀이야. 이번에도 대박 날 작품 한번 만들어 보자고. 하하하.”

그렇게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서준의 다음 행보가 스크린 진출로 결정이 되었다.

* * *

일본의 떠오르는 신예 싱어송라이터 무키야노 스즈끼는 도쿄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있었다.

지금 그는 매우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왜냐하면, 잠시 후 기쁜 소식 하나가 들려올 것이 확실시되는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소식을 기다리며 평소 좋아하는 와인 한잔을 곁들이고 있는 것은 어쩌면 미리 자축하는 중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무키야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히로시 실장은, 와인을 마시는 무키야노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무키야노가 갑자기 물었다.

“사장님이 올 때가 되지 않았어요?”

무키야노의 물음에 히로시 실장은 황급히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한 후 대답했다.

“아, 그래. 오실 때가 되었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사장님이 오실 거야. 그러니 잠시만 더 기다리자. 알겠지?”

“네, 알겠어요.”

뜨고 나서부터 기다리는 걸 무척 싫어하는 무키야노였기에 달래는 히로시 실장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점은 오늘따라 무키야노가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더 기다려 달라는 히로시 실장의 말을 듣고도 평소 때와 다르게 그냥 순하게 알겠다며 대답하는 모습을 보여 히로시 실장은 속으로 많이 놀라고 있었다.

무키야노는 진심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예전부터 그토록 바라던 미국 진출의 첫 단추가 성공적으로 꿰어졌음을 어서 빨리 확인하고 싶었지만, 조금 더 크게 감동을 느끼겠다는 마음으로 참을 수 있었다.

그렇게 와인을 몇 잔 더 먹었을 무렵, 그토록 기다리던 사장 쿠로시노가 레스토랑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무키야노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한 후 곧바로 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와 같은 테이블에 놓여 있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대뜸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부터 가득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사장 쿠로시노의 이상한 행동에 무키야노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아니, 왔으면 진행하던 일이 어떻게 됐는지 설명부터 해 주고 나서 와인을 마시는 게 맞는 순서가 아닌가요? 조금 당황스럽네요.”

쿠로시노 사장은 무키야노의 말을 듣자 냉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뭐? 왜 술부터 마시냐고? 지금 네가 내 기분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절대 그런 소리를 못 할 거야. 그러니 한 잔만 먹고 이야기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줘.”

그제야 무키야노는 자신의 사장이 지금 매우 크게 화가 났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행하던 일에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쿠로시노 사장은 가득 따른 와인 한 잔을 비우고 나서야 자신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는 무키야노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진행하던 일이 잘 안 됐다는 소식부터 전해야 할 거 같다.”

“잘 안 됐다고요? 그럼 제 곡을 쓰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그래. 그렇게 됐다.”

청천벽력과 같은 그의 말에 무키야노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의 진행되던 상황을 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방금 들은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그는, 다시 쿠로시노 사장에게 물었다.

“아니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건데요?”

“너보다 다른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할 생각이라고 하더라. 요즘은 그쪽에서 만드는 음악이 최고라고 하면서 말이야. 제기랄, 생각하니 다시 열 받네. 한 잔 더 마셔야겠어.”

쿠로시노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의 곡을 듣고 함께 작업을 진행하려던 미국 회사가 갑자기 노선을 변경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어디로 노선을 변경했는지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디랑 작업을 한다고 말을 바꾼다고 하던가요? 영국인가요? 아니면 유럽?”

자신을 깔 정도면 아마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물었지만, 사장 쿠로시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전혀 뜻밖인 곳이었다.

“한국이야.”

“네?”

“한국이라고. 한국에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곡가가 있다고 하더라. 회사 사장이 갑자기 푹 빠진 모양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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