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영화 출연 제의(2)
쿠로시노 사장의 대답을 들은 무키야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사장님, 지금 한국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혹시 잘못 들었나요?”
쿠로시노 사장은 무키야노의 물음에 야속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나도 일이 갑자기 어그러진 게 너무 이상해서 내부 사람에게 확실하게 알아봤어. 신임 사장이 한국 쪽 작곡가와 작업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모양이야.”
쿠로시노의 대답을 들은 무키야노는 순간적으로 발끈하며 화를 냈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겨우 한국이라뇨? 제가 한국 작곡가에게 밀렸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한국 음악은 우리 일본 음악을 따라 하는 아류 음악일 뿐이라고요.”
“…….”
진행하던 일이 무산되었고, 더군다나 한국 쪽 작곡가에게 자신이 밀렸다는 생각에 무키야노는 광분하며 소리쳤다.
최근 일본에서 계속 천재 음악가란 평가를 받고 있던 그였기에 더욱 납득하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쿠로시노 사장은 화가 난 무키야노가 광분하며 소리치는 모습을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솔직히 난데없이 미국 진출을 시도하겠다고 선언한 무키야노의 무모한 도전에 처음부터 반대였다.
그는 무키야노가 왜 갑자기 미국에 진출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미국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한국의 BTC가 부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BTC의 성공을 순수 자신들의 실력이 아닌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고 평가 절하했던 그였기에, 자기 역시 충분한 지원을 받으면 BTC처럼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을 수도 있다.
‘일을 순리대로 풀어야지,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안 되는 게 되겠냐?’
솔직히 성질 같아선 이 말을 무키야노의 면전에 대고 하고 싶었지만, 무키야노 뒤에 어느새 다가와 서 있는 회장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난리를 피우는 무키야노를 가만히 바라보며 속으로 고소함을 느끼고 있었다.
* * *
미국 워너즈 뮤직 본사.
워너즈 뮤직은 미국 내 3대 음반 회사 중 하나에 꼽힐 정도로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였다.
이 거대 회사에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프로듀서 출신의 마이클 본이 새롭게 사장으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문 경영인들이 주로 사장직을 맡아 회사를 운영해 왔기 때문에 순수 음악인 출신인 마이클 본이 사장직을 맡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인사였다.
그러한 화제의 주인공인 마이클 본은 지금 자신의 방에서 회사 내 가장 유능한 프로듀서인 엘리엇과 긴급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연락이 왔다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제의는 감사하지만 새로운 영화 촬영에 들어가는 바람에 스케줄 조정이 힘들다고 전해 왔습니다.”
“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거절에 신임 사장 마이클은 머리를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제의를 거절한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내가 반한 작곡가가 한국의 슈퍼스타였다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곡을 만들어 낸 작곡가와 가수와 연기까지 모두 성공한 만능 엔터테이너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신선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기에 사장 마이클은 한국의 슈퍼스타이자 자신이 반한 작곡가 이서준에게 미련이 더욱 남았다.
잠깐 상념에 빠진 사장을 바라보던 엘리엇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원래대로 일본 작곡가의 곡으로 가는 건 어떤가요?”
그의 물음을 들은 마이클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니. 아무리 대안이 없어도 그런 쓰레기 같은 곡으로 제니퍼를 데뷔시킬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그러니 일본 쪽과 관련된 사업 이야기는 앞으로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네. 내 말 알아듣겠지?”
“…그러나 제이크 부사장이 절대로 그냥 넘어가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것도 내가 잘 해결할 테니 자네는 걱정할 필요 없어.”
단호한 마이클 본 사장의 대답에 걱정하던 엘리엇도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 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걱정하고 있는 바는 다음과 같았다.
최근 회사에서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여자 가수 한 명을 데뷔시키려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의 데뷔에 깊게 관여하고 있던 사람은 이번에 마이클 본 사장에 밀려 부사장으로 임명된 제이크 슈나이저였다.
그는 사업가답게 그녀의 데뷔와 일본 쪽 자본을 끌어오는 비즈니스를 연결하려고 했다.
때마침 일본에서 자국 음악인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걸 도와주는 조건으로 대규모 자본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전면에 내세운 일본 가수 겸 작곡가의 실력에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자본으로 움직이는 현대 엔터 사업의 경향을 봤을 때는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는 훌륭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사장에 임명된 마이클 본은 단번에 진행 중이던 사업을 중단시켜 버렸다.
왜냐하면, 회사 내 유망주인 제니퍼를 그런 곡으로 데뷔시켜서 흑역사를 만들게 할 수는 없었다.
마이클 본 사장 역시 심도 깊게 고민한 후 내린 결정이었다.
그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일본 쪽에서 데모 버전으로 보낸 곡을 들어 봤기 때문이었다.
마치 혼자서 시곗바늘이 뒤로 돌아간 것처럼 너무 올드한 곡의 느낌과 어설프게 팝 느낌을 주려고 만든 멜로디 라인은 정말 최악 중에 최악이었다.
그렇게 사업을 중단시킨 마이클은, 대안으로 한국 쪽에 오퍼를 보냈다.
우연히 보게 된 BTC 신곡 1분 선공개 영상을 그가 보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BTC의 소속사인 ‘빅챈스’에 연락을 시도한 마이클.
그가 직접 나서서 접촉한 덕분에 마이클은 내부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선 최초로 얼마 뒤에 발표될 BTC의 신곡 ‘contact’를 완곡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완곡을 처음으로 접한 그는 엄청난 충격 때문에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곡이 너무나 좋았다.
예전부터 한국 K팝의 힘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지만, 이번 곡은 정말 최근에 들은 그 어느 곡보다 좋았다.
그래서 그는 단번에 이 곡을 작업한 한국 작곡가와 작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낸 정식 오퍼.
그러나 결과는 놀랍게도 거절이었다.
깜짝 놀라 이유를 알아보니 거절한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BTC의 이번 신곡을 만든 작곡가가 알고 보니 이서준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과 아시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서준이었기에 미국으로 불러서 신인 가수 제니퍼와 함께 작업하려고 했던 그의 계획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일단… 다른 데서 곡을 받도록 연락을 돌려 보고… 이서준 쪽과도 계속 연락해.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아티스트니까.”
“알겠습니다.”
* * *
오랜만에 시도하는 V앱.
나는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V앱을 켰다.
“안녕, 슈퍼팬 여러분. 반갑습니다.”
내 팬클럽 이름은 ‘슈퍼팬’으로 지어졌다.
과분하게도 슈퍼스타 이서준의 팬클럽이란 뜻으로 그렇게 지은 거였다.
켠 지 몇 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올라가는 동시 접속자 수.
무려 8만이라는 많은 사람이 지금 내 V앱에 접속해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기하급수적으로 접속자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평소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 팬들의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사귀는 사람이요? 없어요. 진짜예요. 만약 생기면 그땐 솔직하게 말할게요.”
“좋아하는 음식요? 다 좋아해요. 별로 가리는 거 없어요. 홍어요? 아, 그건 아직 도전 못 해 봤는데. 기회가 닿으면 도전해 볼게요. 솔직히 조금 무섭긴 해요.”
“이상형요? 매력 있는 사람요. 아, 거짓말 아니에요. 외모도 솔직히 보긴 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매력이 중요해요. 정해진 건 없어요. 그냥 설명하긴 힘들지만, 누군가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때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겨요. 마지막 연애요? 3년 전이에요. 대학교 후배였어요. 처음 봤을 때 해맑게 웃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더라고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많은 질문이 왔지만, 난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런 내 모습에 팬들은 계속 하트를 보내 주며 좋다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재밌는 건 내가 V앱을 켠 용건을 아직 꺼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팬들의 질문을 잠시 끊고 하고 싶었던 말을 시작했다.
“시간 관계상 계속 질문에 답변을 못 하는 거 이해 좀 해 주세요. 제가 오늘 V앱을 켠 이유는 당분간 영화 촬영에 집중해야 할 거 같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예요. 저랑 함께 미라클을 만들었던 이진섭 감독님과 최은희 작가님이 이번에 영화를 시작하셨어요. 그리고 고맙게도 이번에도 주인공 역할을 제게 제의해 주셨고요.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이번에도 그분들과 함께 작업하게 됐어요. 그러니 당분간 가수로서의 모습을 잠시 못 보여 드리는 점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 영화 나오면 재밌게 봐주시고요. 아, 맞다. 내일 BTC 선배님들 컴백이네요. 제가 만든 곡을 BTC 선배님들이 부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BTC 선배님들 컴백도 많이 응원해 주세요.”
수많은 하트의 물결을 확인한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V앱을 종료했다.
* * *
“우리나라의 BTC가 컴백하자마자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8시 뉴스 앵커의 설명처럼 BTC는 컴백하자마자 다시 빌보드 1위에 올랐다.
물론 전에도 빌보드 1위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전과 달라진 점은 한국어 가사 노래로 2번 연속 빌보드 1위에 올랐다는 점과 공개된 뮤직비디오와 음반 판매량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보이고 있단 점이었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대히트에 성공한 ‘contact’는 놀랍게도 음악 전문가들에게도 엄청난 찬사를 이끌어 내는 성과를 보였다.
‘팝 음악이 가야 할 길을 제대로 보여 준 선구자적 음악이다.’
‘지금까지와 또 다른 색깔을 보여 준 BTC의 변신에 찬사를 보낸다.’
‘올해 BTC가 그래미상에 정식으로 도전장을 던진 곡이라고 봐도 될 거 같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전문가들의 찬사 섞인 평가처럼 BTC의 신곡 ‘contact’는 엄청난 인기몰이에 성공하며 BTC의 성공 행진은 이번에도 계속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컴백 곡을 작곡한 이서준에 대한 관심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조짐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BTC 덕분에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이서준은 재밌게도 지금 1평이 조금 넘는 고시원에서 촬영에 힘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