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영화 시사회에서(2)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모든 사람과 똑같이 맺을 수는 없다.
나도 가능하면 알고 지내는 사람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래도 유독 눈길과 애정이 조금이라도 더 가게 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던 탓일까?
영화 시사회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내 눈에 보였던 사람은 바로 쓰리 타임즈의 나영이었다.
녀석은 오늘도 화사하고 밝은 미소를 머금은 채 객석에 앉아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해외에서 콘서트를 마치고 오늘 귀국했을 텐데 내 말을 어기고 기어이 여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피곤하니 안 와도 된다고 여러 번 만류했는데도 바득바득 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기어이 오고야 만 것이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 텐데 겉으로 보기엔 피곤해 보이지 않아서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기엔 괜찮아 보여도 실제로는 무척 힘들 텐데 여기까지 찾아와 준 녀석의 마음 씀씀이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
나영이 옆에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음악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인 세린 누나가 앉아 있었다.
나영이 옆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니 역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대하기가 어려워 우리가 친해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친한 사이가 되었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누나도 매우 바쁜 사람인데, 오늘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은 그녀가 얼마나 의리가 있는 사람인지 잘 알 수 있었고, 나 역시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참석해 오늘의 은혜를 갚을 거라고 혼자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최근에 함께 기사가 났던 금희와, 그녀와 함께 인연을 맺은 종철이 형의 모습도 보였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나하고는 인연이 없거나 간단하게 인사 정도만 한 사이인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아마 다른 분의 초대를 받은 모양이었다.
‘근데, 저분은 왜 저렇게 나를 빤히 쳐다보지?’
선배 연기자인 박수인 씨의 모습도 객석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조금 불편했다.
왜냐하면, 나를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지 그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이유를 알든 모르든 간에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본다는 것은 실제로 당해 보니 매우 불편한 일이었다.
나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쪽으로는 시선을 돌리지 않게 되었다.
인터뷰 시간이 되었다.
“첫 영화 출연이신데요,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점이 있으셨나요?”
시사회 진행을 맡아 주신 박경임 사회자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까?’하고 잠깐 고민했던 나는, 마이크를 들고 이렇게 답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보시는 분들이 제 연기를 통해 공감대를 느끼셔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며 연기한 일이네요. 제가 맡은 주인공 역할 자체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20대 청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경수의 모습을 통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완성되기 때문에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연기가 중요해 보였거든요.”
“말씀이 너무 어려우세요. 좀 더 쉽게 설명해 주시면 안 되나요?”
“…연기를 잘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하하, 네, 감사합니다. 우리 이서준 씨. 제 부탁대로 아주 쉽게 설명을 해 주셨네요. 거기에 덧붙여 알아서 답변의 길이를 줄여 주시는 센스까지… 너무 좋았습니다.”
영화 시사회 진행을 많이 해 보신 분이라서 그런지 매우 능숙한 모습으로 행사를 진행해 주셨다.
나를 비롯한 출연진과 감독님까지 인터뷰를 마치고 드디어 우리 역시 맨 앞에 준비되어 있던 좌석에 앉았다.
지금부터는 제법 긴 시간을 고생하며 연기했던 내 첫 영화를 여기 모인 사람들과 함께 볼 계획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모여 오랜만에 심장의 두근거림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물론 내가 출연한 드라마를 TV를 통해 본 경험은 있었지만, 이렇게 극장에서 촬영이 완전히 끝난 영화를 보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많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 심장이 이렇게 크게 뛰는 이유는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도깨비 안경이라는 엄청난 보물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원한다면 이 영화의 성공 여부는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그냥 감독님과 작가님 때문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연기자로 큰 사랑을 받게 이끌어 준 두 분이었기에 나도 내 나름대로 보답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이어서 영화의 성패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면 도깨비 안경을 쓸까 하고 고민했던 적이 지금까지 몇 번 있었다.
내 생각에는 분명 재밌을 거 같은데, 영화 장르치고는 결코 흥행이 쉽지 않다는 감동과 공감의 드라마적 요소가 주된 내용인 영화였기에 이 영화가 개봉된다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처음에 결심한 내용이 있어 참고 또 참아 왔는데, 드디어 오늘 그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시작한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재환 선배님도 긴장이 되셨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리셨다.
선배님의 혼잣말처럼 드디어 시작되는 영화.
그에 따라 내 심장 박동 소리도 이상하게 점점 커지고 있었다.
* * *
하하하.
극장 안은 관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지금 화면 속에 나온 장면이 너무나 웃겼기에 관객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 버렸다.
“하하, 아이고… 너무 웃었더니 배가 너무 아파…….”
지금 나영은 너무 많이 웃어 배가 아픈 흔치 않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웃음이 터져 괴로운 건 나영의 옆에 있던 이세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너무 웃어서 아픈 배를 어루만지며 이서준의 연기에 놀라워했다.
“하하, 나도 배가 너무 아프다… 근데, 나영아. 지금 화면 속에 나오는 사람 이서준 맞아? 정말 우리가 알고 있던 이서준 맞냐고?”
“응, 맞아. 나 역시 믿기진 않지만… 오빠 맞아. 근데, 언니. 서준 오빠, 왜 저렇게 연기를 잘해? 진짜 노량진 같은 곳에서 3년 이상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여.”
“나도 그렇게 보여. 서준이가 진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오늘 절실히 느끼네… 저런 연기가 정말 어려운 건데 말이야…….”
이세린 같은 경우에는 나영과 다르게 묘한 질투심까지 느꼈다.
이서준의 소름 끼치는 연기 재능에 진심으로 탄복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현재 연기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 2편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고,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서도 꽤 좋은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이런 성과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 출연 초창기에는 그녀 역시 연기력 논란으로 인해 큰 마음고생을 했었다.
그녀의 연기에 실망한 많은 사람의 비난을 겪으면서 울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이 몇 번이었는지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이세린은 그런 비난 속에서도 꿋꿋이 노력을 지속해서 지금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연기자 이세린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데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와 비교해서 이서준은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높은 수준의 연기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영화 전에 촬영했던 드라마 2편에서도 연기력에 대한 논란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건 타고난 재능 자체가 다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너무도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 부분을 감안했을 때, 비슷한 길은 걷는 사람으로서 순수하게 질투심을 느낄 만한 순간이었다.
영화는 무척 재밌었다.
웃음과 감동 모두가 담겨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른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일상에서 흔히 겪는 에피소드를 절묘하게 영화 속에 녹여 놓았고, 배우들의 연기 역시 매우 훌륭했기에 이런 에피소드가 극대화되어 큰 웃음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들 무렵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의 슬픔과 아픔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느끼고 있는 일반적인 삶의 이야기였기에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과 점점 같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주인공 경수가 실의에 빠져 한강 둔치에 서서 크게 소리치는 장면이었다.
“세상이 뭐 이따위야? 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그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 되는 거야? 도대체 왜?”
지금 자신의 상황상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조차 죄를 짓는 듯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장면이었다.
“도대체 왜! 제기랄… 흑흑.”
소리치다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주인공 경수.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영 역시 영화를 보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흑, 경수가 너무 불쌍해…….”
이세린은 옆에서 너무나 슬프게 우는 나영에게 혹시 몰라 준비해 온 휴지를 건넸다.
그리고는 남은 휴지로 자신의 눈물을 닦았다.
그녀 역시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는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시사회장을 찾아 준 모두가 울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어느새 영화 속 주인공 경수가 되어 그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2시간 10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드디어 영화는 끝이 났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정말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 줬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이 났음에도 영화가 주는 여운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시사회장 안은 잠시 정적이 머물렀다.
짝짝짝.
시사회장에 있던 관객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박수를 시작으로 다른 관객들도 자리에서 일어서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결국 시사회장에 있는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한마디로 기립 박수가 터진 것이다.
기립 박수를 들은 스태프와 연기자의 표정에는 뿌듯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한순간에 보답을 받는 기분이었다.
“자, 일어나서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올립시다.”
이진섭 감독의 말에 연기자와 스태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박수를 치는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보던 나영은 옆에 있는 이세린에게 물었다.
“영화 좋았어?”
“응, 너무 좋았어. 넌 어땠어?”
“나도 너무 좋았어.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최근에 본 영화 중 최고였던 거 같아.”
“그럼 우리 정식 개봉하면 극장에서 한 번 더 볼까?”
“어머, 나도 그 말 언니한테 하려고 했는데. 그럼 우리 진짜로 보러 가자.”
“호호, 그래.”
두 사람은 결국 다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기로 바로 약속해 버렸다.